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23
122화.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 (1)
“……강의를 변경하고 싶다고?”
“예. 수업 내용을 전체적으로 바꾸려 합니다.”
노군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풍진호를 바라봤다.
아침 일찍 관주실을 찾아온 그는 자신이 알던 풍진호가 아니었다.
‘저승사자라도 만나고 온 얼굴이군.’
어제까지만 해도 개기름이 좔좔 흐르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무인으로서는 물론 선생으로서도 평소에 호감이 가지 않던 사내였지만, 그럼에도 안쓰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자네. 어디 아픈가?”
“……예? 아, 아닙니다.”
풍진호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니긴. 이마에 식은땀이 나는데.”
“아픈 것이 아니라…….”
풍진호는 차마, 뱃속에서 고독이 꿈틀거리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노군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침에 뭘 잘못 먹기라도 한 겐가?
“우읍……!”
“자네 왜 이러나 진짜! 속이 안 좋으면 나가서 토하고 오게!”
노군상이 기함을 하며 뒤로 물러나고, 입을 틀어막은 풍진호가 겨우 뒤집어지려는 속을 진정시킨 뒤에야 한바탕 촌극이 끝났다.
“하아……. 하아…….”
잠깐 사이에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된 풍진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서러움에 안구에 습기가 뿌옇게 차올랐다.
‘내 목숨은 이제 백수룡 그자가 쥐고 있구나.’
백수룡은 풍진호에게 강제로 고독(蠱毒)을 삼키도록 했다.
혈교의 사술로 만든 고독은 주인의 피를 한 방울만 먹이면 상대의 몸 안에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백수룡은 풍진호에게 먹이기 전, 고독에게 자신의 피 한 방울을 먹였다.
-고독이 말을 잘 듣나 안 듣나 시험해 봐야겠지?
-……끄아아악! 그, 그, 그마아안!
반 시진 가까이, 풍진호는 고독에 의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 고통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덜덜덜 떨려 왔다.
“허어. 뭔가 고민이 있다면 말해 보게. 혹시 아나?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
노군상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풍진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냥 몸이 조금 안 좋은 것뿐입니다.”
혈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노군상에게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결국, 그는 죽을 때까지 백수룡에게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체념한 표정을 지은 풍진호가 다시 본론을 꺼냈다.
“……해서, 관주님. 강의를 변경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흐음.”
수강 신청 마지막 날에 강의를 변경하다니.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청룡학관 내 모든 일의 최종결정권자인 학관주가 허락한다면 가능했다.
노군상은 풍진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변경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네만…… 혹시 백 선생 때문인가? 오늘 아침에 같이 출근했다고 들었네만.”
“…….”
불과 며칠 전.
노군상은 백수룡과 풍진호를 불러 불호령을 내렸다.
-갈! 너희가 그날 기루에 있었다는 것은 확인했다. 정확한 사정은 궁금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너희가 청룡학관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다!
-자네들의 강의를 2주간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둘 중 평가가 떨어지는 쪽은 폐강하겠네.
그 이후, 둘의 자존심 대결은 강사들 사이에서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엔 둘 중 하나는 학관을 떠나리라고 말하는 강사들도 있었다.
‘떠나는 사람은 백 선생이 될 거라는 예상이 압도적으로 많았지. 그런데…….’
오늘 아침, 어제까진 원수나 다름없던 두 사람이 사이좋게 출근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지금은 풍진호가 관주실을 찾아와 강의를 변경하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노군상은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을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풍진호가 백수룡에게 먼저 꼬리를 내렸다?’
정황상으로 보면 그렇지만,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풍진호는 강사 경력만 이십 년이 넘는다.
청룡학관 내에 가장 큰 파벌을 실질적으로 휘어잡고 있으며, 학관 외부 인맥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조차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자인데…….’
무공으로야 감히 상대가 안 되겠지만, 학관 내 정치력은 풍진호가 노군상보다도 위에 있었다.
그런데 올해 청룡학관에 입사한 백수룡이 풍진호를 이런 꼴로 만들었다고?
