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82
181화. 진흙탕 싸움“헌원강이 정문에 붙은 대자보를 확인했습니다.”
“반응은?”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백수룡 선생님과 함께 멈춰 서서 대자보를 읽더니, 얌전히 학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멀리서 헌원강을 염탐하고 온 후배의 보고에, 선우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의외로군. 대자보를 찢어 버리고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확실히 예전처럼 물불 안 가리는 망나니는 아닌 모양이야.”
“그래 봤자 지가 헌원강이죠.”
“그 망나니 놈. 조만간 성질에 못 이겨 대자보를 뜯으러 돌아다닐 겁니다.”
“사람 몰리는 곳엔 전부 붙여 놨으니, 다 떼려면 시간 좀 걸릴걸?”
“애초에 그 자식이 회장과 경쟁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내 말이!”
동아리 연합 회의실.
한자리에 모인 상도연의 간부들은 하나같이 헌원강을 깎아내렸고, 반대로 선우진을 추켜세우기 바빴다.
“흐음…….”
선우진은 호랑이 가죽을 덮은 푹신한 의자에 반쯤 몸을 파묻었다. 그는 아첨꾼들의 아부를 한 귀로 흘리며 생각했다.
‘팽사혁이 다른 건 몰라도 의자 하나는 잘 남겨 두고 갔단 말이야.’
얼마나 이 의자에 앉고 싶었던가.
팽사혁이 아니었다면 진작 자신의 것이 되었을 자리.
갑자기 팽사혁이 천무학관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청룡학관에서 선우진보다 기뻐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통제 불가능한 맹수만 떠난다면, 동연은 완전히 자신의 왕국이 될 테니까.
……그런 자신의 왕국에, 어느 날 주제도 모르는 망나니가 침범했다.
“헌원강. 그 주워 담지도 못할 더러운 쓰레기가 말이야.”
험한 말을 하면서도 선우진은 반듯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섬뜩하고 기괴하게 보였다.
“저, 그런데 회장…….”
그때, 상도연의 간부 중 한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선우진은 흥미를 느끼고 그 간부를 바라봤다.
마침 다 똑같은 아부를 듣고 있자니 조금 지겨워진 참이었다.
이야기를 꺼낸 간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헌원강이 동급생을 겁탈하려고 했단 이야기는 대자보에서 빼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저쪽에서도 우리가 썼다는 걸 알 게 뻔한데, 괜히 일이 커지기라도 하면…….”
“일이 왜 커지는데?”
선우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간부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야…… 증거도 없이 모함한 거니까요. 조금만 조사해 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날 텐데, 그랬다가 우리 쪽으로 역풍이라도 불면…….”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선우진이 진지하게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자, 용기를 얻은 간부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전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됩니다. 회장은 이런 짓 안 해도 충분히 당선될 수 있는데, 왜…….”
“하아.”
선우진은 결국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 말을 하던 간부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차라리 뻔한 아부나 하는 게 낫겠어. 이렇게 쓸모없는 충언은 짜증만 나거든.”
“…….”
“지금 당선이 중요해? 내가 이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선우진의 싸늘한 한마디에, 입을 열었던 간부는 물론이고 다들 침묵에 잠겼다.
평소 대외적인 평판 관리를 위해 부드러운 미소와 반듯한 언행을 항상 유지하는 선우진이지만, 이곳에 모인 간부들 앞에서만은 달랐다.
지난 몇 년간 ‘여러 가지 일’을 함께해 왔기에, 선우진은 그들 앞에서 본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이리 와 봐.”
선우진이 손을 까딱이자, 간부가 일어나서 주춤주춤 선우진 앞으로 걸어왔다.
“쫄지 말고.”
피식 웃은 선우진은 의자 옆에 놓여 있던 자신의 도를 들어, 도집째로 간부의 어깨를 툭 쳤다.
“생각을 해 봐. 우리가 그 대자보를 썼다는 증거 있어?”
“예? 하지만 누가 봐도 저희가…….”
“증거 있냐고.”
“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곤란해지지? 네가 말하고 다니기라도 할 거야?”
툭, 툭.
선우진은 도집으로 계속 간부의 어깨를 쳤다. 제법 강한 강도로.
무인에게 엄청난 모욕으로 느껴질 행동이었지만, 간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럴 리가요.”
상도연에서 선우진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도법으로 유명한 선우세가의 후계자이니까.
오대세가만큼은 아니어도, 이 자리에 선우세가보다 좋은 가문이나 문파 출신은 없었다.
게다가 선우진은 가문의 위세만 등에 업고 동연을 장악한 게 아니었다.
지난 삼 년 동안 자신에게 신세를 지거나, 약점을 잡은 학생들로 간부진을 꾸렸다.
동연을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팽사혁이 동연에 있을 때부터 꾸준히 해 온 작업이었다.
‘차라리 팽사혁이 있을 때가 나았어.’
‘뱀 같은 자식…….’
