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28
127화. 사람답게 살아라온몸에 난 상처에 고약을 덕지덕지 바른 철두는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찔리고 베인 상처가 쓰라려서가 아니었다.
상처 입고 다치는 것쯤이야 어릴 때부터 겪어 온 일상이었으니까.
철두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대장.”
“입 열지 마. 뒈지기 싫으면.”
초췌한 얼굴로 누워 있는 장삼의 상처에 붕대를 갈아주며, 철두는 무섭게 표정을 굳혔다. 장삼이 힘없이 웃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어차피 곧 뒈질 텐데. 가기 전에 대장이나 약 올리고 가야지.”
“망할 놈이…….”
평소 같았으면 어딜 대장한테 개기냐며 패 줬겠지만, 창백하게 부르튼 입술로 입을 여는 녀석 앞에선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최근 빈민가의 세력을 통일하려는 적호방의 공격이 거세졌다.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오고 덤벼드는 놈들.
그 탓에 철두파의 하루하루는 전쟁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오늘도 철두는 놈들의 포위에서 살아남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
“흐흐. 대장한테 간호도 받고 좋네. 이 장삼이 출세했어.”
“썩을 부하 새끼. 다 나으면 넌 삼 년 동안 뒷간 청소다.”
“어이쿠. 뒈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장삼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농담을 했다. 철두는 진심으로 그를 한 대 패 버리려다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참았다.
“씨벌…….”
대장과 부하.
서로를 그렇게 부르긴 하지만, 둘은 거지 왕초 밑에 있던 시절부터 함께 자라 온 친구이자 형제였다.
장삼이 흐릿해져 가는 눈으로 철두를 바라봤다.
“대장. 난 말이야. 대장이 왕초 새끼를 죽였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 이 지옥에서 벗어났구나, 씨벌 우리도 이제 좀 사람처럼 살아 보겠구나, 어깨에 힘주고 떵떵거리면서 살겠구나 싶었지. 한 몇 년은 그렇게 살았잖아? 흐흐.”
“…….”
철두는 말없이 친구를 바라봤다. 장삼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건 육체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대장한테 미안하더라고. 대장 손에서 누가 죽어갈 때마다, 어깨에 힘주고 다니면서 누굴 병신으로 만들고, 죽이고, 짓밟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잠시지만 장삼의 눈동자가 맑게 빛나고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무림에서는 회광반조(回光返照)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장삼이 고개를 들어 철두를 바라봤다.
“왕초 새끼랑 우리가 다른 게 뭘까?”
“……씨벌. 선비 나셨네.”
철두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장삼의 말이 그의 가슴에 깊게 박혔다.
오래전부터 철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복잡하게 대가리 굴리지 마. 배운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하류 인생이 다 그렇지.”
철두의 말에 장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씁쓸한 듯이 웃었다.
“우린 그냥 좀 사람답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만약 기회가 있었다면…… 우리도……. 아니, 이것도 다 핑계야. 청천 형님 같은 경우도 있고…….”
“씨벌. 그 형은 엄마라도 있었지.”
“흐흐흐. 그건 그래.”
웃음을 터트린 장삼의 눈빛이 다시 점점 흐려졌다.
회한 어린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철두야. 아직 안 늦었을지도 몰라. 너라도 사람답게 살아라. 지금부터라도…… 죄짓지 말고…….”
툭.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장삼의 고개가, 옆으로 힘없이 꺾였다.
“……자라. 개소리 그만하고.”
철두는 장삼의 눈을 감겨 주고, 얼굴에 거적을 덮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려서부터 누가 죽는 일에는 익숙했기에 슬픈 감정 따위는 없었다.
다만, 이 개 같은 상황에 열이 받을 뿐이었다.
방에서 나온 철두는 철두파의 본진, 낡은 장원 안을 둘러봤다.
“……씨벌.”
곳곳에 축 늘어져 있는 부하들이 보였다.
지친 표정과 몸에 감고 있는 붕대들.
무림인들이 쓰는 비싼 금창약은 엄두도 못 내고, 대신 고약 냄새가 낡은 장원에 진동했다.
“대장.”
“……대장.”
“대장…….”
돌아보는 얼굴들에 피로감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곧 죽을 듯 창백한 얼굴도 여럿이다. 붕대 사이로 핏물이 벌겋게 번져 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얼굴들도 여럿이다.
‘나흘 사이에 일곱이 당했다.’
아니, 방금 장삼이 죽었으니 여덟이 죽었다.
애초에 인원이 서른 남짓밖에 안 되는 철두파였다. 벌써 삼분지 일 가까이가 죽은 셈이었다.
“대장. 대웅방에서 연락이 왔어.”
철두파에서 총관 역할을 하는 아삼이 다가왔다.
철두는 그의 헐렁한 왼팔 소매에 잠시 시선을 주고 물었다.
“……뭐라는데?”
“똑같지 뭐. 밑으로 들어오면 도와주겠대. 그만 버티고 와서 꿇으래.”
“지랄.”
대웅방이나 적호방이나 똑같은 놈들이었다.
