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3)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3화(3/273)
“참나, 바빠 죽겠는데 왜 부르고 난리야.”
오늘은 라헬의 표정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상관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도 최고 실적을 달성해서 보너스 받아야 하는데!”
요즘 사람들이 워낙 무기력해서 용사로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라헬은 최근 몇 달간 용사 이송 실적 1위를 달성했고,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흠, 흠…!”
실적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새하얀 대리석이 깔린 복도.
그 끝에 있는 문에 선 라헬이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라헬은 최대한 생긋 웃는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찾으셨어요?”
“그래.”
라헬을 맞이한 것은 무뚝뚝한 인상의 남성.
‘프리젤라’라는 이름을 가진 라헬의 상관이었다.
“라헬. 최현석이라는 남자. 기억하고 있나?”
프리젤라는 대뜸 최현석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라헬은 순간 당황했으나,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그럼요. SSS급 잠재력을 지닌 중요한 용사 후보였잖아요.”
지구에서 나온 유일한 SSS급 잠재력을 지닌 남자.
그를 용사로 보낸 덕에 특별 보너스까지 받았으니 잊었을 리가 없다.
“네가 말했지. 최현석을 문제없이 이송 완료했다고.”
“그랬죠!”
라헬은 의아했다.
상관인 프리젤라가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불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현석을 어디로 이송시켰지?”“다른 용사들과 같이 도미스 왕국의 수도로 보냈어요. 최현석이 SSS급 잠재력을 지녔다고 해서 시작부터 특별 대우를 하는 건 규정에 위반되니까요.”“그래… 그랬군. 도미스 왕국의 수도로 보냈다?”
“네!”
“그런데 말이야…”
프리젤라가 화를 참으려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언제부터 도미스 왕국의 수도가 마왕군 요새로 변했나?”
“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도미스 왕국이 멸망하기라도 했나 보지?”
“그게 무슨…”
라헬은 그녀의 상관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통 이해할 수 없었다.
“최현석은 매우매우 중요한 예비 용사다. 그래서 나는 그가 제대로 이송됐는지 따로 확인했지. 비록 규정에 위반되는 일이라 해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프리젤라가 다가오며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
“도대체! 왜! 최현석이 마왕군의 요새에 잡혀있는 거냐!?”“마왕군 요새라니요…?”“그뿐만이 아니야. 거기에 잡혀있는 다른 예비 용사만 무려 93명이다.”
“네!?”
“기록을 찾아보니 전부 라헬. 네가 보낸 용사더군. 그것도 지난 3개월 사이에 말이야.”
프리젤라가 사납게 눈을 떴다.
“너는 네 실적을 올리겠다고 용사의 자질을 확인하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보냈다. 심지어 아무런 특전도 없이 말이야.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말을 하는 프리젤라의 언성이 점차 높아졌다.
“용사들을 전부 마왕군 요새에 처박아!? 그것도 SSS급 잠재력을 지닌 최현석까지!? 네가 미치지 않고서야!”“그, 그럴 리가 없는데…”“방금 네 이송 장비를 확인했다. 확인해보니 이송 좌표가 잘못 적혀있더군.”
“좌표…?”
그 순간, 어째서일까.
불현듯 라헬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우움, 역시 마카롱이 최고야.”
한 달 전.
여느 때처럼 커피와 마카롱을 맛있게 먹던 그 날.
“후르릅… 앗! 뜨거!”
자신은 타자기에 커피를 쏟았고.
천으로 타자기를 문질러 닦았다.
‘설마 그때…’
라헬은 넋이 나간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프리젤라가 씨익 웃으며 라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사태 파악이 좀 되나?”
“그, 그게…”
“라헬. 각오는 돼 있겠지?”
***
마왕군 제3군단 예하, 제2노예부대.
이곳에는 수천 명의 인간 노예가 요새를 증축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마왕군…”
최현석은 마왕군 제3군단의 군단가를 부르며 곡괭이를 휘둘렀다.
“무찌르자 인간. 잡아먹자 인간…”
눈이 풀린 채로 얼마나 곡괭이를 휘둘렀을까.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다. 모두 들어가!”
