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50
149화. 혈수귀옹 (2)혈수귀옹은 침상에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오두막에 들어온 사람들 중 누구도, 그를 보며 편안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저자가 혈수귀옹?’
‘하필이면 이곳에서…….’
‘어, 어떡하지? 싸워야 하나?’
다들 당황한 표정으로 혈수귀옹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가 피식 웃으며 흑비돈에게 물었다.
“흑비돈아. 네가 손님들을 데려온 게냐?”
흑비돈은 저승사자라도 만난 것처럼 덜덜 떨며 대답했다.
“그, 그게 아니라…… 이자들이 멋대로 마의님께 데려다 달라고…….”
“헌데 왜 네 주머니에서 은전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냐.”
“히, 히익!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깜짝 놀란 흑비돈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를 했다.
혈수귀옹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 녀석아. 손님을 데려올 거였으면 그 전에 악인곡의 규칙과 예의를 가르쳤어야지. 저들이 악인곡의 나쁜 소문만 듣고, 이곳이 멋대로 굴어도 되는 마두들의 소굴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그게 온전히 저들만의 잘못이겠느냐?”
혈수귀옹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잔잔했으며, 그 어떤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흑비돈은 시체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연신 잘못을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머리를 바닥에 마구 찧었다.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혈수귀옹이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저 아이들도, 너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반성한 것 같으니 너는 이만 가 봐도 좋겠다.”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절을 한 흑비돈은 무릎걸음으로 오두막 밖까지 나가더니, 몸을 돌려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허어. 저 녀석. 지나치게 겁을 먹는군. 이보게, 마의. 예전에 내가 저 녀석 친구라도 죽인 적이 있나?”
“이놈아. 네가 기억 못 하는 걸 내가 어찌 알아?”
혈수귀옹은 마의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허물없이 대화하는 모습이 오랜 친우처럼 보였다.
그때까지도, 백수룡과 그의 제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신입이로군.”
혈수귀옹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바라봤다.
백수룡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자…… 강하다.’
백발마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딱히 기도도 드러내지 않고, 내공도 전혀 끌어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혈수귀옹의 존재감은 거대했다.
과연 무림의 수많은 악인들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법했다.
‘역천신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리고 네 사부의 무공을 더한다면 이길 수 있을까?’
백수룡은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 싸우면 질 확률이 더 높다는 게 솔직한 판단이었다.
“그래. 너희는 어디서 온…… 으음?”
킁킁.
혈수귀옹은 갑자기 코를 킁킁대더니, 누워 있던 침상에서 반쯤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여 백수룡을 불렀다.
“너. 이리 와 보거라.”
“…….”
백수룡이 대답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자, 혈수귀옹은 피식 웃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해치지 않을 테니 이리 오너라.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렇다.”
“궁금한 게 무엇이오?”
“네 몸에서 내 사제의 냄새가 나는데. 혹시 오는 길에 만났느냐?”
순간, 동요를 감추지 못한 제자들이 표정을 굳혔다.
다행히 혈수귀옹의 시선은 무표정한 백수룡에게 고정돼 있어, 다른 이들의 표정은 보지 못한 듯했다.
[다들 진정해라. 지금부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당황하지 마.]제자들에게 전음을 보낸 백수룡은 혈수귀옹을 향해 걸어갔다.
동시에 적당히 기도를 드러냈다.
너무 강하지는 않게, 혈수귀옹이 자신을 제법이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만.
“호오?”
예상대로 혈수귀옹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사형은…… 자신 앞에서 당당하게 구는 무인을 좋아합니다.
백발마수가 알려준 정보를 떠올리며, 백수룡은 일부러 조금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당신이 혈수귀옹입니까? 악인곡의 왕이자 십대악인인 그 혈수귀옹이 맞습니까?”
“그래. 내가 바로 혈수귀옹이다.”
조금 긴장한 듯 딱딱한 말투에, 혈수귀옹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마치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는 듯한 미소였다.
꿀꺽.
