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37
236화. 온몸에서 힘이 솟더라고. 철혈검(鐵血劍) 남궁천.
전대 가주인 창천검왕이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라는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면, 남궁천은 정파 무림의 온갖 견제와 암투 속에서 남궁세가를 지켜 온 거목과 같은 사내였다.
그리고 지금, 그 사내의 눈 밑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더니…….’
꽃은 열흘 이상 붉은 것이 없고, 권력은 십 년을 가지 못한다.
한 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함이 있고, 아무리 높은 권세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가주가 된 이후로 두 가지 격언을 매일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는 남궁세가에도 언젠가 위기가 닥칠 수 있으니, 항상 미리 대비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지옥도는 그런 남궁천의 노력을 비웃는 듯했다.
“……많이 죽고 다쳤구나.”
가주의 허망한 목소리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긴 악몽 같았던 밤이 지나고, 서서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 아래, 지난밤 남궁세가에 일어난 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남궁세가주는 애써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각 당은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천풍당 보고 올리겠습니다. 사망 스물셋, 부상 마흔여덟, 부상자 중 사경을 헤매는 중상자는…….”
“창궁당 보고 올리겠습니다. 사망 스물여덟, 부상 서른아홉…….”
“장로원의 피해는…….”
하룻밤 만에 남궁세가는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과거 혈교와의 전쟁에서도 이렇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오늘 이후로 본가는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겠구나.’
남궁천은 거대한 분노와 비애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계속 보고를 받았다.
다만, 이를 꽉 악물 뿐이었다.
옆에서 가주를 지켜보던 총관이 걱정스레 물었다.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괜찮네.”
“잠시 운기요상이라도 하시는 것이…….”
“보고가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가주의 고집스러운 말투에 총관이 한숨을 작게 쉬었다.
“알겠습니다.”
자신을 걱정하는 총관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남궁천은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쉴 때가 아니다.’
남궁천 역시, 수라마검과의 생사결에서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온몸의 기혈이 뒤틀리고 단전도 크게 상했다.
앞으로 몇 년을 정양에 힘써도 완전히 회복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남궁천은 의원의 진료를 미뤄 뒀다.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수습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든 남궁천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싸움이 끝나야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군.”
“…….”
쿠르르르릉!
하늘 위에서는 창천검왕과 흑야마제의 경천동지할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들이 남궁세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함께 하늘을 보고 있던 자들이 말했다.
“방향을 보니 천주산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흑야마제가 도망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가주. 태상가주께 지원군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궁천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끼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오. 아버님께서도 원하지 않으실 것이고. 홀로 충분히 흑야마제를 격멸하실 것이오.”
남궁세가는 창천검왕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무림이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기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천하제일고수의 자리를 노려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창천검왕 남궁제학이었다.
무력대의 대주들은 불안해하는 수하들을 독려했다.
“곧 태상가주께서 흑야마제의 수급을 베고 돌아오실 것이다!”
“검왕께서 계신 한 남궁세가는 천하제일세가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점점 멀어지는 창천검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궁천의 표정은 흐릿했다.
“……우리의 업보라고 했지.”
“예?”
“아무것도 아니네.”
총관의 물음에 남궁천은 고개를 저었다.
흑야마제가 사납게 웃으며 창천검왕에게 했던 말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올랐다.
-이십 년 전 당신이 저지른 업보 말이야. 위선자의 가면을 쓰고 한 역겨운 일들.
-나는 그 속에서 태어난 재앙이거든.
“…….”
남궁세가주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비록 눈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는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싸움의 양상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촤아아아악!
드넓은 창공을 도화지 삼아, 남궁세가 무공의 정수가 그 위에 펼쳐지고 있었다.
창천검왕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먹구름이 갈라지고 어둠이 찢겨나갔다.
하지만 흑야마제가 만들어 낸 어둠은 금세 다시 뭉쳐 들었다. 그리고 창천검왕을 포위해 끈질기게 괴롭혔다.
