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8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88화(88/273)
마공탑에 오고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최현석이 한 것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투기 훈련.
정확히는 노빌레이스와 플로모트 훈련이다.
“안정적으로 변화의 물길을 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간단하다. 마기의 통제! 그리고 마력과 마기를 융합시키는 너의 능력. 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찍!”
로타크가 말한 두 가지를 연습하는 데는 플로모트와 노빌레이스만 한 게 없었다.
플로모트는 마기를 극도로 활성화하는 투기였고, 노빌레이스는 마기와 마력을 융합하는 투기였으니까.
반복되는 훈련.
극한으로 마기를 운용하면서 최현석의 실력은 빠르게 상승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실력이 향상될수록 상황은 심각해져 갔다.
마기 활용이 잦아질수록 신체의 변화가 더욱 극심해진 것이다.
“어어…? 이거 왜이래!?”“꺄악! 괴물이다 괴물! 용사님이 괴물이 됐어!”
언제부턴가 투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단순히 마기를 운용하는 것만을 신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가 잦아질수록 육체에 이상 신호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커헉, 수, 숨이…!”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게 되거나.
“어…?”
길을 걷다가 정신을 잃거나.
“커헉!”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로타크는 최현석의 신체를 갈랐다.
실험이 아닌, 순수한 치료 목적이었다.
“찍! 손이 많이 가는 놈이군.”
내부 조직을 안정화하고 필요시에는 아예 장기를 새로 만들어 교체한다.
지금껏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키메라를 만들어온 로타크에게 이 정도 치료는 우스운 것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치고.
마침내 신체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로타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변화의 물길을 트기 시작한 것이다.
“아으… 진짜 죽겠네.”
오늘도 지독한 훈련이 끝났다.
최현석은 침대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매일같이 플로모트를 사용하여 신체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니 죽을 지경이다.
원래라면 절대 불가능한 훈련 방식.
죽지만 않으면 로타크가 살려낼 수 있기에 가능한 훈련이었다.
하지만 육체가 치료된다고 해서 정신적인 피로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매일같이 사경을 헤매다 보니 점차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훈련이 끝난 지금도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조금만 더 버티자. 상황은 계속 좋아지고 있어.’
하지만 겨우 두통에 굴복할 최현석이 아니다.
여전히 최현석의 머릿속에는 훈련에 관한 생각이 가득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확실히 신체가 안정된 게 느껴져.’
훈련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주.
막무가내로 변하며 문제를 일으키던 신체가 점차 안정적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로타크가 제시한 해결 방안.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만든다!’ – 라는 방식이 드디어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적어도 길 가다 객사할 위험은 없다고 봐야겠지.’
신체 변화에 일종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근골격계 위주의 변화.
가시적인 것은 뿔이 자라나거나, 피부가 검게 물드는 등의 현상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 최현석은 더욱 강한 힘을 냈다.
변화에서 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전투력을 증가시킨 것이다.
이쯤 되면 이것은 변화가 아닌 일종의 진화였다.
아직 완벽히 컨트롤하는 것은 무리였으나, 앞으로는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게 다 컨트롤 능력도 오른 덕분이겠지.”
최현석은 상태창을 열어 능력 란을 확인했다.
▫능력 : 마력 운용술(B), 마기 운용술(B)
마력 운용술과 마기 운용술.
두 능력 모두 C에서 B등급으로 상승했다.
특히나 마력에 관련된 컨트롤은 기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얼마 전에 얻은 아이템 ‘봉인이 해제된 리에스의 반지’ 영향인 듯했다.
마력 제어 능력과 마력 사용 효율을 25%나 끌어올려 주는 이 사기적인 반지는 기대한 것 이상의 효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투기 숙련도도 쭉쭉 상승하니 꿀이긴 하네.”
최현석의 성장은 이게 끝이 아니다.
그는 투기 항목에서 플로모트를 확인했다.
□ 플로모트
‧ 숙련도 : 26%
기존 플로모트 숙련도는 8%.
3주 만에 무려 3배가 넘게 상승했다.
플로모트는 매우 위험한 투기.