백수룡은 일부러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을 향한 혈수귀옹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표정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말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했으니까.
“그럼…… 당신이 방금 말한 사제가 백발마수가 맞습니까?”
“사제가 자기 입으로 별호까지 알려주더냐? 흔치 않은 일인데. 보통 사제의 별호를 알게 된 녀석들은 찢겨 죽거든. 나보다 성격이 급한 녀석이라.”
혈수귀옹의 눈이 가늘어지고, 그의 몸에서 은은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마의가 혈수귀옹 옆에서 혀를 찼다.
“죽일 거면 나가서 해. 네놈이 치울 것도 아니면서.”
“오늘은 안 죽인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만든 규칙인데 나부터 지켜야지.”
피식 웃으며 말한 혈수귀옹이 다시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래서, 내 사제를 만났느냐?”
“오는 길에 만났습니다. 재수 없게 굴어서 검을 섞었지요.”
“!!”
그 대답에 혈수귀옹보다 더 놀란 것은 백수룡의 제자들이었다.
눈을 부릅뜬 그들이 백수룡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왜 도발을 해요!’
‘싸우려는 거야?’
‘우, 우린 어떡하지? 같이 협공이라도 해야 하나?’
반면 혈수귀옹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별로 화가 난 것 같지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무서운 질문을 했다.
“아주 맹랑한 놈이로구나.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내 사제를 죽여서 머리라도 들고 왔느냐?”
“……이렇게 되었소.”
백수룡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누구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혈수귀옹을 향해 큰절을 올린 것이다.
“사백님. 절 받으십시오. 옥면음랑 백무룡이 인사드립니다.”
“……사백?”
“사백?”
내내 여유롭던 혈수귀옹이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감정이 비쳤다.
옆에서 시큰둥한 얼굴로 구경하던 마의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사백이라고 했느냐?”
사백이란 사부의 사형을 이르는 호칭이었다.
즉, 옥면음랑이 백발마수의 제자라는 말이 된다.
“무슨 소릴 하는 게냐? 내가 왜 네놈의 사백이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묻는 혈수귀옹에게, 백수룡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제 실력은 스승님께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저와 검을 섞으신 후, 제 재능이 마음에 드셨다며 저를 제자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악인곡으로 가 있으라고 보내셨습니다.”
백수룡은 백발마수에게 캐낸 정보를 통해 이야기를 꾸며 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백발마수는 재능 있는 무인들을 종종 납치해 제자로 들였던 터라, 그 말에 설득력은 충분했다.
다만 그중에 진짜 제자라고 할 만한, 그리고 이렇게 당당하게 제자라고 나섰던 녀석이 없었을 뿐.
혈수귀옹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그렇다고 치자. 헌데 사제는 어디 가고 너만 온 게냐?”
“함께 오시던 도중에 혈옥수를 발전시킬 영감이 떠오르셨다며, 가까운 동굴을 찾아 들어가셨습니다. 언제쯤 이곳에 오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수룡은 공손하게, 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대답했다.
혈수귀옹은 뚫어져라 그를 바라봤다.
‘확실히 자질은 뛰어나 보이는데……. 사제가 탐을 낼 만도 해.’
재능있는 제자를 들이는 것도, 갑자기 폐관에 들어가는 것도 백발마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혈수귀옹의 마음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다.
“네가 정말 내 사제의 제자라고? 증거도 없이 그 말을 어찌 믿느냐?”
“제가 스승님을 처음 뵌 것은 남창의 적호방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스승님은 그곳에서…….”
백수룡은 백발마수와의 첫 만남부터 시작해 검을 섞게 된 것, 그리고 제자가 된 사정을 실감 나게 이야기했다.
그 거짓말 속에는 사실이 상당수 섞여 있었기에, 누가 들어도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다.
“……스승님과 긴 시간을 함께 지낸 것은 아니지만, 사백이신 혈수귀옹 어르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백수룡이 포권을 취하자, 뒤에 있던 절강오마도 황급히 그를 따라서 포권을 취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혈수귀옹이 눈썹을 꿈틀댔다.
