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28
227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연얼어붙어 있던 음양마존의 피부에 불길이 닿는 순간, 그가 숨겨 두었던 최후의 전언이 나타났다.
내 배를 갈라 보거라.
이 안에 남궁세가를 파멸시킬 안배를 숨겨 놓았다.
“뭐?”
백수룡은 급히 손을 휘저어 제단의 불을 껐다. 그리고 전언을 자세히 보기 위해 시체에 한 발 더 다가갔다.
“남궁세가를 파멸시킬 안배라고?”
그 순간,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백수룡은 하얗게 얼어붙은 공동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뱃속에 안배를 숨겨 두려고 이곳 전체를 얼려 버린 거였나.”
이 안의 기이할 정도의 추위는 아무리 봐도 인위적인 것이었다.
그 원인은 아마도 음양마존.
생전에 극양의 무공과 극음의 무공을 동시에 익혔던 그는, 숨이 다하기 직전 진원진기를 쥐어짜서 이곳을 얼음동굴로 만든 것 같았다.
자신의 몸 안에 남궁세가를 파멸시킬 안배를 숨겨 놓기 위해.
또한 훗날 찾아올지도 모를 혈교의 후예들에게, 창천검왕이 저지른 살육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 주기 위해서 말이다.
백수룡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음양마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당신의 가슴에 맺힌 원한이 처절하고도 지독하구려.’
하지만 결국 음양마존의 전언을 수습한 사람은 혈교의 후예가 아니라 백수룡이었으니,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연이고 운명이었다.
“오장로가 기다렸던 사람이 나는 아니겠지만, 당신이 해 둔 안배는 내가 챙겨가겠소.”
백수룡은 망설이지 않고 음양마존의 배를 갈랐다.
촤악-
불룩한 위를 반으로 가르자, 손바닥 정도 길이의 길쭉한 목함이 눈에 들어왔다.
“삼키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이것이 음양마존이 말한 ‘남궁세가를 파멸시킬 안배’이리라.
백수룡은 조심스럽게 목함을 꺼낸 후, 덮개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피리?”
상아로 만든 듯한 작은 피리가 비단에 곱게 싸여 있었다.
길이는 손바닥보다 조금 긴 정도에 불과했는데, 입김을 불어 넣는 취구에서부터 아래로 ‘마령소혼적(魔靈召魂笛)’이라 새겨져 있었다.
“마귀의 영혼을 소환하는 피리라…….”
그 의미가 심상치 않았다.
백수룡은 마령소혼적을 유심히 관찰했다.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 안에 음산한 귀기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보니, 예사 귀물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이것이 남궁세가를 파멸시킬 안배라고?”
음양마존이 남긴 최후의 전언에는 분명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 읽은 전언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백수룡은 다시 한번 그 부분을 확인했다.
하지만 놈은 모른다.
본좌도 삼십 년 동안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남궁세가의 미래에 파멸의 씨앗을 심어 두었다.
그것이 언제 발아할지는 모르지만…….
삼십 년 전에 심어 둔 파멸의 씨앗.
마령소혼적은 그것과 관련돼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피리를 불면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백수룡은 마령소혼적을 다시 목함에 집어넣고 품 안에 챙겼다.
당장은 용도를 알 수 없으니, 돌아가서 천천히 살펴볼 생각이었다.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다시 음양마존을 바라봤다.
“이걸 사용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군. 고민해 보겠소.”
제사는 마저 치러 줄 생각이었다. 백수룡은 제단에 다시 불을 붙였다.
화르륵!
장작의 불이 시신으로 천천히 옮겨붙었다.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었던 탓에 시체가 다 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백수룡은 음양마존의 부릅뜬 눈을 감겨 주며 말했다.
“부디 다음 생엔 좋은 곳에서 태어나시오.”
음양마존은 정파에서 태어났다면 협객이 되었을 사내다.
혈룡대주와 함께, 전생의 백수룡이 존경했던 몇 안 되는 무인이었다.
화르르륵!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라 음양마존을 집어삼켰다.
“난 이만 가 보겠소.”
백수룡이 오래전에 고인이 된 음양마존에게 명복을 빌어준 후 돌아섰다.
제단 위에서 보니, 동굴 안에 널브러진 교도들의 처참한 시신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그들을 모아 화장해 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백수룡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음양마존을 혈교의 장례법대로 화장시켜 준 것은 과거에 그와 작은 인연이 있어서였다.
‘저들의 시신까지 수습하는 건 지나친 오지랖이야.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아니라…….’
생각에 잠긴 백수룡이 품 안의 목함을 만지작거리며 제단에서 내려갈 때였다.
키야아아아-!
동굴 안을 울리는 기괴한 괴성과 함께, 무언가가 천장에서 뚝 떨어져 백수룡을 덮쳤다.
콰앙!
