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7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75화(75/273)
숲을 뚫고 나타난 22명의 참가자.
그들은 모여있는 다수의 인간을 보고는 멈춰 섰다.
“뭐지? 인간이 많아졌다.”“전부 죽여버리자!”
“고기! 고기가 잔뜩 있다!”
현재 용사들은 마력을 감추는 후드로 힘을 숨긴 상황.
그 사실을 모르는 참가자들은 도시락이 늘어났다며 신이 났다.
흡사 축제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을 보며 최현석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력은 명백히 인간이 위. 붙으면 무조건 마족이 깨진다.’
방금 싸웠던 테일러.
그 혼자 나서도 참가자 대부분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테일러의 뒤에서 대기 중인 50명의 용사까지 생각하면 참가자들의 승산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러나 최현석은 이들을 싸우게 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전투는 피할 수 없는 것.
지금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나한테 불똥이 튀기 전에 선수를 쳐야지.’
최현석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건방진 인간들이 쳐들어왔다! 우리 마왕군의 힘을 보여주자!”
우렁찬 목소리가 온 숲에 울려 퍼지고.
동시에 참가자들이 눈을 부릅떴다.
“우오오! 건방진 인간이다!”“우리는 마왕군! 무찌르자 인간!”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참가자들의 눈에 더 이상 최현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너머에 있는 사악한(?) 인간 무리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최현석이 쐐기를 박았다.
“돌겨억-!”
“우아아아아!”
“오늘은 인간 고기 파티다!”
흥분한 참가자들이 최현석을 지나쳐 용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앞뒤 없이 달려드는 멍청이들을 내버려 두고, 최현석은 슬금슬금 뒤로 빠져나왔다.
‘이걸로 시간은 벌었어.’
히든 능력치 카리스마와 통솔 능력이 빛을 발했다.
어차피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적.
시간만 벌면 그걸로 족했다.
“끼아아아악!”
“그웨엑!”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참가자들의 비명이 리얼하게 들려왔다.
예상대로 적의 전력이 이쪽을 압도하는 듯했다.
‘이제부터가 관건인데…’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문제는 다음이다.
참가자들이 모두 죽으면 자연스럽게 최현석의 차례가 온다.
이대로 도망치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
적의 전력은 말 그대로 압도적.
머지않아 따라 잡힐 게 뻔했다.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디로 가는 거냐.”
“연대장님!?”
이번 경기의 진행을 맡은 연대장 로이거였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기에 안면을 트고 있었다.
책임자인 로이거라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최현석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인간의 습격으로 흑색 거성과 연결된 게이트가 부서졌다.”
“예?”
“게이트가 부서졌다고 했다.”
게이트가 부서졌다는 건 흑색 거성과의 연결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이제 흑색 거성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흑색 거성에서 지원이 오지도 않을 것이다.
최현석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른 간부들은 어디 있습니까?”
이네모시트에는 참가자들만 온 게 아니다.
연대장 로이거를 포함해 제법 강한 지휘관급 간부들이 넘어왔다.
그들의 무력은 명백히 참가자보다 위.
힘을 합친다면 분명 활로가 보일 것이다.
“전부 죽었다.”
“전부 말입니까…?”
“그래. 나도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쳤을 뿐이야.”
“하아…”
상황은 생각보다 절망적이었다.
진행을 위해 온 간부들이 모두 죽었고, 조만간 참가자들도 그 뒤를 따라갈 예정이었다.
최현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는가?
이곳에는 명백히 대대장급 이상의 강자들만 있었다.
그런데도 고작 50명의 인간도 막지 못하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적이 도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이렇게 당하는 겁니까?”“전원이 대대장급 이상. 연대장급도 셋 정도. 하나는 거의 사단장에 근접한 수준이더군.”
사단장급이란 테일러를 지칭하는 게 분명했다.