오히려 무공 좀 익혔다고 거만하게 구는 것은 대웅방의 퇴물 낭인 놈들이 더 심했다.
밑으로 들어가면 처음엔 노예 취급을 당할 거고, 얼마 안 있어 팽당할 것이 뻔했다.
“똥줄 타는 건 그 새끼들도 똑같아. 적호방이 놈들도 건드리기 시작했으니까.”
적호방은 세 세력 중 압도적인 전력을 갖췄지만, 일부러 전면전은 벌이지 않고 있었다.
대신 경쟁 세력을 하나둘 건드려서 천천히 말려 죽이고 있었다.
대웅방과 철두파가 스스로 숙이고 들어오도록 말이다.
물론, 철두는 숙일 생각이 없었다.
‘이대론 다 뒈진다. 방법을 찾아야 해.’
철두는 나름 고심했다.
평생 남을 들이받을 때 빼고는 별로 써 본 적 없는 대가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단순했다. 철두가 짧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다들 모여 봐.”
생각을 정리한 그가 형제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오늘 밤. 내가 적호방주를 죽이러 간다.”
“뭐?”
“미쳤어, 대장?”
적호방주는 엄청난 고수라고 알려져 있었다.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전 적호방주를 세 합 만에 반으로 갈라 죽였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철두는 코웃음을 쳤다.
“고수는 뭐, 배때지가 철판으로 돼 있어?”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인간이다. 칼을 쑤셔 넣으면 안 뒈질 리가 없었다.
철두는 그렇게 믿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다른 방법은 모른다.
철두는 방에 가서 손도끼와 단도, 몇 가지 암기를 챙겨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거 받아라.”
철두는 아삼에게 열쇠를 던졌다. 철두파가 모은, 얼마 안 되는 재물이 쌓여 있는 금고 열쇠였다.
“내가 내일 아침까지 안 돌아오면 네가 알아서 나눠 줘라. 삥땅 치지 말고 똑같이 나눠 가져. 그걸로 철두파는 해체다.”
“……철두야. 가면 죽는다.”
“닥쳐. 누가 죽으러 간대? 아침까지 돌아온다. 만약 돌아왔는데 다 튀었으면 하나하나 잡으러 갈 테니 각오들 해.”
히죽 웃은 철두는 돌아섰다. 사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두 무시했다.
끼이익…….
장원의 문을 밀자 낡은 경첩이 불쾌한 소리를 냈다.
밖으로 나온 철두는 빈민가의 차가운 밤거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춥네 씨벌.”
곳곳에서 고함과 욕설,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정도면 이 동네치고는 조용한 편이었다.
철두가 으슥한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나랑 잠깐 얘기 좀 할까?”
“!!”
낯선 기척에 철두는 황급히 돌아섰다. 동시에 손도끼를 뽑아서 던졌다. 그 솜씨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탁!
그러나 철두가 던진 손도끼는 상대의 손에 간단히 잡혔다.
정확히 손잡이 부분을 낚아챈 상대를 본 순간, 철두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고수.
그것도 보통 고수가 아니다.
“누구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생긴 사내였다.
달빛 아래 푸른 장포를 입고 서서 묘한 웃음을 짓는 모습은, 마치 전설 속의 요괴처럼 요사스럽기까지 했다.
“나? 철두파 접수하러 온 사람.”
가볍게 말하며 걸어오는 백수룡의 모습에, 철두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가 다른 손도끼를 꺼내 꽉 움켜쥐며 으르렁거렸다.
“못 보던 얼굴인데. 대웅방에서 보낸 놈이냐? 아니면 적호방?”
“둘 다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청룡방? 백룡방?”
이거 생각보다 이름 짓기 어렵네, 라고 중얼거리며 백수룡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 여유만만한 모습에 철두는 열불이 치솟았지만, 쉽사리 먼저 공격하지는 못했다.
상대의 빈틈을 찾으며 그가 물었다.
“둘 다 아니면……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말했잖아. 철두파를 접수하러 왔다고. 그러려면 두목한테 도전해서 이겨야지. 그게 너희들 규칙이잖아?”
“미친놈이었군. 카악- 퉤!!”
바닥에 걸쭉하게 침을 뱉은 철두가 양손에 손도끼를 하나씩 나눠 쥐었다.
“그런데 말이야.”
백수룡은 슬금슬금 거리를 재며 다가오는 그에게 물었다.
“아까 가는 방향을 보니 적호방으로 가는 것 같던데. 혼자서 적호방에 쳐들어가려고 했던 거냐?”
“그게 아니라 사실은…….”
“사실은?”
철두는 대답하는 척하며 상대의 흥미를 끌다가, 벼락처럼 달려들며 양손의 손도끼를 휘둘렀다.
“염라대왕한테 가서 들어, 이 새끼야!”
온몸의 탄력, 그리고 삼류 내공심법을 구해서 쌓은 쥐똥만 한 내공을 모두 더해서 내지른 필살의 일격.
직접 만든 이름 없는 초식.
