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27
126화. 하오문의 결정“내가 눈치 하나는 천하제일이거든.”
백수룡이 얄밉게 웃으며 말하자, 노파의 표정이 한순간 표독스럽게 변했다.
주름지지만 한없이 선해 보이던 얼굴에 냉엄한 기운이 어리자, 그 변화만으로도 쉽게 대할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겼다.
“괜한 호기심이 명을 재촉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느냐?”
노파의 목소리는 마치 까마귀가 울어대는 것처럼 듣는 이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녀가 말을 하면 인상부터 찌푸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백수룡에게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노파는 불쾌한 목소리를 타고났고 특수한 음공까지 익혔다.
게다가 조금 전엔 목소리에 은밀히 내공을 실었다.
……지금까지 내공이 실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도 저렇게 태연한 상대는 본 적 없었다.
‘본문에서 평가한 것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란 말인가.’
방금 펼친 음공은 노파가 상대의 경지를 파악할 때 사용하는 수단이었다.
고수일수록 외부의 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었고, 음공을 듣는 순간 체내·외의 기가 반응해 몸을 보호한다.
웬만한 고수들도 움찔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기 마련인데…… 백수룡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둘 중 하나로군. 기감이 일반인보다도 둔하거나, 내가 음공을 펼치기 전에 기가 반응했거나…….’
전자는 말이 안 되고, 후자도 믿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백수룡이 묘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음공이라…….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요즘엔 거의 사장된 거로 아는데. 재미있는 걸 익혔네?”
노파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주름진 얼굴에는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다.
“……흠. 제법이구나.”
백수룡의 말처럼 음공은 점점 사라져 가는 무공이었다. 익히기 까다롭고, 그에 비해 효율은 무척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익힌 티가 거의 나지 않고, 은밀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하오문도에서는 종종 익히는 경우가 있었다.
익히는 건 주로 기생들.
노파의 시선에서 궁금증을 느낀 백수룡이 물었다.
“예전에 알던 사람 중에 음공의 대가가 있었거든. 당신도 경지가 꽤 높은 걸 보니 수십 년은 익힌 것 같은데. 평소에 말을 안 하는 건 목을 아끼는 건가?”
“……쓸데없는 얘기는 됐다. 용건만 이야기하자꾸나.”
노파는 더 이상 느릿느릿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성큼성큼 걸어가 객잔의 문을 닫고, 그 앞에 탁자를 세워 밖에서 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돌아선 노파가 차가운 시선으로 물었다.
“이곳에 하오문의 지부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처음부터 알고 온 게냐?”
“아니. 처음엔 몰랐어.”
백수룡은 객잔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곧 무너질 정도로 허름한 객잔치고는 관리가 잘돼 있더라고. 객잔 주인이란 노파는 거동도 불편해 보였는데, 뭔가 이상하더군.”
“……고작 그걸로?”
“물론 더 있지. 날 본 순간 당신 눈동자가 잠깐 커졌고, 더럽게 맛없는 소면의 국수의 굵기며 길이가 굉장히 일정했어. 무공을 익혔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야.”
“…….”
백수룡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객잔을 운영하는 노파가 벙어리에 귀머거리라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떠들기에 이보다 좋은 환경도 없지. 정보가 샐 염려도 없으니 말이지. 그런데, 그 노파가 몰래 무공을 익힌 것 같단 말이야. 즉, 벙어리도 귀머거리도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인데…….”
백수룡의 입가에 미소가 맺히는 만큼, 노파의 표정은 굳어졌다.
“대체 왜 연기를 하고 있었을까? 하나하나 짜 맞추다 보니 하오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나온 거지. 확인은 방금 당신이 직접 해 줬고.”
“……허!”
백수룡의 눈치와 관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지인들에게조차 십 년 이상 정체를 숨겨 온 노파의 정체를, 몇 안 되는 단서로 반 시진도 안 되는 시간에 간파해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로군.”
“한 가지 충고하자면 말이야. 바닥 공사가 부실하면 걸을 때 티가 나.”
쿵!
백수룡이 내공을 담아 가볍게 발을 구르자, 텅 빈 소리가 저 바닥에서부터 울렸다.
“이 밑으로 하오문 본부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론 더 신경 써서 짓는 게 좋을 거야.”
“…….”
“뭐, 나 같은 녀석이 또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노파의 표정은 창백하게 굳었다.
