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16
215화. 고민해 봐야지“내기라니! 모욕을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소!”
사마영보다 먼저 반응한 건 그녀를 뒤따르던 강사들 중 한 명이었다.
완고한 인상의 사내였다. 사내가 백수룡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검파에 살짝 손을 올린 채였다.
백수룡의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기를 제안한 것이 어째서 모욕이지?”
“소속을 옮기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결정인지 모를 리 없을 터. 그걸 한낱 내기로 결정하자는 게 모욕이 아니고 무엇인가?”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주작학관에서 이직 제안을 하는 것은 호의고, 청룡학관에서 이직 제안을 하는 건 모욕인가?”
“두 학관의 처지가 다름을 당신도 모르지 않을 텐데.”
“조만간 바뀌게 될 테니 지금 기회를 주는 건데.”
“백수룡 선생. 당신 무공이 강하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아시오?”
“그쪽은 무공도 약하면서 뭘 믿고 덤비는 거요?”
“이자가……!”
무공은 물론이고, 말로도 이길 수 없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사내가 검을 뽑으려는 순간, 사마영이 다가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소검동 선생님. 그만 하세요.”
“…….”
소검동이라 불린 사내가 이를 악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물러나는 소검동을 보며 백수룡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한 번만 더 긁어 볼까?
“아주 충신 나셨군.”
“!!”
그 말에 소검동이 어깨를 움찔했지만, 사마영의 눈짓으로 경고하자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사마영이 다시 백수룡과 마주 서며 말했다.
“방금 내기라고 했나요?”
“그렇소.”
“좋아요. 수락하죠.”
이렇게 쉽게?
백수룡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 꺼내 본 말이었지, 사마영이 진짜로 내기를 수락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만약 사마영이 내기에서 진다면, 염왕의 손녀가 청룡학관 강사가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그만한 위험부담을 감수하겠다고?’
주작학관 강사들이 깜짝 놀라서 만류하고 들었다.
“사마영 선생님!”
“왜 그런 내기를 수락하십니까!”
“취소하십시오!”
그들 중에는 속으로 사마영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이건 주작학관의 명예가 달린 문제였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하지만 사마영은 싸늘한 눈빛과 손짓 한 번으로 그들을 침묵시켰다.
새삼 그녀가 지닌 권위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도전적인 눈빛으로 백수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신 백수룡 선생님이 내기에서 질 경우, 아까 지원하기로 한 것들은 전부 취소하겠어요. 평범한 신입 강사 월봉에, 바닥에서 잡무부터 시작하게 될 거예요. 제 밑에서 처음부터 일을 배우는 거죠. 계약 기간은 삼 년으로 하죠.”
사마영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승부욕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듯했다.
백수룡이 씩 웃었다.
비록 경쟁 학관의 강사이긴 하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능력도 출중해 보이니 후배로 뽑아서 실컷 부려먹으면 좋을 듯했다.
“그럼 이쪽도 똑같은 조건을 걸면 되겠군. 내용을 문서로 남기겠소?”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남궁세가에 공증을 맡기는 거죠.”
장원 곳곳에 남궁세가의 눈과 귀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내기에 관한 내용도 남궁세가의 수뇌부에게 곧바로 전해질 것이다.
약속을 어긴다면 온 강호가 비웃을 거란 이야기였다.
사마영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아세요? 뛰어난 선생이 꼭 뛰어난 학생이진 않아요. 오히려 본인이 뛰어나다는 걸 알아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죠.”
“걱정해 줘서 고맙소. 그럼 조금 덜 뛰어나 보이도록 노력해 보지. 유일하게 자신 없는 일이긴 한데.”
“……역시 마음에 들어. 내일 뵙죠.”
피식 웃은 사마영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주작학관 강사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백수룡이 동기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도 숙소로 들어가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제갈소영이 갑자기 손뼉을 치며 외쳤다.
“염화나찰 선배!”
“뭐?”
