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9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91화(91/273)
보보의 등은 넓다.
얼마나 넓냐 하면 어지간한 침대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푹신하니 좋네~”
등에 드러누워 막사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갔다.
보보의 털을 쓰다듬으며 최현석이 중얼거렸다.
“보보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크왕!”
“뭐?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크왕!”
“맞아. 어떻게든 될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잖아?”
“크왕! 크왕!”
“고맙다. 역시 우리 보보밖에 없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헬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사님. 지금 개랑 대화하시는 거예요?”
“비슷하지.”
“무슨 말인지 알아는 듣고요?”“우리 보보가 얼마나 똑똑한데! 너 지금 보보 무시하냐?”“아니요. 용사님 무시한 건데요.”
“… 됐다.”
지금은 라헬과 설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관해 생각하기만 해도 벅찼으니까.
‘이렇게 점점 인간에서 멀어지다가 연애도 못 하면 어떡하지…’
최현석은 급격하게 일어난 신체 변화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존처럼 힘이 강해지거나,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보이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외관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마기를 운용할 때마다 무슨 생체 병기처럼 변하니 영 마음이 언짢았다.
‘이것도 노력하다 보면 통제가 되겠지?’
헤미스가 말했다.
노력하면 지금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최현석은 손에 든 서류를 천천히 읽어갔다.
“마수 모르테네브레 정보. 크기는 대략 100m. 하늘과 땅 바다 어디든 관계없이 거처를 자주 옮겨 다닌다. 드래곤 무리에게 죽기 전까지 최강의 마수라 불린….”
서류에는 마수들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정확히는 최현석이 들이켠 다섯 마기 앰플의 원주인에 관한 것이었다.
“마수들의 특성이 어디까지 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참고해 두면 좋을 거야.”
헤미스가 무심하게 건네준 이 자료를 최현석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멸종한 마수가 셋. 멸종 위기종이 둘이라…”
하나같이 강대한 마수들이었다.
이들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만 있다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리라.
‘나쁘게만 생각할 게 아니야.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일지도 몰라.’
애초에 마수의 마기를 삼킨다고 해당 마수의 특성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마왕군은 진작 이 세상을 점령했을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온전히 최현석에게만 일어난 예외적인 것.
이런 상황에서 그는 최강이라 불렸던 마수들의 마기를 삼켰다.
이제 더는 구할 수도 없는 귀한 마기.
이것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다면, 최현석은 세상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힘을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본래 능력을 개발하는 데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다.
지금 새롭게 얻은 능력은 어디까지나 플러스 알파의 개념이다.
근본적으로 그가 성장시켜왔던 체술, 투기 등을 절대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내실 없이 외양적인 강함만 추구해서는 절대 최고가 될 수 없다.
지금껏 최현석이 쓰러뜨려 온 자들이 대부분 그런 부류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상황 자체는 좋아. 능력치도 많이 상승하고, 추가로 더 강해질 여지가 생긴 거니.’
최현석은 상태창을 열어 능력치를 확인했다.
▫레벨 : 592
·근력 : 211
·민첩 : 207
·체력 : 216
·마력 : 225
·마기 : 256
·카리스마 : 84
·투지 : 32
레벨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능력치들이 대거 상승했다.
특히나 마기가 압도적이었는데, 기존 140 불과하던 것이 256이 되어있었다.
무려 100이 넘게 증가한 것이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마기로 꿀리지는 않겠어.”
최현석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나 궁금했다.
“라헬. 전투력 좀 확인해 줄래?”“지금요? 저 바쁜데…”“바닥에서 뒹굴거리는 게 도대체 뭐가 바쁜 건데.”
라헬은 말 그대로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 조금 있으면 대대장 되는 거 몰라? 어? 충성해야지!”“뚱성! 지금 당장 전투력 확인하겠습니다.”
라헬이 벌떡 일어나 경례 자세를 취했다.
최현석의 말대로 그는 곧 대대장이 된다.
이번 흑색 거성 중축이 끝나는 대로 대대 하나를 맡아 정식으로 대대장이 될 것이라 했다.
“보자, 우리 대대장님 전투력이…”
라헬이 고글에 머리를 가져다 대고 최현석을 바라봤다.
띠리리리리리…!
빠르게 올라가는 전투력.
이내 측정이 끝났는지 삐빅! 하는 알람이 들려온다.
“오오! 대대장님! 지금 측정 완료했습니다.”“좋아. 내 전투력이 얼마지?”“무려 칠만 육천입니다!”“뭐!? 그렇게 높다고!?”
