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3
22화. 청룡학관 신입 강사 채용 공고허 노인의 유산을 수습하는 데만 해도 며칠이 걸렸다.
손 부인이 내 정체를 의심하는 것 같았지만, 청천이 그녀가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혼을 쏙 빼놓았다.
“손 부인. 적화루의 술에 물을 탄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만.”
“대, 대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신고자의 신분은 밝힐 수 없습니다. 제가 주류 창고를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포두님. 저랑 잠깐 따로 얘기 좀 하실까요?”
뇌물이 일절 안 통하고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한 포두가 무표정한 얼굴로 저렇게 나오면, 인근 상인들은 모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손 부인. 기녀들의 몸에 멍든 자국이 여럿 보이더군요. 혹시 기루 내에서 폭행이 있는 겁니까?”
“그, 그게 아니라…….”
“주방을 보니 위생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군요. 책임자를 불러오십시오.”
“가, 갑자기 왜……!”
청천은 자신의 권력을 제대로 휘둘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러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손 부인은 청천도 벼르고 있었던 상대라서 작정하고 털었다.
과거, 임신한 청천의 어머니를 쫓아낸 사람이 바로 손 부인이었으니까.
손 부인의 얼굴을 해쓱하게 만든 청천이 내게 따로 와서 말했다.
“손 부인은 조만간 감옥에 가게 될 거요. 죄목은 탈세, 폭행, 협박. 이것저것 엮으면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겠지.”
“그 조만간이 언제야? 지금 당장은 좀 곤란한데.”
“……대여섯 달이면 충분하겠소?”
잠시 기간을 가늠해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해. 돈 욕심이 지나치게 많더라고. 그래서 나도 적당한 때에 갈아 치우려고 했어.”
나는 손 부인이 기루의 돈을 꽤 많이 착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장 그녀가 관아에 끌려가면 적화루의 운영에 문제가 생길 테니 곤란하지만, 몇 달 후라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도 될 것이다.
허천이(내가) 허 노인의 후계자로 제대로 자리를 잡은 이후에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적화루는…….”
청천이 어렵게 말을 꺼내기에, 나는 그가 듣고 싶은 말을 먼저 해 주었다.
“청루는 없애고 홍루만 운영하게 할 거야. 당장은 아니지만 천천히. 청루에서 일하던 기녀들도 다른 먹고살 길은 마련해 줘야 하잖아? 원하면 객잔이나 주점, 상단에서 일하도록 해 줄 거야.”
일반적으로 청루는 몸을 파는 곳이고, 홍루는 술 시중과 음주 가무만 제공하는 곳이다.
돈이야 당연히 청루가 더 많이 벌리지만, 나는 허 노인이 하던 사업 중 불법적이고 지저분한 것은 모두 정리할 생각이었다.
청천이 날 빤히 보더니 말했다.
“……고맙소.”
“고마울 것 없어.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평판 때문이니까.”
고리대금업계의 큰손이었던 허 노인에겐 그만큼 지저분한 소문도 많았고, 주변에 적도 많았다.
내가 그의 사업을 그대로 물려받게 되면, 그의 나쁜 평판과 소문, 또한 적도 함께 물려받게 된다.
지저분한 일을 하면 필연적으로 원한이 생긴다.
‘돈도 좋지만, 괜한 원한을 사서 잠자리가 뒤숭숭해질 필요는 없지.’
앞서 말했듯이 원한 살 만한 일은 최대한 만들지 말고, 만들게 되면 아예 뿌리를 뽑자는 것이 이번 생에서 나의 신조다.
‘앞으로 청천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고.’
청천은 내게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와 생명(혈우마공의 부작용을 고쳐야 하니)을 빚지고 있지만, 나는 그를 일방적으로 부하처럼 부릴 생각은 없었다.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또한 상황이 바뀌면 관계 또한 쉽게 바뀐다.
나는 씩 웃으며 청천에게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해 보자고. 그리고 말 편하게 해.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러지.”
청천은 묘한 표정으로 잠시 내 손을 바라보다 맞잡았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뭐가?”