“갈-!!”
창천검왕이 사자후를 터트리며 아무리 맹렬하게 검을 휘둘러도 어둠을 떨쳐 내지는 못했다.
마치, 빛이 아무리 강해도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했다.
‘아버님.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창천검왕은 이십 년 전 자신이 저지른 학살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폐기하고, 관련자들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완벽한 비밀이란 없는 법.
남궁천은 자신의 부친이 없애 버린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혈교와 관련되어 있고, 무림에 절대 알려져선 안 될 남궁세가의 치부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남궁천의 하나뿐인 눈에 만감이 교차했다.
‘만약 당신이 저지른 죄가 업보로 돌아온 것이라면……. 가주로서 그 죄를 묻겠습니다.’
주먹을 꽉 움켜쥔 후, 남궁천은 더 이상 두 절세고수의 싸움을 지켜보지 않고 돌아섰다.
아직 받아야 할 보고가 산더미였다.
다행히 절망뿐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유일한 위안거리가 있었다.
“이번에 삼공자님께서 정말 큰 일을 하셨습니다!”
“셋째 도련님이 아니었다면 피해가 몇 배로 늘어났을 겁니다.”
“사대학관 신입 강사들도 본가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마땅히 보상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가주에게 보고하러 온 사람마다 모두 입이 마르도록 남궁수를 칭찬했다.
“흐음. 그렇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남궁천은 고개를 돌려 셋째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침 눈이 마주쳤다. 남궁천은 남궁수에게 이리로 오라 손짓했다.
“안색이 좋지 않구나.”
“가주님도 좋지 않으십니다.”
두 형과 달리, 어려서부터 입에 발린 소리는 못 하는 녀석이었다.
부자는 서로의 부상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보았다.
힘든 것을 겉으로 티 내지 않는 점 하나만은 꼭 닮은 두 사람이었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많이 좋지 않다. 몇 년 안에 뒷방으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
“녀석아. 이럴 때는 입바른 소리를 좀 해도 된다.”
“……죄송합니다.”
“되었다.”
피식 웃은 남궁천은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그의 시선이 남궁수가 들고 있는 마령소혼적을 향했다.
“그 피리는 어디서 난 것이냐.”
“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백수룡 선생에게 받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이지를 상실한 본가의 무인들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남궁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 잠시 침묵하던 남궁천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백수룡 선생이 이번 일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남궁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부친의 질문에 화가 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백수룡 선생은 본가의 은인입니다. 그가 준 이 기물이 아니었다면, 본가는 지금도 시산혈해 속에서 싸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남궁수의 격정적인 반응에 남궁천은 조금 놀랐다.
셋째 아들이 저토록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쩐지 조금 주눅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거라. 백수룡 선생을 마땅히 본가의 은인으로 대접할 것이다.”
“예.”
본인의 말투가 무례했다고 생각했는지 남궁수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두 사람의 시선이 한쪽에 도열해 있는 마인들을 향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마령소혼적을 불어 마인으로 변한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무력화시켰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하지는 못했다.
“그 피리로도 할 수 없더냐?”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아무래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듯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라면?”
“제 추측으로는…….”
남궁수는 백수룡과 헤어지기 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당장 가 봐야 할 곳이 있거든.
당장 가 봐야 할 곳이 있다며 백수룡이 달려간 방향.
남궁수가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곳.”
천주산 정상 부근에 있는 봉우리 중 하나.
새벽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지만, 그 주변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여 있었다.
“아무래도 저 봉우리가 수상합니다. 저곳에 세가 무인들을 마성에 빠지게 하는 진법이나 기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제 추측입니다.”
“과연…….”
남궁천도 봉우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직접 저곳으로 가겠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괜찮겠느냐?”
“예.”
남궁천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에 또 어떤 적이 있을지 모른다.
마령소혼적을 다루는 남궁수의 힘이 꼭 필요했다.