라헬은 고글에 뜬 숫자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 전투력 : 76631]“예! 대대장님!”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이 정도면 대대장 중에서도 최상급의 전투력이었다.
“이러다가 연대장도 금방 달아버리는 거 아냐?”“벌써 김칫국 마시지 말라 하고 싶은데… 진짜 얼마 안 남았긴 하네요.”
지금까지 확인한 결과, 연대장의 평균적인 전투력은 10만 정도다.
아직 수치적으로 제법 차이가 있긴 했으나,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다가 진짜 사단장 되고 군단장 되고 그러면 어떡하지.”“에이~ 그렇게 되기 전에 여기서 떠야죠! 용사님. 우리 목적을 잊었어요!? 마왕을 처치하고 세상을 구하는 용사잖아요!”“그건 네 목적이고.”
“쳇.”
“어쨌든 평화로운 세상에서 연애하고 결혼도 하려면 달성해야 하니 과정 자체는 비슷하긴 하겠네.”
아직은 힘이 부족하다.
지금 최현석은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를 적으로 뒀으니까.
‘언젠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해지면, 그때 떠나는 거야.’
지금껏 막연히 생각해왔던 꿈.
그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듯했다.
***
그날 밤.
흑색 거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에 한 무리의 쥐새끼가 나타났다.
“찍찍! 서둘러라!”
쥐새끼들은 미리 준비해온 재료를 펼쳐두고,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미 이런 경험이 많은 듯, 그들의 연계는 자연스러웠고 움직임에는 낭비가 없었다.
“완성이다! 찍!”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장치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바로 공간 이동 게이트.
곧이어 완성된 게이트 안에서 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찌직! 찍! 찌직!”
“불을 질러라! 흑색 거성은 우리 스케빈 일족의 것이다!”“전쟁이다! 전쟁! 찍!”“멍청한 놈들! 어서 마법 포대를 설치해라!”
쏟아져 나오는 것은 쥐새끼뿐만이 아니었다.
“이 괴물들아! 어서 움직여라!”
“크와와아아-!”
“키에엑!”
키메라.
온갖 종류의 마수를 얼기설기 이어붙인 키메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로타크가 이끄는 스케빈 일족과 키메라 군단.
제2군단에서도 로타크의 직속 부대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움직인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도 유독 덩치가 크고 새하얘 눈에 띄는 쥐가 있었다.
제2군단장 로타크다.
그의 옆에는 제4군단장 박현아도 함께였다.
원래도 냉랭한 분위기의 그녀지만, 지금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맛살을 찌푸린 상태였다.
“진짜 극혐이네.”
거대 쥐가 약 이천 마리가량.
그로테스크한 키메라도 천마리가 넘어간다.
이들이 모여 있으니 혐오감이 배로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박현아가 로타크를 돌아봤다.
“야. 쥐새끼.”
쥐 비하 단어를 들은 로타크의 이마에 돋아났다.
그는 필사적으로 화를 억눌렀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 원래 저런 년이었으니…’
박현아의 입이 거친 게 하루 이틀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거사를 치르기 직전.
사사로운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무슨 일이냐.”
“고작 이걸로 되겠어? 흑색 거성을 치는 일인데.”“차고 넘치니 걱정하지 마라.”
현재 흑색 거성에 있는 전투병은 약 5천가량.
그중 연대장급이 둘.
사단장급은 레이드런 하나.
마지막으로 군단장인 헤미스가 있다.
“차고 넘치기는 지랄. 병력 숫자부터 밀리잖아. 게다가 여기 쥐새끼들 고블린이랑 다를 게 없는데 상대가 돼?”
로타크가 이끄는 스케빈 일족.
쥐의 외형을 한 이들은 사실 전투력이 형편없다.
고블린보다 아주 조금 나은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
아무리 키메라가 있다지만,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이쪽이 확연히 열세였다.
솔직히 상대가 될지 의문이다.
“멍청한 년. 우리 일족의 정예가 모였다. 상대가 1만이라고 해도 절대 밀리지 않아.”
“무슨 소리야?”
“보면 안다.”
로타크는 자신 있었다.
자신과 스케빈 일족의 강함은 외양적인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박현아의 쓸데없는 걱정도 쏙 들어가리라.
“박현아. 너는 다른데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하면 된다. 헤미스를 잡는 것. 자신 있겠지?”“나는 알아서 잘해. 새꺄.”“그래… 그럼 됐다.”
