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75
174화. 상검연 (1)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진 후, 당소소는 백수룡에게 부탁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자리를 비켜 주실 수 있을까요? 헌원강 선배와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둘이서만?”
“비밀 이야기 같은 건 아니에요. 그냥 선생님이 옆에 계시면 솔직한 대화가 힘들 것 같아서요. 나중에 다 말씀드릴게요.”
“흐음…….”
당소소의 표정이 제법 진지했기에,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알았다. 원강아, 이야기 끝나면 딴 길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라.”
“제가 갈 데가 어딨어요.”
백수룡은 투덜거리는 헌원강의 뒤통수를 습관처럼 툭툭 친 후 돌아섰다.
“그럼 나 먼저 간다.”
백수룡의 모습이 객잔 밖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은 백수룡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애초에 그들은 친분도 전혀 없었고, 오늘이 아니었으면 따로 만나 이야기할 일도 없었다.
당장 당소소의 태도와 말투만 해도, 백수룡이 있을 때와 달리 사무적으로 변했다.
“제가 뒤에서 돕긴 하겠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헌원강 선배가 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은 거의 없어요.”
“뭐? 조금 전하고 말이 다르잖아?”
백수룡이 나가자마자 완전히 바뀐 당소소의 모습에, 헌원강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거 전략을 짜기 전에, 현실을 직시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당소소는 우아한 몸짓으로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방금까지 이불에 코를 박고 킁킁대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이쪽이 원래 당소소의 모습이었다.
“선거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해야 열흘 남짓이에요. 그런데 상대는 동연에서 가장 인망이 두터운 섬도(? 刀) 선우진. 팽사혁 선배가 갑자기 천무학관으로 떠나고 혼란에 빠진 동연을 수습한 인물이죠.”
당소소의 눈이 총명하게 반짝였다.
총학생회와 동아리 연합은 청룡학관의 양대 학생단체였지만, 그들의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다.
이해관계에 따라 힘을 합치긴 하되, 끝나면 다시 반목하는 관계.
‘게다가 팽사혁이 회장으로 있었을 땐 더더욱 좋지 않았지. 모범생인 우리 회장과 팽사혁은 물과 기름처럼 안 맞았으니까.’
때문에 학생회 측에서도 이번 동연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선우진이 회장이 될 거라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보고, 이후 동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당소소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학관 최고의 망나니가 후보로 출마해 버렸죠.”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아뇨.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간다는 뜻이에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
동연 소속의 쟁쟁한 동아리 회장들도 아니고, 이제 막 설립된 신생 동아리의 회장이 선우진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혀 상대가 안 될 것 같은 대결이지만, 만약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면…….’
헌원강이 정말 동연 회장으로 당선된다면?
학생회 입장에서도, 천무제라는 큰 목표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동반자가 생기는 셈이었다.
당소소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 자리에 나온 이유가 단순히 백수룡의 이불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재 대부분의 동아리가 선우진을 다음 회장으로 지지하고 있어요. 성격, 인망, 무공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헌원강의 얼굴을, 당소소는 뚫어져라 응시했다.
“헌원강 선배.”
“어?”
“그런 검증된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왜 선배를 뽑아야 하죠?”
“……뭐?”
현재로서는 이 도박이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래서 당소소는 일부러 헌원강을 자극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대면하면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다.
당소소는 선우진에 대해서는 제법 잘 알았지만, 정작 헌원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특히 지금의 헌원강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단순히 성질을 못 이겨서 덤빈 거라면 지금이라도 포기해요. 앞으로 열흘 동안 선배는 온갖 모욕과 망신을 당하고, 과거에 하지 않은 잘못까지 했다고 누명을 쓰게 될 거예요. 진흙탕을 굴러야 한다고요. 선배 성격에 그걸 견딜 수 있겠어요? 각오가 돼 있는 건가요?”
“너…….”
당소소의 입에서 독설이 쏟아졌다.
오대세가 중에서도 가장 성정이 독하기로 유명한 사천당문의 딸.
