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ist Running Through Time RAW novel - Chapter (81)
EP 3 – 마검님! 제발 절 조종해주세요!
처음에는 다들 장난식이었다.
“이거 인터넷에 올려보는 건 어때?”
“동아리 발표회 때 공개하는 거 아니었어요?”
“원래 그럴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 반응도 보고 싶어져서.”
“그러죠, 뭐. 이걸로 돈 벌 것도 아니고.”
필명도 반쯤 장난처럼 정했다.
“필명 뭘로 할래? 얘들아?”
“그냥 이름 다 적죠?”
“필명 어그로 끌어야 하니까 문인이 가장 처음 와야 해요.”
“그래. 나머진 가위바위보로 정해.”
“가위, 바위, 보!”
결국 ‘문인김별구유나민효찬’이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필명 글자수 제한이 8글자라 ‘문인김별구유나민’이 되어버린 사소한 미스가 있긴 했다.
민효찬이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들이닥쳤다.
“뭐야, 왜 1등이야.”
“그만큼 잘 썼다는 거죠-”
랭킹 1등은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 완벽한 1등도 아니었다. 업로드 시간대에 따라 1등과 4등을 왔다갔다 하곤 했으니까.
그래도 성공은 성공이라 다들 축배(논알콜, 매점산)를 들며 성공을 자축했다.
“우리가 잘 쓰긴 잘 썻나 보네요.”
“야호!”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웹소설의 수익화는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작가 개인이 플랫폼과 계약하긴 힘들다.
작가와 플랫폼 사이에는 매니지먼트가 있다.
그러니 매니지먼트사는 최대한의 수익 창출을 위해, 최대한 많은 작가와 계약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들이 작가를 구하는 방법은 사이트 ‘베스트 랭킹’이다. 순위권에 들어온 소설들을 보고 계약 제안을 보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랭킹 1등을 한 ‘무소속’ 소설에 얼마나 많은 계약 제안이 들어왔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 안녕하세요, KB매니지먼트의 양찬영 PD입니다···
– SHEH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귀 작품과···
– 조은글 매니지먼트 장우형 PD입니다, 마검님 정말 재밌게 보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KB 매니지먼트 양찬영입니다. 실례인 줄 알지만 답장이 없어 다시 연락드립니다···
수십 개의 회사에서 메일이 쏟아졌다.
하나하나 부담스러운 찬사와 간절함을 담은 제안들이었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한 아이들은 가장 가까운 출판업계 종사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게 임양욱이었다.
“뭐?! 웹소설?”
전화기 너머에서 문인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예··· 4명이서 쓴 웹소설이 사이트 1위를 했는데, 지금 계약인지 뭔지 때문에 메일함이 터지고 있거든요···?
“아아···”
– 지금 미성년자 4명이 발 동동 구르면서 고민해도 별 도리가 없어서, 좀 조언을 구하고 싶네요. 그리고 제가 회사 측이랑 말도 안 하고 딴 데랑 계약하면 안 되잖아요.
바로 그때였다.
꽤 러프한 아이디어가 임양욱의 매끈한 머리에 내리꽂혔다.
백학문고와의 전면전으로 고민하고 있던 임양욱은 사악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매니지먼트란 거··· 결국 전자책 출판사잖아?”
– 예.
“내가 해도 될 것 같은데?”
그 이후의 일은 뻔하다.
임가 놈이 선량한 문인을 꼬드겨 이 사달을 냈음을 확인한 구학준은 친히 항의하러 방문했고, 임양욱은 도깨비 같은 기세를 뿜어내는 구학준 앞에서 이렇게 읍소했다.
* * *
– 억울합니다!
– 놈!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악귀나찰 같은 기세를 풍기는 대문호 구학준 앞에서, 임양욱이 최선을 다해 항변한 바는 대략 다음과 같다.
– 백학문고의 패악질이 도를 넘어, 호구지책을 마련하고자 그리하였사온대, 어찌 때린 놈은 가만히 두고 맞은 놈을 공박한단 말입니까!
임가가 말한 바는 다음과 같다.
백학문고가 해묵은 원한으로 위세를 부려 책을 못 내게 만들었기에, 인터넷으로나마 글을 쓴 것이 어찌 죄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문단의 원로들은 크게 대노했다.
백학문고가 위세를 부려 책을 못 내게 만든 데서 분노한 건 아니다. 이 바닥에서 오래 가려면 백학문고에 밉보이면 안 된다. 그걸 모르는 놈들은 일찍 죽었다.
그들이 분노한 건 조금 다른 포인트였다.
– 어, 어찌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온단 말이냐!
– 결국 문인도 마魔에 물들었는가···
– 도저히 좌시할 수 없소! 우리가 돈이 없지 힘이 없는가!
웹소설!
듣자마자 가슴이 참 갑갑해지는 말이다.
문단이 쇠퇴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뉴미디어의 범람, OTT 시장의 성장, 드라마와 영화의 한류 흥행에 따른 문학 소외, 등등.
하지만 가장 증오스러운 놈들은 따로 있다.
바로 웹소설이다.
