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8
17화. 용의자들무림맹 강서 지부에 들렀다 돌아가는 길.
“마공이라니…….”
악연호는 아까 고주열에게 들었던 이야기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형님. 사실이라면 이거 정말 큰일 아니에요?
“아닐 수도 있다고 했잖아. 그리고 사실이라고 해도 별거 아냐.”
“왜 별거 아니에요! 무림맹 지부가 바로 옆에 있는 곳에서 어느 미친놈이 마……공을 익혔단 소리잖아요.”
말하던 도중에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신경 쓰였는지, 악연호가 내 옆에 바짝 붙어서 귀엣말로 속삭였다.
“덥다. 저리 가라.”
향수라도 뿌렸는지 몸에서 달착지근한 냄새가 나는 악연호를 옆으로 밀어내며,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공이 별거냐.”
마공(魔功)이란 빠른 성취를 위해 몸이나 정신(대부분 둘 다)에 무리가 가는 비정상적인 수련법을 가진 무공을 뜻한다.
온몸에서 음험해 보이는 시커먼 기운을 줄줄 흘리는 것만이 마공이 아닌 것이다.
‘……그런 것도 있기야 하지만.’
사실 내가 익힌 역천신공도 정파의 기준에서 보면 마공이다.
하지만 마공이 위험한 이유는 대부분 익히다가 못 견디고 미쳐 버리기 때문인데, 훗날 그런 부작용을 제거하면 신공(神功)이라고 불린다.
결국 결과가 말해 주는 것이다.
‘혈교에도 꽤 많았지. 강해지고 싶어서 이런저런 짓거리를 하다가 불구가 되거나 미쳐 버리는 놈들.’
개중에는 동남동녀의 피를 빨아 마셔야 한다거나, 시체의 독을 흡수하는 등 정말 미친 짓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사건의 범인이 그런 경우는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날 쫄래쫄래 따라오는 악연호는 안 그런 모양이지만.
“형님은 걱정도 안 되세요? 어쩌면 마공을 익힌 사파 고수와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악연호를 돌아봤다.
강호 초출이라더니. 이 녀석은 자기가 무림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너보다 강하면 절정고수란 뜻인데. 사파의 절정고수가 뭐가 아쉬워서 노인을 찢어 죽이겠냐.”
“그야 사악한 마두니까?”
한때 사악한 마두 집단의 일원이었던 입장에서, 나는 이 천진난만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무협지를 너무 많이 봤나 본데, 사파에서 절정고수쯤 되면 귀찮아서 그런 짓 거의 안 해. 똘마니들한테 시키지.”
“아, 그런가…….”
“그리고 그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면 무림맹에서 우리한테 일을 맡기지도 않아. 애초에 마공이 아닐 수도 있고, 맞더라도 조무래기일 거다.”
나는 아까 고주열과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마공일지도 모른다니…….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말해 주셔도 되는 겁니까?
-물론 공식적으로는 안 되지.
슬쩍 웃은 고주열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요즘 맹에 인력난이 워낙 심해서 말이다. 청룡학관 입학 시기가 되어 무인들이 몰려와서 사건·사고도 많고……. 또 말 못 할 사정이 좀 있다.
고주열은 말 못 할 사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 줄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너는 예전에도 사파의 무공을 한 번에 알아보지 않았더냐?
진무관 사건.
사파 놈들이 남궁세가의 이름을 사칭해 무공을 가르치려다가 내게 발각된 것을 고주열은 기억하고 있었다.
확실히 마공 쪽이라면 내가 전문이긴 하다.
-마공인지 아닌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흉수의 손속이 지나치게 잔인하고, 시체의 훼손이 심해서 의심을 하고 있다만…….
-그럼 마공인지만 확인하면 되는 겁니까?
내 말에 고주열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
-범인까지 잡아 준다면 더 좋지.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맹에서 감사패를 만들어 줄 거다.
무림맹의 감사패.
