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7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70화(70/273)
“으… 징그러워…”
말을 하는 라헬의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최현석 또한 동의한다는 듯 찌푸린 얼굴로 전방을 주시했다.
“알마센이라고 했나? 실제로 보니 엄청 징그럽네.”“마기를 저장하는 마수예요. 자연 발생한 건 아니고 실험으로 만들어진 놈이죠.”“뭐가 됐든, 진짜 끔찍하게 생겼다.”
알마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 마수는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공처럼 둥근 몸체.
지름만 해도 5m는 가볍게 넘을 듯한 거대한 크기다.
핏줄이 잔뜩 올라온 피부는 마치 심장처럼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박동했다.
놈의 주둥이로 추정되는 곳에서 기다란 관이 뻗어 나왔는데, 그 끝에는 물개를 닮은 마족
하나가 꽂혀 있었다.
“왜 다들 인고형을 안 받으려고 발작했는지, 이젠 알겠네.”“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진짜 눈 뜨고 못 봐주겠네요…”
인고형.
마족의 몸에서 마기를 강제로 뽑아내는 형벌이다.
헤미스는 선언한 대로 경기에 통과하지 못한 마족들에게 인고형을 내렸다.
“억울하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인고형을 받아야 하나!?”
사실 경기가 막 끝났을 시점에는, 다들 인고형을 집행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100명의 마족
중 무려 76명.
그것도 대대장급의 무력을 지닌 강자들이다.
인간으로 치면 이것은 고위 귀족들에게 단체로 고문을 가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고작 토너먼트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하지만 헤미스는 한다면 하는 군단장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다음 날 아침.
그녀는 가차 없이 형을 집행했다.
“싫다…! 이 징그러운 촉수 당장 치워라!”
인고형이 집행되는 방법은 단순하다.
마수 알마센에게서 뻗어 나온 촉수가 몸에 꽂히고, 마치 모기처럼 마기를 빨아간다.
허나, 이번에 형을 받는 자들은 나름 한가락 하는 이들이라 그것이 쉽지 않았다.
마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항했던 것이다.
꽈드드득…!
마수 알마센은 촉수로 힘껏 마기를 빨아들이려 했으나, 무언가에 막히기라도 한 듯 마기는 빨려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전투형으로 만들어진 마수도 아니었기에, 대대장급의 마기를 강제로 취하는 건 무리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헤미스가 한숨을 내쉬며 움직였다.
“저항하면 더 힘들 거라 말했을 텐데. 왜 말을 안 들을까?”
“구, 군단장님…”
“분명 내가 직접 형을 집행할 거랬는데 왜 굳이 쓸데없는 힘을 빼니.”
“그, 그게…”
헤미스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전신을 옥죄인다.
물개 마족은 비를 맞기라도 하듯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헤미스가 물개 마족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동시에 놈의 눈이 부릅떠지고,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꿀렁, 꿀렁!
알마센은 갑작스럽게 밀려 들어오는 마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힘차게 박동했다.
원래 알마센이 한 번에 빨아들일 수 있는 양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이 밀려들어 오니 상당히 고역이었다.
“커허어억…!”
어느새 마기를 빼앗긴 물개 마족의 눈은 뒤집혀 있었고,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놈은 완전히 미라처럼 비틀린 채로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최현석과 라헬이 달달 떨었다.
“저거 죽은 거지…?”“네… 죽었네요…”
정말 죽어버렸다.
사실상 사형을 집행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물개 마족의 껍데기를 보며 씨익 웃던 헤미스가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 귀찮게 하는 놈들은 전부 이렇게 될 테니 저항하지 말고 얌전히 받아들이렴. 알겠니?”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마족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마족은 오히려 알마센에게 어서 자신의 마기를 가져가라고 밀어 넣기까지 했다.
마기를 한계까지 빼앗기는 건 끔찍이도 고통스럽고, 회복하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최현석은 새삼 전의를 다질 수 있었다.
‘최종 10등. 어떻게든 들어간다.’
연구소로 보내버린다는 헤미스의 말.
내심 단순히 겁을 주려는 게 아닐까 했으나… 아니다.
10등 안에 들지 못하면 자신은 정말 연구소로 보내질 것이다.
“팔다리가 늘어나거나 하면, 미래의 부인이 싫어하겠지?”“아무리 편견 없는 여자라도 팔다리가 8개인 남자를 만나기는 힘들겠죠.”
“역시 그렇지…”
“머리가 2개인 것도 곤란해요.”
