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7)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7화(7/273)
헤모른 요새의 중앙 광장.
최현석은 3,000명의 노예와 함께 체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
“구령 맞춰 뛰어! 하나! 둘!”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활기찬 듯 보이나, 사실 최현석의 머릿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얼른 전투 훈련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레이드런에게 보여주기 위해 겉치레로 제식 훈련이나 군가를 불렀다.
갑자기 전투 교육을 하면 의심을 살 게 뻔했고, 일단 작업 능률을 더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츰 성과가 보이면 점차 교육 시간을 늘리고, 몰래몰래 전투 훈련을 섞을 생각이었건만…
‘왜 저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레이드런은 매일매일 최현석이 교육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괜찮아요! 얼마 가지 않아서 흥미가 식겠죠!”“그렇지? 그럴 거야!”
최현석과 라헬은 그의 관심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레이드런은 마왕군 고위 간부.
노예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불행히도…
“훌륭하군. 훌륭해!”
레이드런은 정말 재미있어했다.
잠깐의 흥미 따위가 아니다.
아침 교육에 대한 레이드런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최현석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건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교육장(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위치로 집무실을 옮기기까지 했다.
이래서야 전투 훈련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하아… 이걸 어쩐다…’
최현석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카리스마 스텟이 계속 오른다는 건가…’
교육을 시작하고 약 열흘 남짓.
그사이 카리스마가 무려 8포인트 올라 20에 도달했다.
능력 통솔 또한 F등급에서 E등급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최현석의 목표는 반란! 쿠데타!
소대가리 레이드런을 몰아내고 이 요새를 점령하는 것이다.
‘아냐. 진정하자. 조급하게 일을 진행해서는 안 돼. 천천히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최현석이 생각을 이어갈 때였다.
“와아아아아…!”
“캬아아야-!”
멀리서 소란이 들려왔다.
“뭐지?”
“무슨 일이야?”
노예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최현석은 박수를 쳐 이목을 모았다.
“전부 집중해라! 아직 훈련 안 끝났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노예인 자신과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일단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최현서억-!”
요새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거대한 외침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거구의 레이드런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마치 만화처럼 그의 뒤쪽으로 먼지구름이 일어날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예, 예!?”
“시간이 없다. 당장 요새를 떠나야 한다!”
레이드런이 최현석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최현석의 눈알이 360도로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갑자기 뭔 소리야?’
이 정신 나간 소대가리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최현석이 당황하고 있던 그때.
멀리서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기다! 저놈이 대장! 붉은 악몽 레이드런이다!”“일반 병사들은 빠져! 기사들이 상대한다!”
중무장한 기사 다섯이 레이드런을 향해 쇄도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최현석은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했다.
‘인간 군대가 왔구나!’
정확한 정황은 모르겠으나, 헤모른 요새에 인간 연합군이 쳐들어왔다.
요새는 함락됐고 레이드런은 요새를 버리고 도망치려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 미친 소대가리는 왜 나를 데려가려는 거야!?’
최현석이 곁눈질로 조심스럽게 레이드런을 바라봤다.
‘어떡하지? 지금에라도 놈을 쳐야 하나?’
최현석은 아직 이 요새에 떨어진 첫날을 잊지 않았다.
레이드런은 자신의 헤드킥을 정통으로 맞고도 타격이 없었다.
가공할 만한 맷집이다.
게다가 힘은 또 어떤가?
단순히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발목이 짜부라져 불구가 될 뻔했다.
‘하지만 나도 그때보다 성장했어. 게다가 이번에는 지원군까지 있지.’
레이드런을 향해 달려오는 기사 다섯.
그들은 한눈에 봐도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을 초월하는 엄청난 속도를 내고 있었다.
굉장한 실력자인 게 분명했다.
‘기사들이 레이드런을 상대하는 동안 기회를 엿봐서 도망치자.’
여차하면 레이드런을 뿌리치고 인간 쪽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레이드런이 사라졌다.
슈슉-!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레이드런은 어느새 다섯 명의 기사 앞에 도달해 있었다.
쿠웅, 콰직! 쿵! 콰악! 푸화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레이드런이 손을 휘저으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대포알처럼 날아갔다.
“어…?”
최현석의 턱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벌어졌다.
‘벼, 벽을 뚫고 들어갔어…’
사람이 벽에 처박혔다.
단순히 처박히다 못해 벽을 파고 들어갔다.
입고 있던 갑옷은 폭발하듯 터져나갔고, 늠름하던 그들의 육체는 피떡이 된 지 오래였다.
“최현석. 뭐 하고 있나? 어서 가야 한다니까!”
