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79)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79화(79/273)
엄청난 속도로 숲을 질주하는 무언가.
그것이 달리는 속도는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것이 땅을 디딜 때마다 굉음이 울렸고.
사방으로 모래 먼지가 휘날렸다.
퍼져나가는 소음과 마기에 숲에는 때아닌 소란이 일어났다.
“끼에엑!”
“케룩! 도망쳐라!”
단지 질주하는 것만으로 숲의 생명체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무언가.
그것의 정체는 바로…!
“최현서어억!”
레이드런이었다.
레이드런은 혼신의 힘을 다해 질주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마수의 땅 이네모시트.
원래는 공간 이동 게이트를 이용해야 했으나, 인간들에 의해 게이트가 부서져 버렸다.
덕분에 레이드런은 튼튼한 두 다리로 이네모시트까지 질주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내가 간다!”
흑색 거성에서 이네모스트 초입까지는 500km가 넘게 떨어져 있다.
단기간에, 그것도 달려서 도달할 만한 거리가 아니었으나…
레이드런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그가 흑색 거성에서 출발한 지 대략 3시간.
그의 시야에 벌써 이네모시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조금만 더 가면 되겠군!”
레이드런의 전신에서 미친 듯이 땀이 쏟아졌다.
마기는 이미 절반 이상이 날아갔고, 두 다리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후들거린다.
그럼에도 레이드런은 전력으로 달렸다.
쿠웅! 쿠웅! 쿠웅!
땅을 디딜 때마다 모래폭풍이 일어나고, 그의 신형은 대포에서 발사되는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지금껏 치러왔던 그 어떠한 전투보다도 힘겨운 전투를 벌이는 레이드런이었다.
‘드디어 게이트인가…’
저 멀리 게이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3분 정도 쉬어서 체력을 회복한 후에 인간을 처리해야겠군.’
레이드런의 계획은 이러했다.
잠깐의 휴식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감히 최현석과 마왕군을 습격한 건방진 인간들을 모두 처리.
후에 게이트를 복구하고 다시 흑색 거성으로 복귀한다.
‘아니지. 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 순간에도 최현석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을지 몰라!’
다시 생각해보니 3분의 휴식도 사치다.
당장 최현석의 목숨이 경각에 달해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휴식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레이드런이 곧장 인간들을 처리하기로 결심하던 그때.
게이트 옆에 있는 두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현석…?”
반쯤 죽어가는 최현석과 연대장 로이거였다.
***
사건의 전말을 들은 레이드런은 굉장히 기뻐했다.
“하하하하! 그 인간들을 처리하다니. 최현석. 역시 내가 인정한 남자답다!”
레이드런이 호탕하게 웃으며 최현석의 등을 후려쳤다.
순간 최현석의 입에서 피가 울컥 토해져 나왔다.
“커헉!”
“미, 미안하다! 괜찮나!?”“죽을 것 같습니다…”
현재 최현석은 플로모트의 부작용으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황이다.
고급 포션을 연달아 마신 덕에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라 해도, 중상자인 건 똑같았다.
깨진 도자기를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 형태만 유지한 수준.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는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했다.
레이드런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최현석! 이쪽에 앉아라. 내가 치료해주겠다.”
그가 최현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순간 최현석이 벌떡 일어났다.
“괘, 괜찮습니다! 치료라니요!”“으음, 그래도 치료를 받는 게 나을 것 같은데…”“저 멀쩡합니다. 보십쇼! 이렇게 팔팔합니다! 하하!”
최현석이 갑자기 팔 벌려 뛰기를 시작했다.
‘이 미친 소대가리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전에 레이드런이 최현석을 치료하기 위해 마기를 주입했다가 사경을 헤맨 경험이 있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긴 하다.
최현석은 이제 마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고.
플로모트 사용 중에는 마족처럼 머리에 뿔이 자라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레이드런의 치료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일종의 PTSD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는 아벨슨 씨도 없다고…’
이곳에는 치료를 전담하는 아벨슨 마리어트도 없는 상황.