“네가 그 인간의 유산을 물려받게 된 것 말이다.”
청천은 허 노인의 유산을 물려받고 싶진 않았지만, 그 유산에 대해서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유산을 받게 되지 않을 경우, 허일이나 손 부인이 그 유산을 물려받아 더욱 악랄하게 고리대금업을 해서 민초들을 괴롭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유언장을 받고 바로 불태우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라면…… 그 인간들처럼 더러운 짓은 안 할 것 같다.”
“보시다시피 내가 좀 깔끔한 편이지.”
“재수 없는 것만 빼면.”
우리는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아무튼 청천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관에 인맥을 하나 만들었고, 청천은 마공으로 잃을 뻔했던 생명을 구했으며 마음의 짐도 덜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만 빼면 다 좋았다.
‘그 흑립인은 누구였을까?’
청천에게 부작용이 있는 혈우마공을 알려 주었다는 흑립인.
나는 그의 정체를 추측해 보았지만, 딱히 짚이는 것이 없었다.
혈우마공이 엄청난 마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잣거리에 나돌 만한 무공도 절대 아니었다.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수련한다면 수련자의 자질에 따라 절정의 경지도 충분히 넘볼 수 있는 무공이다.
‘혈교의 무공교관이 아니라면, 대주나 단주 이상은 되어야 구결을 알 텐데…….’
혈교는 정말 망한 것일까?
망했다면, 그동안 혈교가 쌓아 온 재화와 무공은 다 어디로 갔을까.
네 명의 사부가 남기고, 내가 재정립한 그들의 신공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에 또 보자고.”
“네가 알려 준 구결.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러 가겠다.”
“얼마든지.”
청천과 헤어진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복만춘을 만나러 갔다.
“오셨습니까.”
복만춘은 낭인 출신이라 그런지 바뀐 상황에 대한 적응이 굉장히 빨랐다. 딱히 시키지 않았는데도 내게 척척 보고를 올렸다.
“돌아가신 어르신께서 보유하신 객잔, 주점, 상점의 목록입니다. 명목뿐이긴 하지만 전장과 표국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여길 보시면…….”
복만춘은 허 노인의 호위무사인 동시에, 무력이 필요할 때 여러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허 노인이 외출할 때마다 옆에서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사업에 대해 많이 보았고, 장사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잘 정리하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하하. 수고는 뭘요.”
나이 든 총관이 따로 있긴 했지만 나는 복만춘을 총관처럼 대했다.
실제로 앞으로 총관직을 맡길 생각이기도 했다.
복만춘과 앞으로 사업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개인적인 용무를 꺼냈다.
“복 호위님. 영약을 좀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영약 말입니까?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하나뿐인 눈을 껌뻑이는 복만춘에게, 나는 필요한 종류의 영약을 말했다.
“양기가 강한 영약이면 좋겠습니다. 약력이 강할수록 좋고, 효능만 강력하다면 독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으음…….”
복만춘은 잠시 생각하더니, 당장은 어렵지만 시간을 들이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낭인 시장 쪽에 아직 인맥이 좀 남아 있습니다. 그쪽으로 연통을 한번 넣어 보면 물건이 있을 듯합니다.”
낭인 시장은 낭인들의 무력을 사고파는 곳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돈이 되는 것은 뭐든지 사고파는 암시장으로 변했다.
돈만 주면 뭐든 구할 수 있는 곳.
낭인으로 오래 굴러먹은 복만춘은 그쪽에 인맥이 상당할 것이다.
‘주 거래 대상이 낭인들이다 보니 무기 거래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문득 행낭 안에 들어 있는 운철을 떠올린 내가 물었다.
“혹시 입이 아주 무겁고 실력 좋은 야장(冶匠)을 소개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야장이요? 무기를 만드시게요?”
“자세히 말씀드리긴 좀 그렇습니다.”
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눈치 빠른 복만춘이 아차 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한 질문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입이 아주 무거워야 합니다. 여러 목숨이 걸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복만춘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볼일이 다 끝났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벌써요? 술이라도 한잔…….”
“오늘은 들러야 할 곳이 좀 많아서요. 다음에 꼭 한잔하시죠.”