동연의 간부들 중 일부는 선우진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드러내는 머저리는 없었다.
그랬다간 학관 생활이 지옥으로 변할 테니까.
선우진의 입가에 맺힌 비열한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
“헌원강이 겁탈하려고 했다는 여학생? 그거 그냥 소문이라고 적었잖아. 단순한 소문. 소문에 증거가 왜 필요해?”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인이 된 간부는 허리를 숙였다.
서늘한 눈으로 간부를 바라보던 선우진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야. 앞으로 잘하면 돼. 나도 최근에 예민했는지, 좀 지나쳤던 것 같네. 미안하게 됐어.”
“가, 감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우진이 간부를 용서해 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만약 대자보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이 녀석에게 뒤집어씌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동연 회장 선거가 끝난 후엔, 헌원강은 더 이상 청룡학관의 학생이 아닐 테니까.
“다들 잘 들어. 내 계획은 이래.”
선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간부들을 둘러봤다.
이 선거에서 이기는 건 선우진에겐 당연했다.
저쪽에 상검연이 합류했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여전히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중요한 건, 주제도 모르고 자신에게 덤빈 헌원강을 어떻게 응징하느냐였다.
“우선 대자보를 통해 녀석의 평판을 떨어뜨린다. 녀석이 해 온 짓만 열거해도 충분하겠지만, 몇 가지 ‘소문’이 더 들어간다면 금상첨화겠지.”
그럴듯한 ‘소문’을 대자보에 추가한 건 그래서였다.
헌원강이 아무리 ‘소문이 거짓이다’라고 해명해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망나니라는 낙인 탓에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헌원강에 대한 반대 여론을 강화시킨다. 일반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학생회, 학부모회, 선생들도 이 사실을 그냥 묵과할 수 없도록 만들 생각이야.”
선우진은 아예 판을 키울 생각이었다.
아무리 싸움에 관대한 무림의 학관이라고 해도, 그 행실이 지나치게 나쁘면 용납하기 어렵다.
그들은 정파이니까.
선우진이 피식 웃었다.
“학생회, 학부모회, 관주님의 귀에까지 이야기가 들어가게 하는 거야. 모두가 이쪽을 주시하도록 만든다. 자, 그다음이 중요해.”
선우진은 활짝 웃으며 자신의 간부들을 둘러봤다.
전부 자신에게 약점이 잡혔거나, 선우세가에 신세를 진 가문의 자제들.
마음대로 써먹기에 이보다 좋은 패도 없었다.
“너희가 예민해진 헌원강을 자극해서 싸움을 일으킨다. 몇 군데 부러지거나 죽지 않을 정도로 베이는 게 좋겠지.”
선우진은 간부들이 다치는 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간부들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일이 그 정도로 커지면, 헌원강은 징계를 받아 퇴학을 당할 수밖에 없어.”
“…….”
마른 침을 삼킨 간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선우진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지독한 놈. 이 자식은 진짜…….’
‘죽지 않을 정도로 베이라고? 그러다 죽으면?’
과거 팽사혁이 강력한 힘으로 위에 군림하는 맹호였다면, 선우진은 이빨을 숨긴 독사였다.
맹호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독사에게 걸리면 몸에 독에 퍼져 서서히 죽는다.
‘헌원강. 그 주제도 모르는 쓰레기가 날 모욕했다 이거지.’
선우진은 헌원강에게 받은 모욕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놈이 먼저 시작을 했으니, 철저하게 밟은 후 학관에서 쫓아낼 생각이었다.
“질문 있나? 다른 의견은?”
선우진은 질문을 싫어하지만, 회의의 끝에 항상 질문이 있냐고 물었다.
간부들도 그걸 알기에 그저 맞장구만 칠 뿐이었다.
“완벽한 계획입니다.”
“그 눈엣가시 같은 놈을 치울 수 있겠군요.”
“역시 회장…….”
선우진은 주변의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피식피식 웃었다. 회의는 그걸로 끝이었다.
“너희는 계속 소문을 퍼트리고 여론을 형성해. 나는 어딜 좀 다녀와야겠으니까.”
“어딜 가십니까?”
한 간부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선우진은 씩 웃으며 행선지를 밝혔다.
“일단 풍진호를 만날 생각이야.”
“풍진호 선생님을요?”
풍진호가 일타강사는 아니지만, 학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특히 강사들에게 끼치는 그의 입김은 남궁수 이상이었다.
“간단한 부탁을 좀 드리려고.”
물론, 헌원강을 파멸시키기 위한 은밀한 부탁이었다.
“본가와 인연이 좀 있거든. 나랑도 성격이 잘 맞고.”
선우세가는 풍진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부분에서 닮아, 죽이 잘 맞았다.
하지만 풍진호에서 끝이 아니었다.
“풍진호를 만난 다음에는 학생회장을 만나러 간다.”
“독고준 말입니까?”
