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8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81화(81/273)
흑색 거성의 재건이 한창이다.
마왕군 공병대와 관련 기술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야이 멍청한 새끼들아! 너희 몸무게가 몇인데 나무판 위에서 뛰어다니는…!”콰드득-!
“뀌에엑! 떨어진다아-!”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으나, 전반적인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이니 기초적인 토목 작업은 손쉽게 이뤄졌다.
고작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외관상 80%는 복구된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내부.
이 세계의 성, 요새는 단순히 벽돌만 쌓아서 만드는 게 아니다.
성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마법 장치들이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까지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다 복구하려면 앞으로 몇 개월은 더 걸릴 것이다.
“흐응~ 다들 활기가 넘쳐 보여서 좋아.”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인 헤미스는 집무실에서 공사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집무실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개미처럼 열심히 돌아다니는 병사들을 보며 헤미스가 히죽 웃을 때였다.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레이드런이었다.
헤미스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니?”
“성의 증축 관련해서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헤미스가 말해보라는 듯 턱을 까딱인다.
레이드런은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헤미스가 서류를 받아 빠르게 훑었다.
“공간 간섭 마력장을 다시 설치해야 한다라…”“예. 이번에 증축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수명이 거의 다 됐다고 합니다.”
공간 간섭 마력장.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 요새라면 반드시 갖추는 중요한 장치다.
이것의 목적은 문자 그대로 공간 이동 마법을 방지하기 위한 간섭 역장을 펼치는 것.
이 장치가 중요한 이유는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마력장 없다면 어떻게 될까?
어디든 자유롭게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테러 위험 요소를 낳게 된다.
누군가 왕의 침실로 공간 이동해 암살이라도 하는 날에는 나라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광범위한 공간 간섭 마력장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흐음, 교체한 게 50년 전이었나?”“기록을 찾아보니 54년 전이었습니다.”“그래? 확실히 바꿀 때가 됐네. 그거 요즘도 2군단에서 만드니?”“예. 로타크 님의 연구소에서만 생산되고 있습니다.”
제2군단에는 마왕군에서 가장 거대한 연구소가 있다.
제2군단장이며 동시에 연구소장인 로타크는 헤미스의 오랜 지인 중 하나였다.
“레이드런 네가 얼른 다녀와. 게이트로 다녀오면 금방이잖아?”
마력장을 유지해도 공간 이동 게이트는 사용이 가능하다.
제2군단 본부와 흑색 거성은 게이트로 연결돼 있어 잠깐이면 필요한 장비들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드런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게이트는 물론이고 재료 보관 창고까지 흔적도 없이 부서졌습니다.”
“아… 그러니?”
“예. 게이트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수급하고 완전히 복구되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고 합니다.”
부서진 게이트를 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게이트가 있던 자리에는 재와 먼지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민망해진 헤미스가 괜히 볼을 긁적였다.
“음… 게이트 박살 낸 건 내가 아니라 그 천박한 년이야. 나는 부술 때도 금방 고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부쉈다니까?”
레이드런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야. 나는 그렇게 많이 안 부쉈어!”
“예.”
“조금이라도 진정성을 담아서 대답해주면 안 되겠니?”
“…알겠습니다.”
레이드런은 전혀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헤미스는 억울했다.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신은 정말 고치기 쉬운 것들만 조절해서 부쉈기 때문이다.
‘분명 그년이 날뛰면서 부순 거라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확실하다.
게이트를 산산조각 낸 건 박현아의 마법이었다.
역시 그때 박현아를 죽여버렸어야 했다며 헤미스가 혀를 찼다.
물론, 그 마법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않은 건 헤미스였지만 말이다.
“그건 맞으면 조금 아플 것 같았거든.”“무슨 말씀이십니까?”“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그때의 전투를 회상하던 헤미스가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튼, 그러면 2군단 본부까지 직접 다녀와야 한다는 거네?”“예. 사흘만 주시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제2군단 본부는 전선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후방이다.
비교적 전방에 있는 흑색 거성에서 그곳까지는 마차를 타고도 한 달은 가야 할 만큼 멀다.
