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4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48화(48/273)
“커허억! 커허억!”
도라스가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보였다.
‘제길! 어쩌다 인간 따위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거냐!’
뒤에서 쫓아오는 최현석이나.
그놈의 거짓말에 속아 궁지에 몰린 자신이나.
그저 모든 게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커허억! 지금이라도 포허억! 포기한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도라스가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허억, 헉…!”
최현석 또한 지치기는 마찬가지인지 호흡이 가팔랐다.
“지랄하지 마!”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지금 도라스를 잡지 못하면 최현석 본인이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도라스가 죽어야 했다.
“그만 떨어지란 말이다! 이 찰거머리 같은 놈…!”
도라스가 주먹을 내질렀다.
최현석도 지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회피는 없다.
어차피 둘 다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라 공격을 피할 힘도 없으니.
퍼억!
주먹을 맞은 최현석과 도라스가 양쪽으로 물러났다.
도라스는 자신이 조금 더 밀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윽!”
원래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투기의 사용으로 한계에 내몰린 그는 실시간으로 약해지고 있었다.
“젠장! 두고 보자!”
도라스가 다시 부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멈춰! 곱게 좀 뒤지라고!”
다시 두 남자의 질주가 이어지고.
이후로도 이런 상황은 몇 번이나 반복됐다.
잠시 싸우고, 다시 도망치고.
다시 싸우다가 또 추격전이 시작된다.
최현석은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허억, 헉…! 저 돼지 어떻게 아직도 뛰는 거야!?”
그도 이제 체력적으로 한계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레벨업을 하긴 했지만, 이곳은 게임이 아닌 현실.
레벨업으로 모든 상처가 치유되고 체력이 회복되는 기적은 없다.
여태껏 도망치고, 마수와 싸우고, 다시 도라스를 쫓으며 전투까지 치렀다.
체력과 마력이 바닥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용사님! 저 돼지도 힘이 많이 빠졌어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그래…! 조금만 더 가면 돼!”
라헬의 응원에 최현석이 다시 움직이려던 그때.
“크와앙!”
뒤쪽에서 익숙한 포효가 들려왔다.
“보보야!?”
보보가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따라오고 있었다.
“살아있었구나! 우리 보보…”
말을 하던 최현석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끄아아아! 살려줘!”
“끼에에엑!”
“크라아!”
어째서일까.
마수와 병사들 사이에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망치는 병사들 뒤로 거대한 마수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뭐, 뭐야!? 무슨 상황인 건데!?”“지금 그게 중요해요!? 일단 뛰어요!”“하지만 이대로 가면 마수들이 부대에 들이닥칠 텐데!?”“용사님이 죽게 생겼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아, 그러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할 일은 같다.
“나도 모르겠다!”
이대로 부대까지 달린다.
그 후에는 한계에 내몰린 도라스를 처치한다.
이후 벌어질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
헤미스는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
최전선의 상황. 그리고 신성 제국 가트렌의 최근 동향에 대한 보고서였다.
“으음~ 뭔가 소란스럽네?”
거대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조금 전부터 부대의 마력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창밖에서 소음이 일었다.
“무슨 일일까?”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차다.
흥미가 동한 헤미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들어온 이는 헤미스의 비서 중 하나였다.
“뭐지?”
“군단장님. 부대에 마수들이 습격했습니다.”
“응? 마수가?”
“예. 그것도 제법 강한 놈들입니다.”
헤미스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소란이 일어난 건 알았지만, 갑자기 마수의 습격이라니?
숲의 마수들은 마족들이 있는 장소를 건드리지 않는다.
일종의 영역이라는 개념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지간하면 각자의 영역에서 나오지 않는 놈들이 단체로 부대를 습격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 나가보도록 할까?”
재미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헤미스는 곧장 집무실을 나와 성 밖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이야아아! 마수다!”“죽여! 먼저 죽이는 부대가 사체를 차지한다!”
거대한 마수들과 병사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재미있네.”
헤미스가 씨익 웃었다.
굳이 나서서 도와줄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 있는 고위 간부들이 나서면 저 정도 마수쯤은 금세 처리할 테니까.
헤미스가 궁금한 것은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이다.
그 순간.
“우어어어어!”
거대한 오우거 하나가 헤미스 앞에 나타났다.
놈은 헤미스의 몸통보다 더 큰 몽둥이를 손에 쥔 채였다.
“우어어어!”
몽둥이가 하늘로 치솟고.
