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5화(5/273)
마왕군 제3군단 제2노예부대.
이곳에는 총 삼천 명에 달하는 인간 노예가 잡혀있다.
그중 노예장이라는 특수한 직위를 단 이는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최현석이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레이드런이 최현석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거기 뭐해!?”
보통 사람이라면 갑자기 수천 명의 사람을 이끌어야 한다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최현석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조금 분위기를 파악하는 듯싶더니, 불과 며칠 만에 적응을 끝냈다.
“우리 할머니도 그것보단 빨리 뛰겠다! 빨리빨리 안 움직여!?”
최현석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
이미 군 시절에 수많은 노예(?)들을 다뤄본 경험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더 빨리 움직여! 그래서 오늘 작업량 맞추겠어!? 엉!?”
최현석의 불호령에 터벅터벅 걷던 노예들이 호다닥 달리기 시작한다.
최현석이 매의 눈으로 그들을 지켜볼 때였다.
[장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통솔했습니다] [히든 능력치 카리스마가 상승합니다]“으하하하하하!”
시스템 알림을 확인한 최현석이 미치듯이 웃었다.
그런 최현석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미쳤어.’
‘어디서 저런 놈이 굴러들어 왔는지…’‘듣자 하니 용사라며?’
‘용사? 저게!?’
최현석은 귀가 간지러웠으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용사님! 제발 정신을 차리세요!”
라헬이 최현석의 머리에 앉아 머리칼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어허, 안 꺼져!?”
“용사님!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난다고요!”“얌마! 이게 다 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야. 가만히 있어!”
이미 최현석의 눈은 반쯤 돌아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 안타까움이 어렸다.
‘이제는 혼잣말까지…’‘뭐? 용사가 되기 위한 과정? 마왕이 되기 위한 과정이겠지…’
라헬은 현재 마법으로 모습을 숨긴 상황이다.
당연히 최현석이 혼잣말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노예들은 최현석이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거기 3반! 뭐 하는 거야! 오늘 점심 굶었어!? 왜 전부 기어 다녀!?”
조금이라도 작업이 늦어지는 곳이 보이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달려가는 최현석.
그 능력은 노예를 관리하는 간수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게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그때 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레이드런의 호감도가 오릅니다] [호감도 목표 달성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알람을 본 최현석이 실실 웃었다.
그가 갑자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레이드런 님!”“미쳤어! 미쳤어! 용사가 마왕군 간부를 찬양하다니! 콱 머리 박고 죽어버려…. 꺄아악!”
최현석은 옆에서 알짱대는 라헬을 던져버렸다.
그가 높은 단상에 올라가 소리쳤다.
“자, 지금부터 마왕군 제3군단가를 부른다. 군가 시작!”
“…”
“군가 시자악-!”
큰 체구답게 최현석의 목소리는 굉장히 컸다.
한창 공사로 시끄러운 요새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
물론, 이렇게 목소리가 커진 데에는 새로 생긴 카리스마라는 능력치의 영향도 있었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예비 용사
▫레벨 : 1
·근력 : 30
·민첩 : 29
·체력 : 33
·마력 : 10
·카리스마 : 12
·보너스 포인트 : 0
▫용사 포인트 : 0
▫능력 : 곡괭이질(C), 통솔(F)
▫스킬 : –
지난 며칠간 상승한 능력치들을 확인하며 최현석이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위대한~! 마왕군~!”
최현석이 선창하고.
“우리는… 위대한… 마왕군…”
다른 노예들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후창을 했다.
“무찌르자 인간! 잡아먹자 인간!”“무찌르자 인간… 잡아먹자….”
오늘도 평화로운 헤모른 요새에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
그날 밤.
라헬이 최현석의 어깨에 앉았다.
그녀는 잔뜩 성이 난 채로 최현석을 다그쳤다.
“용사님!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계속 이렇게 계실 거예요!?”“햐아, 이 과일 맛있네.”
최현석은 라헬의 말을 무시하고 식탁에 발을 올린 채 과일을 집어 먹었다.
현재 그는 특별 대우로 감옥에서 나와 깔끔한 방에서 지냈다.
