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69
168화. 오셨습니까백수룡은 술잔을 탕!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자식들은 글러먹었어.”
오랜만에 가진 청룡학관 입사 동기들과의 술자리였다.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과 함께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번에 바뀐 천무제 규정과 제자들에 관한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애들이 그렇게 공부를 못하나요?”
술자리에서는 누구보다 생기가 도는 제갈소영이 안주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힘든 학관 생활로 한잔 술이 유일한 낙인 탓에, 그녀는 점점 주당이 되어 가고 있었다.
“거상웅과 여민은 그나마 좀 나아. 둘 다 셈에 밝고 공부 머리도 있는 편이거든.”
백수룡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무공으로는 상대적으로 자질이 떨어지는 두 명이, 공부 머리 쪽으로는 오히려 가장 나았다.
문제는 무공 천재들 쪽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는지, 백수룡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특히 헌원강, 야수혁 이 자식들은 뇌가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야수혁 걔는 장삼봉이 누군지도 모르더라니까?”
“와, 그건 심했다.”
“대체 입관 시험은 어떻게 통과했대요?”
“내 말이…….”
백수룡이 혈교의 교관이었던 시절에는 생각도 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그곳에선 교육생의 교양이나 인성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오로지 무공의 성취만이 전부였고, 오히려 단순하고 악랄할 성격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제자란 녀석들이 다 그 모양이 된 걸 수도 있겠군.’
백수룡은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바뀐 천무제 규정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과열된 경쟁이 무인들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만드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휴.”
백수룡의 한숨이 깊어졌다. 악연호가 그의 잔에 술을 채워 주며 물었다.
“그 둘은 그렇다 치고, 위지천은 어때요? 걔는 성실해서 공부도 잘할 것 같은데.”
“걔도 문제야. 위지천은…….”
백수룡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애가 지나치게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위지천은 분명 천재였다.
하지만 그건 ‘검’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검에 관해서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로 뛰어나지만, 나머지는 새하얀 백지나 다름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랑 단둘이 산속 깊숙한 곳에 살아서 기본적인 상식이 부족해. 선악 개념도 좀 흐릿하고.”
심지어 그 할아버지가 혈교 팔대가문의 가주였던 데다, 본인은 얼마 전까지 살검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이런 기초 교양교육이 가장 필요한 학생이 위지천일지도 몰랐다.
“헌원강. 야수혁. 위지천. 머릿속이 백지 같은 녀석들에게 최소한의 교양을 가르쳐야 한다는 건데…… 아이고.”
백수룡의 한숨에, 동기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시간이 꽤 남았잖아요.”
“이번에도 어련히 잘하실 거면서.”
동기들의 위로도 백수룡에게 큰 힘이 되지 않았다.
일 학기 중간고사까지 달포가 조금 넘게 남았다.
그때까지 제자들이 교양평가시험을 통과할 수준까지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만 봐서는 다섯 중 셋은 낙제가 확실했다.
게다가…….
백수룡은 술기운을 빌려 동기들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다들 놀라겠지만……. 나도 잘 못 하는 게 하나쯤은 있어.”
““예?””
모두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무시한 채, 백수룡은 술잔을 응시하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무림의 예절이니, 규범이니. 이런 쪽으로 나도 영 젬병이거든.”
백수룡은 가진 무공 지식은 그야말로 방대했다.
혈교의 무공 대부분을 머릿속에 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뿐만 아니라 진법, 독, 혈도, 암기술 등 무인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을 가르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파 출신인 그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으로 한 정파의 예절, 교양수업은 너무나 낯설었다.
적당히 흉내 낼 수야 있지만, 누군가를 가르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백수룡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놀랐겠지. 나도 놀랐다. 내가 못 가르치는 게 있을 줄이야. 충격이었어. 너흰 나보다 더 충격이겠지. 하지만 거짓말할 수는 없으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백수룡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며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슬픈 눈빛과 긴 손가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그 그림에 넘어갈 사람은 없었다.
“와, 진짜 재수 없다…….”
“세상에. 술주정이 잘난 척이에요?”
