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5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50화(50/273)
차기 성녀 아벨슨 마리어트.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해.’
최현석의 상태가 위중하다.
“끄으으…”
전신에서 검은 땀을 흘리며 신음을 내뱉는 그는,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레이드런이 다급히 찾아왔을 때만 해도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했다.
하지만, 막상 확인한 최현석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신체가 마기에 침식되고 있어. 아니, 융화가 맞는 표현일까?’
마기에 의한 신체 침식.
떠올려 보면,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레이드런이 최현석을 치료한다며 마기를 주입했을 때다.
‘그 이후로 최현석 씨의 몸에 마기가 남게 됐지.’
생각해보면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때 이후, 최현석의 몸에는 마기가 잔재하게 됐다.
마기란 인간에게 독과 같다.
다행인 건, 최현석 안에 있는 마기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건만,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언젠가는 일이 터질 거라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될 줄이야.’
아벨슨이 레이드런을 노려봤다.
‘인간한테 마족
전용 투기를 가르치다니…’
마족
전용 투기를 운용한 덕에 최현석의 안에 있던 마기가 미쳐 날뛰게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야.’
최현석이야 원래 정상이 아니었다 쳐도, 레이드런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저 엘리트 마족은, 굉장히 똑똑하고 강하면서 이상한 때에 어수룩해진다.
‘최현석 씨와 엮일 때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때 아벨슨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레이드런이 말을 걸어왔다.
“최현석의 상태가 어떻지?”“위험해요.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해요.”“그건… 죽는다는 건가?”
아벨슨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내버려 뒀을 때 최현석이 살 확률은 1% 미만이다.
레이드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방법은 없는 거냐…”
“하나 있긴 해요.”
“방법이 있다고!?”
“네. 가능한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시도해볼 만한 유일한 방법이죠.”
“그게 뭐냐!”
레이드런이 바짝 다가왔다.
당장 말하지 않으면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최현석 씨의 안에 마기가 완전히 육체와 융화되게 만드는 거예요.”“이해하기 어렵군. 인간에게 그런 일이 가능하나?”
인간의 육체에 마기가 융화된다.
이것은 전처럼 마기가 잔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근간이 변화하는 것.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이미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아벨슨은 자신이 파악한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최현석 안에 있는 마기가 그의 육체를 침식하고 있다.
당연히 마기에 침식된 육체는 썩고 부패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에게 마기가 독이라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최현석 씨는 마기에 침식됨과 동시에 융화되고 있어요.”“최현석의 육체가 마기를 받아들이도록 변화하고 있다는 뜻인가.”
“네.”
하지만 최현석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의 신체는 마기에 침식되는 동시에 융화하고 있었다.
다만, 융화 속도가 침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뿐.
“그러니 마기의 침식 속도를 늦춰 융화를 먼저 끝낸다. 이러면 최현석 씨는 살 수 있을 거예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요.”“어떻게 하면 침식 속도를 늦출 수 있나?”“제 신성력으로 침식을 막으면 돼요.”“그럼 당장 시작해라.”
“그건 안 돼요.”
“왜지?”
레이드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최현석을 살릴 방법이 있다면, 어째서 바로 움직이지 않는가.
당연하게도 문제가 있었다.
“너무 위험하니까요. 마기가 이미 신체 전반에 퍼진 상황에서 신성력이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도박을 해야 한다는 건가…”“네. 목숨을 건 도박이죠.”
신성력으로 마기의 침식 속도를 늦추려다가, 되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레이드런이 입을 뗐다.
“최현석에게 묻도록 하지.”“최현석 씨에게 묻는다고요?”“그래. 본인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본인이 선택하게 할 수밖에…”
“그렇군요…”
아벨슨 또한 그 말에 동의했다.
자신의 목숨에 관한 일이라면 그 스스로가 정하는 게 옳았다.
아벨슨이 최현석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최현석 씨.”
“끄으으…”
“정신이 드세요?”
“아, 아벨슨 씨…”
최현석이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지금 상황을 알려드릴게요.”
