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 구음마녀 (1)
“…….”
“…….”
마치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혈수귀옹과는 또 다른 십대악인.
반경 수십 장을 얼려 버리는 빙공의 고수가 얼음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여자가 구음마녀…….’
‘생각했던 거랑 전혀 다르잖아?’
‘미녀라더니 절세미녀잖아?’
구음마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거처에서만 지냈기에, 악인곡의 악인들 중에서도 그녀를 처음 본 자들이 많았다.
구음마녀를 처음 본 이들은 ‘마녀’라는 별호에 어울리지는 않는 젊고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에 놀랐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서른을 넘지 않아 보였던 것.
십 년 전부터 그녀가 악명을 떨쳤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구음마녀가 입을 열었다.
“이만한 난리가 났는데도 그 늙은이는 안 보이네?”
그녀가 말한 ‘그 늙은이’란 혈수귀옹이었다.
혈수귀옹의 성격상, 악인곡에 이런 큰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저대로 두고 볼 리 없었다.
구음마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죽었나?”
“크흠! 죽긴 누가 죽었다는 거요!”
마의가 크게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평소 혈수귀옹과 친우처럼 지내며 악인곡에서 권력을 누려온 마의였지만, 구음마녀에게는 그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구음마녀. 그대가 여긴 어쩐 일이오?”
“불길이 치솟아서. 그리고, 악인곡에 내가 못 갈 곳이 있나?”
“그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자신의 거처에서 두문불출하는 구음마녀였기에, 마의는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구경하는 건 좋지만 우리의 일을 방해하지는 마시오.”
“뭘 하고 있었는데?”
구음마녀의 질문에, 마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악인곡에서 혼란을 일으킨 죄인들을 잡아들이는 중이오.”
“죄인이라……. 그럼 너희부터 뇌옥에 갇혀야 하지 않을까?”
구음마녀가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마의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잠시 구음마녀의 기에 눌려 있다고는 하나, 그 역시 성격이 얌전한 인간은 아니었다.
“어쨌든 방해하지 마시오! 나중에 혈수귀옹이 이 일을 알면…….”
그 순간, 구음마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혈수귀옹?”
동시에 구음마녀의 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무시무시한 냉기.
쩌적, 쩌저적!
구음마녀가 서 있던 곳에서 얼음이 자라나더니, 아래로 뻗어나 마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스르륵.
구음마녀는 자신이 만든 얼음을 타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마의 앞에 내려선 그녀가 긴 손가락으로 마의의 얼굴을 슥 훑었다.
마의의 눈썹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서리가 내렸다.
“내가 그 늙은이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여?”
“으으…….”
마의의 입에서 새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악인곡에서 구음마녀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혈수귀옹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혈수귀옹은 없었다.
“천만에. 너희 같은 쓰레기들을 관리해 주니까 그 늙은이도 내버려 두는 것뿐이야.”
“그, 그만…….”
구음마녀의 몸을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한기가 몰아쳤다. 그녀의 빙공에 노출된 악인들이 오들오들 떨었다.
“한 번만 더 혈수귀옹의 이름으로 날 겁박하면 그땐 이 정도로 안 끝나.”
“아, 알았으니…….”
마의가 간신히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구음마녀도 빙공을 거두었다.
‘구음마녀라니! 산 넘어 산이잖아.’
‘이곳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우린 망했어…….’
구음마녀의 등장으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한 학생들은 돌아가는 상황에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실제로 둘이 싸운 적은 없지만, 무림인들은 십대악인의 서열에서 구음마녀를 혈수귀웅보다 조금 더 위에 두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대마두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구음마녀의 투명한 눈동자가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훑었다.
“너희는 악인곡에 있을 아이들이 아닌 것 같은데.”
“…….”
그 차가운 시선에 학생들은 발가벗겨지는 듯 기분을 느꼈다.
특히 여민에게 다다랐을 때, 구음마녀의 시선이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다.
“너…….”
“…….”
“아니다.”
여민에게서 고개를 돌린 구음마녀는 악인 중 한 명을 지목했다.
“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히익!”
