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04
203화. 그 녀석은 우리 중 최약체다휘이이이잉~청룡학관 학생 기숙사 옥상.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 가면과 흑의장포로 정체를 숨긴 괴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청룡학관에 침입한(?) 사천왕이었다.
“다들 모였군.”
음산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처음 입을 연 가면인은 호리호리한 체형에 등에 사선으로 창을 메고 있었다.
헌원강에게 스스로를 ‘지존마창(至尊魔槍)’이라고 소개했던, 본인이 악연호임을 극구 부인했던 자였다.
“지존마창. 우리를 불러내다니…… 무슨 꿍꿍이지?”
지존마창의 왼쪽 대각선에는 두 자루의 봉을 양손에 하나씩 나눠 든 사내가 있었다. 그는 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지존마창을 노려봤다.
“파멸명왕.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피식 웃으며 말한 지존마창은 오른쪽 대각선으로 고개를 돌려, 사천왕 중 유일한 여성에게도 안심하라고 일렀다.
“혼세마녀. 그대도 긴장하지 마시오.”
“으으…….”
‘혼세마녀’라고 불린 여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낯짝이 두꺼운 두 사내와 달리, 그녀는 이런 역할극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혼세마녀의 가면 속 제갈소영이 소심하게 말했다.
“저희끼리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그냥 평소처럼 대화를…….”
“어허! 그대는 정파의 후기지수들을 짓밟으러 온 무자비한 사파의 고수, 혼세마녀요! 그 사실을 잊었단 말인가!”
“분명 그런 설정이긴 하지만…….”
“갈! 혼세마녀는 임무에 진지하게 임하라!”
지존마창의 일갈에 더해, 파멸명왕도 엄중한 목소리로 혼세마녀의 경솔함을 질책했다.
“……아, 알았느니라.”
역할극에 심취한 두 사내의 박력에, 결국 체념해 버린 혼세마녀였다.
파멸명왕이 뒷짐을 지며 지존마창을 매섭게 노려봤다.
“지존마창. 아직 우릴 부른 이유가 뭔지 대답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일로 본좌의 시간을 낭비케 한 것이라면, 내일 아침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을 부른 것은 다름 아닌 냉혈수라마왕. 그자 때문이다.”
“냉혈수라마왕?”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 그분만 오지 않았네요.”
자꾸만 역할극을 깨는 제갈소영의 말투에, 지존마창와 파멸명왕이 동시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혼세마녀!””
“네, 넵. 아니, 알았다! 그렇군! 그러하구나! 하하하!”
“…….”
“…….”
제갈소영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도 더 이상은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지존마창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튼 그대들을 부른 건 냉혈수라마왕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지. 나는 도망친 애송이들 중 한 명밖에 잡지 못했는데, 그대들은 몇 명을 잡았나?”
“저도 한 명…….”
“파멸명왕 그대는?”
“……본좌도 한 놈이다. 미꾸라지 같은 놈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군.
그렇게 중얼거린 지존마창이 다시 말했다.
“이 수업을 듣는 정파 애송이들의 숫자는 열 명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우리는 각자 한 명씩밖에 못 잡았단 말이지. 나머지는 다 어디 있을까? 꽁꽁 숨어서 우리가 못 찾는 것일까?”
“설마…….”
뭔가를 눈치챈 파멸명왕이 눈을 부릅떴다.
지존마창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냉혈수라마왕. 그자가 사냥감의 씨를 말리고 있다. 내가 알기로, 그자는 벌써 혼자 다섯의 명찰을 뜯었소.”
“허어! 이런 상도덕도 없는 자 같으니! 혼자 다 해 먹으려고!”
“엄청난 속도네요……. 학관 지리에 익숙하셔서 그런가…….”
냉혈수라마왕.
그는 무자비한 손속으로 청룡학관에 흩어진 학생들의 명찰을 제거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 냉혈수라마왕에게 잡힌 녀석들은 다 송사리라는 것이다.”
백수룡은 학생의 명찰마다 점수를 다르게 분배했는데, 냉혈수라마왕에게 명찰이 떼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점수가 낮은 송사리들이었다.
