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74)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74화(74/273)
최현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전방을 주시했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무리.
하나같이 후드를 눌러쓰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으나, 마족
같지는 않았다.
후드 위로 드러나는 체형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이놈들은 뭐지?’
고민하던 그때.
가장 앞에 있던 자가 모자를 벗었다.
예상대로 인간의 얼굴이 보인다.
뒤이어 나머지도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
스르륵…
단순히 모자를 벗는 행위임에도 수없이 연습한 것처럼 완벽하게 움직임이 일치했다.
일사불란함에 감탄하기보다, 어째서인지 기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놈들 뭔가 이상해. 눈에 초점이 없어.’
앞을 가로막은 자들의 분위기는 어딘가 이상했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
마치 넋이 나간 인형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 이질적인 감각에 최현석은 께름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용사님. 사람이에요! 빨리 가서 도와달라 하죠!”
“기다려봐.”
“고민할 게 있어요!? 지금 멍청한 마족들한테 죽게 생겼다고요!”
라헬이 다급히 외쳤다.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해된다.
절벽에 내몰린 상황이고, 살기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최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아무리 위험해도 들개를 피해 호랑이굴로 들어갈 수는 없다.
“이상하지 않아? 어째서 이곳에,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사람이 있는 건데?”“지금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라구요. 보면 모르겠어요? 저 사람들 용사잖아요!”“알겠으니까 일단 들어가.”
최현석이 라헬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빠르게 눈을 굴렸다.
‘수는 대략 오십 정도.’‘이곳에서 보기 힘든 동양인의 외모.’‘마족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검은색 머리칼.’
몇 가지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고 종합한다.
결론에 도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용사.
라헬의 말대로 저들은 용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상한 건 이놈들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이곳은 위험한 마수가 득실거리는 이네모시트다.
절대 마력도 없는 일반인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분명 뭔가 있는 건데…’
최현석이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그때.
용사 무리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흐리멍덩해 보이는 다른 이들과 달리 또렷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용사 테일러 앤드류다.”
남자의 이름은 테일러 앤드류.
최현석의 예상대로 용사였다.
그 순간, 오랜만에 용사 퀘스트 알림이 떠올랐다.
★☆★☆ 용사 퀘스트! ★☆★☆
이런이런! 간악한 용사 무리와 맞닥뜨리고 말았군요!
저 악당들을 상대로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재주껏 살아남으세요!
· 목표 : 생존
· 추가 목표 : 용사 무리 처치· 보상 : 용사 포인트 1,000
갑작스레 나타난 퀘스트 덕에 최현석은 두 가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하나는 저 용사 무리가 적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저들이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것이다.
단지 생존하는 것만으로 용사 포인트 1,000을 줄 정도로 말이다.
‘전투는 피하고 자연스럽게 빠진다.’
최현석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오! 이거 참 우연이네. 나도 용사거든. 그래서 용사님이 여기엔 무슨 일로?”
“마족
사냥.”
테일러가 검을 뽑고 다가온다.
최현석은 최대한 선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족
사냥! 그거 좋지! 나도 마족이라면 치를 떠는데, 혹시 끼워줄 수 있나?”
“거절한다.”
“음,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볼일들 봐. 나는 가던 길 갈게. 하하!”
최현석이 호쾌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마족들을 처리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자! 파이팅!”
마지막으로 파이팅 자세까지 취하고는 그대로 숲을 향해 걸어간다.
그 순간.
스걱!
날아온 검기에 최현석의 머리칼이 우스스 잘려 나갔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슬쩍 돌아보니, 검기에 나무와 바위 따위가 모조리 잘려 나가 있었다.
‘무슨 위력이…’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면 잘리는 건 머리칼이 아니라 목이었을 것이다.
최현석은 당황한 눈으로 테일러를 바라봤다.