거기에 제법 괜찮은 식사까지 들어와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정신 차려요! 모험을 하고 싶다면서요! 요새를 탈출한다면서요!?”“당연히 할 거야. 지금 이러는 건 다 생각이 있어서라고.”“도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데요!?”“거 참. 떽떽 시끄럽네.”
최현석이 라헬을 붙잡아 식탁 위에 앉혔다.
“잘 들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해 줄 테니까.”“어디 한번 말씀해 보세요!”“일단 카리스마라는 새로운 스텟을 얻고, 통솔이라는 능력도 얻었어. 둘 다 꾸준히 성장 중이지.”“그,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용사로서의 본분이….”“용사의 본분? 나는 네가 말한 용사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야. 이게 용사의 본분이 아니고 뭔데?”“그 퀘스트 내용이 뭔데요?”“말했잖아. 소대가리 레이드런의 호감도를 올리라 했다고.”“그딴 용사 퀘스트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하, 진짜라니까 그러네.”
상태창은 본인만 볼 수 있다.
그리고 용사 퀘스트 또한 상태창의 일부.
당연히 라헬은 퀘스트 내용을 볼 수 없었다.
최현석이 아무리 퀘스트 내용을 설명해도 그녀는 믿지 않았다.
“자, 여기 정확히 적혀 있다고.”
최현석이 퀘스트 창을 켜고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어떤 멍청이의 실수로 시작부터 마왕군 요새에 떨어진 당신! 마왕군 간부 레이드런의 환심을….”“그러니까 그딴 용사 퀘스트가 있을 리가 없다고요!”
라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용사 퀘스트란 것은 누가 봐도 굉장히 정의로운, 말 그대로 용사다운 행위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마수를 처치한다거나.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마왕군 간부의 환심을 사라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게다가 내용도 웃기다.
어떤 멍청이의 실수라니.
그건 라헬 본인을 지칭하는 게 분명했다.
원래 사무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용사 퀘스트에서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딴 용사 퀘스트는 듣도 보도 못했다고요!”“내가 특별한가 보지. 네가 그랬잖아. SSS급 잠재력인가 뭔가 대단한 거라고.”“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순간 라헬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번뜩였다.
‘설마… 프리젤라 님이…?’
라헬의 상관 프리젤라.
그는 유독 최현석을 신경 쓰며 지켜보고 있었다.
프리젤라의 권한이라면 충분히 용사 퀘스트의 내용을 바꾸거나, 새로운 퀘스트를 내주는 것도 가능하다.
‘정말 프리젤라 님이 하신 걸까?’
만약 그렇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약하다고 해도 최현석은 언젠가 마왕을 처치할지도 모를 중요한 용사 후보.
그를 살리기 위해 프리젤라가 힘을 써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말이야.”
그때 최현석의 말이 라헬을 상념에서 깨웠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고. 내가 좋아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저 괴물을 돕고 있는 것처럼 보여?”“에!? 아니었어요!?”
“당연히 아니지!”
최현석이 발끈해서 소리쳤으나, 라헬은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은 용사 포인트를 모으는 데 집중해야 해.”
“칫…”
“조금만 기다려 봐. 이제 곧 레이드런의 호감도를 채우는 게 끝날 것 같으니.”
오늘 시스템 알림이 말했다.
호감도 목표 달성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 기세면 며칠 내로 용사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최현석의 방문이 덜컥 열렸다.
“인간!”
들어온 것은 고블린 간수 쟈크.
최현석은 노예장이 된 후로 딱히 놈을 마주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찾아왔는지 의아했다.
“뭡니까.”
“건방진 놈. 레이드런 님의 호출이다. 당장 튀어나와라!”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최현석이 레이드런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레이드런 님 말입니까!?”
“그래! 따라와라!”
“예! 알겠습니다!”
잔뜩 기합이 든 최현석은 어지간한 마왕군 병사보다 더 빠릿빠릿해 보였다.
아마 레이드런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리라.
“에휴…”
라헬은 그저 조용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
레이드런의 집무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전처럼 긴장되지는 않네.’
최현석은 아무래도 두 번째 방문이라 조금 편안해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냥 다른 사람보다 간이 큰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잘 왔다.”
레이드런이 미소를 지으며 최현석을 반겼다.
“요즘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더군.”
“아닙니다!”
