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69)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69화(69/273)
경기 종료 후.
모템은 헤미스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헤미스는 여느 때처럼 책상에 걸터앉아 뇌쇄적으로 다리를 꼬고 있었다.
“어땠어?”
들어서는 모템을 보며 헤미스가 대뜸 물었다.
모템은 그녀의 물음이 최현석에 대한 것임을 알아챘다.
“주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재미있는 인간이었습니다.”“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했습니다.”“천천히 이야기해봐. 네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니까.”
모템은 잠시 눈을 감고 최현석에 대해 생각했다.
헤미스는 턱을 괸 채로 모템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이내 생각이 정리된 듯 모템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인간이 마기를 운용할 수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
“그런데 마기를 수준급으로 운용하는 것도 모자라 마력까지 함께 사용하더군요. 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그럴 만하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현상이었으니까.”
헤미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템의 말에 동의했다.
마기와 마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불가사의한 일이었으니까.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헤미스조차도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재차 물었다.
“그게 끝? 다른 건 없니?”
“놈은…”
모템은 무언가 내키지 않는 듯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전투에 재능이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고, 정신력도 강합니다.”“오호. 네가 정신력을 칭찬하다니. 의외인걸?”“인정하기 싫지만 놈은 제법 괜찮은 전사였습니다.”
모템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돌이켜보면 최현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다.
팀원들을 이용해 최선의 전략을 세웠고.
자신이 가진 기량을 완벽하게 뽐냈다.
아니, 가진 것 이상을 쏟아내 승리를 쟁취했다.
‘특히 마지막에 사용했던 그 이질적인 투기. 그건 완전히 제 살을 깎아내는 기술이었다.’
세상에 대가 없는 힘은 없다.
최현석이 사용한 마기와 마력을 충돌시키는 마폭식.
원래 그의 수준에서는 낼 수 없는 위력이었다.
정확한 구동 원리는 몰라도, 필시 시전자에게 강한 부담이 가해질 것이다.
‘놈의 신체는 직접 공격을 당한 나보다 더 만신창이가 됐을 터…’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닥에 쓰러진 최현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강한 힘을 사용한 대가로 탈진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리라.
그런 와중에도 최현석의 두 눈은 또렷했다.
그는 정확하게 모템의 등에 달린 깃발을 낚아챘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흩뜨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의지… 그것만은 인간이지만 요즘 마족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구나.”
헤미스는 모템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듯했다.
“아무튼, 수고했어.”“아닙니다. 주군의 명을 받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오호호! 영광은 무슨. 다음에 또 일이 있으면 부를게.”
“예. 언제든지.”
그때 무언가 생각난 헤미스가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요즘 다른 애들은 어떠니?”
‘다른 애들’이란 헤미스 안에 있는 또 다른 권속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들 주군께서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래. 안부 전해줘. 조만간 일이 있을 것 같으니 기다리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갈까?”
헤미스가 손을 까딱였다.
다가오라는 뜻이다.
이제 다시 헤미스의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그녀의 몸속에는 거대한 세계가 존재한다.
계약을 한 권속들은 모두 그 세계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모템이 멈칫거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결심을 한 듯 입술을 뗐다.
“저… 주군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예. 가능하면 이른 시일 내에 다시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모템의 말에 헤미스가 놀라며 입술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이런 부탁을 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니?”“그 인간… 한 번쯤 교육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템이 씹어 내뱉듯 말했다.
헤미스가 큰 소리로 웃는다.
“오호호!”
“…”
“오호호호호!”
“주군…”
“최현석에게 당한 게 어지간히도 분했나 보구나.”
헤미스의 말은 정곡이었다.
모템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지막에 자신을 보며 웃던 최현석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제대로 정신 교육을 해주마…’
차분해 보이는 모템은 이래 봬도 지고는 못 사는 성격.
그렇기에 자신보다 한참이나 약한 최현석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했다.
“그래. 조만간 다시 불러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렴.”
“감사합니다…”
곧이어 모템이 헤미스 앞으로 다가왔다.
쩌어어어억!
헤미스의 입술이 크게 벌어지며 단숨에 모템을 집어삼켰다.
“…”
모템은 나타날 때 그러했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집무실에 홀로 남게 된 헤미스가 말없이 창가로 걸어갔다.
“모템이 이렇게까지 칭찬할 정도라니.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난 녀석이긴 하네.”