공교롭게도, 그는 헌원강 일행과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 흑비돈이었다.
흑비돈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마의의 눈치를 봤다.
구음마녀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거짓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다고 판단되면, 손가락 끝부터 하나씩 얼려서 부숴 주지.”
“사, 사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다! 저자들은 오늘 악인곡에 온 신입인데…….”
“…….”
흑비돈의 입에서 그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 줄줄 흘러나왔다.
“……해서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옥면음랑이라는 자를 제외하면, 저 녀석들은 저희와 같은 부류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뭔가 목적이 있는 것 같으니 데려가서 취조를 해 보는 것이 옳은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구음마녀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만…… 아주 작은 사견이라…….”
흑비돈은 구음마녀와 마의 사이에서 열심히 눈치를 보며 말을 마무리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구음마녀가 말했다.
“별것 아니로군.”
“뭐?”
“예?”
악인곡에서는 힘이 곧 법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자는, 누가 뭐래도 구음마녀였다.
구음마녀가 판결을 내렸다.
“더 이상의 싸움은 허락하지 않겠다. 절강오마는 지금 즉시 악인곡을 나가라. 그걸로 마무리해.”
“허!”
누가 봐도 일방적으로 절강오마에게 호의적인 판결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악인들 중 누구도 화를 내지 못했다.
마의가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구음마녀. 어째서 저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거요?”
마의의 질문을 무시한 구음마녀가 고개를 돌려 학생들을 바라봤다.
“내 말 못 들었나? 빨리 꺼져.”
“정말 가도 됩니까?”
헌원강의 질문에, 구음마녀는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여민이 다리를 다친 헌원강을 부축하며 속삭였다.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가요.”
악인들이 구음마녀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포위망을 풀었다.
그때였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갑자기 끼어든 익숙한 목소리.
헌원강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는 얼굴을 발견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들은…….”
염라부, 낭아도, 벽안귀.
악인곡의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 삼 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쯧.”
그들을 발견한 구음마녀도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악인곡의 문지기 삼 인은 그녀로서도 까다로운 상대였다.
한 명 한 명이야 자신에게 상대도 되지 않지만, 셋이 동시에 덤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때문에, 악인곡의 주인인 혈수귀옹도 문지기들의 말은 쉽게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벽안귀 저자는…….’
“이보시오, 구음마녀.”
구음마녀 앞에 도착한 벽안귀가 푸른 눈동자를 요사스럽게 빛냈다.
“악인곡에도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소. 그걸 멋대로 망가뜨리면 곤란해.”
“혈수귀옹이 멋대로 만든 규칙 말하는 거냐?”
“이곳에 들어올 때 다들 동의한 규칙이지.”
“나는 동의한 적 없어.”
구음마녀의 싸늘한 대답에 벽안귀가 피식 웃었다.
“혈수귀옹은 악인곡을 만든 자요. 최소한의 존중은 보여 줘야 하지 않겠소?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말이야.”
벽안귀의 말투는 정중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구음마녀의 신경에 거슬렸다.
그녀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당신도 혈수귀옹이 만든 악인곡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있으니까. 이곳이 아니면 무림공적이 갈 데나 있소?”
“…….”
벽안귀의 말에 구음마녀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벽안귀를 싫어하면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였다.
보통의 마두들처럼 멍청하고 음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놈이라면 거리낌 없이 죽여 버리겠지만, 벽안귀는 그런 악인들과는 조금 달랐다.
또한 무공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
하지만 구음마녀도 자존심을 굽힐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나랑 해보자 이거냐?”
쩌저저적!
구음마녀가 기세를 끌어올리자, 그녀의 발밑이 얼어붙으며 일대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그녀의 백발이 허공에 나부끼기 시작하고, 양손에 새하얀 냉기가 맺혔다.
“잠깐. 내 말 아직 안 끝났소.”
벽안귀가 고개를 저으며 한발 물러나는 태도를 취했다.
“나는 저 녀석들의 정체에 관심이 없소. 어떻게 할 생각도 없고. 하지만 이만한 난리를 쳤는데 그냥 내보내준다? 문지기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이거요.”
