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82)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82화(82/273)
다행히 레이드런의 오해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흐흠, 흠! 추태를 보였군.”
충격에서 벗어난 그는 최현석과 아벨슨을 앉혀두고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서 군단장님께서 널 추천하셨다.”
레이드런이 설명이 끝나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최현석은 복잡 미묘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황스러움이 제일 컸다.
잠깐이라고는 해도 흑색 거성을 떠나게 됐으니까.
“그러니까 제가 2군단이라는 곳으로 가야 된다는 말씀이십니까?”“그래. 공간 간섭 마력장은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2군단까지 이동하는 건 딱히 힘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알겠습니다. 그런데 레이드런 님.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지?”
“왜 하필 저입니까?”
최현석은 의문이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병사 중에 자신이 선택된 걸까?
최현석은 마왕군이라고는 해도 인간이다.
언제 도망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흑색 거성 밖으로 내보낸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의문에 대한 레이드런의 대답은 명쾌했다.
“군단장님의 의지다.”“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크흠, 없다…”
내심 찔리는 게 있었던 레이드런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차마 최현석에게 제2군단장인 로타크가 미친 과학자이고, 최현석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최현석이 레이드런의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던 그때.
옆에 있던 아벨슨이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최현석 씨를 혼자 보내는 건 안 돼요.”
“어째서지?”
“지금 최현석 씨의 육체는 불안정한 상태예요. 혼자 갔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성녀. 네가 같이 가야 한다는 건가?”
“네.”
“그럼 같이 가도록 해라.”
레이드런은 흔쾌히 승낙했다.
너무 손쉽게 허락하니 말을 꺼낸 쪽에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미 군단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함께해야 한다고 말할 거라 다군.”
지시가 있었다는 말에 아벨슨의 눈이 조금 커졌다.
어째서인지 헤미스는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최현석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끔 보면 입술 괴물은 진짜 소름 끼친다니까.’
언뜻 헤미스는 멋대로 행동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따금 보여주는 이런 모습들은 그녀가 사실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했다.
“아무튼, 오늘 점심에 출발할 예정이니 둘은 그때까지 준비를 마친 후 군단장님의 집무실로 와라.”
“예.”
“그리고 이번 작전에는 간부가 하나 동행할 예정이다.”
“누구입니까?”
간부가 동행한다는 말은 딱히 놀라울 게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용사와 성녀만 내보낸다는 말인가.
당연히 안전장치를 준비했을 것이다.
“함께 이동할 간부는…”
레이드런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제법 반가운 이름이었다.
“전(前) 연대장 로이거다.”
***
연대장 로이거.
그는 제3군단 본부, 흑색 거성에 상주하는 직할 연대의 연대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인간의 습격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를 당했다.
현재는 근신 처분이 내려진 상황.
그런 로이거에게 레이드런의 찾아와 한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저보고 최현석과 함께 2군단에 가라는 말씀이십니까?”“그래. 군단장님의 명령이다.”
레이드런의 이야기를 들은 로이거는 의아했다.
어째서 자신인가.
로이거는 근신 처분이 내려져 대외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자신을 밖으로 보내 잡음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레이드런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너는 군단장님의 직속 비서로 일할 예정이다.”
“직속 비서…”
직속 비서라는 말에 로이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군단장의 직속 비서라면 직위만 놓고 봤을 때는 연대장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헤미스 님께서 너를 좋게 평가하시더군. 이번 연대장 직위 해제는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마왕군은 패배자에게 엄격하니까.”
헤미스는 이전부터 로이거를 제법 고평가하고 있었다.
마왕군답지 않게 두뇌가 명석했고, 본인의 전투력도 연대장으로 준수한 편이다.
거기에 혈통 있는 가문 출신이니 앞으로의 잠재력 또한 우수하다.
그래서 이번 직위 해제는 로이거를 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수족으로 거두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그러니 너는 최현석과 2군단의 연구소로 가서 공간 간섭 마력장 장치를 제작하기 위한 아이템을 받아오기만 하면 된다. 알겠나?”“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습니다.”
“뭐…?”
순간 레이드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군단장의 명령에 토를 달다니.
최현석에게는 굉장히 관대하지만, 평소 레이드런은 절대 그렇지 않다.