애초에 헤미스도 최현석의 재능이 상식 밖의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특히 마력을 다루는 것만 보면 그녀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장 속도가 엄청나다.
즉, 최현석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모템을 내보내고, 그에게 물음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모템의 눈이 까다롭고 높기 때문이다.
전투에 필요한 감각, 정신력 등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질을 평가하는 것은 헤미스도 모템에게 한 수 접어줬다.
결과는 역시나 최고 점수가 나왔다.
“최현석. 널 어떻게 해야 할까?”
헤미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실 최현석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장난감.
적당히 가지고 놀며,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녀의 작은 놀이로 시작했던 상황이 바뀌고 있다.
헤미스는 최현석이 성장할수록 점점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했나…”
누군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뭐, 그것도 나름 재미있겠지.”
헤미스는 그 또한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히죽 웃었다.
***
바닥에 드러누운 최현석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진짜 죽겠네.”“용사님. 멀쩡해 보이는데 왜 엄살이에요.”“뭐? 멀쩡해? 싸움에 시옷도 모르는 게 입만 살아선!”
발끈하긴 했지만, 사실 라헬의 반응이 이해는 간다.
겉으로 봤을 때 최현석은 상처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가 앓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였다.
“마기를 과도하게 써서 온몸이 비틀리는 것 같다고.”“막 걸레 쥐어짜듯이 비트는 것 같아요!?”“그래. 그런 기분이야.”
몸이 아픈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레이드런식 격투술을 사용할 때 내부가 진탕됐다.
신체가 감당하기 힘든 출력을 무리하게 낸 탓이다.
이후 휴식 없이 곧장 마폭식을 사용했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대미지를 입었던 신체는 완전히 박살 나버렸다.
하나만 사용해도 몸이 삐거덕거릴 기술을 연달아 두 개나 사용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마폭식이 정식 투기로 등록됐으면 그나마 좀 나았을 텐데.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네.”“그래도 이겼잖아요. 그럼 된 거죠!”
“그렇긴 해.”
최현석이 씨익 웃었다.
결과적으로 최현석은 깃발을 쟁취했고, 다음 경기에 진출했다.
다음 경기까지 열흘이라는 넉넉한 휴식 시간까지 주어졌으니 몸을 회복하는 것은 문제없다.
“다음 경기에 진출한 게 6팀이라 했나?”
“네.”
“한 팀에 4명씩이니까 총 24명이 진출한 거네.”
“그렇죠.”
“그러면 앞으로 더 떨어져야 할 숫자가…”
최현석은 대략적인 상황을 정리했다.
“기존에 죽은 대대장을 메꾸기 위해서 뽑는 게 여덟. 새로 창설되는 연대에 필요한 대대장이 다섯. 그리고 연대장이 하나. 다해서 열넷 맞나?”
“맞아요!”
“거의 다 됐네. 이제 10명만 더 제치면 끝나는 거 아냐?”
간단한 산수다.
현재 남은 인원은 24명.
뽑아야 하는 인원은 14명.
당연히 10명만 더 탈락하면 경기는 끝나게 된다.
하지만, 최현석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아니죠아니죠! 입술 괴물이 그랬잖아요. 용사님은 무조건 최종 10위 안에 들어야 한다고.”
“아?”
“그러니까 용사님은 앞으로 열네 놈을 더 쓱싹해야 하는 거죠!”
헤미스가 요구한 조건은 최종 10위다.
현재 통과자가 24명이니 앞으로 14명을 더 쓰러뜨려야 한다.
“귀찮게 됐네…”
남은 경기는 지금까지처럼 요행으로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 순수하게 무력을 부딪쳐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다음 경기가 개인 서바이벌이라 했나?”“네.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는 거라 했어요.”“경기 내용 진짜 지랄 맞네.”
최악이었다.
현재 통과자 중 최현석의 개인적인 무력은 단연 꼴등.
거기에 유일한 인간이라 공동의 표적이 되기도 쉽다.
“거기에 마수들도 많이 있을 거라며.”
“네.”
“참가자가 아니라 마수도 신경 써야겠지.”
다음 경기는 흑색 거성 인근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펼쳐진다.
이네시모트.
마수의 땅이라는 이명을 지닌 그곳에는 강력한 마수들이 득실댄다고 한다.
비록 중심부가 아닌, 초입에서 경기를 펼친다고는 하지만.