“가, 같은 용사끼리 이게 무슨 짓이야…?”“배신자도 함께 처단한다.”“배신자라니. 나도 용사라니까?”“네놈이 용사라는 건 알고 있다. 어째서 배신자가 됐는지에 대한 변명은 죽고 난 후에 하도록.”
“이런 썅…”
아무래도 전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놈은 이미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듯했다.
최현석은 전투 자세를 잡으며 마력과 마기를 끌어올렸다.
‘정면 승부로는 절대 안 돼.’
고작 일격이었음에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저 테일러라는 용사는 격이 다르다.
마왕군으로 치면 연대장급.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을 끈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끄는 것뿐이다.
어떻게든 다른 마족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
‘집중해…’
최현석이 눈을 부릅떴다.
한시라도 테일러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속도와 위력.
모든 면에서 자신을 압도하는 적.
이런 적을 상대로는 싸울 때는 매 순간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렇기에 머리가 부서질 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했다.
‘온다!’
테일러가 땅을 박찬다고 생각한 순간.
놈은 어느새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반응하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움츠리지 마.’
최현석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지금 상황에서 어설픈 회피는 오히려 독이다.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은 하나.
‘놈의 품으로 파고든다.’
최현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러한 대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테일러의 눈에 짧은 당황이 스쳐 갔다.
파앗!
검이 어깨를 스치고, 허공에 핏방울이 튄다.
그 안에 서린 날카로운 예기는 다시 한번 적의 수준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최현석은 멈추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는 멈추면 안 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타격기는 안 돼. 익숙하지 않은 그래플링 쪽으로 간다.’
최현석은 테일러의 허리를 붙잡았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녔다고 해도 테일러 또한 인간.
갑옷을 포함한 그의 무게는 100kg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인간의 근력을 초월한 최현석에게 그 정도는 가벼운 무게였다.
‘메다꽂아…!’
다리를 걸어 중심을 무너뜨리고, 그대로 잡아 돌린다.
테일러가 눈 깜짝할 새에 허공에서 한 바퀴 돌고.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바닥에 메쳐진 테일러의 목이 꺾인다.
최현석은 멈추지 않고 연계에 들어갔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공격적인 마기.
이런 때를 위해, 익혀둔 투기를 사용할 때였다.
레이드런식 격투술
제7형 – 격괴작파(擊䂷炸波)
단단하게 쥐어진 주먹이 내리꽂힌다.
테일러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손을 들어서 막아냈다.
애초에 둘의 전력 차는 워낙 압도적이다.
최현석의 주먹은 허무하게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상했던바.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파지지직…!
레이드런식 격투술, 제7형 – 격괴작파.
마기를 진동시켜 넓은 범위에 충격파를 날리는 기술이다.
일종의 광역기라고 할 수 있다.
적이 혼자인 상황에서 광역 기술을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처럼 공격이 막혀도 진동하는 마기는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현석의 마기가 테일러의 손을 지나쳐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콰과광!
진동하는 마기가 일대를 뒤흔들며 땅이 뒤집혔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일순간 시야를 가린다.
그 틈을 이용해 최현석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후욱… 후우…”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연계.
짧디짧은 순간이었으나, 모든 힘을 다한 탓에 호흡이 거칠었다.
지친 와중에도 최현석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안심하긴 이르다.
적은 아직 살아있다.
“성가신 스타일이군.”
흙먼지를 뚫고 테일러가 걸어 나왔다.
그가 바닥에 침을 퉷! 뱉었다.
피가 섞인 붉은 침이었다.
‘고작 저 정도로 끝인 건가…’
최현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상했지만, 적이 너무나 강하다.
이쪽은 전력을 다했음에도 적이 받은 피해는 미미하다.
기본적인 능력치 차이가 너무 컸다.
‘두 번은 힘들다. 어떡하지?’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공격 방식으로 놈이 대응하지 못한 것뿐이다.
다음 공격도 성공할 가능성은 적었다.