“어디서 들어 봤다 했는데, 이제야 기억났어요. 저보다 다섯 학년 위의 천무학관 선배님이에요.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졸업생들 중에서 꽤 유명했던 거로 기억해요.”
“염화나찰? 무슨 별호가 그렇게 살벌해?”
악연호가 황당하다는 듯이 묻자, 제갈소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보며 말했다.
“적으로 돌리면 나찰처럼 돌변한다고 해서 염화나찰이에요. 천무학관에서 사마영 선배가 자퇴시킨 사람만 셋이라고 들었어요.”
“…….”
“…….”
“크, 크흠!”
다들 그 살벌한 일화에 식은땀을 흘리거나 헛기침을 했다.
제갈소영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졸업 당시 성적도 다섯 명 안에 들었던 수재였어요. 열양공에 한해서는 교수님들도 가르칠 게 없다고 말씀하셨대요.”
“제법이긴 하더라.”
백수룡도 느꼈다.
사마영이 당백호와 싸우면서 보여 준 모습은 결코 전력이 아니었다.
물론 그건 당백호도 마찬가지였지만.
‘제대로 무공을 펼치면 어느 정도 수준일지 궁금하군.’
아마 조만간 볼 수 있을 것이다.
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 보였으니까.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애송이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어.”
확실한 건, 연수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작학관과 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백수룡이 딱 원하던 그림이었다.
* * *
숙소로 돌아온 사마영은 주작학관 강사들을 연무장 앞에 집결시켰다.
신입 강사들이 연수 기간 동안 머무르게 될 건물은 사방에 자리하여 학관마다 숙소가 분리되어 있었고, 각각 작은 연무장 또한 제공되었다.
“제가 할아버지의 위세를 빌려 멋대로 군다고 생각하나요?”
“…….”
“…….”
다들 말이 없었다. 하지만 불편한 침묵과 표정만으로도 생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
사마영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청룡학관 강사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했다.
그것만으로도 박탈감을 느꼈는데, 상대에게 거절당하면서 주작학관 전체가 망신을 당했다.
어디 그뿐인가.
“내기를 수락하신 것은 실수입니다.”
소검동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마영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그가 불만을 표시했다. 다른 강사들의 생각은 물어볼 것도 없었다.
만약 그녀가 염왕의 손녀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부모 잘 만나서 출세한 년.’
‘내기에서 지기라도 하면 대체 어쩌려고?’
‘청룡신협의 반반한 얼굴에 넘어간 게 틀림없어.’
사마영도 속으로 저들이 자신을 못마땅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너희들의 생각이 뻔히 보인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여러분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드리죠.”
“……예?”
“무슨 말씀이신지……?”
강사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동등한 기회라니?
사마영의 입가에 만개한 꽃처럼 화사한 미소가 맺혔다.
“이번 연수 기간 동안, 단 한 과목이라도 백수룡 강사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분은 월봉을 세 배로 올려드리겠어요. 뿐만 아니라 내년부터 정규 수업을 배정받게 해 드리죠.”
“!!”
주작학관 신입 강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월봉 세 배 인상과 정규 수업 배정.
오대학관 중 어느 곳보다 경쟁이 치열한 주작학관에서, 이것은 엄청난 혜택이었다.
강사들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이론 수업이라도 상관없습니까?”
“물론이죠. 무공을 겨뤄서 이기라는 말이 아니에요. 아까 보았다시피, 청룡신협의 무공은 우리 중 누구보다도 뛰어날 테니까.”
단순히 무공을 겨룬다면 백수룡을 이길 수 있는 신입 강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참가한 것은 무공대회가 아니라 강사 연수다.
연수에서는 여러 가지 교육을 통해 평가받는다. 그 성적은 단순히 무공이 강하다고 보장받는 것이 아니다.
‘이론이라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주작학관 강사들의 눈이 의욕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마영이 살포시 웃었다.
평범한 자들을 다루는 건 이렇게 쉽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청룡신협을 이겨 보세요. 주작학관의 강사들이 이곳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걸 보여 주는 겁니다.”
““예!””
“이만 해산하세요.”
