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8화(8/273)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최현석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나는 살아남는다.’
마왕군 제3군단 본부로 향하는 길.
지난 며칠 동안 최현석은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레이드런의 호감을 사는 데도 성공했잖아. 다른 마왕군이라고 안될 거 있어? 까짓거 군단장이든 마왕이든 전부 사로잡는 거야.’
비굴해 보여도 괜찮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비빌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흐흐… 나는 포기하지 않아…!’
어떻게든 금발의 미녀와 알콩달콩한 연애 끝에 토끼 같은 자식들을 잔뜩 낳고 노후에는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손주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고 말겠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최현석의 눈이 기이한 광기로 번들거릴 때였다.
“용사님. 정신 차려요. 마왕을 처치하는 게 먼저죠!”
최현석의 어깨에 앉아있던 라헬이 속삭였다.
그러자 최현석이 정색을 하며 라헬을 쳐다봤다.
“내가 행복하게 살면 안 되냐?”
“네…?”
“나는 행복하게 살면 안 돼?”
“…”
“내가 행복하게 살 수도 있잖아? 이런 시벌 엿 같은 세상!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요, 용사님… 마왕군이 듣겠어요. 목소리 좀…”“그래 안 그래애액!?”
최현석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완전히 돌았어…’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
흡사 정신 나간 악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라헬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하…! 그렇….”
그때 갑자기 라헬이 사라졌다.
동시에 마차 안으로 불쑥 머리가 들어왔다.
“최현석. 무슨 일이지?”
소대가리 레이드런이었다.
최현석은 언제 정색을 했냐는 듯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군단장님을 뵐 생각을 하니 너무 기뻐서 주체를 못 하겠네요. 하하! 소란스러웠다면 죄송합니다.”“확실히 군단장님을 알현한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지.”
“그렇고 말고요!”
“이제 군단 본부가 멀지 않았다. 곧 군단장님을 뵐 수 있을 테니 너무 조바심 내지 말도록.”
“넵! 알겠습니다!”
“그럼 쉬고 있어라.”
볼일이 끝나자 레이드런은 다시 마차의 선두로 돌아갔다.
최현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번 인생도 노총각으로 끝날뻔했네.”
최현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애 한번 하지 못하고 인생 두 번을 날리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용사님. 저기 좀 보세요!”
다시 나타난 라헬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뭔데 그래?”
최현석은 그녀의 작은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성인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그곳에는 거대한 흑색 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헤모른 요새보다 열 배는 더 큰 것 같은데…’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거리 감각이 이상해질 정도로 커다란 성이었다.
최현석이 넋 놓고 바라보는 그 순간에도 거대한 흑색 성은 점점 더 크기를 키워나갔다.
점차 성에 가까워지고, 마침내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곧 3군단 본부입니다!”
마왕군 제3군단 본부에 도착했다.
***
이세계는 생각보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제3군단 본부는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도시처럼 보였다.
그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으리으리한 성.
안으로 들어간 최현석은 고풍스러운 흑색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문 앞에 섰다.
“최현석. 이 안에는 군단장님께서 계신다.”
“예.”
“혹시라도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라.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말이다.”“명심하겠습니다.”
실례를 범하다니.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최현석은 군단장이 원한다면 발가락을 할짝거릴 각오가 돼 있었다.
물론, 마왕군 군단장이 원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똑똑.
레이드런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의외로 굉장한 미성이었다.
고리타분한 비유를 들자면, 정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감미로운 목소리다.
끼이익…
흑색의 고풍스러운 문이 열리고.
마침내 목소리의 주인공이 보였다.
두근…!
최현석은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예쁘다…’
눈앞의 여성은 등을 돌린 채로 서 있었다.
분명 뒷모습이었건만. 미모를 감출 수는 없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찰랑이는 흑발.
그 아래에는 굴곡지고 육감적인 몸매가 마치 자신을 유혹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굳이 금발의 미녀가 아니더라도 괜찮을지도…’
평소라면 여기서 그게 무슨 개소리예요!? -하는 라헬의 태클이 걸려왔어야 했지만, 조용했다.
아무래도 군단장 앞이라 몸을 사리는 것 같았다.
“헤미스 군단장님.”
레이드런이 군단장을 불렀다.
그러자 미모의 여성이 뒤를 돌아본다.
‘침착하자. 아무리 예뻐도 상대는 마왕군 군단장. 언제든 아부를 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생각하던 최현석이 깜짝 놀라며 눈을 부릅떴다.
뒤로 돌아선 군단장 헤미스.
