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ist Running Through Time RAW novel - Chapter (32)
EP 2 – 기타
백승원 사장이 사람은 좀 까칠하고 신경과민이고 의심병이 있고 워커홀릭이라 가정에 소홀하긴 해도 정상적인 성인 남성의 범주에 든다.
그는 자신이 큰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재빨리 사과했다. 행여 어린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줬을까 염려하면서.
“미안하구나. 아저씨가 잘 모르고 한 말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아니다. 미안하다. 말을 좀 잘못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사과를 드려야지요. 저 때문에 많이 놀라셨을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문인섭은 그 사과를 정중하게 받아들였다.
‘호오···?’
백승원은 업무적으로나 심미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예민한 사람이었다.
평소 백학엔터 직원들은 사장님이 자기 발언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불편해할 때마다 사장님 입을 꼬매버리고 싶다는 일상적 충동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그게 장점이 됐다.
그의 예민한 감각은 문인섭이 말하는 태도만 보아도 소년에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지성이 있음을 짐작했다.
이 순간, 임양욱의 호언장담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 백승원 사장이 방긋 미소지으며 문인섭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하하! 이거이거. 그래. 확실히 보통 애가 아니구나? 아까도 즉석에서 말을 얼마나 잘 지어내던지···”
그래도 아직 뒤끝이 살짝 남은 백승원 사장은 방금 전 일을 들먹였다.
백 사장은 당연히 경찰들에게 내가 납치범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문인섭은 백승원이 삼촌 대행 서비스를 담당하는 조폭이라고 몰아갔던 것이다.
그 논리가 얼마나 정교했는지는 경찰이 초등학교 6학년의 말을 믿고 백승원을 유치장에 처넣은 사실이 증명한다.
그런데 소년이 또 ‘흠칫’ 한다.
백승원은 혼란에 빠져 이번에는 자신이 대체 어떤 말실수를 저질렀는지 고민했다.
임양욱도 문인섭이 왜 이러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그게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니?”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이야기는 초등학생 3명의 패악질에서 시작되었다.
* * *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러니까··· 진짜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단 거지?”
불우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던 임양욱은 큰 충격을 받았고, 어느새 주변에 몰려들어 함께 이야기를 듣던 경찰들도 경악했다.
그리고 백승원 사장은 울었다.
“사, 사장님···!”
“아- 잠깐만. 에이씨. 눈에 뭐가 들어가서···”
원래 예민한 남성이 갱년기가 되면 눈물이 많아지는 것도 있지만, 그를 가장 슬프게 만든 것은 문인 작가라는 소년의 태도였다.
이 어린 소년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어떤 슬픔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인생 다 산 끝에 체념해버린 사람처럼···(맞다).
그러나 그의 감성과는 달리, 그의 이성은 날카로웠다.
연예기획사 사장으로서의 직감이 말해주었다.
이건 팔린다- 고.
물론 이 소년이 천재 작가인 점도 중요하지만, 가장 상품성 있는 요소는 ‘어리다’는 거였다.
사람들은 어린 천재에게 열광한다. 이유는 그가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기 때문이다.
그게 트렌드였다.
어린애가 춤을 추고, 어린애가 노래를 부르고, 어린애가 아장아장 걷기만 해도 팔린다.
인생이 좆같으면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으로 힐링하듯(백승원 사장 본인 얘기다), 세상이 좆같으니까 아이가 나오는 영상제작물이 시청률이 높아지는 거다.
판단을 마친 백승원 사장이 말했다.
“이봐, 임 팀장. 아니지. 임 부장.”
“예?”
“방송 찍는다고 그랬지?”
백승원의 지갑이 열렸다.
“얼마 필요해?”
* * *
아무리 문단에서 논란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체 여론에 비하면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 세상에는 그보다 관심이 가는 일이 많다.
해외의 대형사고, 정치인 스캔들, 유명 연예인들의 결혼과 이혼, K-드라마의 세계적인 흥행, 중범죄자 체포, 물가 인상, 등등···
그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세상이라는 바다에 파도를 일으키고 있으니, 한국 문학계는 그에 비하면 자그마한 찻잔에 불과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
찻잔 안에서는 태풍이 불고 있었다.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봤다. 문인 작가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잘 봤으면 됐지 다른 소설은 왜 깎아내림?
