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3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36화(36/273)
“너, 너도. 너도 따라와.”
최현석은 돌아다니며 병사 몇을 지목했다.
그렇게 뽑은 병사는 총 다섯.
훌륭한 미끼가 되어줄 친구들이었다.
선출된 미끼 담당을 보며 라헬이 고개를 갸웃했다.
“용사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굳이 저 다섯을 뽑은 이유가 있어요?”“딱히. 뭐 문제 있어?”“이왕이면 재빠르게 생긴 녀석을 뽑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미끼를 맡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스피드다.
기껏 마수를 만나도 도망치지 못하고 잡아먹히면, 그것이야말로 개죽음이었으니까.
“보세요! 특히 여기 나무늘보처럼 생긴 애는 엄청 느릴 것 같잖아요?”“괜찮아. 어차피 달리기 실력이야 다들 고만고만해.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다고.”
“그런가요?”
“어. 그러니까 그냥 기분 나쁘게 생긴 놈들 위주로 뽑았어.”
최현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라헬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렇군요…”
말하는 것만 보면 용사가 아니라 나사 풀린 사이코 살인마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차피 용사가 마왕군을 처리하는 거니 문제는 없지만…’
문제는 없지만, 그저 기분이 조금 복잡 미묘할 뿐이었다.
“자! 잡설은 치우고 바로 시작하자고.”
최현석은 뽑아온 병사 다섯을 으슥한 곳으로 데려왔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아주 특별한 임무를 맡기려고 한다.”
“임무?”
라헬이 말했던 나무늘보를 닮은 병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행동이 느릿느릿한 게, 정말 달리기도 느릴 것처럼 보였다.
“그래! 이건 아주 중요한 임무야.”
최현석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나무늘보. 우리가 이 숲에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사냥을 하기 위해서다.”“맞아! 그런데 지금 사냥을 못 하고 있지?”
“그렇다.”
“그렇지! 그렇지! 네 말처럼 사냥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어. 이건 심각한 문제라고!”
“…”
“그러니까 너희가 좀 도와줘야겠어.”
최현석이 손을 들어 숲을 가리켰다.
“가서 한 바퀴만 돌고 와라.”
다섯 명의 마왕군이 모두 고개를 45도로 기울였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뜻이었다.
“무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다.”
나무늘보가 대표로 되물었다.
“숲에 가서 산책 좀 하고 돌아오라고.”“저 숲에는 마수가 있다.”
“나도 알아.”
“우리만 가면 죽는다.”
나무늘보가 제법 논리 정연하게 말했다.
다른 병사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우노우! 죽는다는 틀렸어.”
최현석이 검지를 내밀고 까딱거렸다.
“죽을 수도 있다! 이게 맞는 말이지.”“그게 그거 아닌가… 아무튼 나는 가기 싫다.”
나무늘보의 말에 병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왜 우리만 가나.”“저는 오래 살아서 고기 잔뜩 먹고 싶어요!”“나도 가기 싫다. 쿠룩! 숲은 무섭다! 쿠루룩!”
병사들이 손을 들고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어 댄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최현석은 이마를 짚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곤란한 표정과는 달리, 최현석은 사실 평안했다.
이 정도 반항은 충분히 범부 안이었으니까.
‘좋게 말해서 안 되면 협박을 할 수밖에.’
최현석은 곧장 다음 협상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 거야.”
최현석이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켰다.
“첫 번째. 내가 말한 대로 얌전히 숲을 탐험하는 것. 죽을 수 있지만, 살 수도 있지.”
이번에는 숲에서 손가락을 옮겨 옆에 있는 보보를 가리켰다.
“두 번째. 지금 무지하게 배가 고픈 보보의 뱃속을 탐험하는 것. 이건 죽을 수 있고, 살 수는 없어.”
최현석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보보의 입에서 침이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크왕!”
힘차게 짖는 게, 어서 두 번째를 선택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최현석이 악마처럼 웃으며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선택해. 어떡할래?”
***
당연하게도 불쌍한 병사들은 모두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죽을 수도 있는 게 무조건 죽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좋아. 준비됐지?”
“이, 이상하다! 이건 이상하다!”