원래 옆집 깡패보다, 우리집 머슴이었던 주제에 나보다 잘 나가는 놈들이 더 미운 법. 심지어 문단이나 웹소설계나 결국 같은 글쟁이로 분류되는 직종이었다.
문인 작가의 신작이 ‘웹소설’이라는 사실이 인터넷에 알려진 순간, 입에 거품을 물고 칼럼을 갈기기 시작한 원로는 한둘이 아니었다.
– 한국 문학의 미래에 대해 論한다. 본디 web-소설은 한국 문단이 가꾼 비옥한 토양을 갉아먹으며 성장한 아류 문학에 불과했는데···
ps. 해당 의견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일 뿐, 본 문예지의 취지와 다르단 점을 알려드립니다.
문예지가 안색이 허옇게 질려서 손절할 정도의 발언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가운데, 문단과 반대로 축제 분위기인 곳이 있었다.
바로 웹소설 업계다.
– 크하하하하하하!
웹소설 업계는 문단과 달리 하나로 뭉쳐 있지 않다. 문단과는 반대로, 시장 규모는 거대해도 정치적인 권력이 거의 없는 탓이다.
웹소설 업계의 문화권력은 독자와 일차적으로 접촉하는 대기업 플랫폼에게 존재하며, 생산자 쪽에 가까운 작가와 매니지먼트는 상대적으로 무력하다.
하지만 모든 작가들, 심지어 일부 독자들까지 공유하는 은근한 기류는 존재한다.
그것은 안티- 순수문학 정신이다.
– 아아.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었다···
웹소설 작가와 독자들은 오랜 탄압에 시달렸다.
돈은 없지만 권력이 있는 순수문학계의 탄압이다.
웹소설 작가들은 공식석상에서도 아류 작가 취급을 당했고, 독자들은 문학적 소양 없이 자극만 원하는 팝콘브레인으로 격하되었다.
– 하지만 이것으로 증명되었다! 한국 순수문학에 미래는 없다! 결국 모두가 웹소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모두가 하나 되어 순문학계를 비웃었다.
순문학계 제일 기대주의 웹소설 전향.
그보다 더 큰 굴욕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터넷 속 세계의 농담거리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농담이 아니었다.
* * *
소설가 박창운.
전직 대학교수, 문화부장관.
(장관직은 욕설 파문으로 1주일만에 짤렸다)
현직 백학예중 문창과 학과장이다.
그리고 ‘대중문화예술연구동아리’ 담당교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애지중지하던 문인 작가과 구유나의 ‘웹소설 타락’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다섯 가지 단계를 거쳐야 했다.
1단계. 부정.
“뭐? 그게 머선 소리고? 말도 안 대는 소리 하지 마라. 가가 왜 웹소설을 쓰나? 아이다. 우리 문인이가 어떤 작간데? 울 와이프가 금마 소설 보고 훌쩍였다 안 캤나? 갱년기라 남성호르몬 나오는지 우왁스럽기가 그지 없는데, 막, 그놈 소설 보더니 소녀처럼 울드라. 허허.”
2단계. 분노.
“이게 머선 일이고! 야 이 문디 자슥들아! 내가 이러라고 동아리 해라 그런 줄 아나! 이···! 이이익···! 아이고, 아이고! 내가 우리 핵준이를 어떻게 보냐! 당장 치워뿌라! 이 동아리는 폐부다! 폐부!”
3단계. 협상.
“아이고- 우리 문인 작가님. 내가 저번엔 말이 심했지? 맘 상했으면 이거 먹고 기분 풀어라. 쌤이 아이스크림 사 왔다. 다들 와서 하나씩 가져가라. 그··· 아이들아. 웹소설이 돈 잘 되는 건 맞다. 내 인정하께. 근데··· 거기엔 진짜 문학성이란 기 없다 아이가. 내가 몰라서 하는 말이 아이라, 진지하면 진지충이고, 문장이 길면 장문충이고, 막 내 동년배들도 웹소설 도전했다가 막 욕하면서 때리치고 그랬다. 용돈이 부족하면 쌤이 줄게. 얼마면 되니? 내 돈 많다. 얼마면 되나? 응? 아니, 진짜로, 사양하지 마라. 진짜로 용돈 줄게. 얼마면 되나?”
4단계. 우울.
“아··· 그렇구나···. 내는 그럼 사표 쓰고 영국이나 갈란다. 이 나라엔 인자 미래가 읎다, 응? 사표 쓰지 말라고? 왜? 내가 왜 이 나라에서 아들을 가리치야 하는데? 응? 문인이도 없는 세상에서 와 애들을 가리치야 하는데?”
그리고 5단계는 수용이다.
그것이 DABDA로 알려진 ‘슬픔을 받아들이는 5단계’다.
하지만 박창운은 4단계에서 다시 2단계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또 빡치네?”
그래서 아직도 수용을 못하고 있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박창운이 백학문고 본부장실 문짝을 박차고 처들어간 이유였다.
“상국아. 돈 없나?”
“예?”
갑작스런 언어폭력이 출판사업본부장 김상국을 덮쳤다.