하지만, 굳이 그 먼 곳까지 직접 갈 이유가 없다.
“인근의 다른 요새로 가서 게이트를 타고 이동할 생각입니다.”“좋은 생각이지만, 안 돼. 너는 흑색 거성에 남아 있어.”“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조만간 군단장 회의가 있을 예정이거든. 이번 일로 마왕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네.”
비공식이긴 하나, 레이드런은 제3군단의 부군단장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헤미스가 없다면 레이드런이라도 흑색 거성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러면 2군단에는 누구를 보내면 되겠습니까?”“최현석을 보내자.”
“최현석 말입니까…?”“응. 안 그래도 로타크가 최현석을 보고 싶다고 난리였는데, 잘됐네. 이참에 로타크도 만나고 필요한 장비들도 챙겨 오라고 해.”
제2군단장이자 동시에 연구소장인 로타크.
마왕군 최고의 정신병자로 유명한 마족이었다.
그는 온갖 기괴한 실험을 자행했는데, 그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죽어 나간 병사만 수천이라는 소문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정신이 나가 있기에 헤미스와 죽이 잘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정신 나간 과학자에게 최현석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
아마 침을 질질 흘리면서 뜯어보려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해부학 교실이 열릴지도 몰랐다.
‘최현석… 무사해야 된다…’
최현석의 안위가 걱정됐으나 레이드런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는.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최현석에게 말하겠습니다.”
***
최현석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상의를 벗어 드러난 그의 등 근육은 단단하면서도 우람했다.
곳곳에 있는 상처의 흔적들이 지금껏 그가 거쳐온 전장의 치열함을 대변했다.
“으윽…”
최현석이 엎드린 채로 신음한다.
“조, 조금만 더 살살… 상냥하게 해주십쇼.”
198cm의 거구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말하는 건 퍽 듣기 역겨웠다.
치료하던 아벨슨 마리어트는 자신의 두툼한 경전을 집어 들었다.
‘죽일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녀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요.”
“예?”
“흐흠! 아무것도 아니에요.”
실수로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아벨슨은 한 차례 헛기침하고 말을 이었다.
“한 번만 더 이상한 소리를 하면 가만있지 않겠어요.”“이상한 소리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진짜 아파 죽을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살살해 주십쇼.”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벨슨에게 받는 치료는 항상 고통스럽다.
그녀의 신성력이 들어올 때마다 몸 안의 마기가 미친 듯이 날뛰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서 견딜 만은 했으나,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러길래 누가 몸을 그렇게 혹사시키라 했나요.”
“죄송합니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그때 포션이 없었으면 무조건 죽었을 거예요. 아니, 원래라면 포션으로도 치료하지 못할 수준이었겠죠.”
아벨슨은 며칠 전 흑색 거성이 들썩였던 그 날을 떠올렸다.
무너지는 흑색 거성에 다 죽어가는 최현석이 돌아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 당시 최현석의 몸 상태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만신창이.
듣기로는 고급 포션을 두 병이나 마신 상태라는데,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아벨슨은 꼬박 이틀 밤을 지새운 후에야 최현석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진작 죽었을 거예요.”
“예.”
“지금 최현석 씨가 살아있는 건 모순적이게도 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기.
최현석의 목숨을 벼랑 끝에 몰아세운 놈이 이번에는 최현석의 손을 잡아 절벽에서 끌어올렸다.
“마기 때문이라… 재미있네요.”
마기는 원래 인간과 맞지 않는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국 최현석 안에 마기가 자리 잡았고.
최현석의 신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웃을 때가 아니에요. 앞으로 최현석 씨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아직은 인간에 가깝지만, 이대로 가면 정말 마족이 될지도 몰라요`.”“인간이 마족이 되는 게 가능한 겁니까?”“가능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죠. 애초에 마기가 인간의 안에 자리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우문현답이네요.”
지금도 최현석의 몸에서 뿔이 자라거나, 갑자기 털이 나는 등 기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아벨슨이 치료하면 금세 사라지기는 했지만, 장기적으로 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 그래도 저는 가능하면 계속 인간으로 남아있고 싶은데요.”