필요하다면, 당소소는 상대의 약점과 상처를 후벼 파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예전 팽사혁 선배도 개차반이기로 유명했지만, 그 사람에겐 사람들을 아우르는 권위와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있었어요. 무공도 압도적이었죠. 하지만 선배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은 뭐가 있죠?”
“또 팽사혁이냐?”
순간, 헌원강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팽사혁은 비교를 당해서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당소소는 조금 긴장했지만,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선배는 툭하면 싸움이나 하는 망나니에, 성격도 나쁘고, 무공도 검증되지 않았어요. 아, 전에 팽사혁 선배에게 얻어터진 건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하죠.”
“야. 까불지 마.”
쾅!
탁자를 내리친 헌원강이 타오를 듯한 눈빛으로 당소소를 노려봤다.
‘무슨 살기가…….’
상상 이상의 살기에 당소소는 흠칫했지만, 그걸 겉으로 티 낼 만큼 그녀의 수련이 얕지는 않았다.
“후우…….”
헌원강은 화를 억누르기 위해 깊게 심호흡을 했다.
또래에게 이렇게 말로 얻어맞아 본 적이 얼마 만이던가.
보통 학생들은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아예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
당소소처럼 대놓고 도발을 해 오는 경우는 없었다.
굳이 꼽자면, 팽사혁 정도.
“네가 날 왜 열 받게 하려는지 모르겠는데, 물어보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지.”
“…….”
“입후보한 거? 선우진 그 자식이 열 받게 해서 일단 질러 본 게 맞아. 얼떨결에 신청서를 썼고, 돌아와서 선생님한테 말하니까 다음 날 동연 건물 앞에서 하수오즙을 나눠 주고 있더라고.”
헌원강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큭큭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각오가 돼 있냐고? 전혀. 내세운 공약은 선생님이 적어 준 걸 외워서 말한 거고, 난 동연이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몰라. 그냥 등 떠밀려서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아니. 차라리 피곤해서 곯아떨어질 때까지 칼이나 휘두르는 게 마음 편해. 이딴 건 성미에 안 맞아.”
헌원강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말했다.
당소소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왜…….”
“필요한 일이라고 하니까. 내가 동연을 장악해서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일이 수월해진다고 했거든.”
“누가요?”
헌원강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누구겠어? 맨날 내 뒤통수나 후려갈기는 인간이 하나밖에 더 있어?”
“백수룡 선생님이요? 그럼 전부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거예요?”
“단순히 시켜서 하는 건 아니야.”
헌원강이 고개를 저었다.
“내 목표는 천무제 용봉비무에서의 우승이야. 거기서 팽사혁을 두들겨 패고 우승할 거다. 하지만 용봉비무에서 우승한다고, 꼭 천무제에서 우승하는 건 아니잖아?”
당소소는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용봉비무의 점수 배당이 가장 높긴 하지만, 다른 대회의 점수를 합치면 종합 점수가 용봉비무보다 높으니까요.”
“그래. 나만 잘하면 안 돼. 다 같이 잘해야 천무제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그래야 그 인간의 소원도 들어주지.”
헌원강은 자신의 용봉비무 우승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당소소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어느새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맺혔다.
“그래서, 선생님을 돕고 싶어서 동연 회장이 되겠다고요?”
헌원강은 조금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인간이 나를 맨날 쥐어패기는 해도, 나한테는 평생의 은인이거든.”
“…….”
백수룡과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은 지금도 술독에 절어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낭비하고 있지 않았을까. 헌원강은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튼, 동연 회장이 될 각오? 의지? 난 없어 그딴 거. 하지만 대충하겠다는 말은 아니야. 이 악물고 할 거다.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고 싶으니까.”
은혜를 갚고 싶으니까.
그 말이 당소소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기특한 제자네요. 선생님께서 아시면 무척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
“쪽팔리니까 절대 말하지 마.”
헌원강은 닭살이 돋는지 자신의 팔을 쓸어내렸다. 당소소가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제법 귀엽기도 하고요.”