아벨슨은 최현석이 처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대로 살아남기를 기도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안고 살아남기 위한 도박을 할 것인가.
“…여기까지예요. 이해하셨나요?”
설명을 끝마친 아벨슨이 물었다.
최현석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벨슨 씨를 믿겠습니다…”“자칫하면 지금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하시겠어요?”“예…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죽는 것은 사실상 확정이다.
그렇다면 도박이든 뭐든 사는 방법은 모두 시도해봐야 했다.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네… 신호를 주시면, 끄어억!”
아벨슨에게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이 최현석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
신성 제국 가트렌.
그곳에는 비밀스러운 임무를 처리하는 사냥개 집단이 존재한다.
그러한 사냥개 중 하나인 오셀드 게펜은 새로 만들어진 왼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으음… 마음에 들지 않아.”
그는 이전 임무에서 헤미스에게 왼팔이 잘려 나갔다.
가트렌에서는 모든 마법 기술을 집약해 최고의 의수를 만들었으나, 원래 손보다는 뒤떨어졌다.
애초에 오셀드의 육체는 영웅이라 불릴 정도로 강인한 것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셀드 경. 준비는 끝났습니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오셀드가 돌아섰다.
보이는 것은 세 명의 남자.
그와 마찬가지로 가트렌의 비밀스러운 임무를 맡는 사냥개들이다.
이번 임무는 확실하게 성공하기 위해 저 셋이 도움을 준다.
오셀드처럼 영웅급은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들.
‘애초에 괴식가가 없는 흑색 거성 따위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만…’
교황은 이번 일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듯 강제로 저들을 떠맡겼다.
“준비는 끝났다.”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하시죠.”
오셀드와 세 명의 남자가 임무를 위해 출발했다.
***
할짝! 할짝!
“으으으으…”
최현석은 신음하며 눈을 떴다.
할짝!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혓바닥.
보보였다.
할짝!
“그, 그마안…”
보보의 혓바닥은 거칠다.
나름 최현석을 위한다고 하는 일이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굴 가죽을 벗기는 고문을 받는 것만 같았다.
“멈춰! 이 멍청한 똥개야!”
그때 라헬이 보보의 콧잔등에 주먹을 날렸다.
“용사님이 아프시다잖아!”
“크왕!”
보보도 뭔가 억울한지 지지 않고 짖었다.
“그만하라고!”
“크왕! 크왕!”
“어디서 말대꾸야!?”
“크와앙!”
“꺄아아아! 개새끼가 쫓아온다! 요정 살려!”
보보와 라헬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제바알… 조, 조용…”
최현석이 잠꼬대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미친 듯이 아프다.
굳이 비교하자면 숙취가 극도로 몰려와 죽을 것 같은 상태.
그것보다 10배 정도 더 힘들었다.
이런 때에 둘이서 떠들어대니 머리가 울리다 못해 깨질 것 같다.
“쉿! 조용히 해.”
다행히 최현석의 신음을 들었는지, 라헬과 보보가 얌전해졌다.
“우움…”
라헬이 최현석을 빤히 바라봤다.
“용사님. 괜찮으세요…?”
“응…”
“정말 괜찮아요?”
“응…”
최현석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사님. 증상이 어때요? 말씀해보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몰라요!”
“응…”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지, 대답을 못 하는 건지.
최현석은 ‘응’이라는 단어만 반복할 뿐이었다.
순간 라헬이 눈을 반짝였다.
“용사님. 몸이 많이 아파요?”
“응…”
“막 머리가 울리고. 힘도 하나도 없고 그래요?”
“응…”
“그러면 라헬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으으응…?”
뜬금없는 헛소리에 최현석은 실눈을 떴다.
라헬은 그가 눈을 뜬 걸 모르는지 계속 떠들어댔다.
“그 은발 성녀! 사실 마음에 안 들죠? 걔보다는 라헬이 백배는 더 예쁘죠? 그렇죠?”“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최현석이 분명한 목소리로 또박또박하게 대답했다.