“제가 또 눈치 없이 굴었군요. 그럼 살펴 가십시오.”
복만춘에게 이것저것 일거리를 맡긴 후, 나는 강서지부 무림맹에 고주열을 찾아갔다.
물론 인피면구는 벗은 다음이었다.
“친아들이 범인이었다니! 저런 천벌을 받을……!”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리자, 고주열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이 많았구나.”
“제가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범인이 불을 지르고 자살해 버려서요. 결국 마공에 대한 단서도 못 찾았습니다.”
세간에는 허 노인을 죽인 범인이 허일로 알려졌고, 당연히 마공을 익힌 놈도 허일이 되었다.
나는 허 노인을 죽인 마공이 혈우마공이라는 것을 무림맹에 알리지 않았다.
내가 혈우마공을 어떻게 아는지 설명할 길이 없을뿐더러, 알렸다간 어쩐지 귀찮은 일에 휩싸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밝혀낸 진실 중 그 무엇도 고주열에게 말하지 않았다.
‘조금 미안하지만…….’
고주열이 내 표정을 보더니 지레짐작하고는 나를 위로했다.
“괜찮다. 괜찮아. 시체의 상흔만 보고 마공을 추적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
“……예.”
“입사 시험은 걱정하지 마라. 이 백부가 네가 이번 수사에 크게 도움을 줬다고 써서 보고할 테니 면접 때 큰소리쳐도 될 게다. 감사패도 빨리 만들어 달라고 하마.”
사실 무림맹의 감사패 따위는 이제 별로 필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고주열의 마음이 고마워서 빙긋 웃었다.
“예. 감사합니다.”
고주열은 여전히 맹의 일로 정신없이 바빠 보였고, 그래서 밥은 나중에 먹기로 했다.
나는 무림맹에서 나오며 생각했다.
‘일단 돈 걱정은 크게 덜었다.’
어쩌다 보니, 도시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던 고리대금업자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지저분한 사업을 다 접을 예정인 탓에 당장 큰돈을 만지기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이대로 장사를 배워 봐? 아니면…….’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장사를 해도 내가 잘하는 거로 해야지.”
나는 장사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른다.
모르는 일에 괜히 이것저것 참견하다간 손해만 보기 십상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공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
그러니 원래 있던 사업은 잘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맡기고, 내가 잘하는 일로 돈을 벌면서 사업에 관해 조금씩 배우는 게 나을 것이다.
‘어쨌든 마음은 한결 편하군.’
설령 청룡학관 입사 시험에 떨어진다고 해도 당장 돈이 궁할 일은 없으니까.
마침 여기도 제법 큰 도시고 하니, 청룡학관 근처에 빈 장원이라도 사서 무관을 여는 방법도 있다.
시골에서 혼자 궁상떨고 있을 아버지도 올라오시라고 하고…….
‘이참에 학관업을 크게 벌여 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묵고 있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침상에 몸을 날렸다.
털썩.
“휴우. 피곤하구나.”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잠시 후 문이 조금 열리더니 악연호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녀석은 뭐가 못마땅한지 입이 댓발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며칠 동안 어딜 그렇게 혼자 바쁘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런 게 있다. 알면 다쳐.”
“흐음…….”
악연호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내 방으로 들어오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치사하게 혼자 여자 만나고 다닌 거 아냐? 분명 분 냄새가 나는데…….”
적화루에 들렀다 왔으니 분 냄새가 날 만도 하다.
하지만 핑계를 대기가 귀찮았던 나는 손을 대충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일 없다. 난 잘 테니 방해하지 말고 가라.”
“잘 때 자더라도 이건 보고 자야 할걸요.”
악연호는 오늘 저잣거리에 붙은 방을 한 장 떼어왔다며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 아래 적힌 내용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두 번 읽었다.
잘못 읽은 것 같아서 한 번 더 읽었다.
하지만 잘못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공고문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정확히 짚으며 악연호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학생들이 직접 투표해서 강사를 뽑는다고?”
어느덧 청룡학관의 입사 시험 날짜가 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