그 말과 동시에 주작학관의 강사들이 흩어져 각자 방으로 들어가거나, 연무장에 남아 수련을 하거나,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눴다.
사마영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평소처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기조식을 위해 가부좌를 틀었다.
하지만, 좀처럼 운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얄밉도록 자신만만한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백수룡.’
감히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역으로 청룡학관으로 오라는 제안을 하다니.
처음에는 화가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히려 백수룡을 주작학관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평생 내 옆에 두고 종처럼 부려 주겠어.’
사마영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 *
“주군. 이쪽 방향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곱사등이 노인이 지도에 묻은 피를 손으로 툭툭 털어냈다. 눈이 많이 침침한지 지도를 얼굴에 바짝 붙인 모습이었다.
“확실해? 이쪽으로 가면 남궁세가가 나오는 것 맞아?”
나른한 인상의 청년이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청년은 인세에 보기 드문 미공자였다.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가 절반은 흑발이고 절반은 백발이었는데, 그것마저 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맞습니다. 이쪽으로 쭉 가면 남궁세가가 나옵니다. 넓게 보면 여기도 남궁세가의 영역입니다.”
노인이 뼈에 거죽만 남은 손가락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커다란 산봉우리가 보였다.
“일단 저 산을 넘어야 합니다.”
“가는 길에 산적들이 또 있을까? 이놈들은 너무 시시한데.”
청년은 발에 걸리적대는 시체들을 툭툭 차며 말했다.
두 사람의 발아래에는.
수백에 달하는 산적의 찢긴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들의 표정에서 끔찍한 고통과 공포가 생생히 느껴졌다.
바닥은 그들이 흘린 피로 웅덩이가 생긴 지 오래였다.
목불인견의 참상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과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눴다.
“있어도 이렇게 큰 산채는 없을 겁니다.”
“녹림에 외공의 고수들이 있다던 말도 다 옛날 얘기로군.”
“수십 년도 더 된 얘기지요. 옛날에 녹림투왕이라는 전설적인 고수가 있었는데…….”
“지겨운 옛날 얘기는 집어치워.”
손을 휘휘 저은 청년은 몸을 돌렸다. 곱사등이 노인이 지도를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청년의 옆에 따라붙었다.
산채에서 내려가는 길에 청년이 물었다.
“그런데 여기가 남궁세가의 영역이면, 창천검왕 그 늙은이는 앞마당의 쓰레기들도 안 치우고 뭘 하는 거야?”
“앞마당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지요. 아마 신경도 쓰지 않을 겁니다.”
“쯧쯧. 정파 놈들 하는 일이 항상 그런 식이지. 그래 놓고 대협이니 협객이니 하면서 위선을 떤다니까.”
“끌끌. 그 말씀이 맞지요. 그런 의미로 보면 저희야말로 협객이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산채를 내려갔다.
“끄흐윽…….”
산채 아래에서 한 사내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기어가고 있었다. 핏자국이 그가 기어온 길을 따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청년이 사내에게 다가가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왔어?”
“히이익!”
사내는 맨 처음 청년과 노인을 잡아 세운 산적이었다.
청년은 그의 다리를 불구로 만든 후, 산채를 멸하고 돌아올 때까지 도망치면 살려 준다고 약속했다.
산적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빌었다.
“제, 제발 살려…….”
“약속은 약속이잖아.”
창백하게 질려 목숨을 구걸하는 산적의 머리 위로, 청년의 발이 무심하게 떨어졌다.
콰직!
바닥에 쏟아진 핏물과 뇌수를 슥슥 비빈 후,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길을 내려갔다.
곱사등이 노인이 그 옆을 따르며 물었다.
수십 년 전, 무림은 이 노인을 수라마검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런데 주군. 이번에 창천검왕의 목을 베실 겁니까?”
그리고 현재.
“글쎄. 일단 족쳐 본 다음에 고민해 봐야지.”
무림은 노인의 옆에서 걷는 청년을 사파제일고수, 흑야마제(黑夜魔帝)라 부르며 경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