최현석이 속한 노예반(班)을 이끄는 고블린 쟈크가 소리쳤다.
“들어가란 말이다! 이 쓸모없는 인간들아!”
쟈크가 노예들의 엉덩이를 뻥뻥 걷어찼다.
‘저 개자식…’
‘땅딸보 주제!’
초록색 피부를 지닌 못생긴 괴물 고블린은 체구가 작다.
그런 만큼 어지간한 성인 남성이라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히 쟈크에게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놈의 잔혹한 성격 때문이었다.
1m에 달하는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쟈크는 이곳 노예들에게 공포의 대명사나 다름없었다.
“인간! 뭘 미적거리고 있나!?”
불똥이 최현석에게로 튀었다.
다가온 쟈크가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앙!? 빨리 안 가고 뭐 하냐고! 이 굼벵이야!”
쟈크는 키가 작아 198cm인 최현석의 뒤통수에 손이 닿지 않았다.
때문에 폴짝폴짝 뛰어서 뒤통수를 때렸는데, 그게 더 열 받았다.
‘이 고블린 새끼가…!’
순간 최현석의 눈에 불길이 일었으나,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가, 갑니다. 하하!”
최현석이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빨리빨리 가라! 멍청한 인간!”
“예… 예!”
최현석은 서둘러 자신의 감방으로 돌아왔다.
‘너는 진짜 곱게 안 죽인다…’
언젠가 복수하고 말리라.
저 얄미운 고블린의 뒤통수를 500대쯤 후려쳐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할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복수의 칼날을 갈았을까.
어느새 모든 노예가 복귀했다.
쟈크는 감옥 문을 걸어 잠그고는 떠나갔다.
“후우… 드디어 조용해졌네.”
최현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오히려 감옥이 더 편하다.
여기서는 적어도 노동을 하거나 괴롭히는 마왕군은 없었으니까.
‘이제 오늘의 성과를 확인해 볼까?’
요즘 최현석이 빠져있는 것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겠다.
그건 바로 상태창!
상태창이란 게임에서 사용하는 인터페이스와 비슷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 덕분에 알게 됐다.
“용사만이 가지는 특별한 능력이라네!”
잡학 다식한 동료 노예 박태수가 알려준 상태창은 굉장히 익숙한 사용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예비 용사
▫레벨 : 1
·근력 : 28
·민첩 : 29
·체력 : 31
·마력 : 10
·보너스 포인트 : 0
▫용사 포인트 : 0
▫능력 : 곡괭이질(D)
▫스킬 : –
“오, 체력이 1 올랐네.”
죽은 동태 눈깔을 하고 있던 최현석의 눈에 생기가 조금 돌았다.
열심히 노동을 하다 보면 능력치가 오른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어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능력치가 올랐다.
“벌써 능력치가 오른 건가?”
옆방 노예 박태수가 말을 걸어왔다.
최현석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예. 체력이 1 올랐네요.”“대단하구만. 역시 세계 챔피언은 다르다 이건가? 하하!”“세계 챔피언이면 뭐합니까. 노예 신세인데.”
최현석이 쓰게 웃었다.
“아니야. 자네라면 분명 이곳을 탈출하고 진짜 용사가 될 수 있을 걸세.”
박태수는 진심이었다.
처음 최현석의 정체를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그 유명한 격투기 세계 챔피언이 바로 여기 있었다니.
게다가 능력치 또한 범상치 않다.
보통 이곳에 오는 용사들의 평균 능력치는 10~15.
정말 높아도 10 후반 정도였는데, 최현석은 시작부터 무려 30에 달하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나도 들은 말이긴 하지만, 시작 능력치가 성장 잠재력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있네.”
얼마 전, 이곳에 잡혀 왔다가 죽은 용사가 한 말이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최현석은 누구보다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용사가 되는 것이다.
그 생각은 최현석의 성장 속도를 보며 더욱 확실해졌다.
“자네 지금 곡괭이질이 D등급이라 했나?”
“예.”
“역시 자네는 남달라!”
곡괭이질 능력은 이곳에 있는 모든 용사 노예가 지닌 흔하디흔한 것이다.
그러나 최현석이 요새에 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일이었다.