원래라면 훈련으로 단기간에 성장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플로모트를 훈련한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
최현석도 만능 치료사(?) 로타크가 아니었다면 절대 단기간에 성장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며칠 내로 신체가 안정되는 건 물론이고, 전보다 크게 전력이 상승할 거야.”
모든 게 순조로웠다.
딱 한 가지 불안한 게 있다면 로타크의 태도.
“가끔 그 쥐새끼가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최현석이 중얼거렸다.
로타크가 너무 순순히 도와주는 게 불안하다.
성장은 순조롭지만, 이 끝에 뭐가 있을까.
놈이 순순히 자신을 놓아줄까 하는 의심도 든다.
최현석이 한숨과 함께 고민을 떨쳐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안 그러냐 라헬?”
최현석이 라헬을 불렀다.
“…”
돌아오는 것은 침묵.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라헬. 또 무슨 장난이야. 빨리 나와.”
심심했던 라헬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걸까.
요즘 훈련에 매진하느라 거의 못 놀아주기는 했다.
최현석은 결국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야. 지금 안 나오면 입술 괴물 간식으로 줘버린다.”
이 말 한마디면 라헬은 항상 깜짝 놀라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런데 오늘은 반응이 없다.
그제야 최현석은 알 수 있었다.
“뭐야? 진짜 어디 간 거야?”
라헬이 사라졌다.
***
같은 시각.
로타크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네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일 것 같은데. 찍!”
집무실에는 로타크 혼자뿐이다.
그의 대화 상대는 바로 마법 통신구였다.
-그러니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이거잖아.
통신구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랑 너랑 손을 잡고 주둥이를 조지자. 이거 아니야?
“그래. 그거다! 찍!”
로타크의 대화 상대는 제4군단장인 박현아였다.
최근 헤미스에게 당한 부상으로 요양하고 있던 그녀에게, 로타크가 비밀스럽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이유가 뭔데? 쥐새끼 너 원래 주둥이 라인 아니었어?
박현아의 거칠고 직설적인 말에 로타크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하나, 지금 아쉬운 건 로타크 본인이다.
어차피 박현아의 성격이 지랄 맞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바.
여기서는 성질을 죽이고 그녀의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있었다.
“그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림이지. 실제로는 아니다.”-뭐가 아닌데?
“헤미스는 나를 같은 군단장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의 부하 취급을 하고 있지. 찍! 그 계집의 명령을 듣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졌어.”-그거야 알던 사실이고. 원래 주둥이는 마왕 말고는 다 자기 아래로 보잖아.
박현아의 말대로다.
이전부터 헤미스는 로타크를 포함한 다른 군단장 모두를 자신의 아랫사람처럼 다뤘다.
군단장 중에 그러한 사실에 불만을 가진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헤미스를 없애버리려는 미친 짓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애초에 헤미스가 다른 군단장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했고.
-몇백 년 동안 종놈처럼 설설 기다가 이제 와서 나대는 이유가 뭔데? 솔직하게 말해. 다른 꿍꿍이가 있지?
“그건…”
로타크는 잠시 고민한다.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될까?
‘여기까지 말한 이상 숨기는 건 의미가 없다.’
애초에 헤미스를 칠 것이라는 비밀을 까발린 상황이다.
여기서 뭘 더 숨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차라리 본심을 모두 말하고 박현아의 지지를 얻는 편이 나았다.
“최현석. 알고 있겠지.”-알지.
“그놈을 실험체로 쓰고 싶은데 헤미스가 거치적거린다. 차라리 잘 됐지. 이 기회에 헤미스도 같이 제거해서 연구하는 거야. 찌직! 그 괴물을 파헤치면 어떤 비밀이 나올지 궁금하지 않나!?”
로타크는 진심으로 흥분되는 듯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그에 대한 박현아의 평가는 냉담했다.
-미친놈. 고작 그런 이유로 군단장을 날리려 해?
로타크가 연구에 미쳐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중증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런 짓을 하면 마왕이 가만히 있겠어?
“마왕님을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다. 마왕님과 헤미스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니.”-아무리 그래도 군단장을 처리하는 일이야. 마왕이 전력 약화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너도 알 텐데.
“우습군! 마왕군의 전력이 약화된다고? 그것이야말로 헛소리지!”-뭐?