지하에 하오문 남창 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통로의 존재를 안다고 해서 무조건 본부로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를 침입자에 대비해, 비밀통로에는 온갖 함정과 기관장치를 심어 놨다. 웬만한 고수라도 함부로 발을 들였다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이라면 혼자서 본부까지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짧은 순간 보여 준 백수룡의 통찰력에, 노파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더 궁금한 거 있어?”
“…….”
하오문을 상대로 완벽하게 기선제압에 성공한 백수룡이 본론을 꺼냈다.
“이제 와서 내 이름을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유명해진 모양이던데.”
“……백수룡. 알고 있다.”
노파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최근 정보단체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름 중 하나였다.
청룡학관의 강사가 된 후로, 그가 보여 준 일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것뿐이었으니까.
노파도 진작 백수룡의 용모파기를 파악해 두었고, 청천과 함께 들어온 순간부터 그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청룡학관에서 잠룡이 깨어났다더니……. 과한 소문이 아니었구나.”
그 순간 백수룡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잠룡이라니? 설마 나한테 하는 소리야?”
“그래. 요즘 네 별호가 그렇게 불리고 있다. 아직 널리 퍼지진 않았지만.”
“……끄응. 낯간지러운 별호는 싫은데.”
남들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별호에 잠시 불만을 표한 백수룡은 다시 노파에게 말했다.
“아무튼 나는 하오문에 정보와 협력을 원해.”
“……들어보마.”
‘협력’이라는 말이 걸렸으나, 노파는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그만큼 백수룡을 진지한 고객으로 상대하겠다는 의미였다.
“아까 청천과 한 이야기 들었지? 적호방. 대웅방. 철두파. 우선 그들에 관한 정보가 필요해.”
“합당한 가격만 낸다면 넘겨주마.”
예상했던 바였기에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였다.
“그리고 빈민가에 사는 모든 사람의 정보가 필요해. 기녀, 왈패, 마부, 점소이, 거지, 죄를 짓고 숨어 사는 범죄자들 신상정보까지 전부.”
“……대체 뭘 하려는 게냐?”
노파가 굳은 표정으로 묻자,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빈민가 전체를 내 세력으로 만들 생각이야.”
“……뭐라?”
“문파를 세울 거야. 적호방, 대웅방, 철두파를 통합하고 하나로 만들어서, 이곳을 지금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생각이야.”
“…….”
잠깐의 침묵 후, 노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짧고 차가웠다.
“꺼지거라.”
노파의 목소리에서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백수룡을 감탄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눈은, 어느새 맹렬한 적의로 바뀌어 있었다.
“너도 똑같은 놈이었구나. 빈자들의 등골을 빨아먹으려 드는, 거머리 같은 정파의 위선자. 너 같은 놈이 무슨 잠룡이란 말이냐!”
“아니 잠깐. 그게 아니라…….”
노파는 백수룡이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녀가 분기를 참지 못해 씩씩대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날 죽이고 싶으면 죽이려무나. 하지만 네가 원하는 것은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하오문의 본부로 쳐들어가더라도 마찬가지야!”
하오문의 시작은 밑바닥에서 일하는 자들의 모임이었다.
기생, 마부, 점소이, 누명을 쓰고 숨어든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를 겨우 먹고 사는 막일꾼 등.
그들은 전쟁 같은 인생에서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공유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하오문이었다.
다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 모이다 보니 거칠고, 속물적이고, 질이 좋지 않은 이들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림은 하오문을 ‘사파’로 분류했다.
그래 놓곤, 평소에는 지저분하다고 멀리하면서, 필요할 때가 되면 정보를 내놓으라 찾아왔다.
당연히 하오문도 정파의 위선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 같은 놈들이…… 가장 나쁜 놈들이야.”
노파는 씩씩대며 백수룡을 노려봤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표정이었다.
백수룡은 난감한 표정으로 노파를 바라봤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라고? 내 살면서 너 같은 놈을 한두 번 본 줄 아느냐? 자기들보다 못 배우고 약한 이들을 약탈하는 놈들! 가진 것이 천 개, 만 개인데도 남의 것 하나를 빼앗지 못해 안달인 놈들! 언젠가 너희들에게 천벌이…….”
바락바락 악을 쓰는 노파를 보며, 백수룡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손을 들었다.
“적당히 좀 하자고.”
짜악!
순간 노파의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백수룡이 두 손바닥에 내공을 담아 노파의 얼굴 바로 앞에서 부딪친 것이다.
공격당하는 줄 알고 놀란 노파가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백수룡이 그 앞에 서서 혀를 차며 말했다.