레이드런이 주먹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다그쳤다.
멍하니 있던 최현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레이드런 님!”
요새 밖으로 달려 나가는 최현석의 눈가에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
평화로운 여행길이다.
공기는 맑았고, 사방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지평선.
풍경을 따라 난 길 위에는 마차 몇 대가 지나가고 있다.
말과 비슷한 외형의 마수, 드락혼이 끄는 마차였다.
달그락… 달그락…
조용한 가운데 드락혼이 달리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최현석은 마차의 짐칸에 홀로 앉아있었다.
그의 눈은 실성한 사람처럼 풀려있다.
벌써 다섯 시간째 하늘만 바라보는 중이었다.
‘나는 이제 끝났어…’
최현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헤모른 요새를 떠난 지 하루가 흘렀다.
그동안 인간 연합군은 몇 번이고 레이드런을 붙잡기 위해 추격대를 보냈다.
“저기다! 거의 다 따라잡았어!”
추격대는 말을 타고 호기롭게 달려왔다.
그 수는 무려 100명 남짓.
살아남은 소수의 마왕군들은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레이드런은 혼자 앞으로 나섰다.
“네놈이 붉은 악몽 레이드런이군.”
“그래.”
“오늘 네놈의 목을 잘라 왕국의 위상을, 끄아아아!”
레이드런의 목을 잘라 왕국의 위상을 세우려던 추격대의 지휘관.
그는 목이 뽑혀 죽었다.
그것도 산 채로 말이다.
그 광경을 본 추격대는 모두 얼어붙었고…
학살이 벌어졌다.
붉은 악몽 레이드런.
그때 최현석은 어째서 레이드런이 붉은 악몽으로 불리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저런 놈을 이기려고 했다니…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네.’
레이드런은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그런 놈에게 대항하려 했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최현석이 처량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 이세계… 안녕… 모험… 안녕… 나의 2회차 인생…’
최현석은 꿈꾸었다.
이세계에 가서 위대한 모험을 떠나고 마왕을 처치한 용사가 된다!
그 후에는 마음씨 곱고 어여쁜 금발의 귀족
영애를 만나 알콩달콩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
토끼 같은 자식들을 잔뜩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노후에는 아담한 크기의 저택에서 손주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건만!
“이젠 끝이야…”
마왕을 처치한 용사?
현실은 마왕군 간부 하나 상대하지 못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신세다.
‘이렇게 평생 끌려다니다가 결국 쓸모가 다하면 잡아먹히고 말겠지.’
금발의 귀족
영애는 무슨.
이곳에 와서 본 사람이라고는 같은 처지의 꾀죄죄한 노예뿐이다.
“하아…”
최현석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때였다.
“용사님. 용사님…!”
그때 라헬이 최현석의 어깨에 앉아 속삭였다.
“정신 차리세요! 용사님!”“용사님이 아니라 노예라고 불러줘…”“제발 정신 차려요!”
라헬이 조막만 한 손을 들어 최현석의 뺨을 후려쳤다.
짝!
하지만 최현석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다 못 해 화라도 내면 좋으련만.
“으이이…!”
주먹을 꼭 쥐고 부들부들 떨던 라헬이 말을 이었다.
“용사님!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댔어요!”“네가 그 속담을 어떻게 아는 건데…”“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제 말은, 이 상황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거죠!”
기회라는 말에 최현석의 고개가 힘없이 돌아갔다.
“무슨 기회…”
“마왕군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잖아요. 나중에 탈출하기만 하면 용사가 되는 데 분명 굉장한 도움이 될….”“탈출 같은 소리 하네!”
최현석이 라헬을 붙잡았다.
“애초에 네가 마왕군 요새로 보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
“…”
최현석의 말에 라헬이 당황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후우… 됐다. 이미 지나간 일을 생각해서 뭐 하겠냐.”
지금 라헬을 탓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현석이 자조적인 말을 중얼거렸다.
“최현석. 무슨 일이지?”
갑자기 황소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대가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붉은 악몽. 레이드런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최현석은 언제 기가 죽어 있었냐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건강해 보여서 좋군.”“아무렴요! 제가 원래 건강 빼면 시체입니다!”“그래. 조만간 제3군단 본부에 도착하니 그때 잘 부탁한다.”
“예…?”
최현석의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잘 부탁한다니. 뭘?
레이드런이 설명을 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군단장님을 뵐 거라고. 너를 정식으로 마왕군에 입단시킬 예정이다.”
말을 하는 레이드런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어으, 아…”
뇌정지가 온 최현석은 말을 내뱉지 못하고 옹알이를 했다.