헤미스의 머리로 떨어지기 직전.
쩌어어어어어어억!
헤미스의 입술이 오우거의 몸체만큼이나 크게 벌어졌다.
순간 오우거의 눈에 당황이 어렸으나, 이미 늦었다.
탁!
입술이 닫히고.
거대한 오우거가 그대로 사라졌다.
“음, 맛이 제법 나쁘지 않네.”
헤미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계속 걸었다.
“최현석. 어디 있으려나아~?”
이곳 어딘가에 최현석이 있을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마수가 부대를 침입한 이유는, 무언가가 마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대에서 그런 일을 벌일 자는 조리장으로서 항상 사냥을 나가는 최현석뿐이다.
“뭘 하나 했더니 이런 발칙한 짓을 꾸미고 있었네. 오호호호!”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인 건지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구, 군단장님!”
저 앞에서 익숙한 돼지 하나가 뛰어왔다.
“아… 이름이 도라스였나?”
최근 최현석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해서 기억해둔 대대장이다.
“군단장님… 살려주십시오…!”
도라스는 상처투성이에 반쯤 죽어가고 있었다.
걷는 것조차 힘겨운지, 헤미스 앞에 도착하자마자 풀썩 쓰러진다.
“무슨 일이니?”
“크윽… 그 벌레 같은 놈이…!”
“벌레?”
헤미스의 의문은 금세 해결됐다.
“허억, 허억…!”
마찬가지로 상처투성이인 최현석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머, 최현석. 거기 있었구나.”
“군단장님…?”
헤미스를 발견한 최현석의 눈에 살짝 당혹이 어린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도라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후우… 군단장님. 말씀하신 대로 대대장을 잡았습니다.”
“뭐, 뭐라고!?”
순간 도라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살기 위해 군단장을 찾아왔는데, 최현석은 군단장의 명대로 자신을 잡았단다.
설마 군단장이 자신을 처리하라 사주한 걸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군단장 헤미스가 굳이 인간에게 그런 귀찮은 일을 시킬 리가 없다.
도라스는 의문이 담긴 눈으로 헤미스를 바라봤다.
“군단장님! 이게 무슨…!”
“닥쳐.”
순간 헤미스에게서 강렬한 마기가 쏘아졌다.
도라스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대대장을 잡았다라… 맞는 말이긴 하네.”
헤미스의 거대한 입술이 가로로 길게 찢어졌다.
“오호호호! 아주 재미있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대대장을 잡으랬더니 이런 식으로 했단 말이지?”“제 나름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그래서 부대를 개판으로 만들었다?”
“…”
거기에 대해서는 최현석도 할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문 최현석에게 헤미스가 말했다.
“그런데 아직 임무가 끝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예?”
“내가 말했지. 대대장을 잡으라고. 그건 죽이라는 뜻이야.”
원래라면 도라스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다.
대대장은 나름 귀한 자원이고.
최현석은 사실상 임무를 완료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도라스를 죽이는 것은 그저 헤미스의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한심한 돼지 새끼.’
도라스는 강하다.
이곳은 군단 본부인 만큼, 일반적인 대대장보다 더 강한.
대대장 중에서도 나름 상위에 위치한 강자라는 뜻이다.
그런 도라스와 최현석이 싸우면, 최현석은 죽었다 깨어나도 도라스를 이길 수 없다.
그렇기에 헤미스도 이번 임무에는 딱히 손을 대지 않았다.
어차피 최현석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그런 주제에 졌다고? 인간에게?’
도라스는 그렇게 강한 주제에 결국 최현석에게 패배했다.
도대체 얼마나 멍청해야 가능한 일일까?
무력은 강하지만 머리가 텅 빈 지휘관.
마왕군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 지휘관들은 헤미스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군단장님! 안됩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도라스가 헤미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애원했다.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는 게 상당히 꼴사나웠다.
“너는 자존심도 없구나. 차라리 내가 그냥…”
헤미스가 직접 도라스의 숨통을 끊으려던 순간.
콰직!
최현석의 발차기가 뒤통수에 작렬했다.
이미 죽어가던 도라스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절명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대장으로 군림하며 호의호식했건만.
비참한 최후였다.
“죄송합니다. 군단장님께 폐를 끼치고 말았습니다.”“뭐, 별거 아니야. 잘했어.”
헤미스가 씨익 웃으며 돌아섰다.
“따라오도록 해. 궁금한 게 많으니까.”
***
집무실로 돌아온 헤미스는 최현석에게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들었다.
