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기연 (3)그 순간, 뒤로 튕겨 나갔던 초혁이 무서운 속도로 돌아왔다.
“이 새히! 주겨 버리겠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초혁이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빨 몇 개가 날아간 터라 발음이 줄줄 샜다.
“아무도 끼어드지 마라! 내 소으로 주긴다!”
“말이나 제대로 하면서 덤벼.”
피식 웃은 백수룡은 초혁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감정이 앞선 공격이라 궤적이 훤히 읽혔다.
“으아아아!”
퍼버버벙!
초혁이 연이어 휘두른 장법에 두 사람 주변의 공기가 터져 나갔다. 정확성은 떨어졌지만 담긴 내공이 상당해, 폭발의 여파만으로도 몸이 뒤로 죽죽 밀렸다.
“쥐새히처럼 피하기마 하느 거냐!”
눈이 시뻘겋게 변한 초혁은 이성을 거의 잃은 모습이었다.
평소 무시하던 천한 놈에게 기습당해 이빨이 몇 개나 부러졌으니, 명문가의 드높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상대를 반드시 죽이려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니다.
‘이건 내 꿈이야. 내 전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꿈.’
백수룡이 며칠 동안 실험해 본 결과, 전생의 기억과 다른 행동을 하면 꿈속의 인물들도 그들의 성격에 맞는 행동을 취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즉시 생각난 것이 있었다.
‘생사결의 경험.’
일정 경지의 수준에 이른 고수들은 심상 수련이라는 것을 한다.
일종의 명상 수련법인데, 머릿속에서 초식을 수련하거나 가상의 상대를 상정해 싸워 보는 것이다.
하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것에 비해, 심상 수련은 효율이 상당히 떨어지는 수련법이었다.
여건만 된다면 실제로 몸을 움직여 훈련하는 것이 몇 배는 나았다.
‘하지만 이건 그런 심상 수련과는 차원이 달라.’
이 꿈속에서는 오감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현실과 같았다.
상대가 내뿜는 살기, 익힌 무공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백 같은 것들.
전생에 느낀 경험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난 공간.
“게다가 죽여도 상관없는 마두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원수들이 널려 있다 이거지.”
무공을 마음껏 수련하기에 이보다 좋은 환경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백수룡이 환하게 웃었다. 올라간 입꼬리에 진득한 살기가 맺혔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너를 죽이기로 결정했으니, 영광으로 알도록.”
“이런 벌레마도 못한 노미!”
도발이 제대로 먹혔다.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초혁의 무복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팔뚝과 손등의 핏줄이 징그럽게 불거졌다.
콰콰콰쾅!
초혁은 쌍장에 묵빛 기파를 휘감고 맹렬하게 휘둘렀다. 바닥이 터져 나가고, 벽이 부서졌다.
“그렇게 나와야지.”
백수룡도 내공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리며 맞섰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손발이 어지럽게 얽혔다.
파바바박!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이 당시의 백수룡은 분명 초혁보다 약했다.
지저분한 인성과 달리, 초혁은 천재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었고, 여기에 가문의 지원까지 받아 출세가도를 달렸다.
한 십 년 후에는 젊은 나이에 혈교의 무력대 중 하나를 이끄는 대주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만난 나를 벌레 취급했지.”
단전을 다친 백수룡은 혈룡대에서 쫓겨난 후,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겨우 무공교관으로 재기하기는 했지만, 무력대의 대주가 된 초혁과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쯧. 그렇게라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불쌍하구나.
우연이 다시 만난 초혁은 백수룡은 불쌍하게 여겼다. 언제든지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는 더 이상 그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병신이 된 데는 네 몫도 상당했는데, 넌 뒈질 때까지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겠지.”
“으아아아! 주겨 버리겠다!”
과거에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백수룡의 머릿속에는 무공교관이 된 이후에 읽은 수많은 무공비급, 그리고 네 명의 절대고수가 남긴 절세무공이 있었다.
“진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돼.”
빠아악!