노군상은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허. 백 선생. 드러난 것보다 무공이 고강하고 능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무공으로 해낸 일이 아니다.
청룡학관에 풍진호보다 무공이 센 강사는 많지만, 지금까지 풍진호를 이렇게 패배시킨 강사는 없었다.
‘대체 어떻게……?’
노군상은 예리한 시선으로 풍진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고수의 기감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풍진호의 배 속에 있는 고독의 존재까지 알 수는 없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노군상은 둘 사이에 모종의 사건이 있었으리라고 확신했지만, 일단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풍진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 선생과는…… 대화로 잘 풀었습니다.”
“그런가?”
“관주님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신입 강사와 다퉈서 제게 이득이 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허허…….”
“지금은 모든 강사가 하나로 힘을 모아도 부족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천무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생각입니다.”
“……놀랍군.”
풍진호는 백수룡이 시킨 그대로, 관주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노군상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건 승부에서 이긴 수준이 아니라…….’
백수룡이 풍진호를 휘하에 거두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내가 눈치챈다는 걸 백 선생이 모를 리 없을 터. 애초에 같이 출근한 것도 이런 의도였나.’
노군상뿐만이 아니다.
눈치 빠른 강사들은 앞으로 백수룡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풍진호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푹 숙인 시선에 초점이 없었다.
“허허. 풍 선생이 그리 말해 주니 나로서도 기쁘군. 아무렴. 지금은 모든 강사가 힘을 모아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해도 모자랄 때가 아닌가.”
“……예.”
힘없이 대답하는 풍진호.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지만, 노군상은 금세 동정심을 거뒀다.
풍진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그 또한 소문으로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학관을 위해서 언젠가는 도려내야 할 뿌리였다.’
하지만 쌓아온 인맥과 정치력 때문에 쳐낼 수가 없었다.
풍진호를 건드리는 순간, 그의 파벌에 속한 강사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날 테니까.
그런 일을 신입 강사가 했다니 그저 놀랍고, 부끄러울 뿐이었다.
노군상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백 선생 말이네. 참으로 청룡학관의 복덩이가 굴러들어왔어. 안 그런가?”
“……예.”
“허허. 내 처음 면접장에서 볼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한동안 백수룡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노군상은, 풍진호의 안색이 흙빛으로 썩어들어갈 때쯤에야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래.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보지. 그래서 강의를 어찌 변경하려고 하는가?”
“……신입 강사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새로운 강의를 개설하면 어떨까 합니다.”
“신입들에게? 어떻게 말인가?”
흥미가 생긴 노군상이 몸을 가까이 기울이며 물었다.
풍진호는 머릿속으로 외워 온 글을 읽듯이 어색하게 말했다.
“올해 입사한 신입 강사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무론을 가르치는 강의를 열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당연히 이것도 풍진호의 생각이 아닌 백수룡의 생각이었다.
“올해 신입 강사들은 전체적으로 우수합니다. 수석인 제갈소영 선생부터 산동악가의 악연호 선생, 명가장의 명일오, 진의협,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나지요.”
“맞는 말이네.”
백수룡에 가려져 있을 뿐, 올해 뽑힌 신입 강사들은 대부분이 뛰어난 실력과 성실함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풍진호는 어제까지만 해도 그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험입니다. 강의 하나를 그들에게 배정해 경험을 쌓게 해 준다면…….”
“옳거니! 역시 젊은이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군!”
“……젊은이요?”
중년을 훌쩍 넘긴 풍진호는 어떻게 봐도 젊은이는 아니었다.
노군상이 껄껄 웃으며 손을 저었다.
“대충 넘어가게. 자네가 나보다는 젊지 않나.”
“……예. 하여튼, 신입 강사들에게 돌아가면서 강의를 할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신입 강사들은 보통 기존 강사들에게 사정이 생겨 수업을 못 할 때 대타를 하거나, 제갈소영처럼 전공이 희귀한 경우에나 초임부터 강의에 나설 수 있었다.
