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54
153화. 혈교의 유산 (2)‘역시 바로 쫓아오는군.’
백수룡은 뒤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쫓아오는 혈수귀옹의 기척을 느꼈다.
“놈! 껍질을 벗겨 소금물에 담근 후에 사지를 찢어 개밥으로 던져 주마!”
웬만한 무인은 귀를 틀어막고 비틀거릴 정도로 내공이 가득 담긴 사자후에, 지하로 이어진 길이 무너질 것처럼 진동했다.
고개를 반쯤 돌린 백수룡이 내공을 담지 않고 소리쳤다.
“굴이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어? 소중한 보물을 그대로 묻어 버리고 싶으면 계속 소리 질러 보시든가!”
“……이런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 같으니!”
혈수귀옹은 이를 갈았지만, 백수룡의 말대로 굴이 무너질 위험이 있기에 더 이상 사자후를 내지르지는 못했다.
입구로 향하는 굴은 꽤 길게 이어져 있었고, 점점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백수룡은 검기를 날려, 눈에 보이는 족족 횃불을 전부 꺼뜨렸다.
이내 입구로 향하는 통로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백수룡의 뒤쪽에서 혈수귀옹의 비웃음이 길게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 숨는다고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더냐?”
“방해 정도는 되겠지.”
백수룡은 품 안에 손을 넣어 암기를 바닥에 깔았다.
뒤따라오던 혈수귀옹이 그것을 밟았으나, 내공을 두른 발에는 어떤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고작해야 신경을 건드리는 정도에 불과했다.
“가소로운 놈! 기껏 한다는 짓이 이런 잔재주더냐!”
콰콰콰콰쾅!
혈수귀옹은 아예 바닥을 갚아 엎으며 맹렬하게 추격했다.
상대의 무지막지한 내력에 혀를 내둘렀다.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진 않은 모양이군. 내공으로는 상대가 안 될 정도야.’
실제로 혈수귀옹은 내공은 십대악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깊었다.
백수룡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정면승부는 손해가 너무 크다.’
혈수귀옹은 전력을 다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고수.
놈을 죽이려면 백수룡도 적지 않은 부상을 감수해야 한다.
사투 끝에 혈수귀옹을 처치한다 해도,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악인곡의 마두들이 부상을 입은 백수룡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그때, 한층 가까워진 거리에서 혈수귀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강오마 말이다! 네 의형제들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 것 같으냐? 아직 살아 있을까?”
“멍청한 늙은이. 그놈들이 의형제라는 말을 믿었단 말이야?”
“크흐흐. 그 말이 진짜인지 허세인지는 나중에 친히 확인해 주마.”
백수룡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에 남겨진 학생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잘 대처하길 바라는 수밖에.’
악인곡에 오기 전에 신신당부했고, 실력들도 제법이니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수룡은 입술을 깨물며 제자들에 대한 걱정을 떨쳐냈다.
‘조금만 버티고 있어라. 이 안에서 오래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혈교가 보물을 숨겨 둔 장소라면 분명 혈교의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혈교의 기관진식은, 과거 혈교의 무공 교두였던 백수룡에겐 안방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곳이라면…….
마침 거대한 문의 모습이 백수룡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 안에서 죽여 주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문을 노려보는 혈마안이 한층 더 요사스럽게 빛났다.
* * *
백수룡은 가까워진 문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까앙!
현철로 만든 문이라더니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두께 또한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두꺼워 보였다.
‘강기로 파괴하려 해도 쉽지 않겠어.’
물론 계속 두들기면 언젠가는 부술 수 있겠지만, 강제로 열면 내부가 무너지거나 폭약이 터지도록 설계돼 있을 확률도 있었다.
때문에 혈수귀옹도 지금까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 것이고.
“함부로 문을 건드리지 마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백수룡은 문을 향해 내달리며 빠르게 문의 구조를 훑었다.
‘역시! 역천신공을 익혀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군.’
