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동아리 활동 (4)
“뭐라고……?”
선우진은 표정 관리가 도저히 안 되는 모양이었다.
웃는 것인지 화를 내는 것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그의 얼굴을 보며, 헌원강은 속이 뻥 뚫리는 듯한 통쾌함을 느꼈다.
“다시 얘기해 줘? 동아리 연합 회장 선거에 출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
선우진은 입을 굳게 다물고 헌원강을 바라봤다.
방금 헌원강의 말에서 진의를 파악하려는 것 같았다.
격렬한 반응은 오히려 다른 쪽에서 터져 나왔다.
“개소리도 작작 해야지! 네가 동연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네가? 이 주제도 모르는 자식이!”
오진양이 얼굴이 시뻘게진 모습으로 헌원강에게 삿대질을 했다.
다른 학생들도 소리만 지르지 않을 뿐, 얼굴에 불쾌함이 가득했다.
“왜 질문 좀 한 거 가지고 난리야? 물어보지도 못해?”
헌원강은 귀를 후벼서 후- 하고 불었다. 누런 귀지가 날아가 오진양의 옷에 묻었다.
“으악! 이 빌어먹을 자식이 진짜!”
“덤비게? 동아리 신청도 끝났겠다, 사과도 했겠다. 나도 이제는 그냥 맞아 줄 이유가 없는데?”
“큭……!”
결국 오진양은 덤비지 못하고 혼자서 화를 삭였다.
피식 웃은 헌원강은 고개를 돌려 선우진을 바라봤다.
“이봐. 선우진.”
“…….”
“내가 기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거든? 내가 맞고 있을 때 네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도 진작 알고 있었어.”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오해는 지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선우진의 말을 끊으며, 헌원강은 히죽 웃었다.
“나중에 끼어들어서 싸움을 말린 것도, 주인공 놀이를 하고 싶어서라는 거 알아. 너 옛날부터 그런 거 좋아했잖아?”
“…….”
헌원강과 선우진, 그리고 팽사혁은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하북팽가. 헌원세가. 선우세가.
셋 다 도법으로 이름을 날린 가문이었고, 몇 번이지만 어울려 놀았던 적도 있었다.
때문에 헌원강은 선우진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만큼 착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팽사혁이 사라졌으니까 동연은 내가 먹겠다, 이거 아니야? 기회주의자 새끼.”
“말이 좀 심한데?”
선우진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헌원강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심하긴 시벌. 적당히 짜증 나게 해야 할 거 아니야. 너 같은 놈이 동연 회장이 되느니, 내가 하는 게 낫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응? 여기서 또 신청서 쓰면 되나?”
사실, 헌원강도 진심으로 동아리 연합 회장 선거에 나갈 마음은 없었다.
절반쯤은 선우진의 속을 긁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돌린 헌원강은 자신을 포위한 동아리 연합회 회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니들도 그래. 팽사혁이 쓰레기 짓이나 하고 다닐 때는 옆에서 호가호위하던 새끼들이, 이제 와서 냉큼 선우진한테 붙어? 니들은 자존심도 없냐?”
“팽사혁은 폭군이었어.”
“우리도 강제로 시켜서 한 짓이었다고!”
울컥해서 따지고 드는 학생들에게, 헌원강은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어이고, 그러세요? 팽가 놈이 폭군이었으면, 니들은 폭군한테 알랑방귀 뀌면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주워 먹는 놈들 아니었어?”
“저 새끼가!”
사방에서 헌원강을 비난하는 욕설이 쏟아졌다.
하지만 헌원강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내가 동연 회장이 되면 니들부터 싹 갈아 치울 거야. 그렇게들 알고 있으라고.”
쌓였던 말을 했더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때였다. 분노 어린 욕설들 사이에서, 잘 벼린 칼날처럼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한번 해 봐.”
선우진이었다.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안 그래도 경쟁자가 없어서 심심했는데 잘됐네. 당선된 후에도 뒷말이 나올 것 같았거든.”
“뭐?”
“여기, 입후보 신청서 가져와.”
부탁이 아닌 명령이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거둔 선우진의 표정은 지극히 차가웠다.
그가 헌원강에게 신청서를 내밀었다.
“자, 신청서다. 이 양식대로 신청하면 보름 뒤 동아리 연합회 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원래는 간부 회의를 통해 결격 사유가 발견되면 출마할 수 없지만, 너는 특별히 예외로 하지.”
사실 헌원강에게 결격 사유를 따지자면 넘치도록 많았다.
그는 청룡학관에서 알아주는 문제아였으니까.
하지만 선우진은 말 한마디로 헌원강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동연 내부에서 그의 권력이 이미 회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였다.
“자, 어서 작성해. 아까 한 말이 허세가 아니었다면 말이야.”
재촉하는 선우진의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이 맺혔다. 하지만 그 웃음은 더 이상 선량해 보이지 않았다.
“허세? 나중에 울고불고 후회나 하지 마라.”
헌원강의 입가에도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그 자리에서 바로 신청서를 작성해 선우진에게 내밀었다.
“접수해.”
그렇게, 헌원강은 영약 요리 연구회를 설립하자마자 동아리 연합 회장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선우진이 헌원강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선의의 경쟁을 펼쳐보자.”
짝!
헌원강은 선우진의 손을 매몰차게 쳐 냈다.
그리고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경쟁은 지랄. 오늘부터 너랑 나랑 전쟁이다, 이 새끼야. 각오해.”
“…….”
휙 돌아선 헌원강은 그대로 동아리 연합회 건물을 나섰다.
* * *
“으아아악! 젠장! 왜 그런 소리를 해가지고!”
