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반격 (1)어찌 된 일인지, 전날 밤 풍진호와 백수룡이 크게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청룡학관 전체에 퍼졌다.
“……내가 분명 풍진호는 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죄송합니다.”
혀를 찬 매극렴이 찻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 반대편에는 백수룡이 얌전히 무릎을 꿇은 채 꿍시렁거리고 있었다.
“분명 입단속을 했는데 대체 어떤 자식이 소문을…….”
“조용히 해라.”
“……넵.”
매극렴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넌 대체 누굴 닮아서 가는 곳마다 말썽을……. 둘 다였구나.”
딸과 사위의 얼굴을 동시에 떠올린 매극렴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청룡학관에서 삼십 년 넘게 일하면서 본 문제아들 가운데,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두 녀석이 야반도주해서 만든 결실이 바로 백수룡이었다.
“그 둘 사이에 나온 녀석이니 오죽하랴…….”
“할아버님, 전 정말 억울합니다.”
그 와중에도 백수룡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말했다.
“그자가 하는 짓을 보셨으면 할아버님께선 아예 두 동강을 내셨을 겁니다.”
그러고도 남는다 쪽에 백수룡은 전 재산도 걸 수 있었다.
물론 매극렴은 철없는 손자를 향해 혀를 찰 뿐이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한다더냐. 좀 참고 넘어갔으면 피할 수 있는 일을…….”
“아니 그 자식이……!”
“그 자식이 뭐?”
“후우. 아닙니다.”
백수룡은 입을 꾹 다물었다.
차마 매극렴이 죽은 딸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일을 풍진호가 언급했다는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내 친어머니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 몸을 낳아 준 어머니가 아닌가.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으면 그건 호구 등신이었다.
“……나는 네 일에 관여치 않을 것이다.”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 매극렴은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그러셔야 합니다.”
백수룡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깟 일에 할아버님까지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저 스스로 실력을 증명하겠습니다.”
“실력을 증명하려면 우선 최소 수강 인원부터 채워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백수룡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일단 최소 수강 인원 다섯 명을 모으지 못하면 이 강의는 시작도 못 하고 폐강이다.
“풍진호는 인맥이 두루두루 넓고 정치에 도가 튼 인간이다. 게다가 강의 실력도 좋아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다. 온갖 수작을 부려서 네 강의를 방해할 게다.”
그런 쓰레기가 인기 강사라니.
백수룡이 나직이 탄식했다.
“안타깝게도 인성과 실력이 비례하지는 않는군요.”
매극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백수룡을 째려봤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더냐?”
“아니…….”
어떤 절대고수 앞에서도 말대꾸는 잘했으면서, 왜 매극렴 앞에만 서면 이렇게 작아지는 걸까?
‘이게 다 죄 많은 아버지를 둔 탓이지.’
어쨌든, 당장 다음 주까지 최소 수강 인원을 모으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섯 명을 모으는 것도 생각보다 쉽진 않을 것이다. 생각해 둔 방도가 있느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매극렴은 더 자세히 듣고 싶었으나, 백수룡은 자신만만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끄응. 알았다.”
관여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더 묻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기에 매극렴은 가만히 차만 마셨다.
잠시 후, 차를 다 마신 백수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님.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매극렴은 백수룡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신발을 신는 외손주를 보며 그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음. 만약에 말이다. 큼, 정 내 도움이 필요하면……. 흠흠.”
제대로 뒷말을 잇지 못하며 매극렴이 헛기침을 하는데, 신발을 다 신은 백수룡이 돌아서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내일도 늦지 말거라.”
외손자의 뒷모습이 작아지는 것을 보며, 매극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고얀 놈. 끝까지 도와달라는 말은 안 하구나.”
* * *
매극렴의 거처에서 나온 백수룡은 곧장 청룡학관 교무처로 향했다.
“다섯 명? 아무것도 아니지.”