문 전체에 새겨진 화려한 무늬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화려한 문양에 불과하겠지만, 백수룡은 거기에 숨겨진 의미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역천신공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초식.
혈천무(血天舞)에 따라 문에 새겨진 조각들을 순서대로 눌러야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타닷!
땅을 박찬 백수룡은 단숨에 철문에 일장을 날렸다.
정확히 기관장치가 시작되는 부분에, 역천신공의 내공을 힘껏 불어넣었다.
지이잉……!
현철로 된 문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역천신공의 내공이 기관장치를 발동시킨 것이다.
드르륵…… 철컥! 철컥!
문에 새겨진 조각들이 서로 맞물리더니 꿈틀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완벽하게 펼쳐야 한다.’
혈천무는 맨손 또는 어떤 무기로도 응용할 수 있는 초식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가진 무기에 따라서, 어떤 적이냐에 따라서 다르게 펼쳐지는 초식.
이 앞을 가로막는 문은 가상의 적이었고, 혈천무의 숙련도를 시험하는 수문장이었다.
백수룡이 제대로 된 혈천무를 펼치지 못한다면, 녀석은 자격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것이다.
“보여 주마! 하아압!”
기합을 지른 백수룡은 철문을 타고 오르며 문에 설치된 기관장치들을 순서대로 타격했다.
그 모습은 마치 구름을 타고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용과 같았다.
“이노옴! 뭐 하는 짓이냐!”
뒤따라 그 현장에 도착한 혈수귀옹이 그 모습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다 기관장치가 잘못 발동되기라도 하면……!”
혈수귀옹은 달려들어 백수룡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구궁……!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도 꿈쩍하지 않던 거대한 철문이, 굉음을 내며 스스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 문이 열린다!”
눈을 부릅뜬 혈수귀옹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백수룡에 의해 완벽하게 재현된 혈마의 무공.
오랜 시간 혈교의 보물을 지켜 온 수문장이, 시험을 통과한 백수룡에게 자신의 내부를 허락했다.
“실제로 사용해 보기는 처음인데……. 이런 느낌이었군.”
자리에서 내려선 백수룡이 활짝 열린 철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혼자서 혈천무를 수련해 본 적은 있어도, 무언가를 대상으로 펼쳐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역천신공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마 선대가 후인을 위해 안배해 둔 장치인 것 같군.’
철문을 일별한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혈수귀옹을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네. 덕분에 이것저것 많이 챙겨가게 생겼으니 말이야.”
“……뭐?”
홱 몸을 돌린 백수룡이 경공을 펼쳐 문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이노오옴! 거기 서지 못하겠느냐!”
뒤늦게 정신을 차린 혈수귀옹이 경공을 펼쳐 백수룡을 뒤쫓았다.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문이 열리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악인곡을 철옹성으로 만들고, 악인들을 노예로 삼아 굴을 파게 했다.
비밀을 아는 자들은 모두 죽였다.
친우라 여겼던 자들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이곳의 정체를 알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빼앗길 것 같으냐? 네가 누구라도 해도 내 보물을 넘겨주지 않는다. 설령 네놈이…… 당대의 혈마라고 해도!”
혈수귀옹은 방금 전 백수룡이 펼친 무공을 보았다.
광기에 물들었다 한들, 혈수귀옹은 결코 멍청한 자가 아니었다.
그런 신공절학을 눈앞에서 보고 어찌 상대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상관없었다.
‘혈마라고? 그래 봤자 아직은 나보다 약하다.’
오히려 지금이 놈을 죽일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흐흐흐…… 보물은 내 것이야. 저 안에 있는 보물은 전부 내 것이란 말이다. 내 것을 빼앗겠다고? 감히? 감히이이! 네놈을 평생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목줄을 걸고 개처럼 끌고 다녀 주마!”
광기에 물든 혈수귀옹의 두 눈에서 실핏줄이 투두둑 터지고,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보물은 전부 내 것이다!”