학생회장인 독고준이 나서서 헌원강을 비난한다면, 헌원강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선우진은 독고준을 잘 안다는 듯이 말했다.
“독고준 같은 범생이는 헌원강처럼 제멋대로인 인간을 가장 혐오하지. 나한테 힘을 실어 줄 거다.”
선우진은 독고준이 헌원강과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헌원강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강사, 학생회, 그다음은 학부모회에도 들러야겠군.”
회의실을 나서는 선우진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맺혔다.
“사흘, 아니, 오늘 하루면 충분해. 놈을 파멸시킬 준비를 끝내는 건.”
* * *
“너 미쳤느냐?”
“……예?”
선우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앞에 앉은 풍진호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껏 챙겨 온 선물은 풀어 보지도 않고, 풍진호는 무슨 병균이라도 보듯 선우진을 바라봤다.
“나더러 헌원강을 학관에서 쫓아내는 데 도움을 달라고?”
“하하. 그런 말씀이 아니라…….”
선우진은 최대한 돌려서 말했다.
하지만 풍진호가 누구인가. 청룡학관에서 20년이나 강사 일을 한 능구렁이였다.
이런저런 뇌물이나 청탁은 수도 없이 받아 보았다는 소리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건 반 각이면 충분했다.
풍진호는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너, 헌원강이 누구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학관에서 가장 유명한 망나니 아닙니까?”
“쯧쯧.”
풍진호는 혀를 찰 뿐, 말을 아꼈다.
‘멍청한 놈. 헌원강이 아니라 그 뒤에 누가 있는지를 봐야지.’
헌원강은 백수룡이 아끼는 제자였다. 얼마 전에는 반드시 천무제에 내보내야 한다며 자신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때 살짝 간을 봤다가, 백수룡에 의해 몸 안의 고독이 날뛰는 끔찍한 고문을 겪지 않았던가.
당시 느낀 고통은……. 다시 떠올리자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풍진호는 손을 휘휘 저어 선우진을 쫓아냈다.
“나가거라. 일각이라도 더 있다가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진 않으니.”
“예? 하지만…….”
“나가라고 했다. 끌어내 주랴?”
풍진호는 직접 선우진을 일으키더니, 등을 떠밀어 자신의 사무실 밖으로 쫓아냈다.
“선생님!”
“다신 찾아오지 마라.”
콰앙!
닫힌 문 앞에서, 선우진은 모욕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히…… 날 이렇게 푸대접해? 풍진호. 두고 보자!’
풍진호의 태도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긴 했지만, 지금은 분노가 더 컸다.
몸을 돌린 선우진은 곧바로 학생회를 찾아가 독고준을 만났다.
그런데, 독고준의 반응도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대자보에 붙은 헛소문의 출처가 너였군.”
“……뭐?”
헌원강을 경멸하고 있을 거라고 여겼던 독고준은, 오히려 선우진에게 경멸의 시선을 던졌다.
“헌원강은 변했다. 함부로 사람도 패지 않고, 술도 끊었지. 그런데 이제 와서 지난 과거를 들추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되는군.”
“……이봐. 독고준.”
“네 이야기는 못 들은 거로 하지. 그리고 그 대자보…… 떼길 바란다.”
독고준은 진지하게 충고했으나, 선우진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 대자보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야.”
“…….”
독고준은 말없이 선우진은 바라봤다.
마치 불쌍하다는 듯한 눈빛.
불쾌감을 느낀 선우진이 벌떡 일어났다.
“나가라는 거지?”
콰앙!
선우진은 거칠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학생회 건물을 빠져나갔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선우진이 벽을 걷어차며 씩씩거렸다.
“헌원강 이 새끼! 어떻게 선생이랑 학생회에 기름칠까지 해 놓은 거지?”
비로소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아는 헌원강은 가문의 권세도, 인맥도 없으면서 함부로 날뛰는 천둥벌거숭이였으니까.
인맥이라고 해 봤자 영약 요리 연구회에 소속된 선후배들, 그리고 백수룡이 전부였다.
‘설마 백수룡이 돕고 있나? 하지만…… 그래 봤자 신입강사인데.’
최근 악인곡에서의 활약과 더불어 ‘청룡신협’이라는 별호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백수룡은 청룡학관에 들어온 지 일 년도 안 된 신입강사였다.
상식적으로, 백수룡에게 헌원강을 도울 만한 힘이 있을 리 없었다.
“젠장. 뭐가 뭔지 모르겠군.”
선우진은 일단 학부모회에 가 보기로 했다.
아무리 헌원강이라도 학부모회까지는 건드리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회 건물에 도착하기 직전, 선우진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청룡학관 삼학년 선우진을 고발합니다.
그가 헌원강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짓.
커다란 대자보가 벽에 붙어 있었다.
“가소로운 짓을 하는군.”
선우진은 코웃음을 치고 대자보를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점점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어, 어떻게…….”
동연 간부로 지낸 지난 삼 년, 선우진이 저지른 온갖 지저분한 일들이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