“무슨 문제 있나?”
순간 레이드런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최현석이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닙니다! 너무 영광이라 저도 모르게! 하하하하!”“그렇군! 크하하! 역시 너는 누구보다 마왕군에 어울리는 남자다!”“아무렴, 레이드런 님만 하겠습니까! 하하하하!”“그런가!? 하하하하하!!!”
한동안 마차에서는 두 남자의 웃음소리가 떠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
같은 시각.
헤모른 요새를 점령한 인간 연합군은 노예였던 사람들을 풀어주고 있었다.
“마리어트 왕국민은 이쪽으로 오십시오!”“여기는 드라센 제국입니다!”
제법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헤모른 요새에는 무려 3,000에 달하는 사람들이 잡혀있었다.
그들을 모두 각자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으음…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최현석의 노예 동료 박태수.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뜸 용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거 참…’
이곳에는 박태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백 명 가까이 있었다.
용사임에도 마왕군 요새에 떨어진 불행한 이들.
그들이 한 군데 모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때.
한 병사가 다가왔다.
“여러분들은 혹시 용사입니까?”
병사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예! 맞습니다!”
“용사님들은 모두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병사가 예비 용사들을 안내했다.
용사들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우리 이제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거겠죠?”“당연하죠! 무려 용사인데!”“역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을 리가 없잖아!?”“라헬 고년만 아니었으면 우리도 인생 편하게 살 수 있었다고!”“이제야 좀 이세계답게 굴러가는구나!”
모두가 들떠서 한마디씩 던질 때.
오직 박태수만이 침묵을 유지했다.
‘뭔가 이상한데…’
박태수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남자다.
그럼에도 3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그는 줄을 잘 잡았다.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언제 어떤 줄을 잡아야 자신이 살아남고 위로 올라갈지 귀신같이 눈치채곤 했다.
‘분위기가 이상해.’
박태수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지금 이 길은 썩은 동아줄이라고.
이걸 잡고 올라가다간 줄이 끊어져 떨어지고 말 거라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박태수는 조심스럽게 대열을 벗어났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워낙 분위기가 어수선했기에 빠져나오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몰래 따라가서 분위기가 괜찮아 보이면 나중에 합류하자.’
예비 용사들은 병사의 안내를 따라 계속해서 이동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한 공터.
그곳에는 중무장한 기사와 병사들이 잔뜩 있었다.
그 가운데 있는 노년의 남자.
드라센 제국의 공작이자 연합군의 사령관인 올라벤 그리미어가 반가운 얼굴로 용사들을 맞이했다.
“잘 오셨소. 용사 여러분.”
올라벤 사령관이 한 걸음 앞으론 나섰다.
“혹시 묻겠는데, 이 중에 용사가 아닌 자가 있소?”
올라벤의 물음에 용사들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 모두가 용사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군요.”
그 순간 올라벤이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시작해라.”
무엇을 시작하라는 걸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쏴아아아아-!
사방에서 화살비가 쏟아졌다.
“꺄아아!”
“커헉, 컥! 살려줘!”
용사들은 도망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이미 모든 길목을 병사들이 차단한 상태였다.
“꺼어억…! 끄억…”
“커헉…”
지옥도는 순식간에 끝났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모든 용사가 죽었다.
병사들은 쓰러진 사람들의 가슴을 일일이 찌르며 확인사살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제법 익숙해 보이는 모습.
한두 번 해본 것 같지가 않았다.
“사령관님. 모두 사살했습니다.”“좋아. 놓친 인원은 없겠지?”“애초에 요새에서 모든 용사를 한 구역에 모아 관리했다고 합니다. 새어나간 자는 없었을 겁니다.”“그래? 마왕군 놈들이 도움이 될 때가 다 있군. 하하하.”
올라벤 사령관은 정말 즐거운 듯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남자, 박태수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댔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
자신이 용사라는 들리는 순간 죽을 것이다.
‘다시 대열에 합류하기만 하면…’
박태수가 조심스럽게 돌아가던 그때.
한 병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아, 혹시 용사님 아니십니까?”“예, 예!? 아닙니다!”
당황한 박태수가 다급히 팔을 저었다.
“이상하군요. 검은 머리칼은 용사가 아니면 마족일 텐데. 혹시 마족이십니까?”
갑자기 마족이라니, 자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박태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용사님이 맞으시군요! 저를 따라오시죠. 용사님들은 따로 안내해드리고 있습니다.”
“아, 안 돼…”
손을 뻗는 병사의 얼굴에는 거부할 수 없는 친절함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