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2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28화(28/273)
아벨슨 마리어트.
신성 제국 가트렌의 차기 성녀인 그녀는 현재 최현석 전담 치유사가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최현석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벨슨뿐이었으니까.
덕분에 그녀는 최현석의 훈련을 자세히 지켜볼 수 있었다.
“크헉!”
“우웨엑!”
최현석은 정말 지독히도 맞았다.
피가 섞인 토를 하는 건 일상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의 문턱을 넘어 다녔다.
그때마다 아벨슨은 최현석을 치료했다.
명색이 차기 성녀인 만큼, 그녀의 치유력은 대륙에서 손꼽을 정도로 뛰어났기에 문제는 없었다.
“저기…”
재미있는 것은 최현석 반응이다.
그는 다 죽어가면서도 치료를 받을 때마다 입을 놀렸다.
“저번에는 죄송했습니다…”“저는 최현석인데요…”“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머리칼은 태어날 때부터 은발이었습니까…? 염색은 아니겠죠…?”“산책 좋아하세요…?”“진짜 미인이시네요… 예쁘단 말 자주 들었어요..?”
레이드런에게 맞아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최현석은 개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무시하던 아벨슨도, 결국 그의 끈기에 항복했다.
“아벨슨 마리어트.”
“네. 원래 은발이에요.”
“산책 좋아해요.”
“진짜 구질구질하시네요.”
그녀는 최현석을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대답은 짧게 하고, 가끔은 그에게 상처가 될 말도 했다.
그런데도 최현석은 변함없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치료를 받고는, 다시 맞으러 떠났다.
잠시 후면 또 만신창이가 된 채로 와서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3일 후.
결투 전날 밤이 됐다.
“저… 아벨슨 씨.”
훈련이 끝난 후 각자 방으로 돌아가기 전, 최현석이 말을 걸어왔다.
“아시겠지만, 제가 내일 중요한 싸움을 합니다.”
“네.”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라는 말에 아벨슨의 표정이 굳었다.
첫 만남에서 최현석이 뜬금없이 키스해달라 한 게 떠오른 것이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실수를 깨달은 최현석이 당황하며 팔을 저었다.
“아! 키스나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뭐죠…?”
“신이라는 작자한테 기도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기도?”
“예. 그냥 간단한 기도입니다.”
최현석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이딴 가짜 용사로 마왕군에 보낸 걸 원망할 생각은 없으니까…”
“…”
“내일 뒤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만 부탁한다고요. 꼭 전달 좀 해주십쇼.”
어째서일까.
웃으며 말하는 최현석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아벨슨은 알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은 그것뿐인가요?”“아! 하나 더 있긴 한데… 그건 내일 결투가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최현석은 왜인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는 어색하게 웃었다.
“알겠어요.”
“저기! 괜찮으시면 내일 보러 와주시겠습니까?”“…생각해 볼게요.”
아벨슨은 애매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전쟁 포로.
원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예!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쇼.”
최현석은 그 대답이면 됐다는 듯 쿨하게 돌아섰다.
걸어가는 최현석의 뒷모습을 보며 아벨슨은 생각에 잠겼다.
‘기도라… 얼마 만이지?’
그녀는 신께 기도를 드린 지 굉장히 오래됐다.
“…”
잠시 고민하던 아벨슨이 발걸음을 돌렸다.
순간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기도를 드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방으로 돌아온 아벨슨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았다.
오랜만에 부르는 신이 응답하길 바라면서.
***
다음 날 아침.
결전의 날이 밝았다.
“아이고… 삭신이 다 쑤시네.”
최현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두드렸다.
고된 훈련으로 만신창이가 돼서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래도 긴장되지는 않아.’
의외로 마음은 차분했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아픈 몸은 고된 훈련을 방증한다.
즉, 더 강해졌다는 뜻이다.
자신감이 붙은 최현석은 내친김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어디 보자…”
▫이름 : 최현석
▫칭호 : 예비 용사
▫레벨 : 200
·근력 : 80
·민첩 : 77
·체력 : 81
·마력 : 80
·카리스마 : 27
·보너스 포인트 : 0
▫용사 포인트 : 450
▫능력 : 곡괭이질(C), 통솔(E), 요리(F), 마력 운용술(F)▫스킬 : 레이드런식 격투술
상태창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레벨은 전과 같은 200.