최현석이 낼 수 있는 카드는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플로모트를 사용해야 하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두고 싶었던 투기 플로모트.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인간! 여기 있었군!”“기다려라! 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도 죽지 않는다!”“인간이다! 인간이 잔뜩 있다!”
기다리던 지원군이 도착했다.
***
용사 테일러 앤드류.
그가 사나운 눈으로 전방을 응시다.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배신자 용사 최현석.
놈은 잠깐 사이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다.
테일러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이놈… 정체가 뭐지?’
최현석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알고 있다.
용사이면서 마왕군에 몸을 의탁한 배신자.
무력은 그리 강하지 않으나 빠르게 성장 중이다.
그리고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우선 제거 대상 중 하나였다.
하나, 테일러가 의문은 이런 신상 명세 따위가 아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대응할 수 없었다.’
최현석에게 공격을 허용했다.
아니, 잠깐이지만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놈과 나의 전력자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만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이다.
테일러와 최현석 사이에는 가늠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다.
실제로 무방비하게 당했음에도 테일러는 그리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어째서 압도적으로 강한 자신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테일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게다가 마지막에 사용한 투기… 마기를 진동시켜 방출했다. 고작 저 정도 수준에서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야.’
최현석이 마지막에 사용한 투기.
단순히 주먹에 마기를 담아 내려찍는 것처럼 보이나, 보이는 것처럼 간단한 기술이 아니었다.
마왕군으로 치면 적어도 연대장급 마족은 돼야 사용할 수 있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겨우 대대장급에도 미치지 못해 보이는 최현석이 사용할 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투기의 위력도 이상하다. 놈의 수준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위력이었어.’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최현석이 사용한 투기의 출력이 너무 높았다.
일반적으로 한 번 투기를 사용할 때 사용되는 마력은 전체의 2~3% 수준.
억지로 끌어올려도 전체 마력의 5%를 넘어가는 일은 없다.
이것은 마족이 사용하는 마기 또한 마찬가지.
그런데 최현석은 한 번에 지닌 마력의 30% 이상을 사용했다.
어떻게 저런 컨트롤이 가능한가.
설령 가능하다 해도 저렇게 출력을 높이면 신체가 버티지 못한다.
그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괴랄한 투기를 사용한 최현석은 멀쩡했다.
숨을 헐떡이고 있긴 하지만, 육체적으로 큰 충격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상한 것투성이군. 돌이켜보면 처음의 공격을 피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됐어.’
처음 테일러가 검을 휘둘렀을 때.
그는 진심으로 최현석의 목을 베어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최현석은 아슬하게 고개를 숙여 죽음의 위기를 모면했다.
별것 아닌 회피 한 번으로 호들갑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둘 사이의 격차를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저 마력과 마기를 함께 쓰는 이상한 놈인 줄 알았더니… 확실히 뭔가 있기는 있군.’
어째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배신자 하나가 최우선 제거 대상에 들어가 있는가.
단순히 마력과 마기를 같이 쓰는 특이한 존재라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직접 부딪혀 본 결과 알 수 있었다.
‘이상한, 아니… 위험한 놈이다.’
테일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현석은 위험하다.
지금은 능력치가 낮아 손쉽게 처리하겠지만, 다음은 어떨까?
배신자라고는 하나, 놈 또한 용사다.
언젠가는 레벨을 올리고 능력치가 올라갈 것이다.
놈이 연대장급의 스펙만 갖춰도 상대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미리 싹을 밟아둬야겠군.’
규격 외의 힘을 사용하는 이레귤러.
저런 변수는 더 크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테일러가 최현석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 순간.
“인간! 여기 있었군!”“기다려라! 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도 죽지 않는다!”“인간이다! 인간이 잔뜩 있다!”
경기에 참가하는 마족들이 나타났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와준 놈들을 보며 테일러가 씨익 웃었다.
‘귀찮음을 덜어줘서 고맙군.’
오늘. 배신자를 포함해 그 어떤 마족도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