“그래.”
“거기 아래쪽이 여러….”
“그만, 그만해!!!”
이 미친 천사는 도대체 얼마나 미쳐 있는 걸까?
잠시 라헬을 째려보던 최현석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절대 연구소는 가지 않는다.’
금발의 귀족
영애와 결혼.
토끼 같은 자식 다섯.
노후의 대저택에서 손주들이 뛰어노는 것을 본다.
이 모든 것들이 성립하려면 일단 연애를 해야 했다.
그러나 연구소를 다녀오면 아마 연애는 물 건너갈 것이다.
금발의 귀족
영애가 아니라, 팔다리가 10개쯤 달린 편견 없는 마족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최현석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끝났으니까 돌아가자. 얼른 훈련해야지.”
“네!”
어느새 인고형의 집행이 끝났다.
보보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최현석의 눈은 평소보다 더욱 빛나고 있었다.
***
집으로 돌아온 이후.
최현석은 오랜만에 자신의 상태를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현재 가진 것과 부족한 것.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서였다.
“일단 상태창부터 확인해 볼까.”
최현석은 상태창을 열어 차근차근 살펴봤다.
▫이름 : 최현석
▫칭호 : 예비 용사
▫레벨 : 466
·근력 : 170
·민첩 : 165
·체력 : 168
·마력 : 170
·마기 : ???
·카리스마 : 74
·보너스 포인트 : –
▫용사 포인트 : 1300
▫능력 : 곡괭이질(C), 통솔(C), 요리(D), 마력 운용술(C), 마기 운용술(D)▫스킬 : 레이드런식 격투술, 레이드런식 격투술 변형, 플로모트, 노빌레이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능력과 스킬이었다.
‘마력 운용술’과 ‘마기 운용술’의 등급이 제법 상승했다.
그동안 마력과 마기를 다루는 데에 집중적으로 노력한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이 둘은 앞으로 강해지는 데 있어 핵심이었기에 꾸준히 수련할 생각이었다.
“통솔도 하나 올랐네?”
제법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던 ‘통솔’ 또한 이번 전투에서 한 단계 상승해 C등급이 됐다.
최현석은 통솔의 세부 설명을 확인했다.
□ 통솔
‧ 등급 : C
‧ 설명 : 다른 이를 통솔할 때 효율이 상승한다.
‧ 효과 :
– 지시받는 자가 통솔자의 명령을 따를 확률 상승.
– 지시받는 자가 통솔자의 명령을 이해할 확률 상승.
– 지시받는 자가 통솔자의 명령을 이행할 때 수행 능력 상승.
설명을 확인한 최현석이 작게 감탄했다.
“오, 마지막 문구는 등급이 올라가면서 새로 추가된 건가?”
– 지시받은 자가 통솔자의 명령을 이행할 때 수행 능력 상승.
이건 원래 없던 효과였다.
이번에 등급이 상승하며 새로 추가된 효과인 것 같았다.
“실제로 얼마나 효율이 상승할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앞으로 점점 다른 이들과 함께 싸울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통솔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게다가 통솔은 히든 능력치인 카리스마와도 연계된다.
카리스마의 수치가 올라갈수록 통솔의 효율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능력이었다.
“스킬에 새로 추가된 노빌레이스. 이것도 얼른 완성해야겠지.”
레이드런과 함께 만들어낸 투기 ‘노빌레이스’.
이건 아직 미완성 투기였다.
마기와 마력을 함께 다루는 투기인 만큼 굉장히 높은 숙련도를 요구했다.
앞으로 남은 열흘은 노빌레이스의 숙련도를 높이고, 다듬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고.
최현석은 마지막으로 상태창의 중앙을 바라봤다.
▫용사 포인트 : 1300
“용사 포인트… 이걸 어떡한다?”
지난번 대규모로 용사 포인트를 얻은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150포인트짜리 전투력 측정기를 산 게 전부.
최현석은 남은 용사 포인트를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했다.
“이대로 계속 묵혀두기만 하는 건 아까운데…”“그냥 다 써버리죠!”
“어디에?”
“뭐, 능력을 사거나 아이템을 사거나 하면 되지 않겠어요?”
라헬의 말에 최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못 쓸 수도 있잖아.”
지금까지 최현석은 용사 포인트를 일종의 보험처럼 남겨뒀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용사 상점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냥 남겨두죠!”“지금 필요한 능력 같은 걸 사서 성장시킬 수 있는데, 마냥 내버려 두는 건 좀 아깝지 않나?”