반면, 여기 있는 세 명은 운이 좋게도 점수가 높은 헌원강, 여민, 야수혁의 명찰을 뗐다.
“그 말은 즉,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지.”
다른 사천왕들을 둘러본 지존마창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손을 잡는 게 어떤가? 그자를 견제해야 우리가 보상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으음…….”
‘보상’이라는 말에 파멸명왕과 혼세마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백수룡이 이번 시험에서 가장 많은 명찰을 가져온 사람에게 주겠다고 한 보상.
세 사람 모두 그것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파멸명왕이 물었다.
“힘을 합치면? 허면 보상은 어찌할 것인가?”
“합의해서 사용하지. 그 방법이 최선이 아닌가 하는데.”
“으음…….”
잠시 고민하던 파멸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좌는 네 손을 잡도록 하지. 냉혈수라마왕에게 그 귀한 보상이 돌아가게 할 수는 없으니.”
“저, 저도 승낙하겠어요.”
그렇게 세 사람은 동맹을 맺었다.
함께 냉혈수라마왕을 견제하고, 빼앗은 명찰을 모아 보상을 받아 내기로 한 것이다.
지존마창은 동맹이 체결되자마자 모두에게 고급 정보를 공유했다.
“현재 독고준과 위지천, 거상웅은 학생회 건물 안에서 농성 중이다.”
다른 두 사람의 표정이 흐려졌다.
“하필이면 그 셋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거상웅의 거구가 정면을 막고, 양옆에서 독고준과 위지천의 검이 날아오면, 아무리 사천왕이라도 혼자서는 당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존마창이 다른 두 사람을 끌어들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셋이 손을 잡으면 어렵게 않게 공략할 수 있다. 그 셋만 잡으면 보상은 우리 거나 마찬가지야.”
독고준과 위지천이 아무리 뛰어나도 아직 학생이었다.
사천왕 중 셋이 나선다면 충분히 제압 가능하리라 여겼다.
그때, 파멸명왕이 말했다.
“놈들을 잡으려면 준비가 좀 더 필요할 것 같군. 일 각 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건 어떤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고?”
지존마창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파멸명왕이 오히려 화를 냈다.
“갈! 본좌가 그렇게 야비한 놈으로 보이더냐? 놈들이 도망치려 할 때를 대비해 물건을 더 챙겨오려는 것뿐이다.”
“아, 저도 진법에 필요한 재료를 챙겨올게요. 아무래도 그 셋은 강하니까.”
혼세마녀까지 그렇게 나오자, 지존마창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그럼 일 각 후 학생회 앞에서 보도록 하지. 배신자에겐 죽음뿐이라는 걸 명심하도록.”
“흥. 누가 할 소리를.”
“그럼 흩어지지. 일 각 후, 이곳에서 다시.”
파밧!
사천왕은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그들의 신형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잠시 후,
세 사람의 대화를 숨어서 듣고 있던 백수룡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쟤네…… 뭐 하는 거야?”
세 사람에게 학생들의 명찰을 뜯는 사천왕 역할을 맡기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역할 놀이에 심취했을 줄이야.
특히 악연호와 명일오는 자신들이 정말 사파의 거두라도 된 것처럼 즐기고 있었다.
“뭐, 역할에 몰입해 줘서 나쁠 건 없지.”
피식 웃은 백수룡은 기감을 넓혀 청룡학관 전체를 훑었다.
거미줄처럼 넓게 펼쳐진 기감에, 학관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들이 느껴졌다.
그중 익숙한 기 몇 개가 움직였다.
방금까지 감옥에 갇혀 있던 헌원강, 여민, 야수혁의 기였다.
“호오. 탈출했네?”
마침 사천왕 중 한 명의 경로가 그들과 겹쳤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백수룡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생각 이상으로 시험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 * *
“후후후……. 멍청한 놈 같으니.”
파멸명왕은 괴소를 흘리며 경공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고급 정보를 알려 준 지존마창의 경솔함을 비웃었다.
‘보상을 나눈다고? 어림없는 소리!’
