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66
165화. 금의환향“금방 온다더니 왜 이리 늦었단 말이냐. 어디서 싸움이라도 하고 온 게야?”
매극렴은 미간을 찌푸리며 몇 시진 만에 돌아온 백수룡의 몸을 살폈다.
생각보다 많이 늦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걱정하던 차였다.
다행히 그의 손자는 어딜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다치기는커녕, 얼굴에 웃음이 만개해 있었다.
“죄송합니다. 뒷간에 다녀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능글맞게 변명을 하는 얼굴이, 오는 길에 공돈이라도 주운 사람처럼 흐뭇했다.
“허. 아주 대단한 쾌변을 본 모양이군.”
빈정거리는 남궁수의 말도 얄밉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능글맞게 웃으며 남궁수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알았대? 구렁이만 한 녀석이 똬리를 틀고 있는 걸 봐야 했는데 말이야. 십 년 묵은 숙변이 쑥 빠져나간 기분이었다니까. 남궁 선생님도 변비가 심하지?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는 걸 보면 확실한데.”
“……헛소리를. 더럽다. 저리 가도록.”
맞상대하기 싫다는 듯, 남궁수는 질색을 하더니 자리를 빠르게 피했다.
낄낄대는 백수룡을 본 매극렴이 혀를 찼다.
“실없는 놈. 뭐가 좋다고 그리 실실 웃는 게야?”
“사실 그럴 만한 일이 좀 있었습니다.”
“악인곡에서 기연을 얻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게냐?”
과연 매극렴의 눈은 예리했다. 그는 달라진 손자의 기도를 알아보았고, 악인곡에서 어떤 기연을 얻었으리라 추측했다.
백수룡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악인곡에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전부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굳이 말할 필요 없다.”
매극렴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본래 무공은 부모·자식 간에도 쉬이 전수하는 것이 아니니. 다만, 찾아온 기연에 취해 나태해져선 안 될 것이다. 부단히 단련하고 또 단련하는 것만이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매극렴의 진심 어린 조언에 백수룡은 공손히 대답했다.
‘맞는 말이야. 청룡학관으로 돌아가면 얻은 것을 정리해야겠어.’
이번에 악인곡에서 얻은 것이 무척 많았다.
혈교가 남겨 둔 지하 비동에서 찾은 혈옥과 묵룡의.
여기에 구음마녀가 남긴 빙정의 절반을 흡수했다.
‘영약과 기물만 얻은 것이 아니지. 훗날 혈교와 함께 싸울 동맹을 만들었다.’
벽안귀는 백수룡의 제안을 받아들여 악인곡을 재건하기로 했다.
비록 지금은 잿더미가 된 악인곡이지만, 곧 갈 곳 없는 악인들이 다시 모여들 것이다.
앞으로 벽안귀가 그들을 통제해 훈련시킨다면…… 훗날 혈교와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돌아가면 바로 백룡상단을 통해 물자를 보내야겠어.’
백수룡이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악연호가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형님. 애들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요?”
“애들이 왜?”
일행은 강사들은 말을 타고, 학생들은 마차에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은 탓이었다.
조금 전 마차 안을 들여다보고 온 악연호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말했다.
“아니, 애들한테 다쳤으니 쉬라니까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심상 수련을 하잖아요. 하지 말라고 해도 듣지를 않아요. 기세도 하나같이 날카로워서…….”
“그거라면 내버려 둬.”
백수룡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었다.
“온실 속 화초들이 무림이 얼마나 무서운지 온몸으로 보고 배웠으니까. 약한 게 얼마나 서러운지 깨달았거든.”
학생들은 악인곡에서 여러 번 생사의 갈림길을 오갔다.
몇 번이나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면 그들 중 일부, 혹은 전부 악인곡에서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겠지.’
백수룡은 학생들이 탄 마차를 바라봤다.
혈수귀옹과 싸울 때부터 그는 학생들과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실제로 어떤 싸움을 겪었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녀석들의 몸에 난 상처를 보면 얼마나 험악한 싸움을 거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상처는 치료하는 데 꽤 오래 걸릴 것이고, 어떤 것은 평생의 흉터로 남을 것이다.