고된 훈련 덕인지 마력과 체력이 조금 올랐을 뿐이다.
그럼에도 최현석은 전보다 강해졌다고 확신했다.
결정적인 변화는 능력치 외적인 부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 운용술과 레이드런식 격투술. 이걸로 전보다 더 강해졌어.’
마력 운용술은 말 그대로 마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
초인적인 힘을 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레이드런식 격투술…’
레이드런의 지도 덕에 처음으로 얻은 스킬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비기라 할 수 있다.
최현석은 레이드런식 격투술의 상세 설명을 확인했다.
□ 레이드런식 격투술
‧ 숙련도 : 8%
‧ 설명 : 총 10개의 형(形)으로 이뤄진 동적 투기이다.
‧ 배경 : 카우든 일족에 내려오는 투기 ‘카우든 격투술’을 기반으로 레이드런이 개량한 투기. 강한 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추구한다.
다시 한번 설명을 읽은 최현석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숙련도가 낮긴 하지만 괜찮아.’
결과적으로 투기를 배웠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최현석이 언제 투기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할 때였다.
“헥, 헦!”
보보가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그 애교에 최현석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식. 너도 중요한 날인지 아는 거야?”
“크왕!”
“그래그래. 형이 박살 내고 올게.”크게 짖는 보보는 마치 힘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최현석은 보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는 끝났다.”
그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다.
금발의 귀족
영애.
아니, 은발의 성녀가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있다.
‘이번에 이기면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거야.’
차기 성녀 아벨슨과 함께 드넓은 흑색 거성을 산책한다.
상상만으로 행복했다.
“가자! 사랑을 위해서!”의욕 200% 충전 완료다.
***
마왕군에는 계급이 없다.
오직 직위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마왕군은 두 부류로 나뉠 수밖에 없다.
일반 병사와 지휘관.
여기서 지휘관을 결정하는 방법이 바로 ‘지휘관 결정전’이다.
지휘관 결정전을 진행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원하는 상대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승리 시 해당 직위를 차지한다.
마왕군답게 아주 무식했지만,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었다.
“인간이 지휘관 결정전을 한다! 웃기다! 크하하!”“킥! 오크 쿠르켄! 놈이 지면 내가 소대장 자리를 차지해야겠다!”
제3군단 내에 위치한 대연병장.
이곳에 수천이 넘어가는 마왕군이 모여 있었다.
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고위 지휘관까지 자리했다.
이유는 군단장 헤미스 때문이다.
그녀는 인간 최현석과 오크 쿠르켄의 지휘관 결정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인간이 마왕군의 지휘관이 된다.
그것 하나만으로 흥미를 느낀 수많은 이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저게 소문의 최현석이군.”“군단장님이 총애한다는 인간?”“총애는 무슨… 단순히 군단장님의 유흥거리일 뿐이지.”
대연병장 한쪽에 위치한 단상.
그곳에는 대대장, 연대장 급의 고위 지휘관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상관이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이한 열기의 중심에서.
모든 일의 주동자라 할 수 있는 헤미스는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최현석이 이길 것 같습니다.”
“오호~ 그래?”
옆에 서 있던 레이드런의 대답에 헤미스의 거대한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간이 얼마 없었을 텐데. 그사이에 제법 준비를 했나 봐?”“저는 물론이고 최현석도 최선을 다했습니다.”“최선을 다했다고 모두가 강해질 수 있는 건 아니지.”“…최현석은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분명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레이드런.”
“예.”
“나랑 내기 하나 할래?”
내기라는 말에 레이드런이 고개를 돌려 헤미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기괴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이 있었다.
“내기라 하시면…”
“최현석이 이길지 쿠르켄이 이길지 내기하는 거지. 만약 최현석이 이기면 앞으로 계속 네가 최현석을 가르치는 걸 허락할게.”“그가 지면 어떻게 됩니까?”
순간 헤미스가 혀로 거대한 입술을 훑었다.
“네 손으로 최현석을 죽여.”