다른 마족이 저런 건방진 태도를 보였다면 당장 꿀밤으로 머리를 찌그러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드런은 참았다.
자신도 평소 로이거를 좋게 보고 있었기에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유가 뭐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최현석과 성녀를 통제할 자신이 없습니다.”
로이거는 똑똑한 마족이다.
그렇기에 그는 객관적으로 자신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솔직히 최현석 하나만으로도 벅차다.’
지난 전투 때 최현석이 보여준 무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플로모트를 한계까지 운용한 일종의 도핑이라고 해도, 그것 또한 본인의 능력.
‘게다가 놈의 힘은 단순히 신체 능력에서 오는 게 아니지.’
물론, 플로모트를 사용한다 해도 여전히 최현석의 신체 능력은 로이거보다 아래다.
그럼에도 로이거는 의문이었다.
과연 자신이 최현석을 이길 수 있을까.
단순히 신체 스펙만 놓고 보면 이전에 죽은 용사 테일러 앤드류는 자신보다 훨씬 윗줄이었다.
그런 용사 테일러도 당한 마당에 자신이라고 최현석과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결코 쉽지 않은 승부일 것이라는 점이다.
‘놈은 매 전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렇기에 까다로워.’
지금껏 지켜봐 온 최현석은 그런 인간이었다.
항상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광전사.
모든 것을 내던지기에 본인이 가진 능력 이상의 힘을 낸다.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상대로도 승리를 쟁취한다.
어찌 보면 마족인 자신보다 더 마왕군에 어울리는 인간이기도 했다.
‘거기에 차기 성녀까지 합세한다면… 승산은 없다.’
최현석 하나만 컨트롤하기도 벅차다.
그런데 차기 성녀인 아벨슨이 함께한다?
절대 이길 수 없다.
아벨슨의 전투력은 전무하나, 마족을 상대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녀가 뿜어내는 무지막지한 성력은 마족에게 그 자체로 흉기였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저보다 더 윗줄의 간부를 함께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로이거가 제안했다.
그러나 레이드런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군단장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다. 다녀오도록.”
“하지만….”
레이드런이 손을 내밀어 로이거의 말을 제지했다.
“네가 걱정하는 부분은 이미 군단장님께서 손을 쓰셨다. 그러니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면 된다.”
“… 알겠습니다.”
이쯤 되면 수락할 수밖에 없다.
레이드런이 저렇게까지 강경하게 말한다면 따를 수밖에.
또한 헤미스가 손을 썼다니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 오늘 점심까지 준비를 마치고 군단장님의 집무실로 오도록.”
“예.”
로이거가 있는 천막을 나서고.
레이드런은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헤미스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으시겠지…’
사실 로이거가 가진 의문은 레이드런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그는 헤미스에게 말했다.
로이거가 최현석과 성녀를 통제하는 건 힘들 것이라고.
차라리 최현석과 성녀를 두고 로이거만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러나 돌아온 헤미스의 답변은 의외의 것이었다.
“글쎄, 내 생각은 달라. 내가 아는 최현석이라면 아마 마왕군에서 나가라고 등 떠밀어도 돌아올걸?”
“그렇습니까…?”
“최현석은 겉보기와 달리 영악한 인간이야. 특히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 잘 알고 있지.”
헤미스의 주장은 간단했다.
지금 상황에서 최현석은 마왕군에 남는 게 더 이득이니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설명을 들어도 레이드런의 표정이 풀어지지 않자, 그녀는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혹시 최현석이 도망치면 내가 어떻게든 찾아줄 테니까.”
“…”
“오히려 한번 도망쳐줬으면 좋겠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다시 붙잡혀서 나를 만났을 때 무슨 표정을 지을지 너무 궁금해.”
마지막 말을 하며 헤미스는 히죽 웃었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듯이.
“후우…”
레이드런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냈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미 확정된 사안이다.
자신이 고민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레이드런은 생각을 그만뒀다.
지금은 그저 자신의 상관을 믿을 수밖에 없다.
다만…
‘최현석은 정말 성녀와 연인 사이가 아닌 건가…?’
최현석의 연애에 대한 고민은 오랫동안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 같았다.