최현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마족은 곤란하지. 그럼 연애도 마족이랑 해야 할 거 아니야?’
최현석은 인간 여성이 좋았다.
마족
여성이 얼마나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주위 마족들을 봤을 때 인간의 시각에서 아름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로이거 연대장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나?’
로이거는 마족이지만 인간의 미적 기준에서도 굉장한 미남이다.
어쩌면 고위 마족
여성 또한 그런 미녀가 아닐까?
‘그럼 마족도 괜찮을지도…’
쓸데없는 생각이 끝을 모르고 뻗어나간다.
아벨슨이 부르지 않았다면 아마 마족
여성과 결혼해 손자까지 보는 망상을 했을 것이다.
“최현석 씨.”
“예?”
“일단은 계속 치료할 수밖에 없겠어요. 신성력으로 최대한 마기를 억누르면서 몸이 적응하기를 바라야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렇군요.”
최현석은 이 건에 관해서는 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고민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시간에 다른 일에 정신을 더 쏟는 게 좋았다.
‘차라리 그걸 물어보자.’
최현석은 그동안 묻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벨슨 씨. 혹시 용사에 대해 좀 아십니까?”
“용사?”
“예. 이번에 제가 용사들과 싸우는 일이 있었는데….”
최현석은 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테일러 앤드류.
그리고 그와 함께 나타났던 50명의 용사들.
그들은 하나같이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눈에 초점이 없고, 심지어 죽을 때도 무표정하게 죽었지.’
공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그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마치 영혼이 없는 인형 같다.
미래에 안드로이드가 나온다면 그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현석은 아벨슨이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까 싶어 질문을 던졌다.
“으음… 그런 용사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네요.”
“그렇습니까.”
“저한테 오는 정보는 제한적이라서요. 차기 성녀라고 하지만, 감시받는 입장이라 신성 제국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 순간, 아벨슨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소문?”
“네. 신성 제국 어딘가에 비밀리에 용사를 육성하는 기관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그 방법이 비인도적이라 외부에는 공개하지 못한다는 소문이었죠.”“비인도적인 방법이라…”“그리고 이것과 연관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센 제국에서는 용사를 받지 않아요.”
대륙에는 두 개의 제국이 존재한다.
하나는 가트렌 신성 제국.
다른 하나는 드라센 제국이다.
가트렌 신성 제국에서 적극적으로 용사를 기용하는 것에 반해, 드라센 제국은 대륙에서 가장 용사를 배척하는 국가로 유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최현석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냄새가 나긴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언젠가 마왕군을 벗어나면 알아볼 기회가 생기겠죠.”“그런 날이 올까요?”
“아마도요.”
둘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였다.
“최현석. 안에 있나?”
천막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현석이 벌떡 일어났다.
“예. 레이드런 님.”
“들어가겠다.”
천막을 열며 거구의 소대가리가 나타났다.
들어선 그는 윗옷을 벗은 최현석을 보고는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아벨슨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최현석을 지긋이 바라본다.
5초 동안 정지해 있던 그가 마침내 입을 뗐다.
“으음… 미안하다. 계속 볼일 보도록. 조금 뒤에 찾아오마.”
그대로 뒤돌아서 천막을 나가려는 레이드런.
아벨슨이 벌떡 일어나 그를 붙잡았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부끄러워할 것 없다. 너희는 이곳에 유일한 인간이고… 성인이니 자연스러운 일이지.”“그게 아니라 지금은 치료를….”“최현석. 그래도 애인이 생겼으면 나한테 언질 정도는 해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되지 않나.”
전혀 들을 생각이 없다.
레이드런의 머릿속에서 최현석과 아벨슨은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다만, 최현석이 애인의 존재를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많이 서운한 듯했다.
레이드런이 우울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
아벨슨은 조용히 두툼한 경전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레이드런의 뒤를 따라가며 중얼거린다.
“원기 회복에는 소뼈를 끓인 국물이 좋다고 하죠…”
경전을 들어 올리는 아벨슨을 보며 최현석은 생각했다.
오늘 저녁 식사에 소머리 곰탕이 나올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