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62
161화. 빙정(氷精)
“꺄아아아아악!!!”
구음마녀의 찢어질 듯한 비명에 동굴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크윽…….”
“컥…….”
귀를 틀어막으며 고통스러워하는 헌원강과 야수혁의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백수룡이 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너희는 여민을 데리고 마의한테 가! 내가 보냈다고 말하고, 목숨을 걸고 그 애를 치료해 놓으라고 전해!”
제자들이 여민을 업고 동굴을 빠져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구음마녀는 비명을 지르며 백수룡을 떼어내기 위해 온몸으로 발악하고 있었다.
“이것 놔! 놓으란 말이다!”
구음마녀는 온몸에서 가공할 냉기를 뿜어냈고, 강기가 맺힌 손톱을 마구 휘두르며 백수룡을 찢어발기려 했다.
“죽어! 죽어! 죽어!”
그러나 그 어떤 공격으로도 백수룡을 떼어내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냉기는 묵룡의에 역천신공의 내공을 둘러 견뎠고, 장법이나 조법은 투로가 눈에 훤히 보였다.
‘무공의 성취는 깊은데, 그에 비하면 초식은 많이 어설프군.’
백수룡은 구음마녀가 이룬 무공의 성취가 기이함을 알아보았다.
빙백신공의 성취에 비해 초식은 많이 어설펐던 것이다.
과거 구음마녀에게 무공을 가르친 교관들이 빙백신공의 완성만을 위해 초식은 적당히 가르친 탓이었지만, 백수룡도 그런 뒷사정까진 당장 알지 못했다.
“죽어어어어엇!”
“얌전히 좀 있어라.”
백수룡은 구음마녀의 얼굴을 잡아 동굴 바닥에 처박았다.
콰아아앙!
바닥이 박살 나고, 구음마녀의 몸이 그 안에 반쯤 틀어박혔다.
“끄윽, 끄으윽…….”
바닥에 처박혀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구음마녀의 귀로, 백수룡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좋아서 널 살려 두는 게 아니니까.”
백수룡은 지금 심경이 무척 복잡했다.
구음마녀는 위지천의 경우와 비슷했다.
자신이 만든 가짜 빙백신공을 익혀 주화입마가 생겼고, 그렇게 생긴 탁기가 골수까지 스며들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광증은 그 부작용이었다.
‘혈교를 엿 먹이려고 만든 무공이었는데…….’
하지만 혈교는 백수룡이 건넨 가짜 신공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려다가 그것을 익히게 하고, 완성하기 위한 실험의 도구로 삼았다.
그 결과물이 구음마녀와 같은 악인이었다.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백수룡은 이 일에 어느 정도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제정신 정도는 차리게 해 주마. 혈교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야겠고.”
“아파! 아파아아! 놔줘, 놔줘 제발……!”
바닥에 처박힌 구음마녀가 발작하며 어린아이처럼 펑펑 눈물을 쏟았다.
백수룡은 그녀를 위에서 몸으로 짓누르며, 역천신공으로 구음마녀의 골수에 가득한 탁기를 빨아들였다.
스스스슷…….
탁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역천신공은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의 무공이다.
역천신공의 진기가 구음마녀의 머리, 기경팔맥과 십이경맥으로 뻗어 나가 사지에 스며든 탁기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하지만, 오래된 탁기를 뽑아내는 과정은 생살을 찢어내는 것보다 수십 배는 고통스러웠다.
“……!!”
끔찍한 고통에 구음마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뒤틀었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마구 긁어대며 발작을 일으켰다.
백수룡은 그녀의 몸을 다시 꽉 눌렀다. 그의 입에서 새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하아…….”
아무리 묵룡의를 입고 있다고 해도, 빙백신공의 한기를 완벽하게 막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구음마녀의 몸과 거의 맞대고 있는 탓에, 백수룡의 머리카락과 눈썹에도 새하얀 서리가 맺혔다.
끔찍한 냉기가 몸에 스며들었지만, 백수룡은 구음마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버텨라. 살고 싶으면.”
“끄흑……!”
만약 구음마녀가 빙월신녀가 남긴 진짜 빙월신공을 대성했다면, 백수룡은 반 각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묵룡의가 없었으면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구음마녀의 몸에서 뿜어지던 냉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스스스슷…….
구음마녀의 몸에서 탁기가 빠져나가며 구음마녀가 느끼는 고통이 줄어들었고, 고통이 줄어들면서 발작도 함께 줄어든 영향이었다.
“후우……. 겨우 끝났군.”
백수룡은 손을 떼고 일어섰다. 잠시 비틀거린 그가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감았던 눈을 뜬 구음마녀가 멍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올려봤다.
항상 송곳으로 쑤시는 것처럼 머리가 아팠는데, 지금은 그런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잘못된 운기로 몸 안에 쌓여 있던 탁기를 빼냈다. 광증의 원인을 치료했으니, 앞으로 전과 같은 발작은 없을 거야.”
백수룡은 다소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구음마녀와의 싸움보다 탁기를 빼내는 데 더 심력 소모가 컸다.
구음마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 말도 안 돼…….”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 텐데.”
“그, 그럼 정말로…….”
자신의 두 손을 내려 보는 구음마녀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광기가 아닌 순수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백수룡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좋아하긴 일러. 빙백신공을 다시 운기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다.”
“아…….”
순간, 구음마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위지천과는 다르다.
위지천은 어린 나이였기에 가짜 무극검을 깊게 익히지 않았고, 몸 안에 쌓인 내공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구음마녀는 적어도 이십 년 이상 가짜 빙백신공을 익혔고, 스스로 무공을 대성했다고 착각했을 만큼 큰 성취를 이루었다.