“막··· 돈이 없어서 코 묻은 애들 돈 먹으려고 이지랄하는 기가?”
“허허··· 참 당황스럽습니다, 장관님.”
“내가 돈 줄게. 얼마면 되나? 얼마면 다시 문인 작가 책을 찍어줄래?”
김상국 본부장은 경비를 불러 박창운을 회사에서 쫓아낼 수 없었다.
그가 전직 장관이라는 점은 주된 이유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김상국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사람이라서였다.
예술, 권력, 인맥.
그런 것들이 문단을 좌우한다.
돈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이 기형적인 형태의 예술계는 수십 년간 똘똘 뭉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보다 인맥과 친분이 우선시되는 형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행동에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김상국은 ‘계열사 사이의 수익구조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백학엔터에 싸움을 걸었고, 그건 아주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 업보가 거꾸로 돌아왔다.
박창운은 ‘후배 소설가를 지저분한 업계 권력다툼으로부터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김상국을 들이받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김상국이 경비를 불러 박창운을 내쫓는 순간 그는 성기가 된다. 좆이 되는 것이다. 모든 후배들이 김상국을 ‘좆 같은 새끼’라고 부를 테니 말이다.
그래서 김상국은 겉으로만 웃으며 차분히 대답했다.
“하하···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치? 오해지?”
“···예. 제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상국은 결국 ‘이게 다 무지한 아랫것들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 같다며 한 발 물러났다.
임양욱 vs 백학문고 2차전.
박창운의 승리!
* * *
하지만 백학문고 출판사업본부장 vs 도서유통본부장의 대결은 출판사업본부장의 승리로 끝났다.
(김상국이 좆같아서) 임양욱과 내통하며 문인 작가의 책이 백학문고 서점에 계속 걸려 있게 만들어주던 도서유통본부장은 갑작스런 징계를 받았다.
백학문고와 백학엔터의 싸움에서 내부총질을 했다는 것이 실질적 이유였다.
그리고 그건 사장 선에서 떨어진 징계였다. 빨리 사표 쓰고 꺼지라는 뜻이다.
“김상국, 이 빌어먹을 자식···”
도서유통본부장은 뒤늦게 허탈한 표정으로 한탄했다.
“설마, 처음부터 날 노렸던 건가···”
백학문고의 유통라인을 담당하는 도서유통본부장은 출판사업본부장 김상국이 임양욱과의 싸움에서 절절 매는 모습을 보며 ‘강 건너 불구경’을 했다.
양성준 건도 그렇고, 임양욱이라는 미친개한테 물렸으니, 평소 고까운 놈이 똥을 밟았다는 생각만 하며 비웃기만 했다.
그것이 그의 실책이었다.
백학문고와 백학엔터의 싸움에서 뒷짐만 지고 있었으니, 김상국 라인으로 하여금 그를 공격할 명분을 준 것이다.
이로써 백학문고 사장은 본사 사장급 임원으로 영전한 다음 불충한 부하를 상대할 일이 없어졌고,
출판사업본부장 김상국은 백학문고 사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라이벌을 날려버렸다.
즉, 김상국이 차기 백학문고 사장으로 낙점된 것이다.
백학문고 모처의 한식당 밀실.
곧 본사로 영전할 백학문고 사장이 은근하게 미소지었다.
“이번에 임양욱이까지 원 큐에 묶어서 날려버리겠다더니, 일이 잘 안 됐나봐?”
“하하···”
김상국은 백학문고 사장 앞에서 난처하게 웃었다.
사장은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 박창운 선생이 회사까지 처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 그래도 내가 회사 떠나기 직전까지 힘 실어 줬으니까, 잘 해 보라구. 그 좌천된 놈한테 언제까지 쩔쩔 맬 작정이야?”
“송구합니다, 사장님.”
“이제 곧 자네도 사장이고 나도 사장인데, 같은 사장단끼리 뭘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그러나?”
“하하, 농담도 참 너무하십니다···”
계열사 사장과 본사 사장의 확실한 위계질서.
그것을 확실하게 김상국에게 각인시킨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서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네.”
“예, 사장님.”
“미안한데, 자네 취임식엔 못 갈 것 같아. 그래도 내 맘 알지?”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양욱은 김상국 본부장이 백학문고 사장에 취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김상국은 당연하게도, 얼마 전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서 보복을 꾀했다.
그렇게 3차전이 시작되려던 그때.
백학엔터 출판매니지먼트부의 백설에게도 한 가지 연락이 날아들었다.
* * *
퇴근길에 리무진이 찾아와 양복쟁이들이 자신을 찾는다면 기겁하지 않을 직장인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설은 예외였다. 담이 커서 그런 건 아니고, 경험이 몇 번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모시러 왔습니다.”
백설을 ‘모시러’ 왔다는 양복쟁이들은 정중하게, 그리고 강제로 백설을 리무진에 실었다.
그리고 백설이 어디로 가냐고 묻기도 전에 차를 출발시켰고, 마찬가지로 백설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상황을 통보했다.
“회장님께서 임종을 앞두고 계십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