아무런 배경도 경력도 없는 내게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떠냐? 한번 조사해 보겠느냐? 하겠다면 관청에 연통을 넣어 보마.
-예. 해 보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설령 범인을 못 찾더라도, 수사를 도운 것 자체로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할 정도는 될 테니.
“이력서에 한 줄이라…….”
아무튼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노인의 시체가 있다는 관청으로 가는 길이었다.
“근데 넌 굳이 안 따라와도 되지 않냐?”
나는 여전히 쫄래쫄래 나를 따라오고 있는 악연호에게 물었다.
“저요?”
나와 달리 악연호는 산동악가의 자제였다.
게다가 본인의 무위마저 절정고수.
저 배경에 저 실력이면 면접에서 면접관을 두들겨 패지 않는 한 떨어질 확률은 거의 없었다.
내 말에 악연호가 배시시 웃었다.
“어차피 입사 시험까지는 꽤 여유가 있으니까요. 소일거리 삼아 형님이나 따라다녀 보려고요.”
“아깐 사파 고수 어쩌고 하면서 겁먹은 얼굴이더니?”
“이야. 역시 형님이랑 같이 다니니 심심하진 않네요.”
“명문가 자제라 그런지 가정교육을 아주 잘 받았어. 자기 불리할 땐 못 들은 척하고 말이야.”
“이야! 저긴 무슨 기루가 5층이나 된대요?”
우리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관아에 도착했다.
미리 전서구로 연통이 갔는지, 고주열의 이름을 대자 잠시 후 무뚝뚝하게 생긴 젊은 포두가 우리를 마중했다.
“무림맹에서 오신 분들이군요. 저는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포두 청천이라고 합니다.”
“백수룡입니다. 무림 초출이라 아직 별호는 없습니다.”
“악연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청천 포두는 우리를 잠시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금방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우선 시체부터 보시겠습니까?”
* * *
정파 무림맹과 관은 대체로 협력 관계다.
무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칼부림과 그 결과에 대해, 관은 어지간해서는 참견하지 않는다.
대신 민간인이 무공으로 인해 다치거나 살해당할 경우, 관은 무림맹에 협조를 구해 흉수를 찾는다.
지금과 같은 경우도 그런 경우다.
“시체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청천 포두가 거적을 들치자, 푸줏간의 고기처럼 해체되다시피 한 노인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윽…….”
웬만큼 시체에 익숙한 무인도 속이 울렁거릴 만한 모습에 악연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상처를 자세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십시오.”
내가 거침없이 시체로 다가가자 청천 포두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포두의 허락을 받은 나는 장갑을 끼고 노인의 상처를 꼼꼼히 살폈다.
‘마공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군.’
사람이었다는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토막 난 시체.
흉수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 노인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거…….’
나는 시체를 살피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설마?’
몸에 난 상흔을 살피다 보니, 내가 아는 어떤 무공의 초식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똑같은 초식은 아니다.
하지만 유사한 부분이 많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확한 건 흉수를 잡아봐야 알겠군.’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장갑을 벗으며 청천 포두를 돌아봤다.
“다 봤습니다.”
“뭔가 특별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체에서 뭔가를 발견한 건 맞지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잘 모르겠군요.”
“그렇습니까.”
“며칠 전에 고주열 대협께서 보고 가셨다고 하던데. 뭐라고 하시던가요?”
“비슷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인의 시체는 다시 보관실에 집어넣었다.
해쓱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 있던 악연호가 내 옆으로 다가와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댔다.
“형님은 백면서생같이 생겨서 무슨 시체를 그렇게 잘 만져요? 소름 돋게.”
“이 시체 만진 손으로 너도 만져 줄까?”
“히익!”
내 장난에 악연호가 질겁하며 물러났다.
얼굴에 표정이 없는 청천 포두가 그런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크흠, 헛기침을 한 내가 그에게 물었다.
“살인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요.”
청천 포두가 말해 준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며칠 전, 남창의 고리대금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던 허 노인이 자신의 저택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범죄 추정 시각은 해시(밤 9시)에서 인시(새벽 5시) 사이.
