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22
121화. 혈교의 방식 (6)이른 아침.
풍진호는 시비가 따라 준 차를 마시며 정원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좋구나.”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정원을 바라보는 것. 풍진호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꼭 하는 일과였다.
대갓집 부럽지 않은 넓은 집에서, 자신의 성공한 삶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잉, 나으리이…….”
여기에 곁에서 교태부리는 시비를 주물럭대고 있으면 극락이 따로 없었다.
“아침부터 기운도 좋으셔요.”
“흐흐. 요 앙큼한 것. 이리 오너라!”
풍진호가 시비와 뒤엉켜 뒹굴고 약 일각이 지난 후, 멀리서 눈치를 보고 있던 하인이 와서 말했다.
“나으리. 목욕하실 시간입니다.”
“곧 가마.”
옷매무새를 정리한 풍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거만한 걸음걸이로 욕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다 씻고 나와서도 늑장을 부렸다.
그의 출근은 다른 강사들보다 반 시진 정도 늦었는데, 그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청룡학관 내에 아무도 없었다.
간혹 매극렴이 눈살을 찌푸리며 제시간에 출근하라고 말하면, 풍진호는 이렇게 핑계를 대곤 했다.
-하하. 업무가 많아 야근이 잦으니, 출근이 좀 늦어도 이해해 주십시오.
실제로 풍진호가 야근을 해 본 지도 십 년이 넘었다.
야근을 핑계 대고 술자리를 만들어 지역의 토호들, 명사들, 부자들과 안면을 트고 인맥을 쌓는 데 힘썼다.
‘인맥이 곧 돈이다.’
그렇게 인맥을 만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불린 재산은, 일개 강사가 벌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다 씻고 나온 풍진호 앞에 호화로운 만찬이 차려져 있었다.
돼지고기를 한입 씹은 풍진호는 초조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숙수에게 인상을 썼다.
“오늘은 고기가 좀 질기군.”
“소, 송구합니다. 당장 다시 해서 올리겠습니다.”
“됐다. 오늘은 그냥 먹을 테니 물러가라.”
평소 같았으면 불호령을 냈겠으나, 어젯밤부터 기분이 좋았던 탓에 특별히 너그러이 용서해 주기로 했다.
그는 식탁 위의 진수성찬을 즐기며, 오늘 학관의 일과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수강 신청 마감일이로군.’
같은 시간대에 비슷한 강의를 두고 백수룡과 경쟁하고 있었지만, 풍진호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 온 인맥, 학관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풍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청룡학관에 이 풍진호의 눈치를 보지 않는 학생은 없지.’
……성적에 신경도 안 쓰는 극히 일부의 문제아들 정도만 제외하면 말이다.
청룡학관의 문제아들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보충반 담임을 맡은 백수룡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그 건방진 놈…….”
풍진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맺혔다.
“날뛰어도 정도껏 날뛰었어야지. 건드려선 안 될 것까지 건드려서 스스로 명을 재촉했구나.”
이제 그냥 내버려 둬도 백수룡은 스스로 파멸할 것이다.
놈은 거상웅을 건드렸고, 결국 혈교의 심기까지 건드리게 되었으니까.
거상웅을 떠올린 풍진호가 코웃음을 쳤다.
‘그 멍청한 놈. 내가 네 애비를 만나게만 도와줬어도 그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상웅이 금룡장주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풍진호는 정보통을 통해 거상웅이 입학했을 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상웅과 친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신입생 때부터 온갖 편의를 봐주고, 무공도 꼼꼼히 봐주었다.
전부 금룡장주를 단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서였다.
이 도시에는 금룡장주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면 전 재산의 절반도 내놓겠다고 할 상인들이 줄을 서 있었으니까.
‘금룡장주와의 인맥을 만들 수만 있었다면…….’
하지만 거상웅은 그런 쪽으로는 단호했다.
풍진호의 은근한 청을 몇 번이나 거절해서 그를 분노케 했다.
공교롭게도 그때쯤 접촉해 온 혈교가 풍진호에게 제안을 해 왔다.
“흐흐. 결과적으로 더 잘 되었지.”
2년 전, 풍진호는 거상웅이 혈룡과 만나도록 유도했다.
인맥. 정보. 재물.
여기에 혈교의 지원까지 더해진 이후로 풍진호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는 만찬과 함께 나온 술을 홀짝이며 웃었다.