“…”
레이드런은 침묵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간다.
하나… 둘… 셋…
3초가 끝나기 전에 레이드런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끄는 것은 위험하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대답이 늦지 않았던 듯 헤미스가 웃었다.
“좋아. 그럼 각자 준비한 패를 보자고! 이렇게 가슴이 두근대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 오호호!”
헤미스가 손으로 입을 조금 가리며 웃었다.
그에 반해 레이드런의 표정은 여전히 굳은 채였다.
그가 어두운 낯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군단장님께서 무언가 수를 쓰신 게 분명하군. 뭐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고민은 금세 해결됐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함성과 함께 오늘의 주인공, 오크 쿠르켄이 등장했다놈을 본 레이드런은 작게 침음을 흘렸다.
‘마기를 삼켰군…’
쿠르켄은 단기간에 마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있었다.
그게 누구의 마기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저건 위험하다.’
오크 쿠르켄은 지금 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마기를 지니고 있다.
아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이번 결투에서 승리하더라도 아마 신체가 무너져 내리며 죽을 확률이 높았다.
‘이렇게까지 하시다니…’
레이드런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상관을 바라봤다.
그 눈망울을 마주한 헤미스가 입술을 비틀었다.
“레이드런. 무르기 없기다?”
“…알겠습니다.”
감히 군단장과의 내기를 무를 생각은 없다.
자살 희망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럴 일은 없다.
이제 레이드런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믿는 것뿐이다.
그 누구보다 마왕군에 어울리는 사내를.
‘이겨야 한다! 최현석…!’
***
“지금부터 제3군단 직할 특수대 본부중대의 1소대장 결정전이 있겠다.”
이번 지휘관 결정전에는 이례적으로 사회자가 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진행을 맡은 마족의 목소리는 선명히 전해졌다.
간단한 목소리 전달 마법이었다.
“킁! 킁! 빨리 시작해라!”
“쿠아아아!”
연병장이 떠나가라 함성이 울린다.
그 한가운데에서 최현석은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긴장되네.’
조금 전의 자신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긴장으로 몸이 미세하게 떨린다.
목숨이 걸려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괜찮아. 긴장감은 익숙해.’
최현석은 지구에서 수많은 경기를 치렀다.
규모만 보자면 이것보다 훨씬 큰 경기장에서도 싸웠다.
그에게 긴장감은 오히려 익숙한 것이었다.
“후우…”
최현석이 천천히 호흡을 내뱉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결투 상대인 쿠르켄이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본 최현석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저건 뭐야?’
결투 상대인 쿠르켄이 무언가 이상했다.
최현석은 분명 며칠 전 쿠르켄을 염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쿠르켄은 그때와 완전히 다른 오크로 변해 있었다.
“크륵… 쿠우…”
눈에서 검붉은 안광이 흘러나오고, 숨을 토해낼 때마다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놈이 함성을 내질렀다.
마력이 담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마력 한번 살벌하네.’
놈의 마력은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최현석도 이제 마력을 다룰 수 있기에 단번에 눈치챘다.
그가 혹시 몰라 챙겨 온 전투력 측정기를 착용했다.
순간 최현석의 눈이 크게 떠졌다.
[ 전투력 : 10,573 ]“이런 시벌…”
무려 자릿수가 변해 있다.
이전에 확인한 쿠르켄의 전투력은 6,600 정도.
그런데 며칠 만에 무려 1만을 넘겨 있었다.
최현석은 직감했다.
‘입술 괴물이 뭔가 요망한 수를 쓴 거야!’
헤미스가 벌인 짓인 게 확실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며칠 만에 이만한 전력 상승이 일어날 수는 없다.
‘이길 수 있을까?’
현재 최현석의 전투력은 3655.
단순 수치로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최현석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해볼 수밖에 없어.’
전투력은 단순히 능력치를 수치화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며칠 동안 피나는 훈련으로 최현석은 훨씬 더 강해졌지만, 전투력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즉, 전투력이 절대적인 강함의 척도가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싸워보기 전엔 모른다.
‘내가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믿어야만 한다!’
링 위에서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최현석은 오랜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소대장 결정전! 시작해라!”
마침내 결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