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9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95화(95/273)
최현석은 팔을 들어 이마의 땀을 훔쳤다.
무리한 탓인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마기와 마력 소모도 커서, 이제 남은 것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제법 암울한 상황.
그러나 최현석은 웃었다.
“폭렙업이다.”
오랜만에 레벨을 거하게 올렸다.
아직은 전투가 진행 중이라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20레벨은 오른 듯했다.
“어이쿠! 이 새끼가 어딜!”
날아오는 손톱을 피하고 주먹을 뻗는다.
앞뒤 없이 달려들던 키메라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나갔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어요.”
최현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라헬이 딴지를 걸어온다.
“에이, 거의 끝나가잖아요. 이제 절반밖에 안 남은 것 같은데요?”“절반이나 남은 거겠지.”
아직 키메라가 천마리 가까이 남아있었다.
절반밖에 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긍정!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야죠!”“네 입에서 긍정이란 소리가 나오니 영 어색하네.”“참나, 이 라헬만큼 긍정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최현석은 ‘너 사람 아니잖아’ – 라고 딴지를 걸려다 그만두었다.
라헬이 이상한 컨셉을 잡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어지간한 건 그러려니 한다.
‘뭐, 라헬 말대로 상황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니까.’
최현석이 앓는 소리를 하긴 했지만, 사실 전황은 나쁘지 않았다.
가장 위협적인 공격을 하던 스케빈 일족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적은 대부분 키메라.
흑색 거성의 병사들과 난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아슬하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간부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연대장 로이거 혼자서 도륙한 키메라만 근 300은 될 듯했다.
‘지상은 어느 정도 승패가 난 것 같은데, 문제는 저 위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서는 로타크와 헤미스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
콰르르르! 콰아-!
로타크의 몸에서 끝없이 공격이 쏟아졌다.
마구잡이로 난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격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헤미스를 향한다.
그때, 헤미스가 쳐낸 마법 하나가 근처로 날아왔다.
“이런 시발!”
최현석은 재빨리 이동했다.
곧이어 그가 있던 자리에 마법이 작렬했다.
콰아아아-!
고작 하나.
로타크가 분당 수십 발을 난사하는 마법 중 하나가 지상에 떨어졌음에도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근처에 모여있던 키메라 십여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여기서 이기고 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승패는 저쪽에서 결정 난다.’
군단장이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가.
최현석은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규격 외.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다.
이곳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결국은 저들의 싸움에서 전쟁의 승패가 결정 날 터였다.
‘설마 입술 괴물이 지는 건 아니겠지…?’
얼굴에 걱정이 떠오른다.
로타크의 저력이 생각보다 강력했던 탓이다.
그저 실험쥐라고만 생각했는데, 역시 군단장은 군단장이었다.
‘왜 맞고만 있는 거야. 반격을 하라고!’
헤미스는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간간히 반격을 하긴 했으나,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로타크는 쉴 새 없이 헤미스를 몰아쳤다.
이대로면 헤미스가 질 것만 같았다.
만약 헤미스가 패배하면 최현석의 목숨도 끝이다.
‘제발… 이겨라!’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헤미스의 편이 된 최현석이었다.
***
지상에서 올려다볼 때, 전황은 로타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헤미스는 방어에 급급하고, 로타크는 계속해서 그녀를 밀어붙인다.
하나, 정작 로타크 본인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왜… 도대체 왜!?’
처음에는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헤미스는 막기에 급급했고, 자신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헤미스는 전혀 다급하지 않다.
겉으로는 속수무책으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하다.
오히려 밀어붙이는 로타크 쪽에서 조급함이 먼저 올라왔다.
‘출력이 거의 한계다.’
여기서 더 강한 공격을 퍼부울 수는 없다.
로타크는 이미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
반면 헤미스는 어떠한가.
로타크는 헤미스의 진짜 전력을 알고 있다.
‘겨우 절반 정도 사용한 건가…?’
가진 힘의 절반.
어쩌면 그조차도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헤미스의 전력을 본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뭐 하는 거냐.”
로타크가 공격을 멈췄다.
헤미스의 고개가 45도로 기울어진다.
“무슨 뜻이니?”
“찍! 제대로 싸우란 말이다. 나는 제2군단장이자 스케빈 일족의 수장인 로타크다. 진지하게 전투에 임해라!”“어머, 지금 내 뒤통수를 쳐놓고 명예나 긍지를 들먹이는 거니?”
“…”
“됐고. 더 보여줄 거 없니? 슬슬 질리려 해서 말이야.”
헤미스의 입술이 쩌억 벌어진다.
하품한 것이다.
로타크의 머리에 힘줄이 돋았다.
‘마지막까지 장난감 취급이군.’
방금의 대화로 확실해졌다.
헤미스는 일부러 전투를 질질 끌고 있었다.
오직 본인이 즐기기 위해서.
“언제까지 여유로운지 보겠다.”
로타크가 마기를 끌어올렸다.
육체를 관통하는 기계장치가 발갛게 달아오른다.
과부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육체가 노쇠한 로타크에게는 위험한 행동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미래는 없으니까.
‘그래… 패배가 결정 났다고 해도 멈출 수는 없다.’
사실 로타크도 알고 있다.
박현아가 등을 돌린 그 순간, 승리는 떠나갔다는 걸.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네년의 입술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
언제나 여유만만한 웃음을 짓는 헤미스.
오만하게 모두를 깔보고, 모든 존재를 장난감 취급한다.
로타크에게는 유독 그 취급이 심했다.
같은 군단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그녀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헤미스는 끝까지 자신을 어린 마족
대하듯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찌직!”
로타크의 두 팔이 하늘을 향한다.