뺨에 일권을 얻어맞은 초혁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순간, 그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빠악! 빠바바박!
백수룡이 휘두르는 일권 일권마다 녹림십팔식의 오의가 녹아들어 있었다.
그의 주먹이 초혁의 수비를 뚫고 들어가 꺾고, 부수고, 후려쳤다.
견디다 못한 초혁은 마구잡이로 장력을 내뿜으며 백수룡을 떨쳐냈다.
“크아아악! 꺼져라!”
백수룡은 무리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초혁의 손에 맺힌 기운이 달라져 있었다.
“그건……?”
손바닥에 넘실거리는 불길한 기운. 상대의 무공을 눈에 담는 백수룡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래. 너도 절혼마장을 익혔었지.”
혈교의 수많은 마공 중에서도, 상대를 끔찍한 고통에 빠뜨리기로는 손에 꼽는 것이 절혼마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천무학관에 권패 초일이란 놈이 있다고 했었지.’
권패 초일.
거상웅에게 마공의 마기를 심어 폐인으로 만든 후, 금룡상단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음모를 꾸몄던 놈.
공교롭게도 혈교에서는 그를 ‘혈룡’이라 부른다고 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초일이란 놈은 여기 있는 초혁의 후손임이 거의 확실했다.
백수룡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이거, 천무제에서 그 녀석을 만날 날이 기다려지는데?”
“크하하하! 주겨 주마!”
초혁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달려들었다.
절혼마장이라면 백수룡을 반드시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꺼낸 비장의 수를 본 백수룡은 오히려 흥이 식었다.
“더 괜찮은 걸 꺼낼 줄 알았는데. 밑천도 다 드러났으면 그만하자고.”
코웃음을 친 백수룡은 역천신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머리와 순식간에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가공할 기파가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
백수룡이 서 있는 바닥을 중심으로 맹렬한 기가 소용돌이치며 퍼져 나갔다.
“허어억!”
살기를 뿌리며 달려들던 초혁이 멈춰 섰다. 그의 눈동자에 경악과 공포가 어렸다.
“무, 무, 무슨…….”
혈룡대는 가까이에서 혈마를 호위하는 집단이었다.
때문에 누구보다 역천신공의 기운에 민감했고, 역천신공 앞에서 복종하는 것이 익숙했다.
“왜, 왜, 왜…….”
초혁의 무릎을 덜덜덜 떨기 시작하더니, 결국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행동이었다.
“어, 어떻게 네가, 역천신공을……? 너같이 천한 놈이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을 올려보는 초혁에게, 백수룡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네 잘난 집안도 미래에는 풍비박산이 날 거야. 그리고 네 손자쯤 되는 녀석도 내 제자한테 박살 날 거다. 죽기 전에 알아둬.”
백수룡이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뻗자,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 초혁이 공포에 질려서 소리쳤다.
“자, 잠깐만! 살려…….”
퍼억!
일장에 머리를 으깨 죽였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어차피 꿈일 뿐이었다.
백수룡은 바닥에 널브러진 초혁의 시신을 응시했다.
“꿈에서라도 쳐 죽이니 속이 조금 시원하긴 하네.”
죽여 마땅한 놈이었다.
그리고, 이 꿈속에는 죽여 마땅한 다른 놈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무공 수련도 하고, 분풀이도 하고, 꽤 유익한 시간이 되겠어.”
주변을 돌아보는 백수룡의 입가에 메마른 미소가 맺혔다.
* * *
백수룡은 꿈속의 시간을 단전을 다치기 전에서 멈췄다.
그리고 전생에 만났던 고수들을 하나씩 찾아가 싸움을 걸었다.
“어이. 한번 싸워 보자.”
“뭐? 이런 미친놈이…….”
혈교의 이름난 고수들, 무력대의 수장들, 특이한 무공을 익힌 자들.
싸워서 도움이 될 법한 자들은 모두 찾아가서 싸움을 걸었다.
전부 생사결이었다.
