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33)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33화(33/273)
“용사님용사님용사님용사님!”
“왜.”
“진급 축하드려요! 이제 중대장이네요!”
라헬이 깐족대며 말했다.
최현석이 라헬을 빤히 바라봤다.
“너 예전에는 분명 용사로서의 본분이 어쩌고 하지 않았냐?”
최현석이 노예장을 한다고 했을 때도 기겁하던 라헬이다.
이제는 마왕군 지휘관이 됐는데 쌍욕은 못할망정 축하를 하다니?
최현석의 물음에 라헬이 싱긋 웃었다.
“저도 이제 포기했는걸요! 우리 그냥 여기서 출세하죠!”“하아… 말을 말아야지.”
최현석이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이제 어디 가요?”“일단 조리장부터 가봐야지.”
시간이 많지 않다.
헤미스가 내일까지 조리장을 정상 가동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보자… 부대를 정비하는 데는 내일 하루면 충분하겠지? 모레부터 조리장 정상 가동시켜.”
거대한 입술을 들이밀며 말하는데 차마 시간을 더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최현석은 늦은 시각임에도 조리장으로 향하는 중이다.
“오늘 조리장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내일 정비를 끝낸다. 모레에는 무조건 사냥을 출발해야 해.”“오옷! 우리 중대장님. 제법 카리스마가 넘치는걸요!?”“너 오늘따라 유난히 까분다?”
“흥! 흥! 흥!”
라헬이 팔짱을 끼며 3연속 콧방귀를 뀌었다.
“왜 저래…”
최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도착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조리장에 도착했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황량한 조리장이 보였다.
“아무도없….”
순간 최현석이 입을 다물었다.
“우걱! 우걱! 우걱!”
조리장 한쪽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살금살금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우걱우걱! 쫩쫩!”
도착한 곳에는 게걸스럽게 무언가를 먹는 조리병 하나가 있었다.
‘전투력은 2500. 나보다 아래군.’
전투력 측정기로 서열을 확인한 최현석은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야이 새끼야!!!”
최현석이 조리병의 등에 발길질을 가했다.
“쿠억!”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조리병이 데굴데굴 굴러가 벽에 처박혔다.
“뭐, 뭐냐!?”
“너 뭔데 이 시간에 식량을 파먹고 있어? 엉!?”
“최, 최현석…?”
조리병은 최현석을 알아봤다.
“어허, 앞으로는 조리장님이라 불러라.”
최현석이 양피지를 내밀었다.
최현석을 조리중대장으로 임명한다는 명령서였다.
“글자! 모른다!”
“오늘부터 내가 조리장이다. 군단장님께서 명령하셨어.”
“아하!”
조리병은 쉽게 납득했다.
“그래서 너는 왜 이 시간에 도둑고양이처럼 밥을… 이게 아니지. 야! 너 이름이 뭐야?”
“갈룸이다!”
갈룸은 2m가 넘어가는 키에 빼빼 마르고 등이 굽은 체형이었다.
비록 덩치가 많이 크긴 했지만, 대머리란 점도 그렇고 여러모로 반지를 좋아하는 친구와 닮아 있었다.
“골룸. 조리병들 싹 다 집합시켜. 지금 당장.”
“갈룸이다.”
“아무튼 조리병들 집합시키라고 인마.”
“싫다.”
“왜?”
“갈룸은 약한 녀석 말은 듣지 않는다.”
“좋아. 알겠다.”
갈룸의 말에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냅다 로우킥을 갈겼다.
쩌억!
찰진 소리가 울렸다.
마력을 담아 전력으로 때렸기에 갈룸은 다리가 부러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자, 이제 누가 약한 녀석이지?”“가, 갈룸은 인정할 수 없….”쩌억!
“지금 바로 가겠다.”쩌억!
“카학! 가겠다고 했는데 왜, 왜 때리나!?”“그냥 골룸 주제 나한테 개겼다는 게 기분 나빠.”
최현석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갈룸은 눈물을 글썽이며 기어가기 시작했다.
“갈룸…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아장아장 걸으며 조리병들을 다 데려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
최현석은 대충 남은 식량 재고를 확인했다.
그 사이 조리병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현석은 전투력 측정기로 빠르게 그들을 스캔했다.
‘평균 전투력 2,000. 제일 높은 놈이 3,500 정도인가.’
원래 조리병들은 평균 전투력이 굉장히 높았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다행히 휘어잡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조리병들의 숫자다.
‘왜 이렇게 적어?’
분명 모든 조리병을 모으라 했음에도 모인 것은 고작 서른 남짓.