그녀는 이야기 내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호호호호!”
최현석의 잔꾀는 그녀의 예상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인간이란 원래 이런 족속일까?
어쩌면 최현석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대대장을 끌어들여서 마수와 싸움을 붙인 것도 웃기는데, 그 상황에서 온 숲의 마수가 달려들었다고?”“그건… 저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습니다.”
최현석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번 일이 성공한 데는 운이 작용한 게 컸다.
만약 그때 마수들이 단체로 덤벼들지 않았다면, 최현석은 보보와 함께 싸웠다고 해도 도라스를 이기지 못했으리라.
“정말 재미다니까.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으면 이런 기발한 생각이 나오는 걸까? 한번 갈라서 확인해봐도 되니?”
“그, 그건 좀…”
최현석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헤미스라면 정말 자신의 머리를 갈라서 확인할 수도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이번 일은 성공한 걸로 인정해줄게. 내가 지시를 명확하게 내리지 않아서 생긴 일이니까. 허점을 잘 파고든 거지. 아주 인간다운 일 처리야.”
최현석은 그저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표했다.
“그런데 임무에 성공한 건 좋은데 말이야. 여전히 중대장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네?”
“그건…”
헤미스의 목표는 최현석이 대대장급의 지휘관에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잔꾀로 도라스를 잡아버렸으니, 정식으로 대대장 자리를 줄 수는 없다.
준다고 해도 지금 최현석의 수준이라면 하루도 지키지 못하고 빼앗길 것이다.
“흐음~ 뭐, 다음에는 결투로 대대장을 이기라는 명령을 내리면 해결되겠지. 안 그래?”“마, 맞습니다! 하하하! 군단장님께서 그리 명령하신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대대장 자리에 올라보겠습니다!”“오호호! 아주 좋아. 네 덕분에 정말 살맛이 난다니까!”
신나게 웃던 헤미스가 말을 이었다.
“좋아. 이번에 부대에 생긴 피해는 없는 일로 해줄게.”
“감사합니다!”
최현석이 힘차게 대답했다.
내심 마수를 몰고 온 것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원만하게 해결될 것 같았다.
그 순간 헤미스의 입술이 비틀렸다.
“대신 다음은 없어.”
“…”
“또 이런 귀찮은 짓을 벌이면 그때는 알고 있겠지?”
“예.”
다음은 없다.
최현석은 그 말을 곱씹으며 헤미스의 집무실을 떠났다.
***
돌아온 보보의 집.
최현석은 쓰러지듯 바닥에 드러누웠다.
“흐아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매 순간 살얼음판을 걸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용사님. 고생하셨어요.”“고맙다. 오늘도 진짜 어찌저찌 살아남았네.”
“그러게요.”
둘의 대화에 집에서 쉬던 보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래그래. 보보도 수고했어. 제대로 못 챙겨줘서 미안해.”
“크왕! 크왕!”
보보는 문제없다는 듯 힘차게 짖었다.
“어휴! 귀여운 것!”
최현석은 연신 보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도라스한테 조금 미안하네.”
“그 돼지한테요?”
“어. 나름 잘 대해줬는데, 속여먹었잖아.”“어쩔 수 없죠. 어차피 용사님은 용사고, 그 돼지는 마왕군. 그놈도 억울하진 않을 거예요.”“엄청 억울해 보이던데.”
“그런가?”
라헬이 베실베실 웃었다.
“그러면 용사님! 우리 기도할까요? 마지막까지 선물을 주고 간 돼지에게!”
도라스의 마지막 선물.
그것은 대량의 레벨업이었다.
“그러자. 덕분에 추가로 15 레벨이나 올릴 수 있었으니까.”
마지막 순간.
헤미스가 도라스를 죽이려 할 때 최현석이 나선 것은 바로 레벨업 때문이었다.
[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연달아서 들려왔던 레벨업 알림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이전 마수와 싸우며 올린 레벨이 33. 거기에 더해 도라스를 잡으며 15레벨이 추가로 올랐다.
결과적으로 도라스 덕에 오늘 하루 만에 48레벨이나 올린 셈이다.
“돼지야…”
라헬이 눈을 감은 채로 두 손을 꼭 모았다.
“하늘나라에선 맛있는 거 잔뜩 먹으렴!”
“…”
“지옥에도 먹을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넘볼 수 없는 인성에 최현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진짜 최고다.”
“뭐가요?”
“그냥 최고라고.”
우주 최강 인성 라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