나무늘보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조리장! 산책하고 오라 했다! 이건 산책이 아니다!”“무슨 소리야? 이게 다 너희들 편의를 위해서 그런 거야. 왕복으로 달려야 할 걸 편도로 바꿔줬으니 감사하라고.”
현재 나무늘보 병사는 우사루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이제 최현석의 말 한마디면 나무늘보는 하늘을 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놈들이 근처만 배회하다가 돌아오면 안 되니까.’
마수를 물고 와야 할 놈들이 이 근방만 돌아서야 의미가 없다.
고민 끝에 최현석은 우사루에게 시켜서 미끼를 집어던지기로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여기 불 피워놓은 거 보이지? 연기 보고 이쪽으로 달리기만 하면 돼. 쉽잖아?”“사, 살려줘라! 살려줘!”“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네.”
최현석은 피식 웃고는 우사루를 가볍게 툭 쳤다.
“알지? 있는 힘껏, 전력으로 던지는 거다.”
우사루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잔뜩 신이 난 모습이었다.
“좋아. 던져!”
“우사~루!!!”
우사루가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부아아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음이 울리고.
동시에 나무늘보가 하늘을 날았다.
“끄아아아아아아~!”
순식에 멀어지는 나무늘보를 보며 최현석은 만족한 듯 웃었다.
“좋아. 다음은 저쪽 방향으로 던지는 거야.”“우사~루! 알겠다!”
우사루가 다음 희생양을 집어 들었다.
“사, 살려주세요! 조리장님!”
병사는 살기 위해 존댓말 패치까지 진행시켰으나, 소용없었다.
“누가 들으면 죽는 줄 알겠네. 인마. 그냥 뛰면 살 수 있어.”
“아, 안 돼!”
최현석은 무심한 얼굴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던져.”
“우사~루!”
“끄아아아아아!”
두 번째 병사도 하늘을 날았다.
“용사님. 진짜 멀리 날아가네요!”
라헬은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고개를 쭉 내밀었다.
병사가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궁금한 듯했다.
“용사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저거 떨어지자마자 죽으면 어떡해요?”
라헬의 질문에 최현석이 고민에 빠졌다.
그건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으음, 살지 않을까? 영화나 만화 같은 거 보면 항상 나뭇가지 같은 데 부딪혀서 살던데.”“쟤들은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살아남는 건 오직 주인공뿐이다.
단역 엑스트라 마왕군에 그런 기회가 있을까?
“일리가 있어…”
꽤나 그럴싸했다.
머리를 긁적이던 최현석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다. 일단 전부 던져보고 기다리지 뭐.”
모닥불을 열심히 피워 연기를 날리는 중이다.
날아간 병사들이 살아 있다면 이 연기를 보고 돌아올 것이다.
“계속해.”
“우사~루!”
신이 난 우사루가 연달아 미끼를 집어던졌다.
“끄아아아아!”
“살려어어어어억!”
미끼 다섯이 모두 하늘을 날아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리병들은 오들오들 떨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킥! 나는 오래 살고 싶어…!”“조리장 인간. 제정신이 아니다.”“그냥 미친놈들이다…”
여기저기서 불만 어린 목소리만 나왔다.
그러나 정작 나서는 이는 하나도 없다.
괜히 총대 메고 말했다가 미끼 신세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마왕군은 계급이 곧 무력인 단체.
이곳에서 최현석보다 강한 이는 우사루와 보보뿐이다.
물론, 병사들이 단체로 덤벼들면 최현석은 순식간에 제압되겠지만.
위에 말했듯 우사루와 보보가 있기에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규격 외 괴물이 둘이나 버티고 있는 이상 병사들은 꿈에서라도 덤빌 생각을 하지 못했다.
“흐음… 제법 늦네.”
최현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용사님. 좀 더 기다려요. 아직 10분밖에 안 지났어요.”
라헬이 손목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곳에는 펜으로 그린 시계가 있었다.
“혹시 네 말대로 전부 떨어져서 죽은 거 아닐까?”“그럴 가능성도 있죠.”
“흐음, 어떡하지.”