└ 문학상 돈주고 산 작가 팬 수준 ㅉㅉ
└ 회사가 샀지 작가가 샀겠어요? 미성년자가 뭘 안다고
└ 미성년자라는 걸 진짜 믿는 사람이 있다고??
[속보, 평론가 오민상 문인 작가 공개 저격]└ 이거 읽어보니까 너무 억지인데?
└ 등단비 이슈 터뜨렸으니 아니꼽게 보이겠지. 걔네가 안 까발렸으면 천년만년 문학상 장사 했을 테니까.
└ 등단비 그거 모르는 사람이 있긴 했음?
└ 책은 좋더라
[문인이라는 필명도 그렇고, 등단비 이슈 터뜨린 것도 그렇고, 한 명이 아니라고 봄. 16명의 작가들이 작정하고 작품을 풀면서 한국 문단 작심비판하는 것 같아.]└ 그렇다기엔 문체랑 분위기가 너무 비슷한 거 같아요
└ 오… 이거 일리 있다
[올해 신춘문예는 진짜 난리네]└ 16권 다 샀다… 너무 좋아…
└ 책은 좋아. 책은 좋은데. 이렇게 물의를 일으킨 작가의 책을 굳이 사야 하나 싶음.
└ 물의는 무슨. 문학상 열 여섯 개에 등단비를 지불하고서 상식적으로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겠음? 당연히 예상했겠지. 이건 행위예술임.
└ 별 게 다 예술이다
인터넷에서만 이슈가 넘쳐 흐르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도 문인 작가는 업계 종사자들의 모든 주목을 끌어모았다.
문인의 책을 인쇄한 인쇄소는 쏟아지는 질문에 몸살을 앓았고, 문인에게 상을 준 마이너 문예지들은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댔다.
수많은 작가와 평론가들이 문인의 소설을 평론했으며, 동시에 문학상 16개 구매와 등단비 문화를 화두에 올리며 뜨겁게 논쟁했다.
출판사업본부장과 출판기획부장이 총력전에 나선 백학문고는 말할 것도 없고, 기타 대형 출판사들 또한 문단에 대지진을 일으킨 이번 사건에 초유의 관심을 기울였다.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물론 이것이다.
‘미성년자’.
이 업계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 당사자가 미성년자라는 사실.
16개의 소설을 써내린 작가가 미성년자라는 사실.
그 사실에 충격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충격에 각자의 방식대로 반응했다. 숭배하거나, 의심하거나, 부정하거나, 열광하거나, 찬탄하거나, 평론하거나, 무시하거나···
심지어 문인 작가와 그 출판사 측에서 아무런 후속 대응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슈의 흐름은 말 그대로 혼란스러운 태풍과 같았다.
오직 백학문고만이 강렬한 공세를 이어가며, 긍정적인 반응보다 부정적인 반응을 더 많이 이끌어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수상쩍은 의견이 맴돌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조금씩 다른 형태로 게시된 그 음모론은 다음과 같았다.
– 백학그룹에서 스타 작가를 만들고자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그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일이 이번 사건의 정체다.
– 온갖 노이즈마케팅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서, 얼굴 없는 미성년자 작가를 내세워 인기를 끌어모아 책을 파는 게 목적이다.
– 최근 버츄얼 유튜버가 유행하고, 일본에서도 얼굴 없는 가수가 대히트를 치는 데에서 모티브를 얻은 발상으로, 요즘 대기업이 흔히 시도하는 4차 산업혁명인지 메타버스 증강현실인지 뭔지 하는 짓거리다. 조만간 분명 버튜버도 나올 거다.
– 문제는 이거다. 미성년자 작가는 실존하지 않는다. 미성년자 컨셉의 작가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음모론은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뚫어주며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을 주입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남들과는 달리 오직 자신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 생각을 사방에 퍼뜨린다.
동시에 이 음모론은 마치 내부자가 바깥에 퍼뜨린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수상할 정도로 근거가 상세하고, 사용하는 어휘가 그런 느낌이었다.
주의 깊게 생각해본다면, 이 음모론 자체가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백학문고 출판사업본부 김상국 본부장 같은 사람들은 이 이슈에 다른 조직적인 세력이 끼어들었음을 눈치 챘다.
그건 바로,
백학엔터 출판매니지먼트TF팀.