놈의 끔찍한 맷집은 그 정도 수준이 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나머지 용사들 또한 모두 수준이 높다.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도망치는 것뿐이지.”“도망치면 살 수 있습니까?”“나 혼자라면. 하지만 너는 무조건 따라 잡힐 거다. 추적 마법이 걸려 있거든.”
“예!?”
추적 마법이라는 말에 최현석은 깜짝 놀랐다.
전혀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테일러가 무슨 수를 쓴 듯했다.
“간단하면서도 강한 마법이다. 해제하려면 할 수는 있겠다만, 그 전에 적들이 들이닥치겠지.”
“…”
“포기해라. 너는 군단장님께서 총애하던 인간이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군단장님께 전해주마.”
로이거가 선심 쓰듯 말했다.
나름 호의로 말한 것이겠지만,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저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건가?’
총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그딴 말을 저리 태연하게 하다니.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런 개 같은 상황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멱살을 붙잡고 묻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
최현석의 눈이 사납게 떠졌다.
아무리 적이 압도적이라고 해도 싸워보기도 전에 포기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저는 살아남을 겁니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 취급하지 마십쇼.”“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있습니다.”
최현석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가 품에서 구슬을 꺼내 작동시켰다.
홀로그램 지도가 나타나고.
멀지 않은 곳에서 보라색 점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지금부터 이 마수가 있는 곳으로 갈 겁니다.”
로이거는 당황했다.
뜬금없이 마수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니.
자살이라도 할 생각인 걸까.
“거기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아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적의 추격을 뿌리치는 건 무리라고.”
로이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석의 말대로 지금 적의 추격을 뿌리치는 건 무리다.
그렇다고 싸워 이길 수도 없으니 남은 것은 죽는 것뿐.
로이거는 의문이었다.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눈앞의 인간은 뭘 어떻게 한다는 걸까.
“추격을 뿌리칠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죠.”
“그 방법이 뭐냐?”
“못 쫓아오게 전부 조지는 겁니다.”
최현석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
용사 테일러 앤드류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도망쳤나…”
배신자 용사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마족을 처리하는 사이 도망친 듯했다.
“쯧.”
테일러가 혀를 한번 찼다.
약간의 수고로움이 더해지게 생겼으나, 문제는 없다.
배신자에게 추적 마법을 걸어뒀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곧바로 용사들을 이끌고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돌연 테일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귀찮은 짓거리를 벌이는군…’
강렬한 마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이 지역의 패자(霸者)인 마수.
배신자는 마수를 이용해서 버틸 생각인 것 같았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다행히 이곳은 이네모시트의 초입.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마수라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테일러는 계속해서 이동했다.
마침내 저 멀리 마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플로클라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테일러는 마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과거 서적에서 스치듯 본 게 전부이지만 단번에 놈을 알아봤다.
그만큼 ‘플로클라데’라는 마수의 외형은 특이했다.
그워어어어어어-!
놈은 마수가 아니라 마치 작은 산처럼 느껴졌다.
동그랗고 거대한 몸체.
위쪽에는 꽃처럼 생긴 무언가가 잔뜩 튀어나와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무줄기처럼 생긴 촉수 수천 가닥이 튀어나와 허공을 유영했다.
‘귀찮게 됐어…’
테일러의 표정이 구겨졌다.
플로클라데는 만만한 마수가 아니다.
놈을 상대하려면 자신을 포함해서 이곳에 모인 용사 전원이 덤벼들어야 한다.
‘사냥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피해가 너무 커져.’
잠시 고민하던 테일러가 결단을 내렸다.
“마수의 시선을 끌어라. 내가 배신자를 처리하면 곧바로 빠진다.”
플로클라데는 내버려 둔다.
어차피 목표는 배신자 용사.
다른 용사들이 플로클라데의 시선을 끄는 동안 자신이 배신자를 처단하면 임무는 종료다.
몇몇 희생은 있겠지만, 직접 플로클라데를 사냥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타앗! 탓!
50명의 용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테일러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찾았다.’
배신자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놈은 플로클라데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테일러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바로 끝내주지.’
시간을 끌 생각은 없다.