“용사님. 차라리 몇 놈 더 던지는 건 어때요?”
“또 던지자고?”
“미리 미끼를 던져둬서 손해 볼 건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손해 보는 건 오직 던져진 놈들의 목숨뿐이다.
최현석이 진지하게 병사를 더 던질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으아아아아!”
숲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오! 온다온다!”
라헬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줘라!!!”
가장 먼저 돌아온 미끼는 바로 나무늘보였다.
놈은 느릿하게 움직이던 전과는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숲을 질주하고 있었다.
“봐봐. 굼뜬 것처럼 보여도 전부 들이닥치면 빨라진다니까.”
“오호, 그러네요.”
“그나저나 얼마나 끌고 왔으려나.”
최현석이 유심히 숲을 바라봤다.
“크와아아!”
“케에엑, 케엑!”
나무늘보를 쫓아오는 마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셋인가…”
모두 ‘알아두면 쓸모 있는 백과사전! – 마수편’ 에서 본 적 있는 놈들이다.
혼자 나서도 처리하는 데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럼 가볼까.”
최현석이 앞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우사~루!”
마수를 보고 흥분한 우사루가 먼저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야! 야! 어디가! 야, 인마!”
최현석이 뒤늦게 따라붙었지만, 신체능력이 월등한 우사루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우사~루!”
마수 앞에 도착한 우사루가 2m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사! 우사! 우사! 우사! 우사!”쿵! 쿵! 쿵! 쿵! 쿵!
“우사아아~! 루!”
콰아앙!
마수들이 피떡이 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0초가 안 됐다.
한 줌 핏물로 산화한 마수들을 보며 최현석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고기는 제대로 건지려나…”
아무래도 다짐육으로 사용해야 될 것 같았다.
***
이후로도 미끼 작전은 몇 번 더 시행됐다.
결과는 모두 같았다.
“우사! 우사! 우사! 우사!”
마수만 보면 흥분한 우사루가 달려 나가 모두 피떡을 만들어 버렸다.
“크와앙!”
거기에 배가 고픈 보보까지 합세해서 완전히 괴수 대전이 됐다.
그 틈바구니에서 최현석은 필사적으로 경험치를 챙기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는 영 시원찮았다.
“고작 2레벨 올린 게 전부인가…”
수십 마리의 마수를 사냥했음에도 레벨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최현석은 허탈한 얼굴로 조리장에 복귀했다.
“오늘은 다들 수고했어. 푹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보자.”
최현석의 말에 조리병들이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갔다.
“조리병… 그만하고 싶다…”“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나, 나는 맛이 없어! 맛없다고!”
미끼가 된 몇몇 조리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세까지 보이고 있었다.
다음에는 누가 미끼가 될지 불안에 떨며 다들 밤잠을 설치리라.
“그래그래. 다들 수고했고 내일 보자.”
마왕군 따위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니었다.
용사 최현석은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는 조리장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진짜 싸움인가.”
오늘 사냥 담당 병사가 할 일은 끝났지만, 조리 담당 병사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조리장인 최현석도 당연히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골룸 어디 있어!?”
최현석이 부조리장 갈룸을 찾았다.
“여, 여기 있습니다!”
조리장 안쪽에서 갈룸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왜 또 부르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고기를 전부 다짐육으로 가져와서 곤란하던 차였다.
그는 정신 나간 인간 조리장이 또 뭘 시킬지 불안에 떨며 바라봤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어.”
“예.”
“조리장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 간부는 대대장부터라고 했나?”
“맞습니다.”
“식사는 어디서 해? 간부들이 직접 와서 먹나?”
갈룸이 고개를 저었다.
“담당 병사들이 와서 직접 요리를 가져갑니다.”
“아, 그래?”
최현석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헤미스는 내일부터 조리장을 정상 가동하라 했지. 그럼 간부들이 식사를 하는 건 내일, 혹은 모레부터.’
즉, 오늘은 가져온 고기는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이다.
생각을 마친 최현석이 갈룸을 바라봤다.
“조리 담당 병사 전부 집합시켜. 지금부터 조리 실습을 실시한다.”
병사들의 요리 실력을 알아볼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