백수룡에겐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혈교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좋은 상황이거든.’
혈교의 교관 시절, 백수룡은 밑바닥에서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단전이 망가져서 갑자기 교관 쪽으로 진로를 튼 그를 환영해 준 교관은 아무도 없었다.
-뭐? 단전이 망가진 병신이 무공을 가르친다고?
-어이 신입. 교관이 만만해 보이나?
-너 교주님 친위대에 있을 땐 제법 기대주였다며? 여기선 그딴 거 기대하지 마라.
무시와 조롱은 일상이었고, 똑같은 실수를 해도 몇 배로 손가락질을 당했다. 가르치는 교육생들에게조차 은근히 무시를 당했다.
그래서 죽어라 노력했다.
읽을 수 있는 무공 서적은 모두 달달 외우고, 교육생 하나하나의 신체적 특징은 물론 성격까지 파악해 최적화된 교육법을 찾았다.
-미친놈…….
-……잠은 자고 일하는 거냐?
-혼자서 이 많은 걸 했다고?
조롱과 무시의 시선은 점점 경악과 감탄으로 바뀌었다.
그를 질투한 교관들이 음모를 꾸미고 누명을 씌우려 한 적도 있었지만, 언제나 한발 먼저 움직여서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고 비웃었다.
‘하루하루가 외줄 타듯 짜릿한 시절이었지.’
그가 가르친 교육생들이 훗날 무림에 나가 이름을 날리는 고수가 되었을 때쯤엔, 그는 이미 혈교 최고이자 최악의 교관이라 불리고 있었다.
훗날 네 명의 사부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서였다.
“그때랑 비교하면 이 정도쯤이야…….”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교무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일단 지금까지 몇 명이나 수강 신청을 했는지 확인해 볼까.’
교무처 직원에게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요? 잠시만요. 확인해 드릴게요. 현재 수강 인원이…… 한 명이네요.”
“……열한 명이요?”
“아니요. 한 명이요.”
직원은 오해하지 말라며 오른손 검지를 반듯하게 세워 보였다.
백수룡은 어쩐지 가운뎃손가락처럼 보이는 그녀의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한 명이라고요? 이틀 동안 수강 신청을 한 학생이 딱 한 명이라고요?”
“네. 직접 확인해 보세요.”
교무처 직원은 수강 신청 현황에 적힌 서류를 내밀어 보였다.
종이의 맨 위에 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반듯하게 적혀 있었다.
“천아…….”
백수룡은 작은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위지천은 이미 백룡장에서 매일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신청했다는 건, 청룡학관에서도 자신에게 더 배우고 싶다는 뜻이 아닌가.
“잠깐만. 그런데…….”
반대로, 똑같이 매일 가르침을 받는데 신청을 안 한 다른 놈에게는 얄미운 마음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헌원강 이 새끼가?”
아직도 위지천보다 한참 약한 주제에 감히 신청을 안 해?
오늘 퇴근하면 헌원강을 두 배로 굴려 줘야겠다고 다짐하는 백수룡이었다.
백수룡이 직원을 돌아보며 멋쩍게 웃었다.
“저 죄송한데, 사파 무공의 분석과 현장 실습은 몇 명이나 신청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그의 미소에 얼굴을 살짝 붉힌 직원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서류를 찾았다.
“원래는 안 되는데……. 어디 가서 말 하시면 안 돼요.”
그녀는 서류를 뒤지더니, 굳이 백수룡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 수업은 열세 명이 신청했어요.”
“……그렇군요.”
이쪽은 한 명인데, 저쪽은 수강 신청 이틀 만에 최소 수강 인원의 두 배를 넘겼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데.’
애초에 수강 인원이 비슷할 거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쪽으로 더 많이 몰리는 게 정상.
하지만 그래도 한 명뿐이라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비인기 과목이라도 그렇지, 교양 과목이니만큼 단순히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신청한 학생들이 몇 명은 있어야 했다.