“있지도 않은 천벌을 기대하다가 그대로 늙어 죽을 거야? 평생 불만만 늘어놓으면서? 차라리 뭐라도 시도해 보는 게 어때.”
“……뭐?”
노파가 멍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올려다봤다.
방금까지 장난스럽게 웃고 있던 그의 표정은, 지금 더없이 진지했다.
“적호방. 대웅방. 그런 쓰레기들을 박멸하진 못해. 아무리 죽여도 계속 생기니까. 여긴 그런 환경이야. 시궁창에서 쥐가 나오는 건 당연하잖아.”
청천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차라리 한곳에 모아서 관리하는 게 나아. 내가 그렇게 할 거고.”
“어디서 궤변을…….”
“당신이 보기엔 나나 그놈들이나 똑같아 보이겠지. 하지만 달라. 그놈들이 최악(最惡)이라면 나는 차악(次惡)이다. 왜냐면, 나는 빈자들이 가진 푼돈엔 관심이 없거든.”
훗날 이곳의 상권이 발달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건 아예 다른 종류의 이야기였다.
백수룡이 빈민가의 사파 패거리를 장악하려는 건 궁극적으로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언젠가 혈교와 싸울 일이 생긴다면…….’
청룡학관 학생들은 어디까지나 학생이다.
한 명 한 명의 재능이 뛰어나고 훗날 뛰어난 고수가 될 확률이 높지만, 그렇다고 백수룡이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움직일 수 있는 수하들이 필요해.’
얼마 전, 소살귀를 통해 혈교의 존재를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천무학관에 있는 혈룡, 그리고 그 뒤에 있을 혈교의 세력은 이미 상당히 강한 세력을 구축한 상황.
백수룡은 그에 대비를 해 둘 생각이었다.
“……정말 구제가 안 되는 놈들은 죽이고, 여지가 있는 놈들은 죽도록 굴릴 생각이야. 그러다 보면 이곳도 전보다는 평화로워지겠지.”
“…….”
노파는 백수룡의 말의 진의를 가늠하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그럴듯은 하다만……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믿지 마. 날 언제 봤다고 믿어?”
“하! 대체 어쩌라는…….”
백수룡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 말고 청천을 믿어.”
“…….”
“청천 그 녀석이 가난한 사람들 등골이나 빨아먹을 놈이야?”
노파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청천은…… 좋은 아이다.”
노파는 청천의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포두가 되겠다며 약한 몸으로 밤을 새워 공부하던 시절, 제대로 밥도 챙겨 먹지 못해 비쩍 곯아 있던 어린 녀석.
돈은 안 받을 테니 먹으라고 소면을 말아 주어도, 공짜로는 죽어도 안 먹겠다고 버티던 고집불통.
대신 한 번씩 돈을 내고 먹을 때마다 소면을 두 배로 말아 주면, 군말 없이 야무지게 먹던 녀석이었다.
청천은 이 빈민가에서 자수성가한 몇 안 되는 아이였다.
수십 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노파에게 청천은 자식 같은 아이 중 하나였다.
“내가 이곳 사람들 등골을 빨아먹으려고 하면, 아마 청천이 날 죽이려고 들걸.”
“흘흘. 그래. 그렇겠지.”
그 모습을 상상한 노파가 실실 웃었다.
백수룡은 아직 넘어져 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때.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는 게?”
잠시 백수룡이 손을 바라보던 노파는,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알았다. 청천의 눈을 믿어 보마.”
“잘 생각했어.”
“잠시 기다려 보거라. 우선 네가 말한 문파들의 정보를 가져올 테니. 나머지는 급하지 않으니 나중에 정리해서 주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자 오히려 백수룡이 고개를 갸웃했다.
“위에 보고하지 않아도 돼? 혼자서 결정할 만한 일이 아닐 텐데.”
“흘흘. 내게도 그 정도 권한은 있단다.”
백수룡은 몰랐지만, 노파는 하오문 남창지부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향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 빈민가만은 그녀가 최고책임자였다.
잠시 후 노파가 두툼한 서류를 가져왔다.
“여기 있다. 좀 오래된 것도 있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내가 말해 주마.”
백수룡은 자리에 앉아 노파가 가져온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어느새 밤이 깊은 시각.
문이 닫힌 객잔의 창문 밖으로, 뿌연 달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탁.
책자를 덮은 백수룡이 말했다.
“역시 철두라는 놈이 제일 낫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