매일 식사를 챙겨주는 시비가, 식사 때가 되어도 허 노인이 내려오지 않자 부르러 갔다가 해체된 시체를 발견하고 곧바로 관아에 신고했다고 한다.
“용의자는 있습니까?”
“정황상 의심스러운 자가 셋입니다. 허 노인의 아들. 허 노인 소유의 기루를 운영하는 손 부인이라는 중년 여자. 그리고 그의 호위무사입니다.”
청천 포두의 말로는, 허 노인의 자택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중 그 셋의 범행 동기가 가장 크다고 했다.
“손 부인은 허 노인과 내연 관계인데 최근 기루 운영을 두고 허 노인과 크게 다투었다고 합니다. 아들과는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의절했다고 하고, 호위무사는 낭인 출신으로 과거 행적이 지저분합니다.”
죽은 허 노인이 고리대금업자라 그 외에도 원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지만, 현재로서는 그 셋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들이라고 했다.
나는 청천 포두에게 부탁했다.
“그 세 사람. 제가 한 명씩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직접 봐야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표정이 없는 청천 포두의 뒤를 따라 첫 번째 용의자를 만나러 갔다.
* * *
“전 정말 억울해요.”
손 부인은 곱게 늙은 중년 여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십 대쯤 돼 보였는데, 실제로는 오십을 훌쩍 넘겼다고 청천 포두가 미리 말해 주었다.
“그날 밤 제가 그 사람과 다툰 건 맞아요. 하지만 그런 일은 예전부터 자주 있었다고요.”
우리는 허 노인 소유의 기루인 적화루(赤化樓)의 특실에서 손 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우리 앞에는 상다리가 떡 벌어질 정도로 음식과 술이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청천 포두는 뻣뻣한 자세로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고, 나도 음식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악연호는 내 옆에서 기루 안을 여기저기 훔쳐보기 바빴고.
‘처음 와 보나?’
명문세가의 자제라는 놈이 볼수록 왜 이렇게 촌뜨기 같은지…….
아무튼, 손 부인은 자신의 결백함을 계속해서 주장했다.
“애초에 전 무공 같은 건 익히지도 않았어요. 무서워서 닭도 못 잡는다고요. 사람을 죽이는 일 같은 건…….”
이대로면 계속 변명만 듣게 될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말을 끊고 물었다.
“죽은 허 노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셨다면서요?”
“…….”
내 노골적인 말에 화가 난 건지 부끄러운 건지, 말문이 막힌 손 부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곧 코웃음을 치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래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관계였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 그런데 소협은 늙은 여인을 희롱하는 게 재미있으신가요?”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냥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어서요.”
익힌 무공에 따라 다르지만, 화가 났을 때 신체 변화가 드러난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어서 말이지.
“실례지만 허 노인과 자주 다투셨다고 했는데,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손 부인은 이런 것까지 다 말해야 하냐며 투덜대다가, 청천 포두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기루를 다른 년한테 맡기려고 했어요. 저보곤 뒷방으로 물러나라고 하더군요. 전 절대로 싫다고 했어요. 돈을 댄 건 그 사람이지만 적화루를 이만큼 키운 건 나예요.”
손 부인은 적화루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해 보였다.
확실히 이곳은 남창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기루이긴 했다.
당연히 주무르는 돈도 상당했겠지.
“전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세상은 고리대금업자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의외로 자상한 면도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손 부인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었다.
“…….”
좀 말려 줄 것이지, 청천 포두는 내가 전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겠다는 듯 목석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예예.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손 부인의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고, 눈으로 ‘보는 것’도 충분했다.
그녀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즉, 허 노인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다음 사람을 만나러…….”
우리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손 부인이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왔다.
그때였다.
와장창!
“비켜, 이 새끼들아! 니들 내가 누군지 알아!”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술에 잔뜩 취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할망구 나오라고 해!”
손 부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청천 포두가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용의자는 따로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