“가만 보면 이 형님이 제일 문제야.”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겸손인 듯 결국은 잘난 척을 하는 그 모습에, 입사 동기들은 다들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뭐? 솔직한 것도 잘못이냐? 무인이 잘 싸우면 되지, 교양은 개뿔. 교양 있으면 칼이 피해 가냐?”
백수룡이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가운데, 명일오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형님. 혼자서 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이론이나 교양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보는 건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
“형님은 학생들 무공 봐주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기존에 있는 수업도 해야 하고, 백룡장 제자들의 무공도 계속 봐줘야 한다. 그러면서 갱생문에도 종종 들러야 하고, 악인곡과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
과장을 좀 보태서, 지금 백수룡은 몸이 셋이라도 부족했다.
“하지만 누구한테?”
“그야 잘하는 선생님들에게 맡겨야지요. 예를 들면, 무림사 과목은 여기 있는 제갈 소저가 전문 아닙니까?”
“저, 저요?”
갑자기 지목당하자 제갈소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 반 시진 정도라면 시간을 낼 수 있어요. 그 아이들이 천무제에 못 나가는 건 너무 아까우니까.”
명일오가 이번에는 악연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세가의 예법 같은 교양은 여기 있는 연호가 잘 알고요.”
“빠삭하죠. 어릴 때부터 회초리 맞아가면서 배웠는데.”
“그리고 저는 무림의 지리와 여러 풍문에 관심이 많습니다.”
악연호도 명일오도 선선히 돕겠다고 나섰다.
백수룡은 마음이 조금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자식들. 수업을 시작하면 일각도 집중을 못 해. 무공 수련할 때때는 안 그런데, 이론 수업에선 집중력이 아주 바닥이야.”
“어느 정도인데요?”
“아까는 원강이 놈이 하도 졸아서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가르쳐 봤는데, 그래도 졸더라.”
“예?”
백수룡의 말에 세 사람이 입을 떡 벌렸다.
“일단은 공부할 의욕을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네요.”
“으음…….”
“방법이 없을까…….”
네 명의 강사가 머리를 맞대고, 학생들이 공부하도록 만들 방법을 생각했다.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의견을 낸 사람은 제갈소영이었다.
“일단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과외를 하고, 저녁에는 공부회를 만들어서 복습하게 하는 거예요.”
“공부회?”
가장 최근에 학관을 졸업한 수재답게, 그녀는 학생들의 공부 의욕을 고취시킬 방법 또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또래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무척이나 도움이 되거든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구요.”
“호오…….”
“주변에 명문 정파의 예절이 평소에도 몸에 배어 있는, 그리고 책임감이 투철한 성격의 학생이 있어서 공부를 도와준다면 좋을 것 같은데…….”
마침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한 명 있었다. 백수룡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런 학생이라면 내가 알지.”
* * *
“젠장.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구시렁거리지 말고 집중해라.”
탁!
독고준은 책을 소리 나게 덮으며 앞에 앉은 헌원강을 바라봤다.
“모르는 게 있으면 차라리 물어보든가.”
머리를 싸매며 서책을 읽고 있던 헌원강이 고개를 들어 독고준을 바라봤다. 그가 인상을 팍팍 구기며 말했다.
“왜? 뭐? 한판 붙어?”
“……다시 말하지만 나도 좋아서 너랑 같이 공부하는 게 아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독고준은 다시 본인의 공부에 집중하려 했다.
……집중이 될 리 없었다.
옆에서 헌원강이 계속 구시렁거렸기 때문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 독고준이 말했다.
“헌원강. 너의 천무제 참가는 학생회 입장에서도 매우 반기는 일이다. 그래서 백수룡 선생님이 공부 모임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하셨을 때 승낙했던 거고. 야수혁. 너도 마찬가지다. 일학년 중에서는 네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으음? 나 불렀수?”
헌원강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야수혁이 눈을 반쯤 떴다. 입가에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흐아암.”
“…….”
공부와 평생 담을 쌓아온 두 망나니의 모습에, 독고준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헌원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연히 반겨야지. 이 몸이 올해 용봉비무에서 우승할 테니까.”
“꿈 깨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을 것 같군.”
“뭐?”
“지금 네 정신상태로는 그 꿈을 꿔 보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이 자식이…….”