“거상웅. 백수룡. 주제도 모르는 것들끼리 만나 잘도 어울리는구나.”
그 무시무시한 소살귀가 나섰으니 백수룡의 인생은 이제 끝이다.
하지만 풍진호는 놈을 쉽게 죽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우선 네놈의 인생부터 철저하게 망가뜨려 주마. 죽이는 건 그 이후야.”
음험하게 웃으며 뱀처럼 눈을 빛내는 풍진호의 모습은 웬만한 사파인보다도 사악해 보였다.
“나, 나으리!”
“음?”
밖에서 들려온 하인이 목소리가 평소보다 다급했다.
풍진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출근 시간까진 한 시진이나 남아 있었으니까.
밖에서 하인이 달려와 말했다.
“밖에 나으리를 찾아온 분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말이냐?”
풍진호의 물음에,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동료 강사라고 합니다. 아침을 같이 먹고 함께 출근하겠다고……. 방해받는 걸 싫어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워낙 막무가내여서…….”
“동료 강사라니?”
청룡학관에 동료라고 부를 만한 강사야 많았다.
하지만 이 시간에 그의 집에 들러 함께 출근하자고 할 사람은 없었다.
풍진호가 아침 시간을 혼자서 여유롭게 보내길 즐긴다는 것을 대부분 알기 때문이었다.
‘관주나 부관주일 리는 없고. 남궁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럼 대체 누가…….’
풍진호는 오래지 않아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콰앙!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백수룡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풍진호 앞에 펼쳐진 진수성찬을 본 백수룡은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이야. 누군 밤새 뺑이 치면서 돌아다니는 동안, 누군 이렇게 맛있는 걸 혼자 처먹고 계셨네.”
뒷골목 파락호나 할 법한 말투와 행동에 풍진호는 말문이 막혔다.
게다가 백수룡의 몸에서 희미하게 나는 혈향이 그를 흠칫하게 했다.
“……백수룡.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글쎄. 뭐 하는 짓일까? 오. 이거 맛있네.”
백수룡은 예의라곤 조금도 차리지 않는 모습으로 풍진호 앞에 놓인 음식을 몇 번 집어먹었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하인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지금부터 알면 다치는 얘기를 할 생각인데. 잠깐 나가 계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예, 예. 알겠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하인이 허겁지겁 방에서 나갔다.
백수룡이 이렇게 나오자, 풍진호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뭘 믿고 이리 당당한지 모르겠군. 설마하니, 이 아침에 날 어떻게 하려고 온 것은 아닐 테지? 그랬다간 관주님이…….”
“아니라고 생각해?”
백수룡의 눈가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
흠칫 놀란 풍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일전에 기루에서 백수룡에게 당한 전적이 있는 터라, 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무, 무공은 나보다 네가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하지만 세상은 무공만으로 돌아가지 않아. 지금 날 건드리면…….”
“그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그거참 궁금하네.”
은근한 협박을 하는 백수룡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죽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느낌.
풍진호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들을 과시했다.
“인맥! 권력! 돈이다! 내겐 그 모든 게 있어! 날 죽였다간 너도 살아남지 못해! 관과 무림맹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다!”
한 번뿐이지만 풍진호는 지부대인과도 인사를 한 적이 있었고, 금룡장주는 아니지만 그의 오촌 당숙과 세 번이나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었다.
“이야. 대단하네……. 널 함부로 죽였다간 정말 큰일 나겠어.”
백수룡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풍진호가 창백한 얼굴에 겨우 미소를 띠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그러니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돌아가라. 그럼 오늘은 없었던 일로 해 주지.”
풍진호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철혈의 재상 공손수가 백수룡에게 무공을 배웠고, 금룡장주는 백수룡을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기로 했다는 것을 말이다.
피식 웃은 백수룡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너 같은 쓰레기를 죽여서 무슨 득이 있겠어. 오늘 용건은 다른 거야.”
“뭘…….”
백수룡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 다음 풍진호가 볼 수 있도록 내밀었다.
그걸 본 순간 풍진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헉!”
혈교에 충성을 맹세하며 찍은 혈판장이었다.
풍진호의 지장과 직인, 필체가 선명하게 새겨진 물건.
“놈!”
풍진호가 벼락처럼 손을 뻗어 혈판장을 움켜쥐려 했으나, 백수룡의 손이 그보다 한참 빨랐다.
휘익!