사실 혼자서는 독고준이나 위지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있었다.
파멸명왕은 다른 사천왕이 아닌 갱생문과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들은 백수룡이 내건 보상보다는 실전 경험에 더 목말라 있었으니까.
교활한 지존마창 녀석과 달리, 갱생문의 문주인 철두는 믿을 만한 사내였다.
‘철두와 손을 잡고 학생회 건물로 쳐들어가는 거야. 지존마창이 눈치채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야 해.’
파멸명왕은 서둘러 철두를 만나기 위해 속력을 높였다.
하지만 그 조급함이 시야를 좁게 만들었고, 매복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후우웅!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온 야수혁이 온몸으로 파멸명왕을 들이받았다. 그 기세가 마치 거대한 흑곰 같았다.
“뭐, 뭐야!”
기습은 시작에 불과했다. 야수혁의 커다란 덩치 뒤에 숨어 따라온 여민이 옆으로 움직이며 냉기가 실린 암기를 던졌다.
까가가강!
파멸명왕은 야수혁을 밀어내고 정신없이 암기들을 쳐 냈다. 그 순간 뒤에서 헌원강이 달려들었다.
“하아압!”
가면을 노리는 칼끝이 예리했다. 파멸명왕은 거의 눕듯이 몸을 뒤로 눕히는 동시에 쌍봉으로 바닥을 밀어 뒤로 멀리 물러났다.
헌원강이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쳇. 한 번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
“이 자식들! 너희들 뭐야? 아까 탈락한 녀석들이…….”
울컥해서 소리치던 명일오는 곧 아차 싶어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자신은 지금 사파의 대마두인 파멸명왕이었으니까.
“갈!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 감옥에서 탈출했으면 얌전히 집으로 돌아갔어야지. 그랬다면 목숨만은 건졌을 터…….”
“얘들아! 저 웃기지도 않는 연기 그만두게 하자!”
헌원강, 여민, 야수혁은 파멸명왕을 포위하고 동시에 덤벼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방심 따윈 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파멸명왕에게 덤벼들었다.
헌원강이 외쳤다.
“백수룡 조지기 십팔번으로 간다!”
이 순간, 평소 백수룡을 상대로 수없이 손발을 맞춰 본 것이 빛을 발했다.
“우앗! 이 자식들이 비겁하게!”
손발이 척척 맞는 세 학생의 합공에 파멸명왕은 크게 당황했다. 마치 몇 년은 함께 합격진을 수련한 것처럼 유기적인 움직임이었다.
승부가 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찌이익!
파멸명왕의 가면이 벗겨진 명일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청룡학관 강사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은 그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들 이거 반칙 아니야? 아까 명찰 뺏겼잖아?”
“감옥에서 탈출했으니깐 다시 참여해도 돼요.”
“누가 그래?”
“제가요.”
“하! 누가 수룡 형님 제자 아니랄까 봐…….”
명일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는데, 위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위쪽을 향했다.
건물 위, 지존마창이 달빛을 등진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일오가 버럭 소리쳤다.
“악연호 이 자식! 왔으면 도와줬어야지, 보고만 있었냐! 그러고도 네가 동맹이냐!”
지존마창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동맹 같은 소리 하네. 혼자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거 모를 줄 알고?”
“내, 내가 언제…….”
“그리고 본좌는 악연호가 아니라 지존마창이다. 시체는 더 이상 설정을 깨지 말고 조용히 있도록.”
“……큭!”
명일오의 입을 다물게 한 지존마창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는 세 학생을 바라봤다.
“제법이구나. 사천왕 중 하나인 파멸명왕을 쓰러뜨리다니. 하지만…….”
후후후…….
지존마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안타깝게도 그 녀석은 우리 중 최약체였다.”
“저 자식이!”
휘익!
지존마창이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허공에서 휘리릭 공중제비를 돈 그가 우아하게 바닥에 내려섰다.
“세 명이라…… 몸풀기로는 적당하겠군.”
차갑게 웃은 지존마창이 창끝을 위협적으로 겨눴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그의 창에 와류가 휘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