“아무렴! 기분이 더럽지!”
“생각 같아선 콱 죽이고 싶긴 한데.”
무기를 뽑아 든 염라부와 낭아도도 양옆에서 한마디씩 보탰다. 둘 다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구음마녀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결론만 말해.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기다려 봅시다. 혈수귀옹이 돌아올 때까지 말이오.”
벽안귀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태도와 달리, 검을 뽑아 들며 교섭이 결렬된다면 비켜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했다.
그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대가 원한다면 이 자리에서 살육전을 벌여도 좋아. 장담하는데, 당신은 몰라도 저 애송이들은 모두 죽을 거야.”
“……지금 날 협박하는 거냐?”
“경고하는 거요.”
구음마녀와 벽안귀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벽안귀를 포함한 문지기 삼인방은, 혈수귀옹과 구음마녀를 제외하면 악인곡의 최고수들이었다.
그들과 구음마녀가 싸우게 된다면?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좋아.”
놀랍게도 이번에는 구음마녀가 한발 먼저 물러났다.
“너희의 자존심을 세워 주려면, 이 녀석들을 악인곡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된다 이 말이지?”
“그렇소.”
벽안귀가 고개를 끄덕이자, 구음마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럼 내 집으로 데려가겠어.”
“……음?”
“혈수귀옹이 오면 내 집으로 오라고 해. 와서 데려가라고.”
내내 여유롭던 벽안귀의 표정에 처음으로 당혹스러움이 어렸다.
구음마녀의 집은 악인곡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에 있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지금까지 당신 집에 찾아가서 살아 돌아온 자가 없다고 들었는데…….”
“목적이 한결같았거든.”
“…….”
벽안귀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구음마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은 부담이었다.
“알겠소. 당신이 양보해 줬으니 우리도 이쯤에서 물러나지. 혈수귀옹이 돌아올 때까진 당신이 그 녀석들을 맡아 두는 것으로 합시다. 그런데, 대체 그 녀석들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소?”
“볼일 끝났으면 꺼져. 너희는 날 따라와라.”
구음마녀는 싸늘하게 내뱉은 후, 어리둥절한 표정의 절강오마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벽안귀가 그녀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옥면음랑을 만나면 그자에게도 전하겠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어깨를 으쓱한 벽안귀가 양옆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가지.”
“이보게, 벽안귀! 그냥 가면 어쩌나! 못 데려가게 막아야지!”
마의가 옆에 와서 벽안귀를 닦달했다. 구음마녀를 저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벽안귀는 단칼에 거절했다.
“악인곡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 외엔 우리 소관이 아니오. 구음마녀도 우리를 존중해 줬고.”
“저게 존중인가? 혈수귀옹이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곡주 말이오? 솔직히 살아 있기나 하면 다행일 것 같은데.”
“뭐, 뭐, 뭐라고?”
경악하는 마의에게, 벽안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뭔가 일이 생긴 건 분명하지 않소. 어쩌면 옥면음랑에게 당했을지도 몰라.”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리라 보긴 하는데…….”
벽안귀는 옥면음랑의 잘생긴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청안으로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위험한 기운을 품고 있던 자.
뭔가 일을 벌이지 않을까 기대를 하긴 했지만, 설마 악인곡을 이렇게까지 뒤집어 놓을 줄이야.
“큭큭. 대단한 건 아랫도리만이 아닌 모양이야.”
벽안귀는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웃더니 다시 몸을 돌려 악인곡 입구로 향했다. 염라부와 낭아도가 그 뒤를 따랐다.
“하! 저런 놈이 무슨 문지기란 말인가! 개만도 못한 놈!”
마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를 갈던 마의가 품 안을 뒤적였다.
“너희가 돕지 않는다고 그놈들을 못 잡을 것 같으냐? 내게도 방법이 있다. 그 조그마한 놈. 곧 독이 발작을 일으킬 테니 해약으로 협박하면…… 어, 어디 갔지? 내 해약이!”
당황한 마의가 품 안을 다 뒤집어 탈탈 털었다.
하지만 위지천의 해독약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