인정사정없는 독설에 울컥한 헌원강이 독고준을 노려봤다.
독고준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동안 눈싸움을 벌이던 두 사람.
결국 먼저 시선을 피한 쪽은 헌원강이었다.
“……젠장. 하면 될 거 아냐. 나도 이딴 쪽팔린 이유로 천무제에 못 나가긴 싫다고.”
헌원강에겐 반드시 천무제에 나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충혈된 눈가를 손등으로 비비며 헌원강이 말했다.
“용봉비무에서 팽사혁 그 자식을 반드시 패 줘야 해.”
“동기가 불순하다만……. 어쨌든 의지가 없는 건 아니로군.”
한숨을 내쉰 독고준은 자신의 공부를 내려놓고 헌원강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라.”
“그럼 이것 좀 알려 줘 봐.”
헌원강이 풀고 있던 문제를 독고준에게 스윽 밀었다. 동시에 옆에 있는 야수혁의 뒤통수를 후려쳐 깨웠다.
“일어나서 같이 들어, 이 곰탱아!”
“으으……. 선배님. 저도 가르쳐 주십쇼.”
야수혁이 졸린 눈으로 고개를 휙휙 젓더니,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몇 차례 때려 잠을 쫓아냈다.
‘둘 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는군.’
그게 어디인가.
독고준은 헌원강은 내민 문제를 확인했다.
그에겐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무당의 절기를 음양오행으로 풀이한 이론이로군. 여기서 반드시 짚고 있어야 부분은…….”
독고준은 자신이 아는 것을 성심성의껏 두 학생에게 설명해 주었다.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단하게.
실전도 이론도 우수한 학생회장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헌원강과 야수혁은, 독고준이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는 강적이었다.
“……쿠울…….”
“드르렁…….”
“헌원강! 야수혁! 이 망할 자식들아!”
학생회장의 고함이 방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 *
다탁을 사이에 두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과 어린 소년이 마주 앉았다.
“백 선생이 내게 너를 가르쳐 달라고 특별히 부탁하더구나.”
“예.”
그들은 매극렴과 위지천이었다.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신 매극렴이 말했다.
“매일 이 시간에 나를 찾아오너라. 하루에 이 각씩 너에게 검객의 예절을 가르칠 것이다.”
“예.”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들은 묘하게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무릎에 가지런히 놓인 검 때문일까.
위지천이 조심스럽게 일을 열었다.
“저는 할아버지와 산에서 살아서 예의를 잘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많아도 부디 용서해 주세요.”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된다. 무지는 잘못이 아니다. 알면서도 잘못을 행하는 것이 잘못이지.”
“……예.”
낯을 많이 가리는 위지천이지만, 매극렴과 함께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한 자루의 잘 벼린 검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건 매극렴도 마찬가지였다.
“네게는 모든 것을 검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주마. 그것이 너도, 나도 편할 것 같구나.”
매극렴의 말에 위지천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네! 감사합니다!”
“좋아할 것 없다. 내게 배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터이니.”
“헤헤…….”
“실없이 웃지 마라.”
“네, 네!”
한평생을 검에 바쳐 온 노인과 검에 마음을 빼앗긴 소년.
두 사람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휴. 일단 한숨 돌렸군.”
제자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온 백수룡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민 끝에 헌원강과 야수혁은 독고준에게 나머지 공부를 부탁하고, 위지천은 매극렴에게 기초 교양공부를 맡겼다.
거상웅과 여민은 조금만 공부하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할 것이 없었다. 둘은 차라리 무공에 더 집중시키기로 했다.
‘교양시험은 이렇게 준비하면 될 것 같고…… 문제는 교우활동평가란 말이지.’
교우활동평가는 평소 수업 태도, 교내 활동, 동아리 활동 등을 토대로 학생의 인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었다.
따라서 평가에서 학관생활기록부, 줄여서 ‘생기부’를 본다고 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망나니들의 생기부가 제대로 돼 있을 리가 없지.”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청룡학관 역사상 가장 많은 학생을 대형 상단과 표국에 취업시킨 전설적인 인물.
백수룡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풍진호가 백수룡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겁을 잔뜩 먹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