혈판장을 낚아챈 백수룡이, 그것을 풍진호가 보는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맺혔다.
“이걸 무림맹에 보내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네가 가진 인맥, 권력, 돈이 널 지켜 줄 수 있을까?”
“너, 너……!”
혈교가 사라진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림맹은 혈교의 잔당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만약 이 혈판장이 무림맹에 전해진다면, 그들은 풍진호를 잡아가 단전을 폐하고 사지의 근맥을 끊은 후, 온갖 고문으로 없는 정보까지 토해내게 할 것이다.
“대체, 그걸 네가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한 건 이게 내 손에 있고, 혈교 놈들은 더 이상 널 지켜 줄 수 없다는 사실 같은데.”
풍진호의 표정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렸다.
방금 먹은 진수성찬이 전부 체해서 그대로 넘어올 것만 같았다.
그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 그건 가짜다!”
“가짜라고?”
간신히 반박할 거리를 생각해낸 풍진호가 말을 이었다. 그의 입가엔 일부러 여유로운 척하려는 듯 옅은 미소마저 맺혔다.
“혈교가 망한 지가 언제인데, 그게 혈교의 물건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지? 무림맹의 수사관들이 바보로 보이나?”
“하긴.”
딴에는 일리가 있는 맞는 말이기도 해서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혈판장의 진위 여부 자체를 가리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네 말도 맞지. 억울한 사람에게 혈교의 첩자라는 누명을 씌우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니까.”
“이제라도 알았다면…….”
하지만 백수룡이 가진 패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증인도 준비해 뒀지.”
“즈, 증인이라니?”
“이거 왜 이러실까.”
킥킥 웃은 백수룡이 풍진호 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그만큼 풍진호는 상체를 뒤로 뺐다.
백수룡이 속삭이듯 말했다.
“네가 망가뜨린 천무학관 졸업생. 양진. 그 녀석이 네가 한 짓에 대해 얼마든지 증언하겠다더라고. 게다가 거상웅이 겪은 일도 전부 말해 주겠다던데?”
“……히끅!”
자기도 모르게 딸꾹질을 한 풍진호가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떻게…….’
백수룡은 2년 전에 있었던 천무제의 일까지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소살귀뿐인데, 그럼 소살귀는 어떻게 된 거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가운데, 백수룡은 상체를 점점 더 풍진호 쪽으로 기울였다.
풍진호에게는 지옥의 마귀가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명정대한 무림맹은 널 조사하느라 시간을 줄지도 몰라. 하지만 금룡장주도 그럴까?”
“가, 가까이 오지 마…….”
“아들을 폐인으로 만든 범인을 알았다면, 당장 잡아서 찢어 죽이고도 남지 않겠어?”
“으허억!”
우당탕탕!
계속 뒤로 물러나던 풍진호가 그만 의자와 함께 발라당 넘어졌다.
백수룡은 그 꼴사나운 모습을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한심하군.’
단련된 무인이라고 보기 힘든 뱃살과 굳은살이 사라진 지 오래인 손바닥.
‘이런 쓰레기는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지만…….’
죽이는 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쓰레기도 활용하기에 따라 쓸모가 생기는 법이다.
“풍진호.”
풍진호 앞에 쪼그려 앉은 백수룡이 강제로 그의 입을 벌렸다.
당황한 풍진호가 버둥거렸지만, 어느새 점혈을 당해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억, 어억……!”
눈을 부릅뜨는 풍진호의 입안에, 백수룡은 품 안에서 꺼낸 무언가를 강제로 밀어 넣었다.
그것은 작은 병에서 꺼낸 새카만 벌레였다.
“고독이다. 혈교 놈들이 나중에 거상웅에게 먹이려고 했던 놈이지. 도박장 지하 금고에 있더군.”
“컥, 커헉……!”
고독을 뱃속에 삼키고 고통스러워하는 풍진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백수룡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점혈을 풀었다.
“난 이제 마음만 먹으면 널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테지.”
생사여탈권을 완벽하게 쥔 것으로도, 풍진호의 쓸모는 무궁무진해진다.
풍진호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백수룡을 올려다봤다.
“내, 내, 내가…….”
“내가? 호칭부터 제대로 해야겠는데.”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되묻자, 풍진호가 급하게 호칭을 고쳤다.
“제…… 제가…….”
더 이상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져간 상대 앞에 고개를 조아린 풍진호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그제야 백수룡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