“이익…!”
라헬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이래도 불만. 저래도 불만.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도면 사실 자신을 놀리는 게 본 목적이 아닐까?
“어차피 답정너 할 거면 왜 물어봤어요!?”“답정너가 아니라 의견을 구하는 거지.”“말해도 안 듣잖아요!”“으음, 뭔가 당장 도움이 되면서 가격이 적당하고 성장 가능성도 큰 그런 거 어디 없나.”
최현석이 중얼거릴 때였다.
그의 뒤에서 제법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도둑놈 심보 아니냐?”
최현석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헤미스의 집무실 앞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여성.
마왕군 제4군단의 군단장 박현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박현아에 대한 첫인상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진짜 미친년.
초면부터 자신의 가슴에 머리를 들이받으며 행패를 부리던 게 아직도 눈에 선했다.
‘아니다. 그냥 미친년이 아니지. 군단장이라고 했으니까 엄청나게 강하겠지.’
무려 20만까지 측정 가능한 전투력 측정기에서도 측정 불가가 떴으며.
용사임에도 마왕군의 군단장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강자다.
그러니까 그냥 미친년이 아니다.
‘진짜 센, 진짜 미친년.’
여러모로 곤란한 존재였다.
진짜 미친 것만 해도 문제인데, 진짜 세기까지 하니 답이 없다.
최현석은 어지러운 머리를 다잡으며 손을 들었다.
“저… 안녕… 하, 십니까?”
최현석이 고장 난 로봇처럼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박현아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그 병신 같은 인사는 뭐야? 뭐 잘못 처먹었어?”
“어… 예.”
“됐고. 대충 들어보니까 용사 포인트가 남아도나 봐? 얼마나 있는데?”“지금 1300포인트 있습니다.”
“상점 등급은?”
“중급이요.”
“딱히 쓸데도 없겠네.”
박현아가 바위에 걸터앉으며 시니컬하게 말했다.
최현석은 그런 박현아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다행히 시비 걸러 온 건 아닌 것 같네.’
시비 걸러 온 게 아니라면 박현아의 등장은 꽤나 환영받을 일이다.
지금은 비록 마왕군이지만, 박현아는 최현석보다 훨씬 먼저 용사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니까.
어쩌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미리 괜찮은 능력 같은 게 있으면 사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자잘한 것들 사봤자 별 도움도 안 돼. 그나마 투기가 괜찮긴 한데, 너는 지금 벌써 투기를 몇 개 익히고 있잖아?”
“예.”
“그러면 쓸데없는 데 쓰지 말고, 그냥 모아뒀다가 나중에 아공간 같은 거나 사. 그건 무조건 뽕 뽑으니까.”
“아하…”
아공간.
아마 RPG 게임의 인벤토리 같은 걸 말하는 것이리라.
최현석은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박현아가 최현석을 돌아보며 입을 뗐다.
“야. 너 일단은 용사인 거지?”
“예.”
“그런데 왜 마왕군에 있는 거야?”“군단장님도… 마왕군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네.”
예상외로 박현아는 시원하게 인정했다.
하긴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라고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고.
박현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 어떻게 마기랑 마력을 같이 사용하는 거야?”“어쩌다 보니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
“예. 진짜 어쩌다 보니 된 거라…”
최현석과 박현아의 시선이 교차한다.
가만히 최현석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박현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쩌다 보니. 그럴 수 있지. 어쩌다 보니까 마기도 쓰고, 마력도 쓰고, 용사가 마왕군에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어쩌다 보면 다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지? 세상일이 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가는 거지. 그렇고말고.”
“…”
“뒤질래?”
“죄송합니다.”
노려보는 시선이 따갑다.
최현석은 조용히 눈을 돌렸다.
그는 먼 산을 바라보며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야.”
“예.”
“너 내 밑으로 안 올래?”
“예?”
“아니, 그냥 내 밑으로 와라.”
“…”
최현석이 커진 눈으로 박현아를 바라봤다.
당황한 눈동자는 한없이 떨린다.
“왜? 싫어?”
“아… 싫은 건 아닌데 좀…”
“뒤질래?”
최현석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시발. 입술 괴물은 적어도 말이라도 통했지. 이건 그냥 답이 없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을까.
평소 이런 쪽으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최현석이라지만, 이번 상대는 너무 강력했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다.
‘아… 엄마 보고 싶네.’
한없이 자상하던 어머니가 유독 그리워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