바닥에서 깨진 얼음 조각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백수룡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천장에서 상대가 떨어지기 한참 전부터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체는 백수룡도 지금 알았다.
“인면지주(人面蜘蛛)?”
거의 송아지만 한 크기의 잿빛 거미였는데, 그 머리가 마치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음양마존이 애완용으로 인면지주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강아지만 하다고 들었는데……. 그새 엄청나게 컸구나.”
키야아아아!
괴성을 내지른 인면지주가 백수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마도 동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백수룡이 주인의 시신을 불태우자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듯했다.
송아지만 한 거미가 여덟 개의 다리로 달려오는 것 자체로 공포였다. 게다가 그 속도도 절정고수 못지않게 빨랐다.
하지만 백수룡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휘익!
가볍게 인면지주의 공격을 피한 백수룡은 신기한 동물을 살피듯 인면지주를 살폈다.
영물들이 다 특별하긴 하지만, 이 인면지주로부터는 독특한 기운이 느껴졌다.
“인면지주가 원래 냉기를 품는 영물이었나?”
마치 빙정을 품은 북해의 영물처럼, 인면지주는 몸에서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녀석이 바닥에 뾰족한 다리를 내디딜 때마다, 그 자리가 쩌적- 얼어붙을 정도였다.
얼음 동굴의 온도가 유지되는 이유가 저 녀석 때문인 듯했다.
순간, 백수룡은 그럴듯한 가설 하나를 떠올렸다.
“음양마존에게 빙공을 배웠을 리는 없고……. 너도 뱃속에 뭔가를 품고 있는 거냐?”
키야아아아!
인면지주는 대답 대신 기이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쩍 벌린 입에서 독액이 뚝뚝 떨어졌다.
백수룡도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배 속에 뭐가 있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될 터였다.
그의 검이 벼락처럼 뽑혀 나왔다.
촤아아악!
일검에 인면지주의 머리에 잘려나갔다.
수십 년 넘게 살아온 영물이라 해도,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백수룡은 힘없이 널브러진 인면지주에게 다가가 거침없이 배를 갈랐다.
예상대로 그 안에는 냉기를 품은 기물이 들어 있었다.
“팔찌?”
투명한 수정을 깎아 만든 듯한 얇은 팔찌가 스스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거 혹시…….”
잠시 후, 이 팔찌가 무엇인지 깨달은 백수룡이 탄성을 터트렸다.
“빙백환(氷白環)!”
전생의 네 사부 중 한 명이었던 빙월신녀 은예린의 신물.
본래는 북해빙궁의 보물로, 빙공을 익힌 무인에게는 절세의 기연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허! 빙백환이 이런 곳에 있었다니…….”
백수룡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전생에 빙월신녀가 빙백환에 대해 전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빙공을 수련할 때 빙백환을 착용하면 성취가 배 이상 빨라지지. 그것만으로도 천고의 보물이지만, 빙백환의 진정한 가치는 빙공을 펼칠 때 나타난다.
빙월신녀는 쇠사슬에 묶인 두 손을 백수룡이 볼 수 있도록 정면에 펼쳐 보이며 설명했다.
-왼손에는 빙백환을 꼈다고 치고, 오른손에는 끼지 않았다고 친다면…….
쩌저적!
쩌저저적…….
왼손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냉기가 맺힌 반면, 오른손에는 냉기가 맺히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원래 뇌옥에 갇힌 네 사부는 혈교의 대법에 의해 내공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당시에는 백수룡이 그들의 무공 시범을 직접 봐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법을 약하게 한 상태였다.
-빙백환을 착용한 것과 착용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대략 이 정도다. 빙공의 성취가 낮을수록 그 격차가 더 큰데, 이류고수가 착용하면 일류고수와 비슷한 속도로 냉기를 뿌릴 수 있지.
당시에 그 설명을 들은 백수룡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엄청난 기물이군. 검객으로 치면 검기나 검강을 남들보다 몇 배는 빨리 펼칠 수 있단 말 아니오?
-하지만 내 수준쯤 되면 착용하나 안 하나 거의 차이가 없다.
-그거야, 은 사부가 너무 강해서 그런 거고. 웬만한 빙공을 익힌 무인들한테는 신병이기보다 더한 보물일 텐데. 그래서 지금 빙백환은 어딨소?
-모르겠다. 혈교에 잡히자마자 빼앗겼으니.
-이런…….
그 이후 혈교에서 탈출할 때까지도 빙백환의 행방을 알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장로들 중 극음의 무공을 익힌 음양마존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곳에 있었을 줄이야.”
백수룡은 빙월신녀의 신물이었던 빙백환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단순히 보물을 얻은 것이 기뻐서가 아니라, 빙백환에 얽힌 그녀와의 추억이 떠올라서였다.
빙백환은 본래 두 개의 팔찌가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빙월신녀가 가지고 있다가 혈교에 빼앗겼다.
