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7
16화. 마공일지도악연호는 술이 약했다.
아주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했다.
“흐헤헤. 형니임……. 한 잔만 더…….”
“이거 뭐 하는 놈이야 진짜.”
나는 반쯤 술에 떡이 된 악연호를 업고 객실로 올라갔다.
녀석이 미리 객실을 계산해 두지 않았기에 일단 내 방으로.
심지어 방금 마신 술값도 내가 계산했다.
몇 잔 마시지도 않고 뻗어 버려서 얼마 안 나오긴 했는데…….
“음냐아아…….”
“나 참.”
녀석을 침상에 내려놓고 보니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객실로 오면서 여러 여인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날 바라볼 정도로 잘생긴 얼굴.
하지만 내가 지금 악연호를 빤히 바라보는 이유는 잘생긴 얼굴 때문이 아니었다.
‘무림인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신다고?’
아니 굳이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처음 보는 사이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불쑥 의심이 들었다.
이 녀석은 지금 날 시험해 보려는 것이거나, 무림 최고의 철부지가 틀림없다.
‘어느 쪽인지 확인해 봐?’
잠시 고민하다가 관뒀다. 부잣집 자식한테 밉보여서 좋을 것 하나도 없으니까.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기도 했고.
“끄응…….”
술에 취하는 것도 빠르지만 깨는 것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절정고수인 덕분에 신진대사가 원활한 탓이다.
“깼냐?”
악연호가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며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끄응. 오랜만에 술이라 신이 나서 너무 마셨네요. 이래서 아버지가 강호에 나가서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신 거였나…….”
내가 이런 말할 입장이 아니긴 한데, 넌 아버지 말 좀 들어야겠다.
“못 마시는 술을 왜 그렇게 마셔? 아예 처음부터 내공을 이용해서 주독을 몰아내든가.”
보통은 절정고수쯤 되면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술에는 취하지 않는다.
설령 취한다고 해도 내공을 이용해 가볍게 주독을 몰아낼 수 있다.
내 말에 녀석이 배시시 웃었다. 여인이라면 심장이 콩닥거릴 만한 미소였다.
“내공으로 몰아낼 거면 술을 왜 마시나요.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얼씨구. 그래서 무인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마셨다?”
“저도 그 정도로 취할 줄은 몰랐어요. 몇 년 만에 마시는 술이라.”
“자랑이다.”
악연호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형님이 잘생겨서 술맛이 더 나지 뭐예요. 역시 그림이 살아야 술맛도 더……. 농담이에요 농담! 그렇게 나가 버리면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되잖아!”
내가 슬금슬금 밖으로 도망치려 하자 악연호가 손을 홰홰 저었다.
“무슨 농담도 못 하게 해. 하여튼 아버지가 엄하셔서 이 나이 되도록 집에선 술을 거의 못 먹었다고요. 무공이 늘어서 술도 좀 늘었을 줄 알았는데…….”
이 녀석.
생긴 건 여자 여럿 울리게 생긴 풍류공자인데, 의외로 순진한 면이 있었다.
하기야 아까 뚱뚱보를 혼내 준 것만 보아도 그렇다.
보기에는 시원했을지 모르지만, 괜한 일로 무림에 적을 하나 만들었다.
은혜는 몰라도 원한은 결코 잊지 않는 곳이 무림인데 말이지.
‘그런 놈들은 뒤끝이 지저분한 법인데. 차라리 깔끔하게 죽여 없애거나…….’
혈교 출신인지라서 그런지, 나는 정파 놈들이 상대에게 아량을 베푸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이 신경 쓰인다면 조용히 쫓아가서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해치우거나, 최소한 다신 무공을 못 쓰게 반병신으로 만드는 것이 그쪽 업계 방식이거든.
악연호가 품에서 두툼한 전낭을 꺼내 흔들었다.
“형님. 술 한 잔 더 하실래요? 이번에는 진짜 제가 사겠습니다.”
“술은 적당히 시키고 안주나 좀 넉넉히 시켜라.”
뭐, 이 녀석이 적을 만들든 말든 내 일 아니니 관심 끄자.
우리는 방으로 술과 안주를 시켜 주거니 받거니 마셨다.
“크흐! 이 맛이지!”
개미 눈물만큼 홀짝이면서 말만 들으면 대주가가 따로 없다.
“아무튼 저희 아버지. 자식한테 너무 집착하신다니까요!”
