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49
148화. 혈수귀옹 (1)
“흐흐. 재미있는 놈들이었어.”
염라부가 금이 간 뼈에 부목을 대며 말했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에게 패배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악인곡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게다가 무공으로 패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조금 아쉽긴 하단 말이지.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하여튼. 이 염라부를 팔씨름으로 꺾다니, 아주 크게 될 놈이야.”
“흥. 마음에 들었나 보군.”
반면 낭아도는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의 십 초를 받아낸 수라광마라는 어린 도객.
녀석은 죽을 각오로 자신의 도를 받아내면서도,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 눈빛을 떠올리자 다시 그 불쾌감이 떠올라 팔에 소름이 돋았다.
‘다음에 만났을 때도 오늘처럼 압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때문에 낭아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상한 구석이 있는 놈들이야. 우리랑 같은 부류라고 하기엔 내공이 정순했어. 도법은 사납긴 했는데…….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뭐, 목적을 가지고 들어오는 놈들이 한둘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염라부의 말에 낭아도는 혀를 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악인곡의 문지기였지만, 상대가 의심된다고 해서 반드시 쫓아내거나 죽일 의무는 없었다.
무림맹이 쳐들어온다면 모를까. 그 정도 일이 아닌 한, 그저 이곳에서 가끔 찾아오는 놈들을 상대로 유희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부목을 다 댄 염라부가 벽안귀를 돌아보며 말했다.
벽안귀는 절강오마가 들어간 악인곡의 입구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까 그 색마 놈 말이야. 왜 그냥 들여보낸 거야?”
“색마가 아니라 옥면음랑.”
“그게 그거지. 아무튼 그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 말이야. 왜 시험도 안 치르고 들여보낸 거냐니까?”
“…….”
“응? 말해 봐. 나 궁금한 건 못 참는 거 알잖아. 벽안귀 네가 이유도 없이 그럴 놈이 아닌데 말이지.”
염라부의 계속된 채근에, 벽안귀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시험할 필요가 없었다.”
“필요가 없다니?”
벽안귀는 옥면음랑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을 떠올리며 말했다.
“강한 놈이었다. 다른 놈들이 시험을 보는 동안, 계속 우리를 주시하고 있더군.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도록 말이야.”
“뭐, 그야 의형제들이 다칠 것 같으면 끼어들어서 말릴 생각이었겠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놈은 일이 틀어지는 순간 우리를 죽일 생각이었을 거다.”
“…….”
벽안귀의 눈동자가 새파란 색인 이유.
바로 특별한 안법을 익혔기 때문이었다.
그 안법 덕분에 벽안귀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악인곡 문지기들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무공도 셋 중에서 벽안귀가 가장 고강했다.
낭아도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불쾌하군. 놈이 우릴 죽일 만한 능력은 되나?”
“그거야 싸워 봐야 알겠지. 그거까진 내 눈으로도 읽을 수 없거든.”
벽안귀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염라부는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젠장. 미리 알았으면 폭렬철권마 놈의 팔을 아까 잘라 보는 건데.”
염라부의 몸에서 흉포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이곳은 악인곡(惡人谷).
보통 인간은 상상도 못 할 수라장을 거쳐 온 살귀들이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이었다.
“이미 들여보냈으니 다시 가서 시비 거는 것도 우습고……. 신입은 첫날에 건드리지 않는다는 규칙도 있으니 말이야.”
악인곡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만약 아무런 규칙과 질서도 없었다면, 저 안은 진작에 지옥도가 되었을 것이다.
“뭐, 며칠 더 살아남는다면 그때 다시 볼 일이 있겠지.”
문지기 삼 인은 절강오마가 들어간 악인곡 안쪽을 잠시 바라봤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는 듯, 낭아도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그 색마 놈. 구음마녀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릴 텐데.”
“그러고 보니 구음마녀가 제일 싫어하는 놈이 채음보양하는 놈이었지?”
“그년은 사내라면 다 싫어해. 치를 떤다고.”
“크크. 하긴 그렇지.”
구음마녀는 혈수귀옹과 함께 악인곡에서 가장 유명한 악인이었다.
그녀를 십대악인으로 만든 빙공은, 단숨에 반경 수십 장을 통째로 얼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악인곡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는 혈수귀옹과 달리, 구음마녀는 혼자 조용히 은거해서 살고 있었다.
“이거, 운이 좋아야 다시 만나겠는걸?”
“혹시 또 몰라. 저놈이라면 구음마녀를 홀릴 수 있을지도. 얼굴 반반한 거 봤잖아? 아랫도리가 그 반만 해 주면…….”
“낄낄낄!”
두 사내는 대화 주제를 음담패설로 바꿨다. 하지만 그것도 금세 흥미를 잃고 시들어졌다.