“네 뒤에 있는 아이들도 사제의 제자들이냐?”
“저와 오랫동안 함께 다닌 형제들입니다. 사부님의 제자는 저 하나뿐이지만, 이 녀석들도 함께 악인곡에 몸을 의탁하려 합니다.”
백수룡은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로 혈수귀옹의 혼을 쏙 빼놓았다.
논리적으로도 흠이 없었고, 백발마수와 깊은 사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까지 알고 있었다.
혈마안에 당해서 모두 실토한 것이지만, 혈수귀옹도 그것까지 예상할 수는 없었다.
‘사제가 고문이나 협박에 내 얘기를 나불댈 녀석도 아니고.’
점점 백발마수의 제자가 맞는 것 같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마의가 끼어들었다.
“헌데 백발마수의 제자란 놈이 나는 왜 찾아온 거냐? 아까 보니 아주 잡아먹을 기세로 쳐들어오던데.”
마의는 깐깐한 생긴 노인이었다. 그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망했다…….’
‘저 늙은이가 다 된 밥에 재를!’
백수룡의 제자들은 잔뜩 긴장했다.
여기서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 앞서 한 거짓말이 전부 들통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할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백수룡은 머리를 긁적이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제가 스승님께 속은 것 같습니다.”
“속다니?”
“악인곡에 도착하면 마의를 찾아가 수염을 잡고 흔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쓸 만한 영약을 내놓을 거라고…….”
그 능청스러운 연기에 혈수귀옹이 폭소를 터트렸다.
“뭣? 하하하! 과연 사제가 할 만한 고약한 장난이구나!”
“뭐가 웃기다고 웃어, 이놈아! 네 망나니 같은 사제 때문에 수염이 몽땅 뽑힐 뻔했는데!”
“푸하하하! 재밌지 않느냐!”
“끄응. 백발마수 이 고얀 놈. 돌아오면 독을 잔뜩 실험해 줄 테다.”
다행히 마의도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백수룡이 두 노괴를 속여 넘기는 과정을 지켜본 네 제자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거짓말을 저렇게 잘해?’
‘선생님 전직이 사기꾼 아니야?’
‘이제 저 인간 말은 아무것도 안 믿을 거야…….’
‘눈 뜨고 코 베인 느낌이야.’
어찌나 웃었는지, 혈수귀옹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한 점의 의심도 찾을 수 없었다.
“클클. 잘생기고 무공도 뛰어난 사질이 생겨서 나도 좋구나!”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백님.”
흐뭇하게 웃은 혈수귀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친근하게 백수룡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럴 게 아니다. 다들 내 집으로 가서 더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내 저녁 식사를 대접해야겠다.”
“…….”
찰나의 순간, 백수룡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굴렸다.
‘천이의 독을 해독해야 하는데…… 지금 마의에게 부탁해 봐?’
하지만 그러려면 백발마수가 위지천을 중독시킨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겨우 혈수귀옹의 의심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다시 의심을 살 만한 상황을 굳이 만들어야 할까?
“왜? 싫으냐?”
혈수귀옹의 재촉에 백수룡은 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천아. 조금만 더 참아라.’
백수룡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과분한 은혜에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허허. 괜찮다. 사제의 제자면 내 제자이기도 한 셈이다.”
“그럼 감사히 신세 지겠습니다. 뭣들 하는 거냐! 너희도 사백께 인사드리지 않고.”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혈수귀옹은 긴장한 표정의 절강오마를 돌아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부담가질 것 없다. 다 함께 내 집으로 가자꾸나.”
그렇게 절강오마는 마의의 거처에서 나와 혈수귀옹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혈수귀옹과 백수룡이 앞에서 나란히 걷고, 다른 이들은 그 뒤에서 따라갔다.
뒤에서 따라가던 헌원강이 입 모양으로 다른 일행들에게 말했다.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다들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의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당장은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아버렸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말실수 한 번이면 끝장이야.’
제 발로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다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