“다행히 헌원강의 허벅지는 곧 나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의원들이 하나같이 괴물 같은 회복력이라고 혀를 내둘렀다니까요?”
악연호가 백수룡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헌원강이 다리를 절게 되면, 백수룡이 그걸 자기 탓으로 여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 씀씀이를 느낀 백수룡이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누구 제자인데.”
청룡학관으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처럼 급하지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들의 내상과 부상이 덧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기에 속도를 많이 낼 수 없었다.
때문에,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몇 배는 시간이 더 걸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행 중에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학생주임 선생님. 저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맡고 있는 수업과 처리할 일들이 산더미라.”
“그러시게. 수고했네. 아이들은 내가 안전하게 데려가겠네.”
남궁수는 청룡학관으로 먼저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매극렴과 인사를 나눈 그가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바라봤다.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작은 한숨이 맺혔다.
“더 이상 문제 일으키지 말고 곧장 학관으로 돌아오도록.”
“뭐? 이게 누굴…….”
휘익!
남궁수는 곧바로 몸을 돌려 경공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졸지에 문제아 취급을 당한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이…….”
마차 창문 너머로 모습을 본 학생들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매극렴이 남은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올 때는 사나흘이면 충분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보름은 걸릴 것이다. 무엇보다 내상과 부상이 덧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남는 시간에는 무공을 좀 봐줘도 되겠군요. 다들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인데요.”
학생들의 표정을 본 매극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다들 눈빛이 좋아졌어.”
그렇게, 강사 세 사람이 돌아가며 다섯 학생의 무공을 봐주었다.
위지천은 검혼을 껴안은 채 수시로 명상에 잠겼다. 그러다 눈을 뜨면 백수룡이나 매극렴에게 가서 질문을 던졌다.
부상이 제일 심한 헌원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악인곡에서의 싸움을 복기했다. 그 표정이 무섭게 굳어 있어, 강사들도 쉽게 말을 걸지 않았다. 종종 백수룡에게 수라혈천도의 구결이나 초식에 대해 전음으로 조언을 구할 뿐이었다.
“흐아압!”
야수혁은 가장 먼저 부상을 털어내고 마차 밖으로 나왔다. 매극렴, 백수룡, 악연호가 번갈아 가며 야수혁과 대련을 해 주었다. 대련을 통해 야수혁은 실전에서 녹림십팔식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지 끝없이 고민했다.
‘하나같이 무공에 있어서 천재들이야. 알아서 잘하는군.’
거상웅마저 그런 후배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그는 유일하게 부상이 없었기에, 마차가 멈추면 웃통을 벗어 던지고 수련에 매진했다.
학생들 모두가 자신의 무공을 돌아보고 갈고닦는 가운데, 여민만이 여전히 침상에 누워 있었다.
‘조만간 이야기를 나눠야겠군.’
백수룡은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
* * *
다음 날, 일행은 마을에 들러 객잔에서 머물게 되었다.
백수룡은 여민의 방을 찾아가 그녀와 독대했다.
“몸은 좀 괜찮냐?”
“……네.”
여민이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력이라면 이미 몸을 움직일 만큼 되찾았다. 의지를 되찾지 못했을 뿐이다.
구음마녀에게 당한 이후로, 여민은 내내 멍한 모습이었다.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신 백수룡이 입을 열었다.
“네 몸 안에 깃든 음기에 관해서부터 이야기해 주마.”
“……구음마녀가 준 거죠?”
“알고 있었구나.”
여민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뜨자마자 단전 안에 어마어마한 음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느꼈다.
더없이 맑고 깨끗한 냉기.
자신을 보호해 주는 듯한 그 힘이 어디서 왔을까, 추측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음마녀는 죽었죠?”
“그래. 마지막엔 제정신을 차렸다. 너한테 미안하다고, 나보고 전해 달라고 하더군.”
“…….”
“여민.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라. 너한테도 좋을 게 없으니까.”
백수룡은 대화가 방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기막을 펼쳤다. 그리고 여민에게 구음마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민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더니, 이야기가 끝날 때쯤엔 허탈한 한숨을 길게 쉬었다.
“하아…….”
“그래도 마지막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약값을 벌기 위해서였어요.”
“응?”
“죽어라 돈을 벌어야 했던 이유요.”
