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9
18화. 유언장은 찾았소?
“내 말 안 들려?! 당장 할망구 데려오라니까!”
아래로 내려가자 술에 취한 사내 하나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그 곁에는 이마에 ‘동네 파락호’라고 써 붙인 것처럼 몰개성하게 생긴 놈들이 히죽대며 여인들을 희롱했다.
“이, 이보게, 허일이. 여기서 이러면 우리가 곤란해.”
행패 부리는 놈의 이름은 허일.
죽은 허 노인의 아들이었다.
그 앞에서 쩔쩔매는 중년의 왜소한 남자는 적화루의 총관이었다.
허일이 히죽 웃으며 총관을 바라봤다.
“장 총관.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이십 년도 넘었지. 자네가 이곳에 처음 드나들 때부터 일하지 않았나.”
허일의 나이는 많아 봤자 마흔이 안 돼 보였다.
즉, 열대여섯 살부터 기루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는 뜻이었다.
어떤 놈인지 대충 알 만했다.
“그래. 그럼 말이야. 죽은 영감의 그 많은 재산은 누가 물려받을 것 같아? 이 기루가 누구 소유가 될 것 같으냐고? 응?”
“…….”
허일은 대답하지 못하는 장 총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비열하게 웃었다.
“새끼야. 앞으로도 여기서 일하고 싶으면 줄을 잘 서란 말이야. 내 말 알아들어?”
“그만 못 하겠니!”
우리와 함께 아래로 내려온 손 부인이 앞으로 나서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녀를 본 허일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걸어왔다.
“이거 봐, 이거 봐. 할망구. 여기에 있었으면서 왜 없는 척했어?”
“……술 먹으러 왔으면 얌전히 술이나 처먹을 것이지. 어디서 행패야?”
“흐흐. 내 기루에서 내가 기분 좀 내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내 기루? 감히……. 적화루는 내 거야!”
“푸훗. 그건 영감이 살아 있을 때 얘기고.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장만 찾으면……. 뭣들 하느냐! 당장 이놈을 쫓아내!”
손 부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기루에 무력이 없어서 허일과 곁의 파락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둔 것이 아니다.
보통 기루에는 무공을 익힌 장정들이 고용돼 있다.
하지만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다.
“누가 누굴 쫓아내? 너희가 나를? 종놈들이 주인을?”
바로 저 허일이 죽은 허 노인의 하나뿐인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유산 상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관에서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확률이 높았다.
허일도 그것을 알고 저리 당당한 것이다.
놈이 여인 한 명의 허리를 확 끌어안으며 자기 품으로 잡아당겼다.
“흐흐흐. 이쁜이. 이리 오너라.”
“이, 이러지 마세요. 저는 몸을 파는 창기가 아닌…….”
“당장 속곳까지 싹 벗겨서 쫓아내도 그런 말이 나올까?”
“흐윽…….”
놈의 추잡한 행태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저런 놈이 기루를 운영하게 되면 얼마 못 가 말아먹겠군.’
죽은 허 노인도 악명 높은 고리대금업자였지만, 그 아들이란 놈은 그 고리대금업자도 연을 끊을 쓰레기였다.
허일과 함께 온 파락호들의 행패도 점점 심해졌다.
다른 손님들 상에 나갈 음식을 멋대로 집어 먹고, 여인들을 희롱하고, 심지어 칼을 꺼내 위협하기까지 했다.
“포두님.”
싸늘한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악연호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청천 포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계속 지켜만 보실 건가요?”
“……가족 간의 문제라, 관에서 나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하지만.”
청천 포두는 허일과 파락호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을 바라보며 말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무림인이라면 충분히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군요.”
“예?”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는 악연호와 달리, 나는 즉시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관무불가침. 무림인 사이의 시비에 관은 웬만하면 간섭하지 않죠. 마침 저놈들이 허리에 칼을 들고 있으니, 저것들도 무림인이네요?”
“그런 것 같군요.”
청천 포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얼굴로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일종의 허락이었기에, 나는 씩 웃으며 악연호를 돌아봤다.