백룡장으로 돌아온 헌원강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침상을 뒹굴며 애먼 이불을 마구 걷어찼다.
“대체 내가 왜 그랬지? 뭐? 동연 회장? 대체 누가 나를 뽑겠냐고!”
일단 성질대로 질러놓고 오긴 했는데, 다시 생각해볼수록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뭐? 전쟁? 으아아! 이런 미친놈이!”
아무리 생각해도 선우진을 상대로 승산이 없었다.
아니, 그 누가 상대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을 회장으로 뽑을 것 같지는 않았다.
투표는 동아리 연합에 소속된 동아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면…… 그들이 선우진이 아닌 자신에게 투표할 이유가 없었다.
“하여튼 이게 다 팽사혁은 그 새끼 때문이야!”
헌원강은 갑자기 그 자리에도 없었던 팽사혁을 욕하다가, 결국 해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털썩.
침상에 드러누운 헌원강이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까짓거 쪽팔림 좀 당하고 말지 뭐…….”
드르륵.
방문이 열리고, 다른 제자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원강아. 무슨 일인데 그래?”
“선배! 조용히 좀 해요!”
“한숨 소리에 바닥 꺼지겠어요.”
“원래도 미친 사람이었지만, 동연에 다녀온 뒤로는 조금 더 미친 것 같아…….”
어느새 헌원강의 방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헌원강은 그들을 향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다들 나가 줘. 아, 나가라니까 왜 더 들어오는데!”
헌원강은 손에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지만, 이 자리에 그런 어설픈 암기에 맞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헌원강 주변으로 몰려든 제자들이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말해 봐. 아까 동연에 갔다 오고 나서부터 수련도 제대로 안 하고. 무슨 일인데 그래?”
“말해 봐요, 선배. 동연에서 누가 괴롭히기라도 했어요?”
“아까 무슨 회장? 선거라고 하던데. 그게 뭐예요?”
말을 안 하면 다들 끝까지 안 나갈 기세라, 헌원강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내가 쪽팔려서 진짜……. 그게 그러니까…….”
헌원강은 동아리 연합회에 가서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됐어.”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다들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선배가 회장? 그럼 우리가 회장단이야?”
“따라가서 내 눈으로 봤어야 하는데…….”
위지천만 빼고 모두 낄낄대며 헌원강을 놀리기 바빴다.
헌원강이 벌게진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젠장. 내가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때, 거대한 손이 헌원강의 머리를 툭 덮었다.
거상웅이 웃으며 후배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렸다.
“그래도 장하다! 아무도 안 패고 잘 참았어.”
“징그럽게 뭐 하는 짓이야.”
헌원강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거상웅의 손을 쳐 냈다.
거상웅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흐뭇하게 웃으며 헌원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스레 귓불이 빨개졌다.
“이것들이 징그럽게……. 가서 수련들이나 해!”
“선배는?”
“나도 해야지. 여기서 한숨만 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헌원강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제자들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인곡에서 생사를 함께한 이후로, 그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유대가 형성되었다.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헌원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몸도 찌뿌둥한데 나랑 대련할 사람?”
그때, 위지천이 지나가듯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한테는 어떻게 말하려고요?”
“……절대 말하지 마.”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된 헌원강이 모두에게 말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그 인간이 알면, 분명 일을 더 크게 벌이고도 남을…….”
“……죄송한데 이미 늦은 것 같아요.”
“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은 위지천이 눈짓으로 헌원강의 등 뒤를 가리켰다.
대체 언제 왔는지, 백수룡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회~장~선~거~?”
“히이이익!”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친 헌원강이 비명을 질렀다.
“아 진짜! 심장 멎을 뻔했잖아요!”
“네가 정신을 놓고 다니니까 그렇지. 평소라면 알아챘을 텐데.”
혀를 찬 백수룡이 팔짱을 꼈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다 들었다. 원강이 네가 동연 회장 후보로 출마했다고?”
“그게…… 하아.”
결국 다 들켜 버렸다. 헌원강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제 개망신당할 일만 남았어요.”
“왜 개망신을 당해? 이겨서 당선되면 되지.”
“……제가요?”
헌원강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단 한마디로 자신이 선거에서 얼마나 불리한지 설명했다.
“선생님. 저 헌원강인데요.”
“자랑이다, 인마.”
따악!
어김없이 날아든 흑룡편이 헌원강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백수룡은 바닥에 주저앉아 끙끙대는 헌원강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잘 들어. 네가 선우진이란 놈한테 선전포고한 대로, 이건 전쟁이야. 그것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쟁이지.”
“저도 알아요…….”
헌원강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백수룡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기죽을 것도 없어. 다르게 말하면 우린 밑질 게 없는 전쟁이라는 거니까. 이기면 대박이고, 져도 본전이란 소리지.”
“그건 그렇지만…….”
“애초에 질 생각도 없지만.”
백수룡은 눈을 빛냈다.
동아리 연합회는 학생회와 함께 청룡학관의 양대 학생단체였다.
소속된 인원은 학생회보다 훨씬 더 많았다.
즉, 동연을 장악하면 학생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기대도 안 했는데 이게 웬 떡이냐.’
동아리 설립을 생각하면서, 동아리 연합 회장 선거를 떠올리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망나니 제자들은 결격 사유가 너무 많았다.
출마조차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 내심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걸 저쪽에서 통과시켜 줬다 이거지?”
씨익.
백수룡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의 제자들을 알 수 없는 오한에 떨게 만드는 미소가.
“우리가 먹자. 동아리 연합.”
백수룡은 자신이 쓸 수 있는 패를 점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