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6화(6/273)
“노예들을 훈련시키고 싶다니?”
레이드런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최현석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했다.
“작업 효율을 더 올리기 위해서입니다.”“작업 효율을 올려?”“예. 제가 며칠 동안 노예장을 하면서 지켜본 결과 이곳 노예들은 단결력은 물론이고 기강도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현재 제2노예부대에는 대륙 곳곳에서 인간을 잡아들여 복역시키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농민 출신이고, 그마저도 각자 소속 국가가 달라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흠… 하지만 노예는 노예일 뿐. 작업만으로도 힘든데 따로 훈련까지 하면 나약한 인간의 체력으로는 버틸 수 없어. 오히려 작업 효율이 더 떨어질 거다.”“물론,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달라질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최현석이 연설을 하는 웅변가처럼 손을 펼쳐 들었다.
“모든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예 작업 노예들! 나태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노예 하나가 둘, 더 나아가 셋의 몫까지 해내는 그런 작업 전문 노예!”
“음…”
“우리 부대는 최고의 노예부대로 이름을 떨칠 거고, 마왕군 내에서는 레이드런 님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자자할 겁니다!”
“그, 그런가…?”
“그렇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최강, 최고의 작업 노예부대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마침내 레이드런이 완전히 함락됐다.
“허가하지.”
“감사합니다!”
레이드런의 허락이 떨어지고.
최현석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한 뒤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후후…’
복도로 나온 최현석의 입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넌 미끼를 물어버렸어.’
***
최현석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에 돌아왔다.
“후… 성공해서 다행이야.”
마침내 방문이 닫히고, 최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라헬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왜 또 호들갑이야?”“용사님! 진짜 대가리에 총 맞았어요!? 최고의 작업 노예라니! 또 뭐라 했죠? 마왕군에 레이드런 님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자자해!? 그러고도 당신이 용사예요!?”“용사 안 할 거라니까. 그리고 대가리에 총 맞았냐니. 그런 상스러운 말은 어디서 배우는 거야?”“지금 그게 중요해요!?”
라헬이 계속해서 땍땍대자 최현석이 귀를 틀어막았다.
“시끄러워 죽겠네.”
“죽어! 죽어 이 마왕군 앞잡이!”
라헬이 최현석의 가슴팍에 연신 주먹질을 했다.
그래 봤자 냥냥 펀치보다 못했지만.
“가만히 좀 있어 봐.”
최현석이 라헬을 붙잡아 책상에 앉혔다.
“잘 들어.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야.”
갑자기 최현석이 진지한 분위기를 잡았다.
“또 무슨 세 치 혀로 저를 농락하려고요!?”“세 치 혀로 농락하는 건 네 전문이잖아!”
잠시 예전 일이 떠올라 발끈했던 최현석은 진정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아무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할게.”
라헬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으나, 최현석은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나는 노예들을 훈련시켜서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야.”“바, 반란이요…!?”
“쉿…! 그러다 누가 듣겠다.”
라헬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요새에는 3,000명의 노예가 있어. 하지만 노예를 관리하는 마왕군은 채 500이 되지 않아.”
최현석은 그동안 노예장으로 있으며 파악한 것들을 설명했다.
“500의 마왕군 중 전투 능력이 뛰어난 놈들만 추리면 숫자는 절반 이하로 떨어지지.”
그동안 최현석은 아무런 생각 없이 아부를 떤 게 아니었다.
모든 건 이 원대한 계획을 위해서다!
무려 3,000 대 500의 싸움.
아무리 마왕군에 괴물 같은 놈들이 있다고 해도 최현석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지식으로 노예들에게 전투 기술을 훈련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의지.
두려움을 떨치고 마왕군에게 대항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 그게 되겠어요?”“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지. 안될 것 같다고 시작도 전에 포기할까?”“그건 그렇지만… 만약 반란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다음에는요?”“여기 헤모른 요새 근처에 인간 연합군이 주둔 중이라 들었어.”
“아하! 그러면…”
“그래. 우리가 요새를 점령하고 지원 요청을 하면 게임은 끝이야.”
“용사님…!”
라헬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흑…”“모를 수도 있지. 괜찮아.”“처음 봤을 때는 근육이랑 싸움밖에 모르는 무식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정말 다시 봤어요!”“그거 칭찬이지? 그렇지?”“그럼요! 용사님은 천재예요!”
라헬의 칭찬에 최현석이 씨익 웃었다.
“이번 일에 성공하기만 하면 나한테 큰 상이 떨어질지도 몰라.”“당연하죠! 무려 요새를 점령한 일인데요! 어쩌면 귀족
작위가 내려질지도 몰라요. 그럼 용사님의 앞길은 탄탄대로!”“오호. 그렇단 말이지?”“네! 귀족이 되면 다른 용사들이랑은 시작점 자체가 달라지는 거라구요. 일종의 치트키를 쓰고 시작하는 거죠!”