죽고 죽이는 실전을 통해서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고, 자신의 무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떨 때는 몇 번이고 같은 상대와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꿈을 다루는 것도 점점 익숙해지던 중, 백수룡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이라도 죽으면 이 꿈에서 깨어난다.’
누가 알려 준 것이 아니라, 꿈속에 오랜 시간 있으며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꿈에서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있을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다시 해보지 않는 한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때문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는 상대를 가려가면서 싸움을 걸었다.
혈마에게는 감히 시비를 걸지 않았다.
장로들도 아직은 승리를 장담하기가 어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마뇌 그 늙은이부터 찢어 죽이고 싶지만…….”
혈교의 장로들 대부분은 극마라 불리는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었는데, 역천신공이 팔성에는 이르러야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흐음. 그렇다고 장로들의 무공을 겪어 보지 못하는 건 아쉬운데……. 잠깐. 장로들의 무공을 그들만 익힌 건 아니잖아?”
그래서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 장로들의 제자들이었다.
백수룡은 장로들의 제자들을 찾아가 시비를 걸었다. 전생에, 놈들에게도 무시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고생 한 번 안 하고 편하게 무공 익힌 새끼들. 나랑 한판 붙을까?”
반응은 굉장했다.
“이런 건방진 놈이!”
“주둥아리를 당장 찢어 주마!”
당연한 말이지만, 장로의 제자들 수준으로는 백수룡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는 역천신공을 사용하지 않고도 놈들을 실컷 두들겨 팼다.
“커헉!”
“내, 내가 졌다…….”
“그만! 그만 때리시게!”
백수룡은 적당히 강하면서도 만만한 자들을 두들겨 패면서 혈교의 무공도 견식하고, 자신의 무공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악인곡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룬 무공이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바닥을 단단히 다지고 나아간다는 기분이었다.
기연(奇緣)이었다.
그렇게, 전생의 꿈속에서 몇 날 며칠을 보냈을까.
백수룡이 더 이상 시간을 헤아리지 않았을 때.
쿠구구궁……!
“……곧 깨어나겠군.”
현실과 똑같았던 풍경이 흔들리고, 곳곳에 금이 가며 깨지기 시작했다. 길었던 꿈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징조였다.
‘마지막으로 교주를 찾아가서 싸우자고 해 볼까?’
백수룡은 잠시 들었던 생각을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지금 당장은 교주와 싸워 봤자 얻을 것이 없었다.
게다가 왠지 교주라면, 지금의 자신과 싸워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혈마를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순간,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이 꿈의 마지막은, 전생의 자신이 혈교를 탈출하지 못하고 혈마와 싸우다 죽는 장면일 것이다.
만약 그 순간에 혈마에게 이긴다면 어떻게 될까?
‘……잃어버린 백수룡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단지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억이 전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이 꿈의 끝에 무언가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어쨌든 지금은 아니란 거지.”
스르륵.
백수룡은 꿈을 조작해 주변 공간을 변화시켰다.
잠시 후, 그는 혈룡대가 사용하는 전용 연무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산처럼 거대한 위압감을 내뿜는 거인이 서 있었다.
“갑자기 대련이라니?”
꿈을 다루는 방법에 익숙해지면서, 중간 과정을 생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백수룡이 혈룡대주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죽이겠다는 각오로 부탁드립니다.”
혈룡대주가 두꺼운 눈썹을 꿈틀대더니 피식 웃었다.
“우습구나.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멀리서부터 꿈속 풍경이 무너지고 있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
백수룡은 상대를 도발할 가장 적절한 말을 골랐다.
그가 혈룡대주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진심을 가득 담아서.
“지금 절 죽이지 않으면, 훗날 제가 혈마를 죽일 겁니다.”
혈룡대주의 눈이 한 번 깜빡이더니, 그의 몸에서 가공할 살기가 터져 나왔다.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푸화아악!
마주 선 혈룡대주의 몸에서 가공할 기운이 뿜어졌다. 그 막강한 기파에 백수룡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내가 제대로 골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