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 혈교의 방식 (1)다음 날, 백룡장으로 거상웅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상웅이!”
홀로 무공을 수련 중이던 거상웅은 상대의 부름에 뒤를 돌아봤다.
그가 활짝 웃으며 상대를 불렀다.
“양 선배! 왔어?”
그 순간, 양 선배라 불린 사내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거상웅의 표정이 지난 몇 년간 본 것 중에서도 가장 밝아 보였던 것이다.
양진은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객잔에서 발작을 일으켰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나?”
거상웅이 조금 줄어든 뱃살을 출렁이며 웃었다.
“그하하하! 며칠 전 이야기지. 지금은 괜찮아졌어. 양 선배가 병문안까지 올 일은 아닌데 말이야.”
“……그래도 어떻게 안 와. 자네 아버님한테 이야기 듣고 바로 달려왔지. 일단 이거 받아.”
양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병문안 선물을 건넸다. 평소 거상웅이 즐겨 먹던 주전부리였다.
그러나 거상웅은 먹을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말했다.
“그건 됐고 일단 들어와. 손님방으로 안내할 테니까.”
“어? 어어……. 그래.”
잠시 후, 양진은 손님방에서 거상웅과 마주 앉았다.
‘이 녀석…….’
며칠 만에 본 거상웅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항상 개기름이 흐르던 뺨은 조금 홀쭉해졌고, 펑퍼짐하게 입던 옷은 꽉 맞는 흑의무복을 갖춰 입었다.
무엇보다 저 표정.
항상 가식적이고 능글맞게만 웃던 녀석이, 이제는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떠들어댔다.
“양 선배는 어떻게 지내? 아직도 도박에 빠져 사나?”
“……어, 나야 항상 그렇지 뭐.”
멋쩍게 대답한 양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동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흠칫했다.
지저분하게 자라난 염소수염에 구부정한 어깨.
과거 무공을 익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흐리멍덩한 눈.
바로 앞에 있는 거상웅과 비교하자 자기 자신이 더 초라해 보였다.
‘빌어먹을…….’
양진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의 뒤틀린 분노는 거상웅을 향했다.
하지만 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거상웅을 걱정하는 척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아까 보니 무공을 수련하던데. 괜찮은 거냐? 그랬다간 또 발작이…….”
“다 나았어.”
“……뭐?”
“그하하! 다 나았다고!”
양진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청룡학관 졸업생으로, 거상웅보다는 두 학년 선배였다.
그리고, 2년 전 천무제에서 같은 일을 겪은 사이이기도 했다.
“무, 무슨 소리야 그게. 나았다니……. 더 이상 악몽을 안 꾼다고?”
“응. 악몽을 안 꿔. 더 이상 폭식도 안 하고, 도박 생각도 전혀 안 나.”
“어떻게…….”
그럴 수가 없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데.
멍청한 표정을 짓는 양진에게, 거상웅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다 백수룡 선생님 덕분이야.”
“누구?”
못 들어서 되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이 나와서 놀란 것이다.
‘백수룡?’
최근 도시에서 가장 많이 들려오는 이름 중 하나.
양진이 속한 조직에서도 그 이름이 몇 번이나 언급되곤 했다.
특히 최근에는 그를 죽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중이었는데…….
“누가 왔나?”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벌떡 일어난 거상웅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선생님. 들어오십시오.”
백수룡은 들어오기 전에 문밖에 서서 그들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양진과 잠시 마주치더니,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거상웅에게 물었다.
“친구가 온 거냐?”
“예! 청룡학관을 졸업한 선배입니다.”
“호오. 그래?”
거상웅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난 양진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안녕하십니까. 양진입니다. 이 친구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백수룡은 잠시 양진을 응시하더니, 이내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양진은 온몸이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을 받았다.
꿀꺽…….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마른 침을 삼키는데, 백수룡이 입을 열었다.
“편하게 있다가 가. 아예 저녁까지 먹고 가도 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금방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약속도 있고…….”
“선배가 무슨 약속이 있다고 그래? 허구한 날 도박장에만 있으면서.”
“……오, 오늘은 진짜 일이 있어.”
거상웅의 핀잔에 양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빙긋 웃은 백수룡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둘이 회포를 푸는 데 내가 방해한 것 같군. 편하게 이야기하다가 가게.”
“예, 예……. 감사합니다.”
백수룡은 몸을 돌리며 멀어졌다.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좀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양진의 귀에는 더 이상 거상웅이 하는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난 이만 가야겠다.”
“벌써?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진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양진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자, 거상웅이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뭐……. 난 한동안은 여기서 묶을 테니까. 편할 때 놀러와.”
“……도박장은 어쩌고?”
“이제 안 가.”
거상웅의 말에 양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 모습을 본 거상웅이 씁쓸하게 웃었다.
“선배. 나는 백수룡 선생님 덕분에 다시 무공을 익힐 수 있게 됐어. 마치 새 삶을 얻은 기분이야. 선생님 말씀이…… 내가 그동안 주화입마를 겪었다고 하시더라고.”
‘무슨 개소리야! 그건 주화입마 따위가 아니야!’
양진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절대 그래선 안 될 일이었다.
거상웅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졸업한 양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도…… 아직 악몽 꾸지? 필요하다면 선생님께 진찰을 받아 봐. 내가 말씀드려 볼게.”