***
가트렌 신성 제국의 수도 그라티암.
교황 오르반 4세는 오늘도 웃는 얼굴로 화를 내고 있었다.
인자함 속에는 평소보다 더욱 진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또 실패입니까?”
교황의 앞에는 심복인 엘론드 추기경을 비롯해 몇몇 고위 관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두 번은 참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입니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최종적으로 작전을 승인한 게 교황이라고 해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가트렌 제국에서 교황은 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결국, 작전을 계획하고 시행한 간부들에게 책임의 화살이 날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 한번 말씀해 보세요. 도대체 왜 실패한 겁니까?”
교황이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두 눈은 기이한 광기와 분노로 이글거렸다.
엘론드 추기경은 감히 눈을 마주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젠 제 말이 말 같지 않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번에 파견한 전력은 제국 최고의 기사단 수준이었습니다.”
50명의 용사.
아무리 인형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들의 무력은 하나하나가 고명한 기사와 비견해도 손색없었다.
심지어 그들의 리더인 테일러 앤드류는 인형도 아니었다.
그는 머지않아 영웅의 칭호를 받을 만한 강자였다.
“적의 전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우리에게 피해가 오지 않게.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전력을 내줬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맞습니다…”
“그럼 어디 말씀해 보세요. 엘론드 추기경. 어째서 실패한 겁니까. 이유가 뭐냔 말입니다.”
엘론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그가 이내 말을 꺼냈다.
“이전에 보고 드린 내용 중에 배신자 용사가 있다 한 것 기억하십니까?”
갑자기 나온 배신자 용사라는 말에 교황이 인상을 찌푸렸다.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새로 얻은 첩보에 의하면 흑색 거성에 차기 성녀와 함께 배신자 용사가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용사가 된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아직 그 무력도 미천하다고 했다.
딱히 신경 쓸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으나, 통제되지 않는 용사는 껄끄러운 존재이기에 척살 명령을 내렸었다.
“설마 그 배신자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겁니까? 그 용사의 수준은 고작해야 일개 기사라고 들었는데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아닙니다. 제대로 기억하고 계십니다.”
정확히 일개 기사라기엔 조금 강했지만, 크게 다른 건 아니었다.
적당히 시골 영지의 기사단장을 맡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약한 건 아니지만, 그 정도의 실력을 지닌 기사는 제국에 발이 차일 정도로 넘쳐난다.
그런 배신자 하나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니.
교황은 납득할 수 없었다.
“사실, 이번 작전에 기록관을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기록관이 이번 전투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기록관이란 말 그대로 무언가를 전문적으로 기록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활동하는 분야는 매우 광범위한데, 이렇게 실제 작전에 파견돼 진행 과정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었다.
엘론드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영상이 기록된 마법 장치였다.
“여기 기록된 영상에 작전이 실패한 이유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흐음…”
교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우선 영상을 보기로 했다.
엘론드는 유능한 부하다.
최근 몇 번 실패를 겪었다고 해도, 바로 내치기에는 그간 엘론드가 쌓아온 신뢰와 실적이 만만치 않았다.
교황은 영상을 보고 난 후에 엘론드의 처분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건…”
영상이 이어질수록, 시시각각 교황의 표정이 변했다.
마침내 영상이 끝나고.
교황이 입을 열었다.
“엘론드 추기경. 일어나세요.”
무릎을 꿇고 있던 엘론드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추기경. 이자가 용사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했지요?”“첩자에게 듣기로는 이제 반년이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
“반년이라…”
영상에서 걸리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용사가 된 지 이제 겨우 반년이라니.
상식을 벗어난 성장 속도였다.
일반적으로 저 정도 수준이 되려면 아무리 재능 있는 용사라도 5년은 걸린다.
“이건 제법 심각한 사안이군요.”
교황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진지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아벨슨 마리어트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자의 이름이 뭡니까?”
“최현석입니다.”
“최현석이라… 앞으로 정보망을 총동원해서 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빠짐없이 보고하세요.”
“예.”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최고의 전력을 보내서 사살합니다. 영웅. 아니, 전설적인 존재를 부르는 한이 있더라도 성공시켜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명심하겠습니다.”
용사 최현석의 존재가 교황에게 처음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