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93
192화. 일기장 (2)그것은 일기장이었다.
과거, 백수룡이 마공을 익히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쓴 일기장.
‘꿈속에 내가 나왔다고?’
백수룡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진짜 백수룡’이 죽기 전에 남긴 일기장을 바라봤다.
진짜 백수룡은 천음절맥을 극복하기 위해 몰래 마공을 익히다가 죽었다.
그 후, 오십 년 전에 혈교에서 죽은 자신의 영혼이 이 몸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렇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왜냐면 자신에겐 ‘백수룡’으로 살아온 과거의 기억이 전혀 없었으니까.
즉, 이미 죽은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온 빙의(憑依)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혼이 이 육체에 들어온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백수룡이 타고난 천음절맥과, 자신이 익힌 역천신공이 연관돼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볼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떠올랐다.
전생(前生).
과거 혈교의 교관이 시공을 뛰어넘어 백수룡의 몸에 빙의한 게 아니라, 백수룡이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거라면?
잘못된 마공을 익힌 후유증으로, 그전의 기억을 모두 잃은 거라면?
“내가…… 진짜라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나왔다.
종이를 넘겼지만,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일기장을 건네던 백무흔의 묘한 눈빛이 떠올랐다.
-……직접 읽어 보면 안다. 자리를 비켜 줄 테니 혼자 읽거라.
백무흔에게는 늘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아들의 몸을 빼앗았으니까.
일자리를 구한다는 핑계로 청룡학관에 서둘러 올라온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언제까지 아들인 척 연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너무 오래 함께 있으면 필연적으로 들킬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아마 예전부터 의심하고 있었겠지.’
맹호악이 남긴 하수오를 캐러 산을 오르던 날, 백무흔이 지나가듯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 정말 내 아들 맞냐?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돌이켜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뀐 아들이 사파의 무공을 알아보질 않나, 영약을 캐러 가자고 하질 않나, 청룡학관에 가서 강사를 하겠다고 하질 않나.
-옛날 같았으면 허약하게 태어난 몸을 저주하면서 나를 원망했을 텐데…….
-죽었다가 살아났더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
그때는 적당히 둘러대서 넘어갔다고 여겼는데, 백무흔은 그 이후로도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이 일기장을 찾아낸 것도 그런 고민을 하다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
백수룡은 다소 멍한 표정으로 일기장을 바라봤다.
눈으로는 일기장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이 뒤엉켜서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백무흔이 정말 내 아버지인가? 매극렴이 내 외조부고? 매약빙이 내…… 어머니라는 거야?’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 사람들이 내…… 진짜 가족이라고?”
가족.
흔하지만 낯선 단어였다.
혈교의 교관이었던 시절에는 가족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고아였고, 혈교에 납치당한 이후에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처절하게 투쟁했다.
여인을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혼인은 하지 않았다.
혼인을 했다가는 곁에 있는 여인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으니까.
“가족…….”
지금까지는 애써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운 좋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자신을 백수룡이라고 믿는 가족들에겐, 두 번째 삶을 얻은 대가로 좋은 아들과 손자를 적당히 연기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마음에 적정 거리를 두었다.
어차피 자신은 ‘진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이 진짜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이 지닌 의미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하. 설레발도 이런 설레발이 없군.”
입술을 깨문 백수룡이 허탈하게 웃었다.
아직 전부 추측이고, 상상일 뿐이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마저 읽고 생각하자.”
백수룡은 고개를 저어 온갖 잡생각을 털어 버리고, 일기에 적힌 내용에 집중했다.
비로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사라진 혈교의 무공 교관이라니. 너무 허무맹랑해서 처음에는 개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만도 하지.”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종이를 넘겼다.
「어려서부터 무림의 고수가 되어 천하를 활보하는 꿈을 여러 번 꾸었으니까. 특이하긴 했지만, 이것도 비슷한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꿈이 반복되었다.」
「꿈속 사내는 엄청난 독종이었다. 게다가 무공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단시간에 경쟁자들을 제치고, 교의 고수들의 눈에 들었다.」
“…….”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시 본다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역대 최연소로 교주의 친위대에 들어갈 만큼 사내는 뛰어났다. 장로의 아들도, 혈교 팔대의 가문 출신도 아니었지만, 그의 앞날은 동년배의 누구보다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일기를 적은 필체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백수룡은 이어질 비극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내는 단전을 다쳐 내공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무리하게 무공을 익히다가 단전을 다쳤다. 사내를 시기하던 자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다.」
“자세히도 봤군.”
백수룡은 씁쓸하게 웃었다.
과거의 자신이 남긴 일기장에는, 혈교 교관의 일생이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본인조차 기억이 흐릿한 것들까지 말이다.
「이후 사내는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하지만 끝끝내 살아남았다. 독기, 끈기, 그리고 살아남고 말겠다는 생에 대한 집착은 그의 적들을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사내는 무공 교관이 되었다. 어떤 무공이든 한번 보면 파악할 수 있는 뛰어난 오성,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혈교에서 가장 뛰어난 교관이 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백수룡은 빠르게 종이를 넘겼다.