이 정도로 깊게 익힌 무공을 교정하는 것은…… 백수룡에게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미치지 않으려면 빙공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무인에게 십 년 이상 쌓아 온 적공을 포기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백수룡은 구음마녀가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음마녀의 대답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그렇게 할게.”
“뭐?”
구음마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광증에서 벗어난 그녀는, 백수룡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빙공을 포기할게. 지금처럼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대체 왜 그렇게 여기에 연연했는지 모르겠어.”
체념하듯 한숨을 내쉰 그녀가 흐릿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푹 떨궜다.
백수룡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빙공이 없어도 넌 충분히 강하니까.”
“…….”
“이제 내가 이야기를 들어야 할 차례군. 가짜 빙백신공은 어떻게 익혔지?”
“어릴 때…….”
구음마녀는 순순히 백수룡이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어린 시절에 팔려가 강제로 무공을 익히게 된 이야기.
혈교의 시설에서 어떤 취급을 당했고, 어떤 고통을 겪었으며, 어떻게 탈출했는지.
그녀는 높낮이가 일정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
오히려 구음마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백수룡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백수룡은 이를 악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랬군.”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혈교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악랄하고 사악해졌다.
놈들이 뿌린 씨앗이 평범했던 한 소녀를 십대악인으로 만들었다.
‘구음마녀 외에도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있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백수룡의 머릿속에 어떤 계획이 떠올랐다.
“구음마녀. 혈교에 복수하고 싶나?”
“…….”
“나한테 계획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악인곡을 네가 장악해야 해.”
백수룡은 제정신을 차린 구음마녀에게 악인곡의 관리를 맡기고자 했다.
‘악인곡은 천혜의 요새다.’
훗날 혈교와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면, 악인곡의 지형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선별해서 구제 불능의 악인들은 죽이고, 누명을 썼거나 구제가 가능한 놈들은 모아서 훈련시켜. 갱생신공이라고, 무공을 하나 알려 주지. 그걸 수련시키면…….”
백수룡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계획이 세워졌다.
악인곡을 장악해 새로운 세력을 만든다.
이곳에 혈교의 심장을 찌를 또 다른 비수를 만들어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구음마녀는 백수룡의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
“어째서? 복수하고 싶지 않나?”
마치 한순간에 깨달음을 얻은 고승처럼, 구음마녀의 눈동자에 정광이 가득했다.
“지난 이십 년간, 빙백신공을 대성하면 원수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어. 하지만 이젠 덧없다는 걸 깨달았어.”
구음마녀의 눈빛과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도저히 설득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그녀는 혈교에 대한 복수 대신, 마음의 안정을 선택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백수룡은 구음마녀가 세상을 등지고 은거라도 할 생각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어진 구음마녀의 선택은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네가 나한테 부탁할 입장은 아닐 텐데.”
백수룡이 퉁명스레 대꾸하자, 구음마녀가 빙긋 웃었다.
“여민.”
“…….”
“그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줬어. 조금이나마 보상해 주고 싶어.”
“그걸 왜 나한테 부탁해?”
“나는 다시는 그 아이를 못 볼 테니까.”
입가에 웃음을 띤 구음마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빙백신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백수룡이 놀라서 소리쳤다.
“운기하지 말라고 했잖아! 또 광증이 도지면…….”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야.”
구음마녀는 그동안 자신의 몸에 평생 쌓아 온 음기를 손바닥 사이에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너 뭐 하는…… 설마.”
구음마녀가 무슨 짓을 하는지 깨달은 백수룡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콰콰콰콰콰콰!
구음마녀가 한평생 쌓아 온 음기가 그녀의 두 손바닥 사이로 집중되더니, 압축하고 압축해 하나의 결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빙정을…… 만들려는 거냐.”
빙정(氷精).
음기의 정수가 모여 결정을 이룬 것으로, 빙공을 익힌 무인에겐 천하에 다시 없을 보물.
잠시 후, 구음마녀는 비교할 수 없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눈을 떴다.
“하아…….”
그녀의 손바닥 위에는 눈처럼 새하얀 얼음 결정이 놓여 있었다.
크기는 겨우 손톱보다 조금 더 컸지만, 그 안에는 구음마녀가 평생 쌓은 음기가 담겨 있었다.
“불순물은 모두 제거하고 깨끗한 음기만 모았어. 이걸 여민에게 줘. 나 때문에 몸이 많이 상했을 거야.”
구음마녀는 자신의 빙정을 백수룡에게 건넸다.
빙공을 익히는 무인이라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차지하려 할 보물.
그녀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넸다.
“나 대신 이걸 그 아이에게 전해 줘.”
“…….”
“부탁할게.”
“……알았다.”
한숨을 내쉰 백수룡은 빙정을 받아 들었다.
얼마나 완벽하게 정제되었는지, 그냥 손으로 만져도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드는 게 전부였다.
구음마녀가 백수룡을 바라보며 창백하게 웃었다.
“여민에게 다 주기엔 너무 많을 거야. 필요하면 당신이 나눠서 써. 당신에게 내 무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지만…….”
“필요해. 사용할 거다.”
백수룡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빙월신녀의 무공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빙공을 익힐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빙월신녀의 신법만을 사용해 왔다.
빙백신공을 익힐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면 배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대답을 들은 구음마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됐네. 민폐만 끼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
“이봐.”
“…….”
“이봐!”
대답은 없었다. 구음마녀는 가부좌를 튼 모습 그대로 눈을 감았다.
세상 모든 근심을 덜어낸,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띤 채로 그녀는 긴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