“……너한테 그런 말 들으면 좀 무서워.”
짧은 시간 나눈 대화였지만, 당소소는 헌원강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거 알아요? 백수룡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반했을지도 몰라요.”
“세상에. 또 은혜를 입었네.”
솔직한 대화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두 사람은 이젠 서로를 마주 보며 농담도 하고, 킥킥 웃기도 했다.
당소소는 생각했다.
‘헌원강 선배. 내가 알던 거랑은 확실히 달라. 아니, 달라졌어.’
과거의 헌원강은 그저 거칠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항상 마음에 날을 세우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건드리면 사방을 할퀴었다.
하지만 백수룡이라는 은사를 만난 후, 헌원강은 변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무공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 이제 선우진 그 야비한 새끼의 콧대를 박살 낼 방법을 말해 봐.”
……저런 말투는 좀 고쳐야겠지만.
작게 중얼거린 당소소가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선우진은 동연 내 거의 모든 동아리의 지지를 받고 있어요. 그 지지율은 음식 좀 나눠 준다고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일 할 미만.”
“끄응…….”
하지만 빈틈이 전혀 없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당소소가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하지만 동연 내의 모든 동아리가 선우진을 지지하는 건 아니에요. 소수지만 선우진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선거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우선 그들부터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해요.”
“어떻게?”
“그 전에 하나 물어볼게요. 선배는 동연에서 가장 큰 동아리가 어딘지 아세요?”
“상도연 아니야?”
헌원강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상도연’은 ‘상승 도법 연구회’를 줄여서 부르는 호칭이었다.
현 동연의 주축이자, 과거 팽사혁이 회장을 역임했던 동아리이기도 했다.
팽사혁이 상도연 회장일 당시 선우진은 부회장이었다.
그만큼 동연을 꽉 잡고 있는 동아리지만, 사실 상도연은 동연 최대 동아리가 아니었다.
“상도연은 규모로 보면 동연 내에서 두 번째예요. 최대 동아리는 따로 있어요.”
“거기가 어딘데?”
“상검연. 상승 검법 연구회요.”
무림에는 검과 도를 다루는 무인이 가장 많고, 그건 청룡학관에 다니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검과 도를 다루는 학생들이 모인 동아리가 학관 내 최대 동아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두 동아리는 예전부터 은근히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소소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상검연 회장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해요.”
“상검연 회장이면…… 나도 들어 본 적 있어. 검화(劍花), 맞지?”
검화 유이란.
검룡 독고준과 쌍벽을 이루는 청룡학관 최강의 검수이자, 별호에 꽃이 들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였다.
당소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유이란 선배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승산이 단숨에 사 할까지 올라갈 거예요.”
당소소는 일 할도 안 되던 승산이 사 할까지 올라갈 거라고 장담했다.
검화가 동연 내에서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왜 선거에는 안 나왔는데?”
“유이란 선배는 검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아, 내 주변에도 하나 있어. 그런 녀석.”
어쩐지 친근한 생각이 든 헌원강이 씩 웃었다. 위지천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럼 지금 바로 검화를 만나러 가면 되는 거야?”
“무턱대고 만나자고 하면 만나 줄 리가 없잖아요. 다행히 유이란 선배는 저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요. 내일 만남을 주선해 볼게요.”
사실 백수룡이 미리 접선해 왔을 때부터, 당소소는 이번 선거에 상검연을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다만…… 유이란 선배는 좀 독특한 사람이니까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헌원강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걔는 뭐, 좋아하는 거라도 있어? 선물이라도 갖다 주면 좋아하려나.”
“아무것도 안 가져가는 게 나아요. 남자가 주는 선물이라면 특히…… 아!”
그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당소소가 손뼉을 쳤다.
검화가 좋아할 만한 것을 떠올린 것이다.
“내일 검화 선배를 만나러 갈 때 위지천도 데려가세요. 잘하면 호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위지천? 걔는 갑자기 왜?”
당소소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선배. 검이랑 대화하거든요. 위지천도 그런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