최현석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이라고 하기엔 이 거지 같은 마왕군 노예 생활을 너무 오래 하지 않았나?’
입이 근질근질했으나,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최현석이 지긋이 라헬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라헬이랑 같이 지낸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네.’
처음에는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마음에 안 든다 정도가 아니라 머리를 몸통에서 분리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지.’
파이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해야 한다.
항상 상대의 눈빛을 주시하며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현석은 라헬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
애초에 라헬을 떨쳐내는 건 불가능해진 상황.
어떻게든 라헬의 쓸모를 찾아 잘 활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일단 나보다는 지식이 많아.’
어디까지나 ‘최현석과 비교해서’ 지식이 많다는 거지 라헬이 똑똑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마법을 쓸 줄 알지.’
라헬은 여러 가지 일상에 유용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모습을 감추거나.
소리를 차단하거나.
목욕물을 데우거나.
그리고 또… 기타 등등!
지금 당장 그리 큰 쓸모는 없지만, 차후에 최현석의 마력이 강해지면 라헬도 더욱 다양한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정찰병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 라헬은 크기가 작아서 어디든 잘 돌아다니니까.’
라헬의 쓸모는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귀여우니까 봐주자.’
라헬은 미치도록 예쁘고 귀엽다.
전생에 최현석이 언제 이런 미녀와 함께 여행을 했겠는가?
그 사실 하나로 족했다.
비록 여행지가 지옥 같은 마왕군 요새라고 해도 말이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곳에 온 이후로 최현석이 가장 좋아하는 명언이었다.
“그나저나 용사님!”
“왜?”
“아까 용사 퀘스트 달성했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아, 맞아!”
라헬의 말에 생각났다.
“용사 포인트를 얻고, 용사 상점이란 게 개방됐다고 했지.”
라헬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사 상점은 첫 번째 용사 퀘스트를 달성해야 열렸기 때문이다.
즉, 최현석이 말한 정신 나간 용사 퀘스트가 사실이었다는 뜻이다.
“거짓말이 아니었군요…”“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빨리 상점이나 열어보죠!”
“휴, 됐다 그래…”
최현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용사 상점을 열었다.
막상 상점을 열려니 은근히 긴장된다.
‘뭐가 있을까?’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용사 포인트’의 사용처를 드디어 알 수 있게 된다.
마침내 용사 상점이 열리고, 그곳에는… 별게 없었다.
[초급 용사 상점]– 능력
– 아이템
일단 크게 두 가지로 분류돼있는 모습이다.
최현석은 먼저 능력을 확인했다.
– 숨 참기(F) : 숨을 더 잘 참는다.
– 똥 참기(F) : 똥을 더 잘 참는다.
능력을 확인한 최현석의 얼굴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숨 참기…? 똥 참기…?’
자신이 개고생하며 모은 포인트로 고작 이딴 능력이라니.
최현석이 눈을 부릅뜨고 똥 참기의 상세 설명을 확인했다.
□ 똥 참기(F)
‧설명 : 용사는 언제 어디서 기나긴 전투를 해야 할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그런 용사에게 생리 활동이란 참으로 고역이지요!
화장실을 가기 힘든 당신에게 맞춤 능력을 선사합니다. 똥 참기!
최대 24시간 당신의 생리활동을 멈춰드립니다!
‧필요 용사 포인트 : 50
“미친… 이게 뭐야!?”
최현석은 현실을 부정했다.
농담이지? 장난일 게 분명해.
하지만 다시 눈을 뜨고 봐도 설명은 같았다.
자신이 온갖 아부를 떨며 겨우 획득한 용사 포인트 100.
그것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 고작 숨을 조금 더 잘 참는 것과 똥을 더 잘 참는 거라니.
믿을 수 없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아…”
그 외에도 몇몇 참기 시리즈가 더 있었으나, 상황은 비슷했다.
즉, 쓸모가 없었다.
최현석이 라헬의 멱살을 붙잡았다.
“장난하냐!?”
“그, 그게…”
라헬이 당황하며 설명했다.
“아직 레벨 1 상점이라서 그래요! 나중에 용사 포인트를 모아서 레벨을 올리면 얼마나 유용한 능력이 많은데요!?”
라헬이 검지를 펼치며 상큼하게 말했으나 오히려 역효과였다.
“닥쳐어!”
최현석이 잔뜩 흥분해서는 침까지 튀겨가며 소리쳤다.
라헬을 집어 창밖에 내던지기 직전,
“잠시만요! 용사님. 일단 진정하시고 자세히 봐요! 참기 시리즈 말고도 용사 상점에는 괜찮은 능력들이 많다구요!?”“다른 능력도 있어?”“네. 그렇다니까요! 한번 쭉 살펴보시라구요! 하하하…!”
“음…”
최현석은 다시 한번 능력란을 살펴봤다.