보통은 이제 막 곡괭이질 능력이 생겨야 할 시기.
최현석은 이미 능력을 만든 것도 모자라 두 단계나 성장시켰다.
‘우리 같은 짝퉁 용사가 아니라 진짜 용사가 될 재목이야!’
고작 곡괭이질 가지고 무슨 유난이냐 할 수도 있겠으나, 박태수는 진심으로 믿었다.
언제가 최현석은 이 지옥을 벗어나 진정한 용사가 될 것이라고.
‘그전에 잘 보여둬야지!’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줄을 잘 잡아야 한다.
30년에 달하는 회사생활로 다져진 박태수의 감각이 말했다.
최현석이야말로 최상급 동아줄이라고.
***
그날 밤.
늦은 시각이 됐음에도 최현석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등 뒤로 차디찬 돌바닥이 느껴진다.
감방 안에는 짚단 따위로 대충 만든 침대가 있었으나, 냄새가 고약했기에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렇게 능력치를 올려서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최근에는 이 능력치만이 최현석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대충 평균 100을 달성하면 강해지려나?’
현재 마력을 제외한 능력치의 평균은 대략 30.
그렇다면 각각 70을 더 올려야 하니 총 210을 올려야 하는 셈이다.
‘일주일에 한 개 올랐으니까, 210이면 대충 1470일. 4년인가…’
정말 쓸데없는 계산이다.
앞으로 계속 일주일마다 능력치가 오른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최현석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단지 이렇게라도 해야 이 지옥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짓이었다.
‘이게 전부 라헬. 그 요망한 년 때문이라는 거지?’
라헬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가 갈렸다.
‘얼굴은 그렇게 이쁘장하게 생겨놓고선 이런 짓을 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자신은 라헬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까지 하려 했다.
그런데 이런 파렴치한 짓을 벌이다니!
“용사라고요! 깨어나면 시골 마을의 촌장이 용사님~! 하면서 버선발로 달려와서 음식을 대접하고…”
시골 마을의 촌장?
정작 나타난 건 뿔에서 불꽃을 뿜어내는 소대가리 근육 괴물이었다.
“임무를 끝내고 왔더니 웬걸? 촌장의 늦둥이 딸이 20대의 청순한 절세 미녀였네!?”
절세 미녀는 없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땅딸보 고블린이 있을 뿐이다.
아, 피딱지가 눌어붙은 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것은 옵션이다.
최현석이 이빨을 으득 깨물었다.
‘절대 이렇게는 못 죽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용사? 그딴 건 이제 모른다.
관심도 없다.
최현석의 목표는 살아남는 것.
그리고 복수하는 것이다.
못생긴 고블린 간수 쟈크.
대장 소대가리 레이드런.
마지막으로 천사의 가면을 쓴 악마 라헬까지.
‘내가 힘이 생길 때까지… 그때까지는 바짝 엎드려 있는 거야.’
어떻게든 강해져야 한다.
듣자 하니 이세계에서는 마력이라는 것으로 초인적인 힘을 거머쥘 수 있다고 한다.
·마력 : 10
지금은 고작 10에 불과한 마력이지만 어떻게든 올릴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희망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용사 포인트가 뭘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데…’
최현석은 상태창 하단에 있는 ‘용사 포인트’라는 항목에 주목했다.
▫ 용사 포인트 : 0
이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쉽게도 없었다.
모두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할 뿐.
“그 포인트를 모으면 전설의 무기를 살 수 있다고 했어!”“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던데?”“주먹 한 방에 바위도 부술 만큼 엄청난 힘을 준다더라.”
딱히 도움이 되는 말은 없었다.
여기 있는 짝퉁 용사들이 뭘 알겠는가.
어차피 시작하자마자 요새에 떨어져 노예로 살아왔던 처지인데.
그저 최현석보다 조금 일찍 와서 주워들은 게 많을 뿐이다.
“용사 포인트. 이게 뭔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최현석이 인상을 쓰며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알려드릴까요?”
목소리를 들은 최현석의 눈이 부릅떠진다.
‘이 목소리는 설마…’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최현석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어찌 이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너, 너…!?”
“오랜만이에요. 용사님.”
라헬이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