“음? 나도 그런 아버지 한 명 아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상한 데서 죽이 맞았다.
우리는 함께 아버지 흉을 보면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
“저희 아버지가 저 어릴 때부터 온갖 영약을 먹여서 제가 그 부작용으로 술도 못 먹는 체질이 되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나 뒷간 갈 때도 은근슬쩍 따라와. 옛날에 한번 똥 누다가 기절해서 빠진 적이 있다나 뭐라나.”
“아 형님 술 먹는데 그건 좀…….”
“뭐?”
“……아무튼 저 어릴 땐 아버지가 친구도 못 사귀게 했어요. 무공부터 제대로 익히라면서요.”
“나는 몰래 이상한 무공을 익히려다가 여러 번 죽을 뻔했다더라.”
“했다면 했다지, 했다더라는 뭐예요? 남의 얘기처럼 하시네.”
“음. 했었지.”
“……이상한 형님이야. 아무튼 저는 또 무공에 재능이 제법 있거든요? 좋아도 하고요. 그리고 집 밖에 나가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무공을 익혀서 절정고수가 되었는데…….”
나는 언제부턴가 안주나 집어 먹으며, 녀석이 말하도록 내버려 뒀다.
타앙!
갑자기 탁자를 내리친 악연호가 분한 얼굴로 외쳤다.
“참나! 이제는 혼기가 찼다고 빨리 혼인부터 하라지 뭡니까! 혼인은 뭐 혼자 해? 짝이 있어야 하지! 그렇게 말했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뭐라는데.”
건성으로 받는 내 대답에도 녀석은 개의치 않고 열변을 토했다.
“글쎄 네 짝은 네가 알아서 찾으라며 집에서 쫓아내지 뭐예요!”
“……설마 그래서 강호에 나온 거야? 그 나이에 처음으로?”
“예, 뭐. 그렇죠.”
이리도 하찮을 수가.
내가 들어 본 강호 초출 중 가장 하찮은 이유다.
‘역시 이상한 놈이야.’
나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그런데 동생 정도면 혼처가 줄을 설 것 같은데. 가문도 좋고 얼굴도 훤칠하잖아.”
잘생겼다는 말에 악연호가 얼굴을 붉히면서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그렇지도 않아요. 저희 아버지가 워낙 무서운 사람인 데다…… 그, 제가 좀.”
무슨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이나 했더니, 부끄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웃었다.
“눈이 상당히 높아서. 헤헤.”
“얼씨구.”
나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홀짝였다.
계속 악연호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더니, 나도 아버지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랑은 반대네. 우리 아버지는 나 집 나가는 거 극구 반대하셨거든. 내가 어려서부터 몸이 좀 약해서.”
“하긴, 딱 보면 백면서생같이 허약하게 생…….”
“그거 욕이냐?”
“……기셨지만 사실은 굉장한 고수잖아요? 그렇죠?”
“마음대로 생각해라.”
고수라.
내게서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테니, 악연호가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겐 내공이 거의 없었다.
역천신공 1성을 달성하며 단전에 토대를 만들긴 했지만, 그건 단전이 없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있어도 쓸 수가 없으니까.
‘부작용 없이 내공을 끌어다 쓰려면…… 적어도 3성은 이루어야겠지.’
천음절맥을 치료하며 역천신공의 경지를 올리려면, 아직도 수많은 영약과 대법이 필요하다.
즉, 돈을 벌어야 한다.
새삼 그 액수를 떠올린 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을 쉬세요?”
“그냥. 그런데 동생은 목적지가 어디야?”
“청룡학관이요.”
내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설마…….
여기서 청룡학관이 있는 남창까지 며칠이면 갈 거리이긴 하다.
나는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마침 나도 청룡학관으로 가거든. 그런데 동생 나이에 입학하러 가는 건 아닐 테고.”
“그건 형님도 마찬가지잖아요. 어? 설마……!”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너도 입사 시험 보려고?”
“형님도 여자 꼬시려고?”
뭔 말 같잖은 소리야 진짜.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자, 악연호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크흠. 저도 입사 시험 보러 갑니다. 올해 청룡학관 신입 강사 모집에 응시하려고요.”
어쩐지 아까 뚱뚱보의 말에 열을 내더라니, 그런 이유도 있었군.
“여자 꼬시러 간다는 건 뭔데?”