“알겠다. 일 각 후 출발할 것이니 준비하거라.”
남궁천은 각 당의 당주들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남아 있는 무인들 중 부상이 덜한 인원들을 차출해 천주산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가주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남궁수도 자신을 따라온 강사들에게 준비하라고 일렀다.
“음? 저긴 수룡 형님이 먼저 가셨잖아요.”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다 정리돼 있을 것 같은데.”
청룡학관 강사들의 반응이었다. 다른 학관 강사들이 주섬주섬 준비하는 데 반해, 그들은 멀뚱멀뚱 남궁수를 바라봤다.
“……그래도 간다.”
사실 남궁수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가문의 일인지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남궁세가의 정예가 천주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 * *
“이 너머로군.”
백수룡은 어깨에 짐처럼 짊어지고 온 만박자를 바닥에 잠시 내려놓았다.
스스스슷…….
몇 발자국 앞에 심연처럼 어두운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인위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 어둠이었다.
보이지 않는 어둠 너머에서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강력한 마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만박자. 저 안에 있는 게 뭐지?”
“크흐흐흐……”
만박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괴소를 흘렸다.
마혈이 제압된 그는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간신히, 웅얼거리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느냐?”
만박자의 목소리가 묘하게 울리고 있었다. 백수룡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어차피 말하게 될 거, 피차 피곤해지기 전에 말하는 게 어때?”
“내 눈을 똑바로 보거라.”
“아까부터 왜 이렇게 웅얼거리는 거야?”
“크히히히…….”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만박자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키이이잉……!
만박자는 무공뿐 아니라 술법의 달인이기도 했다.
처음 백수룡과 싸울 때는 술법을 펼칠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백수룡이 완전히 이겼다며 방심하고 다가온 순간, 그의 술법 중 가장 강력한 섭혼술이 펼쳐졌다.
“아…….”
백수룡의 눈빛이 흐릿해진 것을 본 만박자가 괴소를 흘렸다.
“크히히히! 걸려들었구나! 걸려들었어!”
백수룡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 계속 이 순간만을 노려왔다.
단둘만 남게 되었을 때, 그리고 백수룡이 자신을 만마몽혼진(万魔夢魂陳) 근처로 데려왔을 때.
숨기고 있었던 술법을 펼친 것이다.
“내 네놈을 산 채로 씹어먹어 주마! 흐히히히!”
붉게 물든 만박자의 눈동자.
그것은 역천신공의 혈마안을 연구해서 새롭게 만든 섭혼술이었다.
비록 그 능력은 혈마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하다지만, 뒤쪽에 있는 만마몽혼진의 도움을 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크히히히! 알려 주랴? 이 진은 만마몽혼진이라 한다! 본교의 마공과 술법의 힘을 몇 배로 강화시켜 주는 절진이니라!”
흥분한 만박자가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백수룡이 아무리 초절정고수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자신의 섭혼술에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만박자의 쭈글쭈글한 얼굴에 흉측한 미소가 맺혔다. 새로 생긴 장난감을 가지고 놀 생각에 잔뜩 신이 난 표정이었다.
“흐흐흐. 우선 내 점혈부터 풀거라. 내 일어나서 차근차근 네놈의 뼈마디를 분질러 주마.”
“…….”
눈이 풀린 백수룡이 천천히 손을 뻗어 만박자의 어깨에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어쩐지 아까부터 말이야.”
“너, 너! 어떻게!”
만박자가 경악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분명 자신의 섭혼술에 걸려야 하는데, 이지를 상실하고 자신의 꼭두각시가 되어야 하는데…….
어째서 두 눈에 총기가 가득하단 말인가!
“온몸에서 힘이 솟더라고.”
피식 웃은 백수룡이 역천신공을 끌어올리며 혈마안을 발동했다.
백수룡의 두 눈동자가 지옥의 불길처럼 달아올랐다.
그 눈과 마주한 순간, 만박자는 영혼을 잡아 찢는 듯한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