그녀의 얼굴 전체가 거대한 입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
세로로 길게 찢어진 거대한 입.
그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레이드런. 왔어?”
미모의… 아니, 커다란 입술 괴물이 말했다.
“군단장님을 뵙습니다.”
레이드런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어머!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까지 하니. 호호호.”
입술 괴물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그래 봤자 거대한 입술의 절반도 가리지 못했지만 말이다.
“레이드런. 못 본 사이에 근육이 더 늠름해졌네?”“군단장님은 더 아름다워지셨습니다.”
레이드런이 어울리지 않게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랄…’
최현석은 토가 쏠리는 것을 참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이번에 헤모른 요새가 함락됐다지?”“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아니야. 그게 어디 레이드런 잘못인가. 멍청한 8사단장 실수지.”
순간 입술 괴물 헤미스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해일과도 같은 엄청난 마력이 온몸을 옥죈다.
‘수, 숨을 못 쉬겠어…’
최현석은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겨우 정신을 부여잡았다.
“8사단장. 그 악어 대가리가 염치도 없이 살아 돌아왔더라고?”
“…”
“그래서 가죽 백(bag)으로 만들어줄 생각이야. 요즘은 악어 대가리로 만든 게 유행이거든. 호호.”
헤미스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던지며 웃었다.
동시에 숨 막히던 기운이 사라진다.
최현석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죽는다.’
레이드런만 해도 범접하지 못할 괴물이건만.
저 헤미스라는 이름의 군단장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겉으로 봤을 때는 외계인도 기절할만한 비주얼이긴 해.’
하지만 정말 충격적인 것은 아직이었다.
“레이드런. 혹시 소식 들었어?”“어떤 소식을 말씀하시는 건지…”“이번에 마왕님이 기르시는 애완견이 새끼를 낳았거든.”“예. 소문은 들었습니다. 경축할 만한 일입니다.”“그래서 그 새끼를 누구에게 분양하냐를 놓고 군단장들끼리 사소한 다툼이 있었는데 말이야.”
순간 헤미스의 거대한 입술이 주욱 찢어진다.
아마 웃는 것 같았다.
“내가 이겼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한번 볼래?”
레이드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광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쩌어어어억-!
헤미스의 머리에 달린 입술이 2m 정도로 거대해지더니, 그 안에서 호랑이만큼 커다란 검은색 개(dog)가 튀어나왔다.
“이것 봐! 엄청 귀엽지?”“확실히 마왕님이 아끼실만한 애완견이군요. 새끼임에도 기품이 느껴집니다.”“이름은 ‘보보’라고 지었어!”“보보… 강한 힘이 느껴지는 이름이군요.”“맞아. 역시 레이드런은 말이 통한다니까!”
둘의 대화를 듣는 최현석은 미칠 것 같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째서 저들은 저렇게 태평하단 말인가.
‘사람 입에서 호랑이만 한 개새끼가 튀어나왔다고! 아, 사람은 아니지. 아무튼 입술이 막 늘어나서… 아니! 그보다 저 작은 몸에 어떻게 저렇게 무지막지한 놈이 들어가 있는 거야!? 그리고 저게 새끼라고? 코끼리 새끼도 저것보단 작겠다!’
태클을 걸 부분이 너무 많아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아, 나도 모르겠다…’
결국, 최현석은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때 헤미스의 시선이 최현석에게로 향했다.
아니, 헤미스에게 눈은 보이지 않으니 입술이 최현석을 향했다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레이드런. 저 인간은 뭐야?”“지난번에 보고드렸던 최현석이라는 인간입니다.”“아, 그 영특하다는 인간?”
팔불출 레이드런은 이미 군단장에게 최현석의 자랑을 끝낸 상황이었다.
“예. 이번에 정식으로 마왕군에 입단시키기 위해 데려왔습니다.”“오호… 레이드런이 고른 인재라니. 기대되네?”
헤미스가 최현석에게 다가왔다.
“얼굴도 귀엽게 생겼고, 근육도 아기자기한 게 마음에 들어.”
귀여운 얼굴.
아기자기한 근육.
모두 최현석과는 전혀 거리가 먼 단어다.
“구, 군단장님도 입술이 참 아름다우십니다.”“어머!? 정말이니?”
헤미스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최현석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억지웃음을 지었다.
‘사, 살려줘…’
거대한 입술이 당장에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다.
“빈말이라도 고마워!”