난이도는 극악일 확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헤미스가 한 행동들을 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조심하세요. 다른 참가자들이야 코딱지 파면서도 어지간한 마수 머리통을 날리겠지만. 용사님은 그런 거 못 하잖아요.”“하고 싶지도 않아!”
최현석이 질색하며 소리쳤다.
왜 굳이 저딴 비유를 드는지 모르겠다.
그때 라헬이 가슴을 활짝 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응?”
“다른 놈들은 혼자지만, 우리는 둘이잖아요! 서바이벌에서 제 진면목을 보여드릴게요!”“라헬. 일 더하기 일이 꼭 이가 되는 건 아니야.”“그게 무슨 뜻이죠?”“아무것도 아냐… 기대할게.”
최현석이 마지못해 말했다.
너무 피곤한 터라 더는 라헬과 입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라헬은 미심쩍은 눈으로 최현석을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기대하시라! 라헬의 진짜 파워를 보여줄 때가 왔다!”“와아… 너무 기대된다…”“호응 좀 제대로 해 줘요!”
“와. 기대.”
“쳇, 됐어요!”
라헬은 확신한다.
지금은 비록 찬밥신세이지만…
저 오만한 용사도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자신의 우월한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두고 보자구요!”
“옛말에 두고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없다던데.”
“아 진짜 좀!”
“미안. 이게 본능 같은 거라서.”
하루라도 태클을 걸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최현석이었다.
***
같은 시각, 신성 제국 가트렌.
교황 오르반은 심복 엘론드 추기경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마왕이 괴식가를 흑색 거성에서 빼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아무래도 지금 이상으로 괴식가와 척을 지는 건 마왕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교황은 흑색 거성을 습격해 토너먼트를 무산시킬 작정이었다.
마왕군은 변화해서는 안 된다.
변화의 싹은 미리미리 밟아두는 게 좋다.
거기에 마왕군 내에서 헤미스의 입지를 줄이는 이득도 있다.
허나, 이 작전이 실행되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하나 필요했다.
흑색 거성에 헤미스가 없을 것.
헤미스의 추정 무력은 영웅급을 넘어선 전설급이다.
전설이라 불리는 자들은 아무리 교황이라 해도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인사가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이 은거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교황의 명을 따르는 전설은 단 하나뿐.
그런 중요한 카드를 이런 위험한 일에 투입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은 헤미스를 이동시키는 것이 핵심이었으나…
아무래도 마왕이 협조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현재 흑색 거성에 배신자가 있다고 합니다.”“배신자라면 그 도망친 계집을 말하는 겁니까?”“맞습니다. 마왕이 방관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수를 쓴 것 같습니다.”“괴식가와 배신자라… 정면 승부로는 힘들겠습니다.”
배신자란 박현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헤미스보다는 한 수 아래로 보지만, 박현아 또한 전설급 강자에 발을 걸치고 있다고 평가된다.
전설 급 무력을 지닌 강자가 무려 둘.
그런 곳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작전은 취소하시는 것이…”
엘론드 추기경이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교황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괴식가가 차기 성녀 아벨슨 마리어트를 납치하면서 시작됐습니다.”
“…”
“애초에 마족이란 족속들은 필요악이라 살려둔 것뿐이지요. 그런 놈들이 주제를 모르고 날뛰고 있습니다.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교황은 이번 일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헤미스는 너무나 큰 골칫거리고, 변수였다.
이전에는 마왕이 통제하고 있어 내버려 뒀으나, 이젠 고삐가 풀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천지 분간하지 못하고 날뛰는 망아지는 목을 잘라 죽여야 한다.
교황 오르반은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눈치채고 마왕이 박현아를 흑색 거성에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러고 보니, 이번에 새로운 첩자에게 들어온 보고 중에 경기 장소가 변경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맞습니다.”
“신께서 우리를 도우시는군요.”
교황 오르반의 얼굴에 미소가 스쳐 갔다.
벌레들이 제집에서 알아서 기어 나오고 있다.
자신은 신을 버렸지만, 신은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은 듯했다.
“잘 됐습니다. 이 기회에 용사를 시험해 보도록 하죠. 그리고…”
교황이 세세한 작전 내용을 설명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엘론드 추기경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이상입니다. 잘 진행하실 수 있겠습니까?”“예. 맡겨만 주십시오.”
마왕군 최대의 골칫거리 괴식가.
제법 거물인 만큼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먼저 손발을 자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뒤 목숨을 취한다.
지금 시작될 작전은 그 시작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