자칫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대로 죽어야 했다.
굳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커허억, 허헉! 이렇게 멀쩡하니… 치료는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최현석은 고통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한사코 치료를 거부했다.
레이드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흑색 거성에 돌아가서 성녀에게 치료받도록 해라…”
레이드런은 마치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한 남자처럼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최현석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흠흠, 레이드런 님. 그나저나 저희는 이제 어떡합니까?”
“어떡하다니?”
“게이트도 부서졌고… 흑색 거성까지는 엄청 멀지 않습니까?”
최현석과 로이거는 굉장히 지친 상태다.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운데, 흑색 거성까지 달려갈 수는 없는 일.
아니, 멀쩡하다 해도 그런 짓은 못한다.
무려 5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서 3시간 만에 주파한 레이드런이 정신 나간 것이다.
“걱정 마라. 게이트를 만들 재료를 가져왔으니.”
레이드런이 품에서 이런저런 장치들을 꺼냈다.
보석처럼 생긴 것도 있었고, 신기한 문양이 잔뜩 그려진 돌도 있다.
어떤 것은 기계장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게이트를 직접 만든다는 말씀이십니까?”“딱히 어려울 것도 없지.”
최현석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이동 게이트라는 게 그렇게 뚝딱 만들 수 있는 건가…?’
당장 레이드런이 꺼낸 잡동사니만 해도 한 보따리다.
저걸 조립해서 어떻게 게이트를 만든다는 걸까.
심지어 레이드런은 무투파였다.
붉은 피부 위로 꿈틀거리는 근육이 마법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그 근육이 마법적인 실력을 보증해주지는 않았다.
“으음, 이렇게 하는 거였나?”
혼자서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레이드런을 두고 최현석은 조심스럽게 로이거에게 다가갔다.
그가 로이거의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로이거 님. 게이트라는 거. 쉽게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아니.”
로이거는 단칼에 대답했다.
“재료가 있어도 전문가들이 하루는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그럼 레이드런 님이 전문가 수준으로 마법 실력이 뛰어나십니까?”“글쎄. 레이드런 님께서 마법을 사용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군.”“만약… 게이트가 잘못되면 어떻게 됩니까?”“들어가는 순간 죽는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최현석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 진짜 죽을 것 같은데…’
필사적으로 괜찮은 척을 했으나, 최현석은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의식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일 수준.
치료를 받지도 않고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진짜 레이드런한테라도 치료를 받아야 하나…’
최현석이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레이드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성이군.”
“예? 벌써 끝났습니까?”
레이드런이 뭔가를 만지작거린 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떨어져 있어라. 마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
레이드런이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이내 그의 몸에서 엄청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우우우우웅!
바닥의 마법진이 밝게 빛나며 이내 게이트가 생겨났다.
하지만, 만들어진 게이트는 어딘가 이상했다.
크기가 절반 수준으로 작았고, 검은 막처럼 생긴 것이 굉장히 불안한 느낌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레이드런은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는 건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회용이긴 하지만 나쁘지 않군.”
최현석이 슬쩍 로이거를 바라봤다.
“저거 괜찮은 겁니까…?”“선두는 양보하지. 나는 가장 나중에 들어갈 거다.”
“치사하십니다.”
둘이 머뭇거리고 있자 레이드런이 다가왔다.
“뭐 하고 있나? 어서 가지.”
“예…”
“최현석 먼저 들어가라.”“저 먼저 말입니까…?”“어서 가서 치료를 받아야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최현석은 이내 체념하고 게이트 앞에 섰다.
“저…”
돌아보니 레이드런이 어서 들어가지 않고 뭘 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최현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려만 주십쇼.’
간단한 기도 후에 게이트에 발을 들인다.
우웅!
게이트가 출렁이고.
최현석은 속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았다.
“끄으윽…”
이전에 통과했던 정상적인 게이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
당장 속에 있는 걸 전부 게워내야 할 것 같았다.
“허억… 헉… 도착한 건가…?”
이내 정신을 차린 최현석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흑색 거성이었다.