숨 참기, 똥 참기, 졸음 참기 등 여러 참기 시리즈를 지나 마침내 다른 능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리… 청소… 빨래…”
최현석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도대체 언제 쓸모 있는 능력이 나오는 건데!?”
“으음…”
잠시 고민하던 라헬이 한껏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레벨업을 하면 나오지 않을까요? 데헷!”
“데헷…?”
최현석의 얼굴이 더욱 차갑게 굳었다.
하지만 라헬은 굴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애교작전으로 밀어붙인다!’
라헬이 힘껏 윙크를 날렸다.
“데헷! 데헷!”
“그냥 죽어.”
최현석이 정색을 하며 라헬을 붙잡았다.
“자, 잠시만요! 꺄아아!”
그날은 해가 뜰 때까지 라헬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최현석은 쓰레기 같은 용사 상점에 대한 실망을 이겨내고 자신의 일과에 집중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침 교육.
매일 아침. 작업 시작 전에 노예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비록 한 시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최현석은 허투루 쓸 생각이 없었다.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마왕님에 대한 경례가 있겠다. 모두 경례!”챡!
3,000명에 달하는 노예가 일제히 손을 들어 올린다.
아직 조금 어색했으나 며칠 동안 연습한 덕에 제법 자세가 나왔다.
“좋아. 바로.”
최현석의 말에 노예들이 일사불란하게 차려 자세를 취했다.
“다음은 마왕군 제3군단 군단가를 제창하겠다. 군가 시작!”
최현석이 우렁차게 소리치자 헤모른 요새에 3군단 군단가가 울려 퍼진다.
“우리는~! 위대한~! 마왕군~!”“무찌르자 인간! 잡아먹자 인간!”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자고 소리치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으나…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부대장 레이드런은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왕님이 이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2.5m의 키에 전신을 뒤덮은 근육.
소대가리에 뿔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오는 레이드런이었으나, 이런 웅장한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소 특유의 동그란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크흠, 흠.”
레이드런은 두툼한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훈련을 허락하길 잘했어…”
레이드런은 다짐했다.
반드시 최현석을 마왕군에 입단시키겠다고.
그는 비록 인간이지만 누구보다 마왕군에 어울리는 남자다.
위대한 마왕께서도 최현석을 보면 굉장히 만족하실 게 확실했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떤 놈이 감히…’
아침 훈련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오지 말라 했거늘.
레이드런은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불청객은 눈치도 없이 재차 문을 두드렸다.
똑똑!
“뭐냐!?”
“레이드런 님. 급보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고블린 간수 쟈크였다.
레이드런은 쟈크의 못생긴 얼굴을 짓이기기 전에 우선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급보라니?”
“인간의 군대가 이곳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그게 무슨 소리냐!?”
레이드런은 깜짝 놀랐다.
인간의 군대가 진군한다니.
그럴 리가 없다.
불과 어제 인간의 군세가 물러난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요새 근처에 주둔하던 마왕군 8사단이 도망치는 인간을 섬멸하기 위해 출진했다.
“전부 죽었어야 할 인간들이 요새로 돌아온다니?”“그게… 함정이었다고 합니다!”
“함정?”
“예. 현재 8사단은 패퇴하고 인간들은 곧장 요새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
레이드런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제3군단 예하 8사단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부대다.
그런 8사단이 패퇴했다면 헤모른 요새에 진격하는 인간을 막을 군대는 없다.
“레이드런 님. 당장 피신하셔야 합니다!”
레이드런이 이끄는 제2노예부대는 전투부대가 아니다.
말 그대로 노예를 이끌고 작업을 하기 위한 부대.
소속 부대원들도 고작 500이 전부다.
이걸로는 수천, 수만에 달하는 인간 군세를 막을 수 없다.
“다른 부대는… 지원을 오지 않는 건가?”“인간 놈들이 이미 손을 쓴 듯합니다. 이미 근처에 모든 부대가 손발이 묶였습니다.”
영악한 인간 놈들이 이미 잔꾀를 부린 듯했다.
결국, 이대로 요새를 인간들에게 넘겨줘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분노를 참지 못한 레이드런이 책상을 내리쳤다.
“젠장!”
콰앙!
거대한 원목 책상이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며 부서진다.
“이제 중축이 끝나가는 요새를 이렇게 허무하게 넘겨야 한다니!”
인간들의 꾀를 너무 우습게 본 대가다.
“레이드런 님.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곧 놈들이 들이닥칩니다. 어서 피신하셔야…”“알겠다. 바로 나가도록 하지.”
레이드런이 이빨을 으득 깨물며 떠나려 할 때였다.
“하나! 둘!”
창밖에서 우렁차게 훈련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드런의 큰 눈망울에 최현석의 모습이 담겼다.
‘최현석…’
공터에서 열정적으로 노예를 훈련시키고 있는 남자.
레이드런은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기다려라!”
“예?”
“어떻게든 최현석만은 데리고 떠나야 해!”
마왕군 간부 레이드런.
그는 인재를 사랑하는 지휘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