철두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지금까지 이 거리에서 이걸 막아 낸 놈은 없었어!’
촤아아악!
십자로 휘두른 손도끼가 백수룡의 몸을 네 조각으로 찢었다.
“제법이긴 한데.”
그러나 찢어진 줄 알았던 백수룡의 신형이 허공에 흩어졌다. 철두가 눈을 부릅떴다.
‘잔상!’
철두의 왼편에서 다시 나타난 백수룡이 말했다.
어쩐지 그 목소리는 신이 난 것 같았다.
“체계가 없어. 제대로 못 배워서 말이지.”
그 순간, 백수룡이 뻗은 손이 철두의 팔을 잡았다.
철두는 그 힘에 저항하지 않고 딸려갔다.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평균보다도 키가 작은 편인 그는 백수룡과 머리 하나 이상 차이가 났다.
무릎을 굽혀 아래로 파고들었다가, 머리로 그대로 백수룡의 가슴을 받아 버릴 기세로 몸을 날렸다.
“뒈져라!”
“임기응변 좋고.”
나직이 감탄한 백수룡이 팔을 놓아주고 몸을 옆으로 피했다.
콰아앙!
담벼락을 들이받은 머리통이 천천히 옆으로 비켜섰다.
두꺼운 벽에 실금이 쩌저적 가 있었다. 머리가 울리는지 철두가 잠시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백수룡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가리 단단하고.”
“흐흐…….”
괴소를 흘리는 철두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핏발 선 두 눈은 살기로 가득했다.
야생에서 살아온 짐승 같은 모습에, 백수룡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이 녀석. 살성을 타고났군.’
전설로 내려오는 천살성(天殺星)까지는 아니지만, 철두는 보기 드물게 살기를 많이 가지고 태어난 체질이었다.
이마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슥 닦아 낸 철두가 다시 백수룡에게 달려들었다.
“뒈져라!”
휘익! 휙휙휙!
마구잡이로 손도끼를 휘두르고, 단도를 뽑아 기습적으로 찌르고, 품에서 암기를 꺼내 던졌다. 갖고 다니던 독도 모두 뿌렸다.
하지만 철두의 어떤 공격도 백수룡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으아아아!”
철두는 괴성을 지르며 발광하듯 덤비는 것을, 백수룡은 침착하게 받아주었다.
제압하려면 처음부터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철두의 모든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직접 싸워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지.’
상대가 어떤 식으로 싸움을 하는지, 싸울 때 버릇은 어떤지, 신체의 발달 정도는 어느 정도이며, 활용은 또 얼마나 하고 있는지.
그래야 어떤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 좋을지 판단할 수 있었다.
“……그게 딱이겠군.”
순간 백수룡의 눈이 빛났다.
네 명의 사부의 절세신공 외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혈교의 무공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떠올린 백수룡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이제 그만하자.”
“뒈지라고오!!”
“일단 정신 좀 차리고.”
휘익!
백수룡은 손을 뻗어 살기충천한 철두의 옷깃을 잡더니, 단숨에 바닥에 메다꽂았다.
한순간에 세상이 뒤집힌 철두의 몸은 바닥을 향해 등부터 떨어졌다.
콰아아앙!
등이 부서질 듯한 격통에, 철두가 눈을 부릅떴다. 그의 입에서 피가 섞인 기침이 토해졌다.
“커헉! 쿨럭! 쿨럭……. 이런, 씨벌…….”
백수룡은 철두의 앞에 서서 그를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일어나지 말고 들어.”
“죽인……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철두가 바닥을 기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사실 아까 하는 말을 좀 들었다. 장삼이었나? 죽은 네 친구 이름이.”
“닥……쳐…….”
철두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몸을 일으켰다.
평생을 발버둥만 치며 살아왔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죽음이 눈앞에 들이닥쳐도 포기할 수 없었다.
백수룡이 그를 보며 덤덤히 말했다.
“……살릴 수 있으면 살려 주고 싶었는데, 내가 아니라 생사신의가 와도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좀 엿들었다.”
“닥치……라고……!”
철두는 바닥을 더듬어 떨어뜨렸던 손도끼를 다시 쥐었다. 간신히 몸을 세우고 숨을 헐떡이며, 무릎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비틀대며 겨우 일어난 그를, 백수룡이 조금은 쓸쓸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너희한테 기회를 주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닥치……라고…… 뭐?”
철두는 순간 머리가 띵해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자신을 죽이러 온 줄 알았던 사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다. 하지만 빈민가에 상권이 들어오고 자리를 잡으면 너희에게 정당한 일거리를 주마. 아무도 안 죽이고, 안 빼앗고, 죄짓지 않고 살 수 있게.”
“무슨 미친 소리를…….”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철두에게,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내 밑으로 들어와.”
“…….”
그 순간, 철두는 장삼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철두야. 아직 안 늦었을지도 몰라. 너라도 사람답게 살아라. 지금부터라도…… 죄짓지 말고…….
친구의 유언을 떠올린 순간, 철두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 왜……?”
몹시 당황한 철두는 손등으로 눈가를 거칠게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