그렇게 혈수귀옹마저 안으로 들어간 후, 활짝 열렸던 철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쿠웅!
꽉 닫힌 철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겁게 침묵을 지켰다.
* * *
두 사람이 비동(秘洞) 안으로 들어온 지 반 시진이 지났다.
“끄아아악! 이 쳐죽일 놈! 산 채로 껍질을 벗겨 버릴 것이다!”
혈수귀옹은 사방으로 손톱을 휘두르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와 수염은 불에 그슬리고, 옷은 넝마가 된 지 오래였다.
온몸에 자잘한 자상이 가득했고, 드러난 상처 중 일부는 독에 당한 듯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앞서가던 백수룡이 힐긋 뒤를 돌아보며 친절하게 경고했다.
“머리 조심하라고!”
하지만 백수룡의 경고와 달리, 천장이 아닌 왼쪽의 벽이 열리고 손가락만 한 강침 수백 개가 발사됐다.
“또 속을 것 같으냐!”
혈수귀옹은 손톱을 휘둘러 강침을 모조리 쳐 냈다.
까가가강!
아무리 기관진식에 살벌한 암기를 숨겨 놨다고 해도, 초절정 초입에 이른 고수를 다치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푸욱!
수백 개의 강침 속에 숨어서 날아온 강침 하나가 혈수귀옹의 어깨에 박혔다.
앞서 도망치던 백수룡이 은밀하게 던진 강침이었다.
백수룡을 노려보는 혈수귀옹의 두 눈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콰콰콰쾅!
혈수귀옹이 쏟아낸 강기가 기관진식을 통째로 파괴했다.
하지만 그 앞에 있던 백수룡은 이미 옆으로 피한 뒤였다.
백수룡은 이번에는 손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발밑 조심하라고.”
“끄아아악!”
계속 이런 식이었다.
사방에서 강침이 쏟아지고 바닥이 갑자기 푹 꺼졌다.
화염이 쏟아지고, 경사에서 바위가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상처 입은 사람은 혈수귀옹뿐이었다.
백수룡은 기관진식을 건드린 후 교묘하게 틈새를 찾아 빠져나갔고, 그 대가는 혈수귀옹 혼자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네놈만은 잡으리라!”
“아이고 무서워라.”
혈수귀옹은 기관진식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백수룡을 추격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혈마의 후예!
놈만 죽이면 이곳에 있는 보물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
때문에 혈수귀옹은 내공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다.
벌써 반 시진 가까이 이어진 술래잡기.
하지만 모든 길에는 결국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정말 지독한 늙은이로군.”
뒤를 돌아본 백수룡은 낮게 혀를 찼다.
혈수귀옹을 이용해 비동으로 향하는 길에 있던 기관진식을 모조리 파괴했다.
그 덕분에 반나절은 걸렸어야 할 길을 한 시진도 안 돼 주파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이런…….”
막다른 길에 가로막힌 백수룡이 벽을 등지고 돌아섰다.
혈수귀옹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흐흐흐……. 이제 네놈만, 네놈만 죽이면 다 끝난다.”
두 사람이 마주 선 공간은 반경 몇 장 안 되는 좁은 공동이었다.
아무리 다치고 지쳤어도, 혈수귀옹에게 강기라는 압도적인 무기가 있는 한 좁은 공간에서의 승부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씩 웃었다.
“그래. 이쯤이면 되겠어. 지쳐서 도망도 못 갈 테고.”
“내가 도망을? 무슨 개소리를…….”
“난 너처럼 오래는 못 쓰거든.”
그 순간 백수룡의 검 끝에 맺힌 붉은 검기가, 점점 더 선명하고 단단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가, 강기……!”
혈수귀옹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백수룡이 피워 낸 강기는, 혈수귀옹의 그것보다 훨씬 더 짙고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왜? 너만 쓸 수 있는 줄 알았어?”
혈수귀옹에게 검을 겨눈 백수룡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