“……젠장. 따분하군.”
“악인곡이 그렇지, 뭐.”
염라부는 바위 위에 누워서 늘어지게 하품을 했고, 낭아도는 칼에 짐승의 피라도 먹여야겠다며 칼을 뽑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
벽안귀만이 계속 악인곡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짝.
혀로 입술을 핥은 벽안귀는 악인곡 안쪽을 바라보며 낮게 웃었다.
“조만간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지.”
새파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무척 갈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벽안귀는 오래도록 절강오마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 * *
“악인곡이라고 해서 귀신이라도 나올 줄 알았더니…….”
“평범한 마을이랑 다름이 없네요.”
악인곡으로 들어온 절강오마, 즉 백수룡과 그의 제자들은 내부를 둘러보며 수군댔다.
정확히 말하자면 촌놈처럼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제자들이었고, 백수룡은 유심히 주변을 관찰했다.
‘천혜의 요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군.’
악인곡은 호리병 모양으로 돼 있었다.
좁은 호리병의 입구로 들어오면, 그 안은 상당히 넓은 분지가 형성돼 있었다.
악인곡 주위를 둘러싼 절벽은 무척이나 가팔라서, 절정고수라고 해도 경공에 자신이 없는 자들은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저 주변에 진법을 둘러 놨다고 했으니…….’
몰래 침입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제자들도 신기한지 주위를 둘러보며 수군댔다.
“저쪽에 천도 흐르고 있고, 어라? 저쪽에선 농사도 짓나 본데?”
“사파의 마두들이 농사짓는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본다.”
“사람들 인상도 별로 안 나빠요. 다들 원강 선배처럼 생겼을 줄 알았는데…….”
“뭐 인마?”
백수룡은 티격태격하는 제자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러곤, 힘겹게 걷고 있는 위지천에게 물었다.
“천아. 상태는 어떠냐?”
“견딜 만해요…….”
위지천이 창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헌원강이 그를 한 팔로 부축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곧 마의란 놈을 찾을 테니까. 상웅이도 밖에서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거상웅은 일부러 바깥에 남았다.
금룡상단의 지부를 통해 청룡학관에 연락을 취하고, 인맥을 통해서 뛰어난 의원도 불러오기 위해서였다.
백발마수는 위지천의 독을 악인곡의 마의만이 해독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백수룡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거상웅에게 의원을 찾아달라 부탁했다.
“증상은?”
“몸 안에 열이 나고 조금 어지러워요. 하지만 괜찮아요. 내공도 쓸 수 있고, 검도 휘두를 수 있어요. 가끔씩 오싹한 기분이 들지만…… 괜찮아요.”
위지천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창백한 얼굴과 새파란 입술을 볼 때 결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어떤 독인지를 모르니…….’
독에 대해서는 백수룡도 웬만한 의원 못지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해독약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백수룡이 다른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둘러 마의부터 찾아야겠다. 근처에 있는 놈들에게 물어봐서…….”
마침, 그들에게 먼저 다가온 자가 있었다.
“이보게들. 신입인가?”
말을 걸어온 자는 펑퍼짐한 흑의를 입은, 키는 작지만 몸이 전체적으로 푸짐한 중년의 사내였다.
사내가 기름진 얼굴로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흑비돈이라고 하네. 악인곡에서 지낸 지는 올해로 오 년이 되었지. 처음 왔을 때는 참 무섭고 두려웠어.
악명 높은 악인곡이 아닌가? 사람 잡아먹는 마두들, 살인이 취미 겸 특기인 미친놈들만 있는 줄 알았지. 음식에 독은 없을까, 밤에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네. 하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고. 그런데 자네들. 오늘 밤엔 어디서 묵을 생각인가?”
한눈에 보아도 호구 잡아서 털어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 보였다.
백수룡은 혀를 찼다.
저런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호구가 이곳에 있을 리가…… 있었다.
“하하! 우리는 절강오마라고 하오! 마침 묵을 곳이랑 이것저것 궁금하던 참이오!”
“내 식견이 짧아서 자네들의 위명을 듣지는 못했네만, 하나같이 고강한 무공을 익힌 것이 분명해 보이는군.”
“이야. 형씨가 뭘 좀 아는군. 우리로 말하자면…….”
흑비돈의 세 치 혀에 홀딱 넘어가 주절주절 떠드는 헌원강을 보며, 백수룡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에라이 호구 놈아.”
따악!
“아악! 왜 때려요!”
헌원강이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뒤를 돌아봤다.
평소보다 두 배는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더 맞기 싫으면 비켜라.”
백수룡은 헌원강이 옆으로 치우고 앞으로 나섰다. 흑비돈이 빠르게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봐. 뭣 좀 묻자.”