로타크는 짜증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 계집… 내가 최강의 왕이 되는 그날, 네년의 머리도 갈라서 확인해 주마.’
저 건방진 인간의 머리를 잘라 헤미스의 몸뚱이에 붙여놓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앙숙인 둘이 영원히 함께하게끔 말이다.
‘크큭! 둘 다 공평하게 내 발밑에서 조아릴 테니 억울하지는 않을 거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상상하는 로타크의 입에는 기괴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
레이드런의 개인 연방장.
오늘도 최현석과 레이드런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흐읍!”
최현석이 다급히 몸을 틀었다.
동시에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붉은 주먹.
날카로운 파공성이 귓가를 때렸다.
피하지 못했다면 필시 중상이었을 것이다.
최현석은 곧장 반격에 들어갔다.
‘노빌레이스…’
마기와 마력이 들끓는다.
최현석은 틀었던 몸의 무게중심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레이드런의 품을 파고들었다.
노빌레이스
제3형 – 오만의 대가
곧바로 이어지는 연격.
레이드런의 복부에 6번의 주먹이 연달아 틀어박혔다.
파바바바밧!
주먹이 닿을 때마다 터지는 보랏빛 섬광이 터져 나온다.
최현석은 이를 꽉 깨물고 마지막 여섯 번째 공격에 온 힘을 다했다.
‘뚫렸어?’
순간 최현석의 공격이 레이드런의 가드를 뚫고 복부에 닿았다.
‘제대로 들어갔다…!’
처음이었다.
자신의 공격이 레이드런에게 닿은 것은.
최현석의 얼굴에 환희가 올라오던 그때.
“어?”
주먹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콰직!
관자놀이에 주먹이 틀어박히고, 최현석은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최현석을 보며 레이드런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가, 감사합니다…”
아직 의식은 있는지 최현석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레이드런은 피식 웃었다.
‘새삼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다.’
원래 레이드런의 눈에는 최현석이 보이지 않았다.
격차가 너무 아득해서 볼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레이드런도 제법 신경 써서 최현석을 상대해야 했다.
아직은 투기조차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대련을 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도 투기를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몰랐다.
‘최현석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성장 속도라니… 믿을 수 없군.’
최현석의 성장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례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
하지만, 무엇이든 영원한 건 없다.
초심자 구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이 되면 정체기라는 것이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현석은 그런 일반적인 법칙 따위는 무시하고 여전히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었다.
“이대로 계속 나아가도록.”
“예.”
“그리고 육체를 변화하는 능력은 아직 많이 서툴다. 오히려 변화 때문에 전투에 방해가 되고 있어.”
레이드런은 최현석이 최근에 얻은 육체 변화 능력에 대해 지적했다.
“명심해라. 통제하지 못하는 힘은 방해가 될 뿐이다.”“새겨두겠습니다…”
솔직히 변화에 대한 건 최현석도 억울한 부분이 있었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레이드런의 말이 맞았으니까.
몸에서 가시나 돋아나든, 피부가 강철로 변하든 통제하지 못한다면 쓸모없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운만을 바라고 싸울 수는 없었다.
“후우, 오늘도 감사했습니다.”“그래. 이제 돌아갈 생각인가?”“예. 막사에서 좀 더 훈련을 이어갈 생각입니다.”“원한다면 이곳을 사용해도 좋다.”“그래도 되겠습니까…?”“물론이다! 최현석 너라면 얼마든지 마음껏 사용해도 되지!”
이곳은 말 그대로 레이드런만을 위한 개인 연병장이다.
레이드런은 평소 업무가 바빠 자주 나타나지 않으니, 사실상 최현석 혼자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최현석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솔직히 좁은 막사에서 할 수 있는 훈련은 제한적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다른 부대의 연병장을 빌려 쓰기도 그랬다.
‘나중에 정식으로 대대장이 되면 대대 연병장에서 하려 했는데, 그전까지는 여기서 해야겠어.’
앞으로 이어갈 훈련을 생각하며 최현석이 웃던 그 순간.
돌연 레이드런의 표정이 굳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레이드런.
의아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현석도 덩달아 표정을 굳혔다.
“이건…?”
마기의 파도였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가 먼 곳에서부터 날아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레이드런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최현석의 입이 쩌억 벌어진다.
“레이드런 님. 저게 뭡니까…?”
“나도 모른다…”
거대한 마기의 다발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내 그것이 흑색 거성을 덮치고.
콰과과과과광-!
세상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