허공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생성되고, 로타크의 육체에 연결된 기계장치와 연결된다.
“죽어라!!!”
수십 개의 마법진에서 쏘아진 마기는 모든 것을 삼켰다.
빛과 소리까지.
오직 어둠만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마기는 마치 도화지에 뿌려진 먹물처럼 모든 것을 검게 물들였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은 죽음을 보며 헤미스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입술이 귀에 걸릴 정도로 진한 미소를 짓는다.
“이건 좀 재미있네?”
말이 내뱉어짐과 동시에 검은 죽음이 그녀를 삼켰다.
“…”
어둠만이 가득하다.
어디에도 헤미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지켜보던 로타크가 광소했다.
“크하하하! 어떠냐? 이래도 나를 무시할 수 있겠나!? 응? 말해봐라! 어디 지껄여 보란 말이다!”
자신이 쓸 수 있는 최강의 마법.
같은 군단장은 물론이고, 설사 마왕이라 해도 이 마법에 당한다면 무사하지 못하리라.
방심하던 헤미스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소멸한 게 분명했다.
“좋구나! 헤미스. 지난 400년간 네년이 종처럼 부리던 나에게 당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한데, 아쉽군. 아쉬워!”
로타크가 낄낄거리며 소리쳤다.
그 순간.
찌이이익!
검은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로타크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쏴아아아아!
공간이 갈라지고, 로타크의 마기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무엇이든 삼키는 검은 마기.
그것이 오히려 잡아먹혀 버렸다.
남은 것은 오롯이 서 있는 헤미스뿐이었다.
“이건 조금 위험했어.”
헤미스가 비틀린 웃음을 짓는다.
그녀의 입술에서 한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마저도 다시 헤미스에게 흡수되며 빠르게 사라졌다.
죽음을 각오하고 날린 공격치고는 허무한 결과였다.
“어, 어떻게…”
로타크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와 함께 팔과 다리도 미친 듯이 후들거렸다.
당황 때문인지, 마법을 사용한 부작용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확실히 옛날의 애새끼는 아니구나. 덕분에 즐거웠어.”
헤미스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마법의 여파로 조금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칼이 다시 정갈하게 정돈된다.
“그럼, 이제 내 차례지?”
헤미스의 입술이 다시 한번 벌어졌다.
얼굴을 넘어 계속해서 커진 입술은 마침내 3m를 넘어섰다.
육체보다 입술이 배는 더 거대해진 것이다.
입술 안에서 수백 가닥의 촉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
하늘이 촉수로 가득 채워졌다.
날아오는 촉수를 보며 로타크가 괴성을 내질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건 말이 안 돼!”
남은 마기를 끌어모아 반격한다.
이깟 촉수.
얼마든지 도륙할 수 있다.
날카롭게 벼려진 마기가 촉수에게 날아갔다.
저 징그러운 괴물은 순식간에 육편이 돼 지상에 떨어지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보이는 결과는 전혀 달랐다.
사각사각사각!
헤미스의 촉수가 로타크의 마법을 갉아먹었다.
촉수 끝에 달린 입술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돌출된 이빨이 게걸스럽게 마법을 먹어 치운다.
수백 개의 촉수가 이빨을 들이미는 모습은 역겨움과 동시에 공포를 강요했다.
이내 로타크에게 도달한 촉수가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퍼억, 퍽! 콰득! 파악!
마법이 아니다.
촉수는 순수한 물리력으로만 로타크를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력은 그 어떠한 마법보다도 강력했다.
로타크는 허공에 뜬 채로 수백 개의 촉수에 맞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촤악! 콰직! 콰드득!
촉수는 중간중간 이빨을 들이밀어 로타크를 뜯어먹었다.
로타크는 순식간에 해부되고, 흩뿌려진 피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촤르르륵!
잠시 후, 촉수가 다시 헤미스의 입술 안으로 돌아오고.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발걸음을 뗐다.
그녀의 앞에는 로타크가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헐떡이고 있었다.
“커헉, 커허헉…!”
육체에 남은 부분이 얼마 없다.
팔다리는 흔적도 없었고, 몸통도 너덜너덜해 내부의 장기가 보였다.
원래라면 진작에 죽을 부상이나 로타크의 마기가 끈질기게 그의 생명을 붙잡고 있었다.
“헤, 헤미스…”
로타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 나, 나는… 나는…”
죽어가는 눈동자를 마주한다.
헤미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죽음을 지켜볼 뿐이다.
“나는 너처럼… 되고…”
그 순간.
헤미스의 머릿속에 여러 기억이 스쳐갔다.
일족에서 돌연변이로 처형될 처지에 놓인 로타크.
군단장이 된 로타크.
인간에게 포위된 로타크.
위기 때마다 헤미스는 그를 구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로타크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저도 언젠간 헤미스 님처럼 강인한 마족이 되겠습니다.”“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마족이 될 겁니다. 찍!”“언젠가 헤미스 님처럼 될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헤미스는 알고 있었다.
로타크가 자신을 동경한다는 것을.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로타크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하는 눈빛에도 적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동경이 질투와 열등감으로 변한다.
헤미스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로타크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죽어가는 로타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너처럼 되고 싶었다…”“알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헤미스가 히죽 웃는다.
“너 따위가 나처럼 되겠다니. 꿈이 야무지구나.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지 않겠니? 오호호호!”“네년이 끝까지…!”
로타크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올라왔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콰득!
헤미스가 그대로 로타크를 집어삼켰다.
그녀가 손을 들어 입술에 묻은 피를 훔쳤다.
“덕분에 즐거웠어.”
마왕군 제2군단장이자 스케빈 일족의 수장 로타크.
그는 제법 쓸만한 장난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