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ist Running Through Time RAW novel - Chapter (82)
EP 3 – 마검님! 제발 절 조종해주세요!
세계수 이그드라실.
모든 엘프의 고향.
한때는 이 거대한 나무에서 수십 만의 엘프가 문명을 이루었다. 그 찬란한 고대 문명은 ‘강대국’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이 세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국가’였다.
‘왕’이라는 단어는 엘프의 태양왕을 일컫는 말이었고, ‘왕국’이란 단어는 당연히 이 세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국가- 엘프 왕국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났다.
시간의 시련 앞에, 고대의 문명은 산산조각났다.
마왕의 군세가 대륙을 휩쓸었고, 엘프 문명의 잿더미에서 노예에 불과했던 인간, 드워프, 노움, 수인, 리자드맨들이 각자의 문명을 건설했으며, 마법사왕 린하르트가 대륙을 통일하고, 그가 세운 제국마저도 검은 역병으로 무너져내렸다.
역병으로 무너진 세계를 마법사왕의 유산- 마탑들이 힘을 합쳐 구원했으며, 재건된 세계에서 모든 종족이 제국 의회에 모여 황제를 선출했고, 그렇게 생겨난 황조가 온갖 역사의 파란으로 교체된 것만 해도 어느덧 세 번째.
이렇듯 역사는 굽이치는 급류처럼 가파르게 흘러갔다.
그러나 세계수 이그드라실.
모든 엘프의 고향.
한때 수십 만의 엘프를 품고 있었던 거대한 생명의 나무는,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사막 한 가운데.
비쩍 마른 고목이 되어 말이다.
이제 세계수에서는 열매 한 송이도 나지 않는다. 햇빛을 가려줄 푸르른 나뭇잎도 없다. 이제 이 나무는 한 문명은커녕, 한 사람조차 먹여 살릴 수 없을 정도로 매말라버린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 나무를 원한다.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는 엘프 왕국도, 고대부터 이어진 성모 교회도, 달의 여신을 믿는 다크엘프 유목민 제국도, 가장 신실한 신도를 자처하는 제국의 황제도.
모두가 이 매마른 나무가 있는 땅을 원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신께서 바라신다!”
-십자군.
기사들의 외침과 함께 지평선 너머에서 수만 명의 대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성모의 황금 십자가를 든 흰 빛의 군세다.
그 황금 십자가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다크엘프의 피가 사막의 모래를 적셨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매마른 세계수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살아가던 다크엘프 유목민들이 악마를 마주친 것처럼 절규하며 아비규환에 빠졌다.
“십자군이다! 십자군이다!”
“피부 허연 악귀들이 온다!”
“여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엄마! 엄마!”
“지하에 숨어 있으렴, 절대 나오지 말고! 엄마는 괜찮으니까···”
“성지를 지켜야 한다! 모든 부족의 전사들을 모아라!”
한편, 세계수의 뿌리 아래, 다크엘프 부족의 원로들이 모인 회의장도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수만 명의 군세는 아무리 지혜로운 현자라도 이성을 잃게 하기 충분한 숫자였다.
“저게··· 고작 선발대란 말인가?”
“서방의 첩자들이 내게 일컫기를, 십자군의 본대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 하오. 푸른 마탑의 대마법사가 바다를 잠재우고 있으니, 태풍 따위의 요행을 바라기도 글렀소이다.”
“이런 제기랄! 자랑거리라곤 27대조 선조가 엘프 왕족이라는 것 말곤 하나도 없는 잡종 녀석이 황제가 되니까 이 사달이 난 것 아니요! 원래 전쟁은 정통성 없는 놈들이 정통성 세우려고 하는 거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소! 그 잡종 놈을 황선 전에 암살했어야 한다고!”
“이제 와서 한탄해봤자 늦었네. 우린 다 죽은 목숨인 것을···”
“아직 방법이 있어요. 일단 개종합시다. 나중에 회개하고.”
“닥쳐라! 자고로 신앙을 잃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법이며···!”
혼란에 빠진 다크엘프 지도부는 단합하지 못했다.
당연히 방어 태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십자군 지휘부는 망원경으로 보인 아비규환을 통해 그 사실을 알아챘다.
“도망치는 놈이 반이고, 싸우려 뭉치는 놈이 반이군···”
애꾸눈 성녀 로잘린, 십자군 선봉대의 총사령관이 망원경을 내려놓고 철퇴를 허공에 휘두르며 부관에게 명령했다.
“근위경기병대를 몰아 세계수 인근을 돌아라! 양떼를 몰듯이 저 깜둥이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도록 해.”
“알겠습니다, 예하.”
“성기사단장! 세속 영주들의 기사들을 규합해 돌격하시오! 놈들이 진영을 갖추기 전에 휘몰아쳐야 합니다! 마탑주! 부디 기사들에게 불의 축복을!”
“알겠소.”
“신호가 오기 전에 먼저 돌격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겠- 제기랄. 저 미친 망아지들이 또 저러는군.”
대사막을 돌파하는 수 개월의 강행군 끝에 드디어 성지가 눈 앞에 보인다.
종교적 광신에 취했든, 다크엘프의 모든 부가 모인 그랜드 바자르에서 행할 약탈에 취했든, 기사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께서 바라신다!”
“성모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쳐죽여라!”
십자군 사령부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임에도 수십 명의 기사들이 돌격했다. 그걸 본 다른 기사들도 질세라 말을 몰아 달렸다. 기사와 방랑기사, 그리고 그들의 종자까지, 도합 수천 명의 기병이 일제히 돌격했다.