“어라? 용사님. 일어나셨어요?”
라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죽겠네 진짜…”“정신이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네 덕분이다…”
라헬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 덕에 다행히 정신이 돌아왔다.
최현석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용사님. 거의 3일은 기절해 있었다구요!”
“3일이나?”
“네! 배고프지 않으세요?”“배는 괜찮은데…”
3일이나 쓰러져 있었다니,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가 왜 기절했더라?’
최현석은 기억을 되짚어갔다.
‘분명 투기를 배운다고 했고…’
레이드런은 어떻게 플로모트를 사용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걸 따라 마력을 움직였지. 그리고…’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어지간한 고통에는 내성이 생긴 최현석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마치 영혼이 갉아 먹히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의 격통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그렇게 된 거야…”
최현석은 가만히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다행히 외상은 없고, 사지도 다 멀쩡하게 붙어있다.
“딱히 이상한 건 없는데…”
순간 최현석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쳤다.
그가 다급히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예비 용사
▫레벨 : 420
·근력 : 136
·민첩 : 134
·체력 : 138
·마력 : 141
·마기 : ??
·카리스마 : 56
·보너스 포인트 : –
▫용사 포인트 : 450
▫능력 : 곡괭이질(C), 통솔(D), 요리(D), 마력 운용술(D)▫스킬 : 레이드런식 격투술, 플로모트
상태창을 확인한 최현석이 탄식을 내뱉었다.
‘역시나…’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얼마 전, 돌연 상태창에 나타났던 네모(□).
그게 마기로 바뀌어있었다.
“뭔가 진짜 조진 거 같은데…”“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라헬. 혹시 용사가 마기를 가질 수 있어?”
라헬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어휴! 용사님도 참! 벌써 농담까지 하시다니, 진짜 괜찮아졌나 보네요.”
“아니, 그게….”
“아무튼 다행이에요! 저 사실 정말로 걱정했거든요. 이대로 용사님이 죽어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잠도 못 잤다고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녀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거무죽죽하게 내려와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장난까지 치시는 거 보니 한시름 놔도 되겠어요.”“그게 아니라! 진짜라고.”
“네?”
“상태창에 마기가 생겼어.”
“네?”
“마기가 생겼다니까.”
라헬은 말없이 최현석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최현석의 눈꺼풀을 뒤집어 안구를 확인했다.
“으음, 아프시더니 시력에 문제가 생겼나?”
“진짜라니까!”
최현석이 신경질적으로 라헬을 내던졌다.
“그럼 용사님. 이거 몇 개로 보여요?”
라헬이 손가락을 펼쳤다.
“2개잖아.”
“허억! 진짜 보이세요? 감으로 찍은 거 아니에요!?”“진짜라고 몇 번을 말해!”
“이럴 수가…”
라헬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모습.
최현석은 당황한 얼굴로 라헬을 바라봤다.
“뭐, 뭔데? 마기 생긴 게 그렇게 심각한 거야…?”“아뇨. 저도 잘 몰라요.”“그럼 왜 오버하고 있어!”
라헬의 반응으로는 무슨 죽을병에 걸린 줄 알았다.
“너무 놀랐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하아… 됐다.”
최현석이 한숨을 내뱉었다.
어쨌거나 당장 마기가 생겨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니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그 성녀가 찾아올 시간이네요.”“응? 무슨 소리야?”
성녀라면 아벨슨을 말하는 것이리라.
“사실 그동안 그 여자가 찾아와서 매일 간호하고 갔거든요…”
라헬이 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벨슨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한다는 현실에 화가 났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용사님이 일어났으니 조금은 인정해 줘야겠네요!”“그랬단 말이지…”
듣고 나니, 아벨슨과 대화를 나눴던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 말한 게 성공했구나.’
결국 아벨슨이 자신을 치료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목숨의 은인이나 마찬가지.
아벨슨을 보면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일어나셨네요.”
문이 열리며 초췌한 얼굴의 아벨슨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