여민은 하얗게 센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로 변해 버렸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었다.
“오랫동안 음기를 억누르는 약을 먹었거든요. 재룟값이 꽤 많이 들었어요.”
“이젠 안 먹어도 돼. 아니, 이제는 먹으면 해가 된다.”
백수룡은 단호하게 말했다.
여민의 몸 안에 품은 음기는 그 전과 차원이 달랐다.
약으로 억누를 수 없을뿐더러, 그랬다간 몸이 상하기만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빙공을 익혀서 몸 안의 음기를 다스려야 한다.”
“……돌아가신 엄마가 그랬어요. 빙공을 익히면 자신처럼 단명할 거라고. 그러니 절대 익히지 말라고요.”
여민이 겁먹은 표정으로 말하자, 백수룡은 걱정할 것 없다며 부드럽게 웃었다.
“잘못된 걸 익히면 그렇겠지.”
백수룡이 손가락을 뻗어 앞에 놓인 찻잔에 갖다 댔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에서 새하얀 냉기가 흘러나왔다.
쩌저적…….
찻물에 살얼음이 끼며 가볍게 얼어붙었다.
아직 입문 단계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분명 천하에 존재하는 빙공 중 으뜸인 빙백신공이었다.
“내가 가르쳐 주는 걸 익히면 괜찮아. 네 체질과 빙정의 기운이 어우러지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성취를 빠르게 얻을 수 있을 거다.”
“세상에…….”
여민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턱이 빠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입을 떡 벌렸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수습한 여민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서, 선생님. 앞으로 돈은 안 주셔도 돼요.”
“당연하지. 그럼 양심도 없이 계속 받으려고 했냐?”
지금까지 여민은 천무제 경공 대회에 나가는 대가로, 백수룡에게 매달 월봉을 받으며 백룡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약값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스스로가 다른 제자들과 자신을 다르게 여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돈으로 묶인 관계.
하지만, 방금 그 관계가 바뀌었다.
괜히 쑥스러운 마음이 든 여민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치. 짠돌이. 귀여운 제자한테 용돈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줄 수도 있지.”
“요 녀석이.”
백수룡이 손을 뻗어 여민의 이마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딱!
여민은 환자를 때리는 게 어디 있냐며 울상을 지었지만, 그 표정은 처음보다 한결 밝아져 있었다.
‘이 녀석. 강하구나.’
여민은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마음을 준 구음마녀에게도 배신당했다.
결과적으로 구음마녀의 빙정을 받으며 큰 기연을 얻었지만, 분명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심마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가녀린 체구의 여자아이지만, 여민은 사내 녀석들보다 더 강단이 있었다.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엔 내가 제자 복이 좀 있는 모양이야.”
“네? 뭐라구요?”
여민이 되물었지만, 백수룡은 웃기만 할 뿐 다시 말해 주지 않았다.
그날은 백수룡이 네 사부의 마지막 후인, 빙백신공의 계승자를 찾은 날이었다.
* * *
보름 후, 일행은 청룡학관이 있는 남창에 도착했다.
도시로 들어서기 전, 매극렴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백수룡을 돌아봤다.
“각오하거라. 이번 일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야.”
“예.”
백수룡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인곡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하지만, 위지천이 백발마수에게 납치당한 것 자체는 명백히 자신의 실책이었다.
백수룡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잘리지만 않으면 돼.’
감봉 같은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해 온 수업을 못 하게 되는 경우.
그렇게 되면, 천무제 우승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데 큰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든 수업은 지켜낸다. 내가 가진 수단을 총동원해서라도…….’
백수룡은 마음 깊이 각오를 다지며 도시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일행을 태운 마차와 준마가 도시로 들어섰다.
그 순간.
우와아아아아아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행을 향해 어마어마한 함성이 쏟아졌다.
“저, 적인가?”
“무슨 일이야!”
깜짝 놀란 일행이 각자 무기를 뽑아 들며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적들의 무기가 아니라, 상상치도 못한 환호였다.
“청룡학관의 영웅들이 돌아왔다!”
“악인곡을 쳐부순 후기지수들이다!”
“청룡신협과 그의 제자들이다!”
예상치 못한 엄청난 환영인파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