다행히도 헤미스가 다시 멀어지고, 최현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레이드런. 아무리 이 인간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조금 힘들겠는데?”“역시 마왕군에 받는 건 어려운 겁니까?”“아니. 마왕군에 받아주는 거야 어려울 게 없지.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면…”
레이드런은 무언가 짐작이 간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마왕군에 받아준다 해서 과연 이 인간이 버틸 수 있을까?”
헤미스의 의문은 합당한 것이었다.
원래 최현석이 있던 노예부대도 마왕군 소속이지만, 직접적인 전투 부대는 아니었다.
모든 노예는 마왕의 재산.
“감히 마왕님의 재산에 입맛을 다시는 놈은 입을 찢어주겠다.”
요새에서는 레이드런의 엄포가 있었기에, 마왕군이 노예에게 손을 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들어갈 곳은 다르다.
인간과 사투를 벌이는 진짜 마왕군.
심심하면 인간을 간식으로 잡아먹는 집단에서 최현석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장담하는데, 일주일은커녕 하루도 못 버틸걸?”“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현석을 믿습니다.”
“그래…?”
헤미스는 의외라는 눈으로 레이드런을 바라봤다.
붉은 악몽이라 불리는 그가 인간을 믿는다니.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었다.
“최현석은 뛰어난 지휘 능력을 지녔습니다. 비록 지금 그의 무력은 보잘것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 힘을 갖게 될 겁니다.”“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제가 직접 교육할 생각입니다.”
레이드런의 말에 최현석이 깜짝 놀랐다.
‘소대가리가 직접 교육을 하겠다고!?’
놀란 것은 헤미스도 마찬가지였다.
그 붉은 악몽 레이드런이 인간을 가르치겠다니.
자신이 알던 악마족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레이드런. 네가 직접 나서다니. 어지간히 저 인간이 마음에 들었나 봐?”“최현석은 인간이지만, 그 누구보다 마왕군에 어울리는 남자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그렇단 말이지…”
순간 헤미스의 입술이 주욱 찢어진다.
“이거 괜히 심술이 나는걸?”
최현석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잘은 모르겠지만,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레이드런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받아줘야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직접 교육은 안 돼.”
“예?”
“우리 레이드런이 한낱 인간에게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되지. 따로 부탁할 일도 있고.”
“…”
헤미스가 최현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최현석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대신 너는 내가 따로 돌봐줄게.”
“…”
“레이드런이 특별히 애지중지하는 인간이니만큼 나도 특별히! 신경을 써줘야겠지.”
헤미스의 손길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딴 신경 쓰지 말라고!’
소대가리 레이드런이고 입술 괴물 헤미스고 모조리 날려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아, 물론 기분만 그렇다는 거다.
최현석은 생존할 줄 아는 남자.
“군단장님께서 특별히 신경 써주시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하하!”
최현석이 정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처럼 소리쳤다.
“그래그래. 너는 이제부터 내 애완견 사육사로 배정될 거야.”
“예?”
애완견 사육사.
애완견이라 하면 헤미스의 옆에서 헐떡대고 있는 보보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어지간한 호랑이도 씹어먹을 것 같은 초대형 개(?) 말이다.
‘나보고 저걸 키우라고?’
최현석이 길러본 동물이라곤 초등학교 시절에 선물 받은 애완 햄스터 2마리가 전부다.
‘사육사가 아니라 간식으로 들어갈 것 같은데…’
헤미스라면 자신이 잡아먹혀도 그저 웃고 넘어가리라.
‘어머? 우리 귀염둥이 어쩜 이렇게 먹성도 좋아? 아주 날 똑 닮았다니까! 오호호!’ -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정말로, 확실했다.
“표정이 왜 그래? 혹시 싫니?”
순간 헤미스의 커다란 입술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최현석이 다급히 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저렇게 기품 넘치고 늠름한 보보 님을 감히 저따위 인간이 맡아도 될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어머, 말을 참 예쁘게 하네! 맞아. 우리 귀염둥이가 기품이 넘치고 늠름하긴 하지.”
헤미스가 만족한 듯 커다란 입술을 주욱 찢었다.
“참고로 우리 보보가 아직 성장기라 그런가 먹성이 좋아. 그러니까 간식이 떨어지지 않게 잘 조달해야 할 거야.”“명심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자칫하면 너도 간식으로 들어갈 테니까.”
“…”
“사육사를 얼마나 잡아먹는지 매번 배정하는 것도 일이야. 누굴 닮아서 이리 먹성이 좋은지 모르겠다니까? 오호호!”“아마 아름답고 훌륭하신 군단장님을 닮은 것 같습니다!”“그러니? 오호호호!”“물론입니다! 하하하하!”
헤미스와 함께 웃는 최현석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