「사내는 녹림투왕, 광마, 빙월신녀, 검존. 실종된 전대의 고수들을 만나 그들의 무공을 이어받았다. 혈교는 그들의 무공으로 무림을 정복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하지만 혈교는 사내를 이용한 후 토사구팽하려고 했다. 어리석은 자들. 정말 이 사내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알아도 저항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사내는 절대고수들과 함께 탈출을 도모했다. 그리고……」
그 뒷부분은 다 아는 내용이었다.
탈출 직전에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을 만나 싸운 이야기, 그리고 나타난 혈마, 결국 탈출은 실패하고 모두 죽으면서 이야기는 끝났다.
하지만 백수룡이 남긴 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신한다. 사내는 실존했던 인물이고, 혈교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백수룡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봤자…….”
「무림의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을 기억한다. 꿈속 사내와 네 명의 절대고수. 그들은 무림을 구한 영웅이다.」
“…….”
누구에게도 듣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찬사를 과거의 자신에게서 듣게 될 줄이야.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기장을 넘겼다.
「그리고 사내의 꿈을 통해, 내 체질을 고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뭐?”
「사내의 머릿속에는 혈교의 수많은 무공이 들어 있었다. 그는 매일 수많은 무공서적을 읽고, 분석했다. 나는 꿈에서 깰 때마다 그것을 적어 놓았다.」
“이런 멍청한 자식이!”
백수룡은 과거의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꿈에서 본 무공을 현실에서 익히려고 하다니!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놀랍도록 생생한 꿈이라고 해도, 꿈속에서는 온갖 변형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일기에 적힌 이야기들 중에는 자신의 기억과 다른 것도 일부 있었다.
【……그리하여, 역천신공을 익히면 내 체질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필이면 역천신공이라니!
백수룡이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성공할 리가 없잖아.”
다른 상승무공도 그렇지만, 역천신공은 구결만 가지고 함부로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반드시 뛰어난 스승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과거 백수룡도 역천신공을 익힐 때, 절세고수인 네 사부의 조언을 얻었다.
【이곳에 내가 익힐 역천신공의 구결을 적어 놓는다. 】역천신공이 언급된 순간부터, 일기는 혈교에서 사용하는 암어로 적혀 있었다.
백수룡은 그 구결을 꼼꼼히 살폈다. 곧 표정이 어두워진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틀렸군.’
잘못된 역천신공의 구결이었다.
틀린 것은 몇 구절에 불과했지만, 그 몇 구절이 바뀐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무공이었다.
“어?”
백수룡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묘했다. 틀린 역천신공의 구결과 구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건…… 역천신공이 아니라 아예 다른 무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기존의 무공을 재해석해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것이 역천신공 수준의 절세신공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하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해야 할까?
과거의 백수룡도 이 사실을 알았을까?
이걸 정말 그가 만들었을까?
「이 방법이 목숨을 건 도박이라는 것을 안다. 앞으로 내게 무슨 일어날지 나도 모른다. 운이 좋아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몸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고, 미쳐 버릴 수도 있겠지.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다. 실패할 거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텐데. ……솔직히 두렵다.」
“무서우면 관뒀어야지. 이 멍청한 자식아.”
두서없는 글에 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마지막 일기를 적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죽는 것이 더욱 두렵다. 그래서 내 인생 마지막 도박을 해 보려 한다. 부디…… 이 다음 장을 이어서 쓸 수 있기를.」
일기는 그렇게 끝났다.
“…….”
백수룡은 말없이 일기를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적힌, 역천신공과 구결이 비슷한 무공의 구결을 다시 확인했다.
머릿속에 온갖 의문이 들었지만, 그 구결을 보고 나니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걸 해 봐야겠어.”
중얼거린 백수룡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혔다.
‘이 무공에 뭔가가 있어.’
검증되지 않은 무공을 함부로 익히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천신공이 7성에 이른 지금이라면 충분히 제어할 자신이 있었다.
“스읍……. 후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중간까지는 역천신공과 거의 같기에 운용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중간부터는 그 경로가 급격히 달라졌다. 상단전이 있는 머리로 기가 몰렸다.
우웅-!
머릿속에 종이 울렸다.
의식이 현실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백수룡은 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현상이 이 무공의 효능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건…….’
잠시 후, 백수룡은 무의식의 세계로 깊게 가라앉았다.
* * *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달라진 풍경이 그를 맞이했다. 눈을 뜨기도 전에 비릿한 혈향이 코를 자극했다.
“어이, 신입.”
눈빛들이 하나같이 사납다. 바늘처럼 압축된 살기에 전신이 찌르르 울릴 정도였다.
“첫날부터 정신 똑바로 안 차리나?”
교주의 친위대, 혈룡대의 혈귀들이 새빨간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