“아니긴, 오늘 작업 능률이 1.5배 가까이 올랐다는 보고를 받았다. 모두 네 덕이겠지.”“저는 그저 미천한 인간일 뿐. 모든 건 레이드런 님의 현명하신 지도 덕분입니다.”
청산유수로 쏟아져 나오는 아부를 들으며 라헬이 혀를 찼다.
‘쯧쯧. 저게 용사인지 마왕군 앞잡이인지…’
최현석은 머릿속에서 들리는 음성을 무시했다.
“노예장 최현석. 오늘은 네 공을 치하하기 위해 부른 것이니 편하게 있어라. 뭐 원하는 게 있나?”“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레이드런 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최현석은 자신도 몰랐던 아부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현했다.
“으흠…”
하지만 아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레이드런이 조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아부가 과했나?’
과한 아부는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다.
최현석이 자책하고 있던 그때.
[레이드런의 호감도가 오릅니다] [호감도가 목표에 도달했습니다]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뭐야? 그냥 부끄러워서 그런 거였어?’
레이드런의 표정이 굳은 이유는 단지 아부에 익숙지 않아 쑥스러워서 그런 것 같았다.
[용사 퀘스트를 완수했습니다] [용사 포인트 100을 획득합니다] [첫 포인트 획득으로 초급 용사 상점이 개방됩니다]‘좋았어! 아주 좋은 타이밍이야.’
최현석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용사 시스템이 말하는 호감이라는 게 어느 정도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퀘스트를 완수할 정도면 분명 적지 않은 수준일 것이다.
이때 최현석은 레이드런에게 거래를 제시할 생각이었다.
때마침 레이드런이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 했으니 타이밍이 너무나도 적절하다.
“저 레이드런 님…”
“뭐지?”
“괜찮으시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편하게 말해봐라.”
최현석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노예들을 훈련시키고 싶습니다.”
***
같은 시각.
최현석이 있는 헤모른 요새에서 멀지 않은 장소.
드넓은 평야에 수백, 수천 개의 천막이 처져 있다.
마왕군에 대항하기 위한 인간 연합군이었다.
그중 중앙에 있는 가장 거대한 천막 안에는 연합군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모여있었다.
연합군의 사령관, 드라슨 제국의 올라벤 그리미어 공작이 이례적으로 늦은 시각 회의를 열었기 때문이다.
“모두 잘 와주셨소.”
여러 나라에서 모인 고위 귀족이 많았기에 올라벤은 예의를 갖추며 화두를 던졌다.
“오늘 이렇게 모이자 한 것은 헤모른 요새 때문이오.”
“헤모른 요새…”
헤모른 요새라는 말에 모두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 경들이 알다시피 헤모른 요새는 미라둔 대평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요충지. 절대적으로 손에 넣어야만 하오.”
사실 연합군은 이미 한차례 헤모른 요새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패배.
요새를 반파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함락 직전에 마왕군의 지원이 도착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마왕군이 헤모른 요새를 빠르게 중축 중이라고 하오. 아마 공사가 끝나면 전보다 요새를 공략하는 건 더 힘들어지겠지.”
“…”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서 제안하오.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요새를 공격하는 게 어떻겠소?”
몇몇 귀족들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올라벤 사령관. 이미 한 번의 공략 실패로 병사들의 사기가 많이 낮아진 상태요.”“맞습니다. 게다가 이전에 본 피해의 복구도 끝나지 않았는데,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귀족들의 말에 올라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경들의 말이 맞소. 하지만!”
올라벤은 예순이라는 노령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기세를 뿜어냈다.
“피해를 본 것은 마왕군도 마찬가지. 그리고 지난 전쟁에서 가장 큰 벽은 헤모른 요새 그 자체였소.”
“…”
“만약 놈들을 요새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면 어떻겠소?”
그의 말에 귀족들이 당황한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말 그대로요. 내게 마왕군 놈들을 요새에서 꺼낼 묘책이 있소.”
“그렇다면…”
“요새 밖으로 나온 놈들을 섬멸. 그 후 우리는 빈 요새를 차지하기만 하면 전쟁은 승리요. 그리고…”
올라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요새에 사로잡혀 노예로 혹사당하고 있는 우리의 국민들을 구하면 되는 거요!”
열변을 토하는 그의 얼굴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위대한 군인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