“아니, 아니야. 난 괜찮아. 너처럼 증상이 심한 것도 아니고. 다 잊었어.”
양진은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2년 전, 그는 거상웅과 함께 천무학관의 ‘그 두 명’에게 당했다.
하지만 그 이후 양진이 선택한 삶은 거상웅과는 전혀 달랐다.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하다가 서서히 망가져 간 거상웅과 달리, 그는 빠르게 자신의 주제를 깨달았다.
때문에 조직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도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조직에서 명령을 내렸을 때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거상웅을 망가뜨려라. 도박, 술, 뭐든 좋다. 곁에서 부추겨서 그의 정신을 나약하게 만들어라.
지금까지는 그 계획에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선배?”
거상웅의 부름이 양진을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진짜 가 볼게. 조만간 또 보자고.”
양진은 그 말만 남기고 도망치듯 백룡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일이 틀어졌다. 거상웅의 상태가 호전되다니!’
표정을 굳힌 양진은 빠른 걸음으로 단골 도박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건 도박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충성을 맹세한 조직, 혈교에 이 소식을 당장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양진이 떠난 자리에, 백수룡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저 녀석이었군.”
백수룡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 * *
“……거상웅이 다시 무공을 익힌다고요? 그게 정말인가요?”
더없이 공손한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 앞에 무릎을 꿇은 양진은 맹수 앞에 놓인 초식동물처럼 바르르 떨었다.
“그,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거상웅이 공포증을 극복한 것 같습니다. 혈색도 좋았고, 주는 음식마저 거절했습니다.”
“……이상하네요. 말이 안 되는데요.”
대답하는 이는 키가 작고 살집이 많은 사내였다.
그는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 이 허름한 객잔이자, 밤이 되면 도박장으로 변하는 곳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소살귀(笑殺鬼)…….’
기쁘게 웃으면서 사람을 죽인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
그는 혈교의 외부 무력대 중 하나인 귀혈대의 대주이기도 했다.
소살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건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거든요.”
“나 또한 그렇게 알고 있네만.”
소살귀의 반대편에 앉은 사내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양진은 대충 짐작만 할 뿐이지만, 두 사람은 거상웅이 무엇에 당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절혼마장에 당한 상대는 결국 정신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 시간이 빠르냐 늦냐, 그 차이일 뿐이지.’
‘거상웅이 생각보다 오래 버티긴 했지만……. 그래 봤자 앞으로 1~2년 안에 완전히 폐인이 되어야 했을 터인데.’
거상웅을 폐인으로 만든 후, 혈교는 그를 꼭두각시로 만든 후 금룡상단을 집어삼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소살귀가 눈살을 찌푸리며 양진에게 물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획에 차질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불과 며칠 사이에, 몇 년이나 공들여온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살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하하…….”
그는 살심이 솟구치면 미소가 짙어지는 버릇이 있었다.
소살귀의 입가에 미소가 만개하면…….
온몸이 피에 젖을 때까지 살육을 멈추지 않는다.
겁에 질린 양진이 바닥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숨만은 제발…….”
“사죄는 되었으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
양진이 두려움에 벌벌 떨며 자신이 보고 온 것을 모두 고했다.
“처, 청룡학관 강사 백수룡의 짓입니다! 그자의 장원에서 거상웅이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거상웅이 말하기를, 백수룡 선생이 자신의 주화입마를 치료했다고…….”
“……백수룡. 최근에 자주 듣는 이름이군요.”
그러자 소살귀의 반대편에 앉은 사내가 술잔으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제가 계속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보통 놈이 아니라고요.”
“…….”
소살귀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백수룡.
최근 청룡학관에 입사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신입 강사.
아직 혈교의 본단까지는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 남창 지부에서는 조금씩 주시하기 시작한 이름이었다.
소살귀는 반대편에 앉은 교활하게 생긴 사내를 바라봤다.
마침 이자도 방금까지 백수룡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개인적인 용무에 끼어드는 것 같아 참견하지 않으려 했지만…….’
백수룡이 거상웅을 건드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상웅, 아니 금룡상단은 혈교가 대계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할 목표 중 하나였다.
괜히 2년이나 되는 시간을 공들여 거상웅의 정신을 서서히 망가뜨리고, 그 주변인들을 포섭한 것이 아니다.
이제 곧 거상웅이 금룡상단의 정식 후계자가 되면, 금룡장주를 제거한 후에 거상웅을 꼭두각시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신입 강사가 초를 친다고? 안 될 말이지.’
결정을 내린 소살귀가 말했다.
“본교의 행사에 걸림돌이 된다면…… 조만간 제거해야겠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귀혈 대주. 제가 한잔 드리지요.”
소살귀의 반대편에 앉은 사내가 소살귀의 술잔을 가득 따라 주었다.
이런 허름한 객잔에 어울리지 않은 깊은 주향이 퍼졌다.
사내가 잔을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귀혈 대주. 제가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백수룡을 죽이는 것은 제가 완벽하게 놈을 몰락시킨 이후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단숨에 술잔을 비운 사내, 풍진호가 비열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놈은 제가 직접 죽이게 해 주십시오.”
풍진호의 눈이 뱀처럼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