“연호야. 들었지? 우리가 정파 무림의 일원으로서, 힘없는 아녀자와 민간인을 괴롭히는 흑도의 건달 새끼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있겠냐?”
“절대 아니죠.”
이쯤 말해 주면 못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악연호가 힘껏 고개를 끄덕이더니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너흰 다 뒈졌다, 이 새끼들아!”
퍼억!
악연호의 날아 차기가 파락호 한 놈의 턱주가리에 꽂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방적인 구타.
동작 하나하나가 호쾌하기 그지없었다.
“저, 저 새낀 뭐야?”
“갑자기 왜……!”
“사, 살려…….”
빠르게 정리돼 가는 싸움판을 구경하고 있는데, 청천 포두가 옆에서 물었다.
“소협께선 안 싸우십니까?”
“저는 몸이 좀 병약해서요. 싸우는 건 잘 못 합니다.”
“……무림맹에서 오신 것 아닙니까?”
“무인이라고 다 싸움박질만 하나요. 저는 대신 머리가 명민하고 무공에 해박한 게 장점입니다.”
“아, 예…….”
일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허일과 파락호 전원이 우리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게 되었다.
“어이.”
나는 허일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놈의 이마를 꾹꾹 눌렀다.
“다, 당신들 누구…….”
얼굴이 불어터진 찐빵처럼 변한 허일이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맞으면서 술이 대충 깬 모양이다.
“허 노인. 네가 죽였냐?”
“무, 무슨 소리야! 어떤 놈이 그딴 개소리를 해!”
당황하는 허일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는 싸늘하게 웃었다.
“허 노인이 죽었을 때 제일 이득 보는 놈이 너잖아. 오늘 하는 짓만 봐도 말이지.”
“말도 안 돼! 어차피 몇 년 지나면 뒈질 노인이었는데 내가 왜 죽인단 말이오!”
“의절을 당해서 앙심을 품고, 마침 받던 돈도 끊겼으면 그런 선택을 할 만도 하지. 역시…… 네가 죽인 거 맞지?”
“난 정말 안 죽였어!”
“어이. 좋은 말로 할 때 실토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나, 나, 난 정말 아니오!”
나는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후 강하게 압박하며 녀석의 반응을 살폈다.
혈교에서 오랜 교관 생활을 하면서 온갖 거짓말을 하는 놈들을 수없이 봤다.
눈동자의 움직임, 손동작, 말투와 목소리의 변화까지.
신체 반응마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모르겠지만, 허일은 기껏해야 삼류였다.
놈이 거짓말을 하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뭔가 숨기고 있기는 한데…….’
미묘하다.
직접 아버지를 죽였거나 살인교사를 했다면 이것보단 더 확실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허일은 정말로 억울한 듯, 자기는 절대 허 노인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감이 싸지른 새끼가 나 하나인 줄 알아?!”
“자식이 더 있다고? 듣기론 너 하나라던데.”
내 질문에 허일이 코웃음을 쳤다.
죽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호적에 올린 자식 말고. 뒈진 그 영감이 기생년들이랑 붙어먹으면서 싸지르고 다닌 것들이 한둘이겠냐고.”
“너! 어떻게 자기 아버지한테…….”
화가 난 손 부인이 몸을 바르르 떨고, 무표정한 청천 포두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악연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내가 눈빛으로 주의를 시키지 않았다면 허일은 크게 다쳤을 것이다.
“내가 뭐! 할망구도 여럿 봤잖아? 사생아란 새끼들이 와서 돈 달라고 하는 거 한두 번이었냐고!”
“제발 좀 닥치거라!”
“할망구나 닥쳐!”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는 둘 사이로 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둘 다 닥쳐 주면 좋겠는데.”
“…….”
내 말에 둘 다 입을 쏙 다물었다.
나는 핏대를 세운 채 씩씩대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이쯤 할 테니, 둘 다 어디 멀리 가지 말고 자택에 머물도록.”
“그런데 당신 대체 누구…….”
빠악!