사막에선 말이 살지 못한다. 낙타가 아주 귀하다. 그리고 그런 낙타기병을 백 명만 거느려도 일대의 대족장이라 불리기 충분했다.
헌데 그 수십 배에 달하는 서방의 중기병이 일제히 돌격하는 모습은, 그걸 목도한 모든 다크엘프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정신을 놓고 주저앉아 실금하는 자도 있었으며,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다 넘어져 다른 이들에게 밟혀 죽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다크엘프 정찰병은 오랜 경험을 통해, 이미 도망치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정도 거리에서 적 기병이 돌격을 시작했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인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낙타에서 내려와 사막의 모래 위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여신이여···”
전설에 따르면, 사막의 여신은 달빛의 여신이다.
가혹한 태양이 온 세상을 불태우지 않게 어둠을 휘몰아 땅을 식히고, 더 이상 미물들이 서로를 죽이지 않게끔 고요 속에서 달빛으로 노래하며 만물을 잠재운다.
그런 여신이 분노할 때는 불의가 의를 집어삼킬 때, 불순한 것이 정결한 것을 범할 때, 정의가 빛바래고, 위선이 선을 배격하며, 온 세상의 미물이 고통 받을 때.
그때에 비로소 달이 붉게 물들고, 여신은 자신을 대행해 악을 징치할 대행자를 지상에 보낸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착하게 자라야 한다- 그런 옛날 이야기를 모든 다크엘프가 그들의 어머니에게 들으며 자란다.
주름진 피부와 긴 수염을 가진 다크엘프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그의 어머니와 그녀가 해준 이야기를 의지하며 무릎 꿇었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무릎 꿇은 다크엘프 노인의 앞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 십자군 기사가 창을 들고 돌격했다.
“성모여! 우리를 지켜보소서!”
“신께서 바라신다!”
“이교도 불신자를 전부 쓸어버려라!”
여신은 결국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다크엘프 노인이 기도문을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전히 여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십자군 기병대의 돌격이 노인을 짓밟아 산산조각내려던, 바로 그때였다.
한 검객이 노인과 기사 사이에 뛰어들었다.
촤악 – !
붉은 검기가 사막을 가로질렀다. 그 휘어진 검격은 언뜻 붉은 달을 닮았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노인과 기병대 사이를 베어갈랐으며, 검격의 흔적으로 남은 사특한 마력은 그 자체로 물리력을 띄고서 벽을 이루었다.
기사들은 그 벽을 향해 돌격하는 셈이 되었다.
콰직 – !
십자군의 돌격이 그 벽에 부딪히며 으스러졌다. 말과 사람과 갑옷이 한 곳에 뒤섞였다.
잔혹한 풍경이었지만, 그 역시 전장의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극히 일부일 뿐.
금세 군세를 수습한 십자군 선봉대가 이 참사를 일으킨 범인에게 소리쳤다.
“웬 놈이냐!”
소개는 필요가 없었다. 낡은 로브를 걸친 검객이 로브를 벗어던진 순간, 그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한 기사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요제프···!”
“검귀다!”
“황제살해자가 왜 이런 곳에···!”
제국의 이름으론 요제프.
사막의 이름으론 유슈프.
아버지를 참살하고 백작위를 계승했으며, 이에 반발하는 주변 영지를 제압해 스스로 공작위에 오르고, 결국 황제의 군대까지 패퇴시켜 전대 황제를 고혈압으로 죽인 마검의 주인이 그곳에 있었다.
그 혼자서 군대 하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수 차례 증명된 바, 십자군은 진격을 멈췄고 애꾸눈 성녀 로잘린이 말을 이끌고 나와 협상에 나섰다.
“요제프! 제국의 선제후인 그대가 왜 저들의 편에 있습니까!”
요제프는 대답하기 전에, 마검과 한 차례 회의했다.
‘마검님···? 진짜 제가 대답해요?’
– 이제 너도 중요한 자리에서 회담을 해볼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나에게만 떠넘길 것이냐?
‘그치만···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거 잘 못하는데···’
– 자신감을 가져라! 황제도 죽여보지 않았느냐!
‘그건 황제 폐하가 혼자서 고혈압으로 쓰러진 거였잖아요. 그리고 그 나이에 죽으면 그냥 자연사라구요. 전 억울해요. 황제살해자라니···’
– 빨리 대답이나 해라! 저 성녀가 기다리지 않느냐!
요제프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성녀에게 대답했다.
“저기··· 엄마가 삼촌한테 편지 좀 전해달래서, 영지는 엄마한테 맡기고 사막에 왔는데요···”
“···?”
“그게··· 저희 엄마가 검은칼날 부족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다크엘프 부족에 저도 초청되서 잠깐 있었는데, 이교도지만 생각보다 나쁜 사람들도 아니구··· 제 사촌 여동생도 만났구···”
“···???”
“아, 아무튼 다크엘프들을 괴롭히는 건 나쁘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소리요, 요제프 공작···?”
요제프의 화려한 언변에 애꾸눈 성녀 로잘린이 넋이 나갔다.
보다 못한 마검이 이번에도 요제프의 몸을 탈취했다.
요제프의 흐리멍텅한 눈빛이 매섭게 바뀌었다.
“어이. 거기까지다.”
마검은 요제프의 몸을 빌려, 아까 검격으로 바닥에 그어버린 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선을 넘어오는 자··· 전부 베겠다.”
“···!”
“군대를 물려라. 이 전쟁을 끝내러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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