“헤미스가 죽어서 발생하는 전력의 구멍은 내가 얻을 연구로 충분히 메우고도 남는다.”
로타크는 자신 있었다.
헤미스가 죽어서 약화되는 전력?
헤미스와 최현석을 연구해서 얻는 데이터로 그 몇 배의 성과를 낼 수 있다.
“분명 마왕님도 내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실 거다.”
마왕의 입장에서는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상황이다.
수락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박현아. 잘 생각해라. 헤미스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군단장 둘의 힘을 감당하지는 못할 터.”-… 그렇겠지.
“그러니 어떻나? 나와 손을 잡고 헤미스를 치는 거다.”
박현아는 잠시 침묵했다.
로타크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좋아. 자세한 계획 나오면 다시 연락해.
“그래. 며칠 내로 연락하지.”
로타크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감돌았다.
박현아가 넘어오면 계획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남은 것은 헤미스를 처리하고 최고의 연구를 진행하기만 하면 된다.
“음…?”
갑자기 로타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재빠르게 통신을 종료한 그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슈슉!
눈 깜짝할 새에 집무실을 나서 복도로 나온 로타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상하군. 분명 기척을 느꼈는데.’
지금 이 대화는 누구도 들어선 안 된다.
비밀이 새어 나가는 순간 모든 게 물거품이 됨은 물론이고, 자신의 목까지 위험해질 테니까.
로타크는 한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마기를 넓게 퍼뜨린다.
‘으음, 착각인가?’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다.
애초에 주변을 완전히 차단하고 통화를 시작했으니, 누군가 들어오는 것 자체가 이상하긴 하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졌나 보군. 찍!”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조금 긴장했던 것 같았다.
집무실로 돌아온 로타크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헤미스. 최현석 기다려라…!’
조만간 자신의 손에 들어올 최고의 실험체.
비록 헤미스는 죽은 상태로 연구할 수밖에 없겠지만, 아쉬움보다는 즐거움과 기대가 훨씬 크다.
‘마왕의 머리를 갈라서 연구해볼 날도 멀지 않았군. 찍찍찍!’
언젠가 이 세계의 최강자가 되어 마왕도 실험체로 사용하리라.
원대한 꿈을 품은 로타크였다.
***
최근 라헬은 아주 심심했다.
최현석이 훈련에만 매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훈련이 끝난 이후에도 앞으로의 훈련에 관한 생각만 가득하다.
자연스럽게 라헬이 끼어들 틈은 없었고, 이 외진 곳에서 그녀는 갈수록 심심했다.
“칫! 바쁜 척하시긴!”
처음에는 그저 주변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최현석에게서 멀리 벗어나지는 못해도, 그의 힘이 강해진 만큼 어느 정도 떨어지는 것은 상관없었다.
그렇게 마공탑을 구경하던 그녀는, 우연히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됐다.
“허억, 허억!”
거친 호흡 탓에 라헬의 가슴이 오르내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쥐새끼가 입술 괴물을 치려고 한다! 그것도 용사 출신 또라이 군단장이랑 합세해서!?’
라헬이 걱정하는 것은 헤미스의 안위 따위가 아니다.
헤미스라는 뒷배가 사라졌을 때 최현석에게 들이닥칠 상황이 문제다.
‘용사님 두개골이 산 채로 열릴 거야!’
어서 이 사실을 최현석에게 알려야 한다.
라헬은 서둘러 최현석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위기가 닥치긴 했지만,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천운이나 다름없다.
미리 적의 계략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쥐새끼가 멍청해서 다행이야!’
사실 로타크는 다른 군단장에 비해 순수 무력이 조금 떨어진다.
이것은 감지 영역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덕에 발견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방금 대화를 한 게 헤미스였다면.
그녀가 작정하고 라헬을 찾으려는 순간 바로 발각됐으리라.
“용사님용사님용사님!!!”
최현석의 방으로 돌아온 라헬이 다급히 소리쳤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보고 최현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 어디 갔다 왔어?”“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구요!”
“갑자기 뭔데?”
라헬이 최현석의 귓가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지금 쥐새끼가 우리 뒤통수를 치려고 계략을 꾸민다구요…!”
그녀의 입에서 경악할 수밖에 없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