내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허일이 옆으로 고꾸라졌다.
사실 아까부터 한 대 패고 싶었거든.
“알 거 없어, 새끼야.”
뒤를 돌아보자,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청천 포두와 벌레라도 보는 표정으로 기절한 허일을 내려 보는 악연호가 보였다.
“여기서 들을 얘기는 다 들은 것 같으니 이만 나가죠. 손 부인. 다음에 또 올 테니 어디 멀리 가지 마세요.”
“…….”
창백해진 표정의 손 부인을 뒤로하고, 우리는 적화루를 나왔다.
악연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어떻게 자식이 아버지한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죠?”
“다 돈 때문이지 뭐.”
인간이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돈 문제다.
돈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팔고,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인다.
수십 년 우정도 돈 앞에서 원수가 되고,
영원히 사랑하리라 맹세했던 부부도 가난에 시달리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다.
그러니 인생 저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으려면, 역시 돈이 많아야 한다.
“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나와요? 돈 안 보고 사랑해 줄 여자를 만나면 되지.”
“이 철부지야. 그런 여자가 어디 있냐?”
“있어요! 분명!”
“그래. 열심히 찾아봐라.”
아무튼 내가 돈을 벌려면 청룡학관 입사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 사건의 범인을 잡아 면접 때 확실한 가산점을 챙겨야 하고.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어느덧 밤이 된 도시의 거리를 걸었다.
“마지막 용의자를 만나러 가 볼까.”
* * *
“난 안 죽였소.”
죽은 허 노인의 호위무사는 큰 키에 인상이 험악한 중년 사내로, 왼쪽 눈에 안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살면서 사람 수십은 죽였겠군.’
그의 구릿빛 피부에는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음이 충분히 짐작되는 흉터가 여럿이었다.
인상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지만, 얼굴만 보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셋 중에 무공도 가장 강해 보이고.’
용의자 가운데 유일하게 일류고수였다.
내 의심스러운 시선을 눈치챘는지, 외눈의 호위무사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 얼굴만 가지고 사람 판단하는 거 아니오.”
“복만춘 씨. 과거에 낭인으로 활동하시던 때의 이력이 화려하시던데.”
낭인은 이리저리 떠돌며 돈에 무공을 파는 무인으로, 나쁘게 말하면 칼 든 파락호, 좋게 말해 봤자 역마살 낀 낭만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실력은 대부분 보잘것없었다. 복만춘 정도면 낭인 중에서는 상당한 고수였다.
“……과거에 낭인으로 떠돈 것은 맞소.”
일의 특성상 낭인들은 범죄나 온갖 지저분한 일에 엮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범죄가 일어나면 낭인 출신들이 의심을 받곤 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혼인해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개과천선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소이다.”
“개과천선? 고리대금업자의 하수인이?”
나는 일부러 비꼬듯 말하며 그를 자극해 보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낭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 일이 그리 정직한 일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오. 하지만 댁들도 보다시피 이 얼굴에, 그리고 이 나이에 멀쩡한 일자리를 찾는 게 만만치가 않더군. 그 전엔 막노동도 해 봤는데, 다른 인부들이 날 무서워해서 금방 쫓겨났거든.”
“…….”
“그때 내게 호위무사 자리를 제안한 사람이 허 노인이었소. 내게는 은인이었지. 내가 설마 은인을 죽였겠소?”
그거야 모를 일이지.
우리한테 하는 말이 전부 진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하지만 내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복만춘은 셋 중 가장 정직한 사람이었다.
“내 맹세하는데, 마누라랑 자식새끼한테 부끄러운 일은 한 적 없소.”
“사건이 발생한 시각에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퇴근하고 나서 쭉 집에 있었소. 원래 계약이 외출할 때만 호위하는 거라…….”
“가족 외에 당신이 집에 있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는 복만춘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고, 그는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말이오.”
그중 한 가지 이야기가 내 흥미를 끌었다.
“범인도 범인인데, 유언장은 찾은 거요? 거기 적힌 사람한테 전 재산을 물려준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