전력을 다해 단번에 처리한다.
테일러가 쏘아지듯 지면을 차고 나갔다.
배신자에게 도달하기 직전.
그의 몸에서 마력이 폭사됐다.
상급 용사 검술
제1형 – 용사의 길
상급 용사 검술.
용사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이 투기는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용사라면 대부분 익히고 있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투기.
하지만 그 위력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후웅!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강력한 수직 베기.
테일러의 검이 바닥을 스치듯 훑고 지나갔다.
그 경로를 따라 검기가 바닥을 할퀴며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콰가가각!
나아간 검기가 눈 깜짝할 새에 배신자에게 도달한다.
순간 테일러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피했어…?’
그가 검을 휘두르고, 검기가 배신자에게 도달한 것은 말 그대로 한순간.
배신자의 수준에서 피할 만한 속도가 아니었다.
‘전투 센스도 좋은 편이지만, 눈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좋군. 지닌 실력에 비해 반응속도가 기형적으로 뛰어나.’
이전의 격돌에서 느낀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배신자는 수준에 맞지 않는 뛰어난 눈을 지니고 있었다.
테일러는 몰랐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배신자, 최현석의 평소 대련 상대가 레이드런이었기 때문이다.
박투술만 놓고 보면 마왕군 전체에서 손꼽는 레이드런과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받았다.
반응속도가 좋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더 성장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
테일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생각을 확신했다.
이번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신자 용사를 처단하는 일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그러나 상황은 생각만큼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테일러의 표정에 다급함이 어려간다.
‘도대체 얼마나 운이 좋은 거냐!?’
배신자는 정말 잘 도망쳤다.
몇 번이고 목이 달아날 뻔한 상황이 펼쳐졌으나, 놈은 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진지하게 신이 돕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거대한 마수 플로클라데를 방패 삼아 다시 숨는 배신자를 보며 테일러가 이를 갈았다.
‘저 괴상한 투기는 도대체가…!’
테일러가 배신자를 처리하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그것은 배신자가 사용하는 투기.
마기와 마력이 뒤섞인 듯한 괴상한,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투기였다.
이제는 보라색 빛이 터져 나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움찔거릴 지경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짜증 나는군…”
테일러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촉수가 날아들었다.
테일러의 검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스걱!
“이놈이고 저놈이고 짜증 나 죽겠단 말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플로클라데였다.
저 짜증 나는 마수는 찰싹 달라붙어 있는 배신자를 내버려 두고, 자신과 다른 용사들만 공격했다.
놈이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테일러가 한숨을 내쉬었다.
‘교황이 한 소리 하겠어.’
잠깐 사이 용사가 스물 가까이 죽어 나갔다.
이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는 건 곤란하다.
애초에 이번 작전은 피해 없이, 확실하게 적을 사냥하라는 뜻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내어줬다.
그런데 용사가 이렇게 많이 죽어버렸으니…
돌아가면 교황이 한바탕 잔소리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이라도 플로클라데를 처리한다.’
이대로라면 점점 더 피해가 커질 것이다.
자칫하다간 플로클라데 사냥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저 배신자도 놓아줄 수밖에 없다.
그 순간.
플로클라데 옆에 있는 배신자가 손을 들었다.
동시에 테일러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진다.
‘저 개자식이…’
배신자가 씨익 웃으며 중지를 치켜들었다.
마치 테일러의 생각을 읽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다.
이 순간에도 플로클라데는 마치 같은 편이라도 되는 듯 놈을 공격하지 않는 게 더욱 화났다.
‘실컷 웃어둬라.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테일러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일단 플로클라데를 죽인다.
그 후에 저 건방진 배신자를 처단하리라.
어차피 추적 마법을 걸어뒀으니, 도망치더라도 잡을 수 있다.
여차하면 다른 용사에게 배신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를 명령해도 된다.
‘다시는 웃지 못하게 산채로 얼굴 가죽을 벗겨주마.’
다짐과 함께 분노를 삼킨 테일러가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