“다행히 제대로 도착을… 음?”
도착한 장소는 분명 흑색 거성은 맞다.
그런데 최현석이 출발할 때와 많이 달랐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흑색 거성이 반파돼 있었다.
어지간한 도시 규모로 거대한 성이 박살 난 것이다.
게다가 하늘은 완전히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흡사 세기말의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이거 제대로 온 거 맞아…? 혹시 마왕군이 패배한 미래로 시간 여행 같은 걸 한 건가…”
최현석이 중얼거리던 그때, 저 멀리서 살이 떨릴 정도로 강렬한 마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 레이드런이 발산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렬한 마기.
최현석에게는 익숙한 마기였다.
‘입술 괴물…?’
헤미스의 마기가 흑색 거성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
“시발… 이러다가 진짜 죽겠네.”
박현아가 침을 퉤, 뱉었다.
바닥에 끈적하게 눌어붙은 침은, 검붉은 색으로 대부분 죽은 피였다.
고개를 들자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보였다.
“주둥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괴식가 헤미스.
그녀가 허공에 뜬 채로 박현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쯤 죽어가는 박현아와 달리 헤미스는 상처하나 없는 멀끔한 모습이었다.
“오호호. 충분하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너도 알잖아. 내가 배신자가 아니라는 거.”
“모르겠는데?”
헤미스가 히죽 웃었다.
박현아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저년이… 나를 화풀이용 샌드백으로 쓰고 있어.’
듣기로는 헤미스가 마지막으로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즉, 헤미스는 이 흑색 거성에서 100년 동안 처박혀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갑갑해 하던 차에 헤미스를 열 받게 하는 일이 벌어졌고.
하필 그 자리에 있던 자신은 이렇게 샌드백이 돼 있었다.
“그나저나 너도 제법 강해졌구나. 3년 전에는 이렇게 오래 못 버텼던 것 같은데 말이야. 꼴에 용사라는 거니?”“너무 오래 살아서 치매 걸렸냐. 용사 비즈니스 접은 지가 3년이 넘었는데 용사는 무슨.”“어머, 부정하지 말렴.”
헤미스가 천천히 다가온다.
앞에 선 헤미스가 손을 들어 박현아의 턱을 쓸었다.
“누가 뭐래도 너는 용사야. 인간 용사는 절대 마족이 될 수 없지.”
“…”
“언제까지 잔머리를 굴려서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알았니?”
박현아가 헤미스의 손을 탁! 하고 쳤다.
“지랄하지 마. 네가 이렇게 개지랄 떤 거 마왕이 알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용사가 불리해지니 마왕님을 찾다니 재미있구나! 오호호호호!”“그 엿같은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엿같… 커헉!”
순간 헤미스가 손을 뻗어 박현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박쥐 같은 년. 감히 마왕님을 입에 올려?”
“끄으윽…”
“착각하지 말았으면 해. 마왕님이 언제까지 네 뒤를 봐줄 건 아니야.”“커, 커억…!
“마왕님이 젖을 물던 시절부터 지켜봐 왔던 나야. 여기서 내가 너를 죽여버려도, 마왕님은 혀를 한번 차고 말걸?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점차 박현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저항하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헤미스의 입에서 나온 촉수들이 박현아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오랜만에 몸을 풀었네.”
“그, 그만…”
“그래. 이제 그만 죽으렴.”
박현아의 몸을 휘감은 촉수들이 더욱 강하게 조여 온다.
이대로라면 박현아의 몸은 갈가리 찢겨나갈 것이다.
박현아의 숨이 멎기 직전.
“헤미스 님. 거기까지 하시죠.”
그녀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헤미스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헤미스 님.”
다시 한번 들려오는 목소리.
헤미스는 마지못해 뒤로 돌아섰다.
그러자 거구의 소머리 마족이 보였다.
“이제 그만 멈추시라는 마왕님의 전언입니다.”
레이드런이 속한 카우든 일족의 수장이자 마왕군 제5군단의 군단장, 오즈게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