아니. 백학엔터 출판매니지먼트부였다.
“어때요? 간단하죠?”
임양욱 부장은 백학엔터 홍보실에서 파견된 마케팅 담당자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자기와 손발이 맞는 팀원들을 데리고서 가볍게 인터넷 여론을 조작했다.
임양욱은 그 실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앞으로 연예계 이슈는 좀 걸러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프레임을 짜면 이슈가 압축되잖아요. 작가가 미성년자인 게 사실이냐? 아니냐?”
“그럼 우리가 무조건 이기는군요···”
“이렇게 음지에 떡밥 좀 뿌려놓고서 며칠 있다가 인터넷 신문사에 보도자료 돌리면 공식적인 양지의 이슈가 돼요. 그때 회사 차원에서 움직이면 되고요.”
마케팅 담당자는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질문했다.
“그런데 임양욱 부장님? 정말 작가가 미성년자인게 사실이에요?”
“그건 비밀입니다.”
“진짠가보네. 대박.”
“비밀이라니까요.”
“알았어요~ 비밀~”
마케팅 담당자는 임양욱을 거의 놀려먹듯이 하고서는 탕비실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임양욱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니지. 말이 부장이지 사실상 허수아비였다.
“어휴…”
출판매니지먼트TF팀은 출판매니지먼트부로 개편되며 정식으로 백학엔터에 흡수되었다. 팀장이었던 임양욱도 순조롭게 부장을 달았다.
다만, 행정상 사내 벤처 기업으로 등록되어 있던 임양욱의 ‘벤처기업’도 해체되어 백학엔터에 흡수되었다.
다행히 백승원 사장이 출판 수익금을 인센티브와 스톡옵션으로 바꿔서 푸짐하게 얹어주기로 했지만…
임양욱은 그가 가지 않은 미래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했다.
만약 그대로 문 작가를 데리고 백학엔터에서 독립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이 순간 팔리고 있는 수많은 책들이 전부 자신의 수익으로 연결되었겠지.
어디 그뿐인가. 앞으로 문인섭이라는 천재 작가가 낼 책들을 전부 독점하며 출판한다면, 정말 비교도 안 되는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으리라.
다만, 백학엔터와 백학문고라는 두 거인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을 거다. 그 와중에 문인섭을 살살 꼬드겨서 자기 품에서 못 벗어나게 만들어야 했고.
임양욱은 그 부분에서 자신의 거취를 결정했다.
문인 작가에게 백학그룹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한 편의를 제공할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어린 애를 속여서 돈을 벌기는 싫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자기 말에 속을 것 같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임양욱의 마음 속 아쉬움일 뿐.
그가 해야 할 일은 현실에 있었다.
“부장님. 스태프들 준비 다 끝났습니다. 컨텐츠사업본부랑 이야기도 다 됐고요.”
“부장님? 새빛늘봄보육원 측이랑 촬영 협의하는 중인데 그쪽 원장이 한 번 뵙고 싶다는데요?”
“부장님. 백학문화방송 채널 섭외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백학문고 측에서 자꾸 항의를 하는 것 같은데···”
임양욱이 문인섭을 데리고 독립하지 않은 대가로 얻은 것들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백학엔터는 자체 프로덕션까지 보유한 다재다능한 기업이었고, 미디어 사업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회사였다.
임양욱은 전성기 당시의 출판매니지먼트TF팀의 역량을 정확히 안다. 백학엔터만 있으면 특집 방송 따위는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면, 문인 작가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
그가 본 아름다움을, 세상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다.
“휴우…”
임양욱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폭풍전야.
그가 일으킨 작은 날갯짓이 과연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온 세상에 휘몰아칠 폭풍 같은 천재의 비상으로 이어질지는,
오직 자신의 손에 달려 있었다.
내일 있을 촬영에 모든 것을 건다.
오직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 * *
“보육원 생활이요? 썩 자유롭진 않아요. 물건 같은 거 자주 뺏어가고 그러죠. 특히 고등학생들 불시검사 보면 콘돔이란 콘돔은 쥐 잡듯이 뺏어가면서, 막상 임신해서 미혼모 되면 갈보 취급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해요. 근데 어른들이 그렇다니까 그러려니 해야죠, 뭐…”
임양욱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