적어도 너무 적었다.
최현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갈룸을 바라봤다.
“이게 끝이야? 전부 모인 거 맞아?”
“그, 그렇다…”
갈룸은 여전히 주저앉은 채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라고 해야지?”
최현석이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갈룸의 고개가 빠르게 끄덕여졌다.
“그렇슴다!”
“좋아! 모두 집중한다.”
최현석이 손뼉을 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리병이 모두 모였으니 본론을 꺼낼 차례였다.
“다들 아는 얼굴이구만.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최현석이다.”
“최현석. 인간. 맛있는 고기 만들어준다.”“맛있는 인간이다.”
순간 최현석이 손을 들었다.
“어이, 거기.”
“…”
“방금 맛있는 인간이라 지껄인 놈. 그래 너. 나와 인마.”
한 오크가 떨떠름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내가 맛있는 인간으로 보여?”
“그렇다.”
대답과 동시에 번개 같은 로우킥이 작렬했다.
쩌억!
한방에 오크가 다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내가 맛있는 인간으로 보여?”
“그렇…”
말을 하던 오크의 눈동자가 빠르게 갈룸을 살폈다.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대 더 맞으면 자신도 앉은뱅이 신세가 될 것이다.
“아닌 것 같다. 맛없을 것 같다.”쩌억!
“왜, 왜 때리나!?”
“맛없을 것 같다는 말도 뭔가 기분 나빠.”
세상 억울한 눈으로 쳐다보는 오크를 뒤로한 채, 최현석은 다시 조리병들을 바라봤다.
그가 명령서를 내밀었다.
“자! 이건 군단장님의 명령서야. 보다시피 앞으로 나를 조리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지.”
사실 최현석도 명령서에 뭐라 적혀있는지는 모른다.
글자를 읽을 줄 몰랐으니까.
그냥 그런 내용이라 들었기에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나를 부를 때는 전부 조리장님이라 불러라. 알겠나?”
“예…”
조리병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안 본 사이에 웃으며 고기를 구워주던 최현석은 폭군으로 변해 있었다.
“여기서 제일 똑똑한 놈이 누구야?”
최현석의 물음에 조리병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카르돈이 똑똑했다.”“멍청한 놈. 카르돈은 어제 죽었다.”“몰리옴이 똑똑하다.”“몰리옴은 멍청하다.”“몰리옴은 똑똑하다!”“몰리옴은 똥멍청이다.”
금세 난장판이 벌어졌다.
“전부 닥쳐어!”
“…”
우렁찬 목청 한 번에 상황이 곧바로 정리됐다.
“됐고. 거기 너.”
최현석이 미리 봐뒀던 조리병을 불렀다.
‘아까 저놈이 제일 말을 유창하게 했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최현석은 조리병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캐치한 상태였다.
“이름이 뭐야?”
“크론입니다.”
“좋아. 크롱이. 쿨칸이 살아있을 때를 기억하나?”
“예.”
“그때 조리병이 얼마나 있었지?”
“음…”
크론은 손가락을 열심히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대충 300명은 넘었던 것 같습니다.”“그래. 내 기억도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은 왜 이것밖에 없어?”
여왕 탈라스를 마주했을 때, 쿨칸을 포함해 그곳에 있던 조리병은 고작해야 100명 남짓했다.
그때 모조리 몰살을 당했더라도 아직 200명은 남아있어야 한다.
“전부 죽었습니다.”
“어쩌다가?”
“사냥을 나갔다가 마수에게 당했습니다.”
“아…”
최현석은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였다.
안 봐도 비디오인 상황이었다.
‘머리가 없으니까 관리가 안 됐겠지.’
쿨칸은 마왕군 치고 제법 똑똑한 편이었다.
전투력도 3만5천으로 실력까지 뛰어났다.
그런데 탈라스 사건에서 쿨칸은 물론이고 부조리장을 포함한 엘리트 조리병들이 한꺼번에 죽었다.
남은 조리병들이 아무리 강해봤자 마수만큼 강하지는 않다.
막무가내로 덤벼들다가 대량 학살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아…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사냥을 하는 거야 새로 조리병을 뽑아서 가면 된다 쳐도… 조리는 어떻게 해?’
조리병의 주된 임무는 두 가지.
사냥과 조리다.
사냥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조리는 아니다.
간부들이 먹는 식사인 만큼, 조리에는 나름대로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크롱이.”
“크론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누가 제일 요리를 잘하지?”“음… 갈룸입니다.”
“그래?”
최현석이 의외라는 눈으로 바닥에 앉아있는 갈룸을 바라봤다.