즉, 저쪽에서 뭔가 수작을 부린 냄새가 났다.
“감사합니다.”
“뭘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교무처 직원이 새침하게 귀밑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잠시 후, 교무처를 빠져나온 백수룡은 잠시 고민하다 발걸음을 돌렸다.
‘일단 정보를 좀 더 수집해 봐야겠군.’
다행히도, 백수룡은 학관 내에 매우 뛰어난 정보통을 알고 있었다.
……다만 상당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진 백수룡은 심호흡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 녀석하곤 웬만하면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
잠시 후, 백수룡은 현판에 라고 적힌 건물로 들어갔다.
* * *
“선생님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나서 그래요.”
차가운 인상의 소녀, 하지만 그 눈빛은 묘한 열기로 이글거렸다.
백수룡은 탁자 너머 마주 앉은 소녀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물었다.
“좋지 않은 소문? 구체적으로 어떤 건데?”
“그 전에…… 약속대로 머리카락부터 먼저 주세요.”
범상치 않은 눈빛의 소녀, 당소소는 선금부터 확실하게 요구했다.
백수룡은 찝찝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았다.
“잠깐. 굵고 싱싱한 거로 주세요.”
‘싱싱한 머리카락이 왜 필요한 건데…….’
그 용도가 무척 의심스럽고 궁금했지만, 돌아올 대답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백수룡은 차마 묻지 않았다.
“……여기 있다.”
“후후후…….”
당소소는 백수룡의 머리카락을 비단에 싸서 품 안에 넣은 후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에 선생님이 풍진호 선생님을 기습해서 만신창이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대체 어떤 놈이 퍼트린 거야? 기루 직원들은 전부 입단속을 했는데…….”
“사실이에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묻는 당소소에게,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질문하러 온 사람은 나야. 돌고 있는 소문은 그게 전부야?”
“그것 말고도 많아요. 전에 일하던 학관에서 여학생들을 후리고 다녔다느니, 돈 많은 남자들을 후리고 다녔다느니, 색공을 익혔다느니…….”
“……어째 다 비슷한 소문들이군.”
“전 믿지 않아요. 선생님이 그런 분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거든요.”
당소소는 위험한, 그러나 두 눈에 신뢰가 가득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 사람이었으면 저한테 안 걸렸을 리가 없잖아요? 전 이미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만. 그만해 제발.”
부르르 몸서리를 친 백수룡이 다른 질문을 했다.
“어쨌든 소문뿐이잖아. 그것만 가지고 학생들이 나를 피한다고? 오늘만 해도 딱히 그런 느낌은 없었는데…….”
누가 그런 소문을 낸 것인지야 뻔했다.
풍진호가 앙심을 품고 헛소문을 퍼트린 거겠지.
하지만 백수룡이 생각하기엔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문보다 중요한 건 선생님이 풍 선생님한테 찍혔다는 거예요. 풍 선생님은 주요 전공 과목도 여럿 가르치거든요. 게다가 그 뒤에는…….”
“남궁수가 있다?”
당소소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학관에서 남궁 선생님에게 밉보이고 제대로 된 학점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은 없다고 봐도 좋아요. 풍 선생님은 그런 남궁수 선생님과 친하고요. 다른 강사님들하고도 마찬가지예요.”
‘정작 풍진호는 남궁수를 쫓아낼 계획인데 말이지.’
백수룡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소문에는 더 큰 소문으로 맞불을 놓는 방법도 있다.
풍진호와 남궁수 사이를 이간질해서 틀어지게 할 수도 있고, 은밀하게 함정을 파놓고 기다릴 수도 있다.
아니면 강의 자체를 아예 못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혈교에서처럼 과격한 방법은 안 되겠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백수룡이 다시 고개를 들어 당소소를 바라봤다.
“여기, 의뢰도 받나?”
그와 눈이 마주친 당소소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요금만 지불하신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