기존 강사들만으로도 충분히 강의를 개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의명은 ‘무공총람’이 어떨까 합니다. 제 이름으로 강의를 열겠지만, 신입 강사들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주도하게 될 겁니다.”
한마디로 풍진호가 얼굴마담을 해서 학생들을 모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 또한 훌륭한 생각이었다.
‘허어. 헌데 이렇게 되면…… 백 선생은 초임 첫 학기에 강의를 두 개나 맡게 되겠군.’
이것 또한 노린 것일 테지.
노군상은 이 이상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강의의 보조 강사를…… 악연호 선생, 명일오 선생에게 부탁할까 합니다.”
“허어!”
백수룡과 가장 친한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온 순간, 노군상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 녀석! 아주 청룡학관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하는구나!’
헌데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눈앞에 있는 풍진호와 달리, 백수룡이 청룡학관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이유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천무제 우승.
지금 백수룡의 눈에는 오직 그것만 보이고 있을 터였다.
그 뜻을 이해한 노군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그리하라고 전하게.”
“……예.”
풍진호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백수룡에게 말을 전하는 전령으로 전락한 자신의 신세가 한심해서였다.
* * *
“형님! 형님!”
“형니이임!”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두 동생을 바라보며, 백수룡은 쯧쯧 혀를 찼다.
“왜들 그렇게 소란이야?”
“들어 보세요! 방금 관주실에 다녀왔는데, 글쎄 풍 선생이……!”
“저희! 보조 강사! 강의! 하게 됐다고요!”
“좀 천천히, 하나씩 말해.”
“그게, 그러니까…….”
두 사람의 정신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 됐네.’
백수룡은 풍진호를 죽이지 않았다.
그 대신 풍진호가 가진 영향력을 이용해, 취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취할 생각이었다.
그 첫 번째 계획이 원하는 수업을 하나 더 개설하는 것이었다.
‘나 혼자서 모든 학생을 가르치진 못해. 능력 있는 강사들이 학생들의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려야지.’
다행히 노군상도 그 의도를 잘 이해해 준 모양이었다.
“그런데 형님은 어디 가요?”
악연호의 질문에, 평소와 달리 오늘 더 신경 쓴 백수룡이 씩 웃었다.
“수업하러 간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첫 수업이군요.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
“부디 애들한테 이상한 걸 안 가르쳐야 할 텐데…….”
“사파 무공이면 살수 무공이나 소매치기, 혹시 방중술 같은 것도……?”
“너희는 기분 좋은 날에 꼭 매를 벌어야겠냐?”
세 사람은 한동안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었다. 가는 방향이 같았던 것이다.
“그럼 또 보자.”
“첫 수업 잘하세요.”
“애들 너무 험하게 굴리지 마시고요.”
두 사람과 헤어진 백수룡은 곧장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 안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과 낯선 얼굴들이 뒤섞여 앉아 있었다.
헌원강. 여민. 거상웅. 그리고 야수혁.
청룡학관의 문제아로 꼽히는 네 명이, 맨 앞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다른 강사들이 보았다면 입을 멍하니 벌렸을 조합.
그리고 험상궂게 인상을 찌푸린 네 명 옆에, 혼자 모범생처럼 생긴 위지천이 어깨를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그 뒤에는…… 저 녀석들도 왔군.’
학생회 선도부로 유명한 쌍둥이, 청룡쌍걸이 중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냥 재미 삼아 신청한 것 같은 녀석들도 몇 보이고…….’
백수룡의 시선은 모르는 얼굴들을 지나 강의실 맨 뒤, 다른 학생들과 거리를 둔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독고준을 향했다.
독고준을 향해 웃어 준 백수룡이 말했다.
“반갑다. 앞으로 너희들에게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를 가르칠 백수룡이다.”
강단에 선 백수룡은 모든 학생과 한 번씩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첫 수업으로, 지금부터 너희들을 죽기 직전까지 팰 생각이다.”
“예?
“무슨……?”
백수룡은 학생들이 길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짙은 살기가 순식간에 강의실 안을 가득 채웠다.
“……맞기 싫으면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백수룡은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휘익!
가장 먼저 노린 상대는 독고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