“골룸.”
“예.”
“앞으로 네가 부조리장이다. 불만 있는 놈은 지금 말해.”
“…”
“좋았어.”
최현석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다들 들어가 봐. 내일부터는 바빠질 테니까. 푹 쉬고.”
오늘의 할 일은 끝났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조리병들을 모집해야 한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오늘 최현석은 확신했다.
자신은 강해졌다.
‘최대한 만만한 놈들만 뽑자.’
전형적인 강약약강!
비열한 폭군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
다음날.
최현석은 날이 밝자마자 보보의 집을 나섰다.
“보보! 산책 가자!”
보보와 함께 떠나는 즐거운 산책!은 아니고.
조리병들을 새로 뽑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굳이 보보를 데려가는 이유는 여차할 경우 상대를 협박하기 위해서다.
“헥, 헦!”
그런 사육사의 시커먼 속도 모르고, 보보는 마냥 행복한 얼굴로 최현석의 뒤를 따랐다.
“용사님. 어디부터 가실 거예요?”“글쎄… 막상 병사를 모으려고 하니 막막하네.”
헤미스가 한 말은 그저 병사를 모집할 권한을 준다는 것뿐.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누구를 대상으로 모아야 하는지는 일절 설명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겠죠.”
“정 안되면 보보 뒤에 숨어서 협박하면 돼.”“우와, 그런 비열한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용사라니. 최악이네요.”
“뭘 새삼스럽게.”
“하긴 그러네요.”
이제 와서 비열하니 사악하니 따위를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미 오래전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용사와 전담 요정이었다.
“좋아. 일단 시작은 저놈이다.”
최현석이 한 병사를 가리켰다.
두더지를 닮은 얼굴을 한 근육질의 병사였다.
“왜 하필 저 두더지인데요?”“만만하게 생겼잖아.”
정확히는 전투력이 만만했다.
[ 전투력 : 1931 ]고글에 떠오르는 전투력을 확인하며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낮지도 않고 딱 좋아.”
전투력이 너무 높으면 다루기 힘들다.
그렇다고 전투력이 너무 낮으면 쓸모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투력 1500에서 3000 사이가 제일 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아하! 용사님 은근히 똑똑하시네요.”“은근히 똑똑한 게 아니라 그냥 똑똑한 거야.”
최현석과 라헬이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병사에게 다가갔다.
“야. 거기 너.”
최현석이 병사를 불렀다.
병사는 두리번거리더니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두더지. 너 말이야.”
두더지라는 말에 병사의 얼굴에 힘줄이 돋아났다.
최현석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너 조리병 해라.”
“조리병?”
“그래. 맛있는 거 배 터지게 먹여줄게.”
갑작스러운 제안에 두더지 병사 잠시 당황했다.
그러다 돌연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린다.
“싫다! 그나저나 인간. 감히 나 디그돈에게 두더지라고 했겠다?”“응? 조리병 하기 싫어?”
“싫다고 말했다!”
“이상하네…”
최현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리병을 시켜준다면 환장하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정신머리를 뜯어주지!”
두더지라는 말에 화가 난 두더지 병사가 대뜸 주먹을 휘둘렀다.
최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틀어 주먹을 피해냈다.
“음, 싫으면 어쩔 수 없긴 한데…”
동시에 작렬하는 로우킥!
쩌억!
허벅지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두더지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너 조리병 해라.”
“싫다고 했…”
쩌억!
“너 조리병 할래?”
최현석은 대답도 듣지 않고 로우킥을 갈겼다.
쩌억!
두더지가 억울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왜, 왜 대답도 듣지 않고 때리나!? 하겠다! 조리병 하겠다!”
조리병을 하겠다는 말에도 최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게 아니야.”“뭐냐!? 원하는 대로 조리병을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좀 더 간절한 얼굴로 조리병 시켜주세요. 라고 해.”
“…”
그 순간, 두더지는 깨달았다.
이놈은 미쳤다.
살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
“안 해?”
“제발! 저를 조리병으로 뽑아주세요!”
두더지의 간절함이 닿은 걸까.
최현석이 씨익 웃었다.
“뭐,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어쩔 수 없네! 시켜줄게!”
절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두더지를 뒤로하고.
라헬이 다가와 말했다.
“용사님! 놀랐어요. 완전 협상의 달인이신데요!?”
칭찬에 최현석이 손가락으로 코를 슥슥 문질렀다.
“뭐, 이 정도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이대로라면 오늘 안에 다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좋았어. 가보자고!”
용사 최현석과 전담 요정 라헬이 힘차게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