그래서 다른 하나는 어디에 있냐고 백수룡이 물어보았는데, 돌아온 대답이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하나는 정인에게 징표로 주었다.
빙월신녀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뇌옥에 갇혀 있던 세 명의 사내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
-정인이 있었나?
-그 사나운 성깔머리를 맞춰 주는 사내놈이 있었단 말이야?
-혼례는 올렸는가?
차례대로 광마, 녹림투왕, 검존이 한 말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주변의 관심에 은예린은 부끄러운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한 녹림투왕이 낄낄거렸다.
당시에 그는 빙월신녀의 별호를 멋대로 줄여서 ‘빙신’이라고 불렀다.
-우리 빙신의 눈에 찰 정도면 그 사내도 엄청난 고수였겠군. 우리가 알 만한 놈이냐? 응? 말해 봐라. 내가 옛날에 쥐어팬 놈 중 하나여도 모른 척해 줄 테니까.
녹림투왕의 도발에 빙신, 아니 빙월신녀가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며 말했다.
-닥쳐라. 내 정인은 너처럼 무식한 무림인이 아니었다.
-응? 무인이 아니었다고? 진짜?
-신녀. 당신을 알게 된 이후로 가장 놀랐소.
-그래서 혼례는 올렸는가?
빙월신녀의 정인이 무림인이 아니라는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뇌옥에서는 무공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세 사부는 끈질기게 빙월신녀를 추궁했고, 결국 체념한 빙월신녀는 자신의 정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니, 오히려 사내치고 허약한 편이었지. 종일 서책만 읽는…… 그런 남자였어.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자, 봇물이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일하던 서점에서 처음 만났지. 귀찮은 날파리들 때문에 면사에 흑립까지 쓰고 나간 날이었는데, 허약해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호롱불을 비춰 주더군.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으면 자기처럼 눈이 나빠진다면서 말이야.
평소에는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운 빙월신녀였지만, 정인에 대해 말할 때의 표정만은 만개한 봄꽃처럼 화사했다.
-……어느새 좋아하게 되었어. 근육 하나 없는 팔도, 어눌하고 겸손한 말투도, 서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애체(안경)가 없으면 석 장 밖에 있는 내 얼굴도 구분 못 했는데. 그런 주제에 자존심은 강해서, 왈패들 앞에서 날 지켜 주겠다고 나서던 뒷모습까지. 전부 좋아하게 되었어.
처음 듣게 된 빙월신녀의 이야기를, 다들 흐뭇한 표정으로 들었다.
녹림투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우리 빙신이가 연정도 품을 줄 아는 여인이었다니. 이 오라버니가 다 기분이 좋구나!
-닥쳐. 누가 내 오라버니야?
-십 년을 넘게 함께 지냈는데 오라비나 다름없지. 안 그러냐, 광마 동생?
-미친놈.
-강호 공식 미친놈은 너잖아.
네 사람은 뇌옥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고, 애틋한 감정이 생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혼례는 올렸는가?
-……아까부터 그건 왜 자꾸 묻는 거예요?
검존은 집요하게 혼례를 올렸냐고 물었고, 빙월신녀가 아직 올리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검존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탈출하면 혼례부터 올리게. 내 아들과 함께 참석할 터이니.
-이 오라비도 빠질 수 없지!
-나도 참석하지.
그 이후로 아이는 몇이나 낳을 거냐느니, 비실비실한 서생이 사내구실은 제대로 하겠냐느니, 정력에는 뭐가 좋다느니, 세 사내는 빙월신녀가 학을 뗄 때까지 짓궂게 놀려댔다.
그날, 네 사부는 혈교를 탈출한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며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은 듯했다.
“……그랬었지.”
백수룡은 씁쓸한 전생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손바닥에 위에 올려 둔 빙백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은 사부. 일단 하나는 찾았소. 기회가 되면 남은 하나도 어디 있는지 찾아보겠소.”
빙월신녀에게 약속한 백수룡은 빙백환을 자신의 왼쪽 손목에 채웠다.
오른손으로는 검을 휘둘러야 하니, 왼손에 착용해서 싸울 때 빙공으로 장법이나 지법을 펼칠 생각이었다.
촤르륵.
빙백환을 손목에 끼운 순간, 빙백환이 스스로 움직여 수룡의 손목에 딱 맞게 감겨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백수룡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음?”
악인곡의 구음마녀로부터 건네받은 빙정의 기운이, 빙백환의 기운과 강하게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쩌저저적……!
백수룡의 피부 위로 새하얀 서리가 맺혔다.
그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바닥이 얼어붙으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온몸이 오한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큽!”
백수룡은 즉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날뛰는 빙정의 기운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이대로 얼음 동상이 돼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반대로 이 기운을 진정시킬 수 있다면?
그동안 시간이 없어 제대로 수련하지 못한 빙공의 성취를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연이다.’
백수룡은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