“헤헤. 잘생긴 형씨가 절강오마의 첫째이신가 보구만. 뭐든지 물어보시오. 내 성심성의껏…….”
백수룡은 흑비돈의 멱살을 덥석 움켜쥐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거짓이 섞여 있으면, 혀를 조금씩 잘라 주지.”
“어, 어허! 이러면 곤란해! 곤란하다고!”
흑비돈이 바둥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악인곡에선 신입은 첫날에는 안 건드려. 신입도 첫날에는 싸움을 일으켜선 안 돼. 그게 규칙이란 말이오! 어기면 큰일 나!”
내공이 담긴 흑비돈의 외침이 퍼져 나가자, 지나가던 악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어이. 흑돼지가 한 말 못 들었어?”
“오늘은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지내라.”
“내일부터는 얌전히 지내고 싶어도 못 그럴 테니까.”
살기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악인들.
하지만 그중 무기를 뽑거나 싸우려는 자는 없었다.
다들 이죽거리며 경고에 그칠 뿐.
‘흐음. 이 말은 진짜인가 보군.’
악인곡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흑비돈을 위협한 것이었다.
백수룡은 미련 없이 멱살을 놓아주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백수룡은 품 안에서 은전을 꺼내 좌우로 흔들었다.
흑비돈의 눈동자가 은전의 움직임을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예상대로, 물욕이 아주 많은 놈이었다.
“정보료를 제공할 테니 개수작 부리지 말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것. 어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악인곡 같은 곳이라면 더더욱.
백수룡이 거래를 제안하자, 흑비돈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맺혔다.
“헤헤. 뭘 좀 아시는 분이군. 내 아는 것이라면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소. 돈까지 받는데 거짓말을 할 정도로 후안무치한 놈은 아니거든.”
“마의는 어디 가면 찾을 수 있냐?”
“…….”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첫 질문부터 흑비돈은 말문이 턱 막혔다. 잠시 후 그가 조심스럽게 일을 열었다.
“알고는 있는데……. 지금 당장 찾아갈 생각이오?”
“그래.”
“그 위치만 알려드리면…….”
백수룡은 품에서 은전을 몇 개 더 꺼냈다.
“안내해.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돈을 줘? 마의의 거처까지 안내하면 이걸 다 주지.”
“…….”
“돈 벌기 싫어? 그럼 다른 놈한테 안내해 달라고 하면 되는 거고.”
백수룡이 주변을 불러보자, 몇몇 악인들이 흥미를 느끼며 다가왔다.
“아, 아니오. 내가 안내해 드리겠소!”
“이건 선금.”
은전 하나를 덥석 받아든 흑비돈이 돌아서며 말했다.
“따라오시오. 어차피 후회하는 건 당신들 몫이니까.”
* * *
마의의 거처는 악인곡에서도 구석지고 습한 곳에 있었다.
“우윽! 무슨 냄새가…….”
일행은 코를 찌르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몇몇은 코를 틀어막았다.
마의의 거처라는 곳에 가까이 갈수록 온갖 냄새가 진동했다.
약 냄새, 피 냄새, 동물 냄새, 오물 냄새.
그리고…….
‘시체 냄새.’
그것도 약품에 처리한 시체 냄새였다.
과거 혈교의 온갖 실험을 참관한 적이 있던 백수룡은 그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의라는 놈이 미친놈인 건 확실하군.’
잠시 후, 흑비돈을 길잡이로 한 일행은 마의의 거처인 오두막 앞에 도착했다.
똑똑
문을 두드린 흑비돈이 안에 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 마의 어르신. 안에 계십니까?”
“누구냐?”
안에서 신경질적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 밖이 보일 리 없는데도 불구하고, 흑비돈은 몸을 숙이며 대답했다.
“저 흑비돈입니다. 신입들이 어르신을 뵙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신입? 나중에 오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음에는 무슨. 저리 비켜.”
백수룡은 흑비돈을 옆으로 비키게 한 후, 발로 문을 걷어찼다.
콰앙!
문을 거칠게 열어 버린 백수룡과 제자들이 오두막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흑비돈이 뒤에서 비명을 질렀다.
“미, 미쳤군!”
오두막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환자에게 침을 놓고 있던 노파가 불청객들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신입이라더니. 싸가지가 없는 놈들이 떼로 들어왔군.”
“젊은 놈들이 다 그렇지.”
마의 옆에 누워서 팔에 침을 맞고 있던 노인이 킬킬 웃으며 대답했다.
“이보시오! 이렇게 예의 없게 굴면 당신들 나중에 큰일……. 허, 허억!”
급히 일행을 따라 들어온 흑비돈이 그 노인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기절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혀, 혈수귀옹 어르신…….”
십대악인의 일인이자, 이곳 악인곡의 지배자.
혈수귀옹이 마의와 함께 일행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