“예? 제가요? 언제요?”
시치미 떼 봐야 한참 늦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어떤 생각이 들자마자 검을 뽑아 녀석을 겨눴다.
“너 설마 학관의 학생들을……. 이거 진짜 또라이 아냐?”
“코, 콜록! 그게 뭔 소립니까!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닥쳐! 당장 네놈의 양물을 잘라 무림의 소녀들을 구해야겠다!”
“아 진짜 아니라니까!”
악연호는 한참을 더 내게 해명해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미심쩍은 내 시선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러니까, 아버지가 제대로 된 정혼자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고? 그래서 괜찮은 반려를 찾으러 학관에 간다?”
“예!”
“하필 왜 청룡학관인데?”
“예전부터 우아하고 지적인 분이 이상형이었거든요.”
부끄러운지 헤헤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그 반응이 거짓말 같지는 않아서 일단 검은 거뒀다.
“그러는 형님은 입사하러 가는 목적이 뭔데요?”
나야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돈 벌러 간다. 일타강사가 돼서 돈을 쓸어 담는 게 목적이거든.”
“속물이네요.”
“너는 양물이나 관리 잘해라. 애들 건드렸다간 그 자리에서 잘라 버릴라니까.”
“아 진짜 아니라니까!”
술잔이 돌고 밤이 깊어졌다.
우리는 청룡학관이 있는 남창에 도착할 때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경쟁자와 동행하는 셈이지만…….
‘어차피 지원자가 한둘도 아닐 텐데 뭐.’
그보다는 앞으로 굳을 여비와 매끼 나올 고기반찬이 더 중요했다.
이 녀석이랑 같이 다니면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고.
“하하. 앞으로 백형이랑 같이 다니면 여자들이 줄을 서겠네요!”
……정말 괜찮겠지?
* * *
며칠 후, 우리는 남창에 도착했다.
“백부님!”
“수룡아. 오랜만이구나.”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한 사내는 비응객 고주열이었다.
남창은 강서에서 가장 큰 도시로, 무림맹 강서 지부와 청룡학관이 둘 다 이곳에 있었다.
내가 고주열을 먼저 찾아온 것은 그에게 받을 것이 있어서였다.
“온다는 소식은 무흔이에게 연통으로 전해 들었다. 너에게 줄 추천서도 이렇게 미리 써 놨지.”
“감사합니다.”
고주열은 몇 달 전보다 훨씬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가 써 준 추천서를 잘 챙겨 넣었다.
고주열은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바쁜 와중에 잠시 짬을 내 나를 만나러 나왔다.
“혈색이 더 좋아진 것 같구나. 옆의 청년은 친구냐?”
“예. 오면서 사귄 친구입니다.”
“강호 초출인 악연호라고 합니다.”
“혹시 산동악가의 자제이신가?”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고주열은 최근에 일이 많아서 빨리 가 봐야 한다고 했다.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추천서는 추천서일 뿐이다. 아마 모든 지원자가 가지고 있을 게다. 미안하지만 그중에서는 내가 끗발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써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나머진 제 능력으로 해결해야죠.”
신입 강사를 뽑는 기준은 무공이 전부가 아니다.
출신과 배경, 경력, 면접 결과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고주열은 올해는 경쟁률이 상당히 높을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래. 믿는다.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바빠서 이만 가 봐야겠구나. 요즘 아주 정신이 없어.”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늘 바쁘지. 무림에는 항상 온갖 일이 일어나지, 일할 사람은 적지, 월봉은 쥐꼬리만…… 흠흠.”
우리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는지 고주열이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그렇다. 뭐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은데…….”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다음에 합격 축하주를 마시자꾸나. 아, 자네도 꼭 붙길 바라겠네.”
“예! 감사합니다!”
고주열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데 몇 걸음 걸어가던 고주열이 그대로 몸을 돌려서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면접에서 점수를 크게 딸 방법이 하나 있는데……. 수룡아. 일 하나 안 해 볼 테냐?”
“예? 일이요?”
“그게…….”
고주열은 깊이 고민하는 기색으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최근에 민간인이 무림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
옆에서 깜짝 놀라는 악연호와 달리,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민간인이 무인에게 살해당하는 것쯤 사파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주위를 둘러본 고주열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말했다.
“헌데 그 무공이…… 마공일지도 모른다.”
“……예?”
이건 나도 좀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