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40
239화. 천흉(天凶)
“갈!”
일성(一聲)과 함께 수십 줄기로 뻗어 나간 검기가 대지를 할퀴었다.
콰콰콰콰콰!
자리를 수백 년간 지켜 온 바위가 허물어지고, 민초들에게 신령스럽게 모셔지던 거목이 속살을 드러냈다.
흔히 인간은 아무리 강해도 대자연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라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존재들이 일으키는 폭력은, 세상에 자연재해와 다름없는 재앙을 일으킨다.
“크하하하!”
무시무시한 파괴의 향연 속에서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흑야마제였다.
“아주 재미있지 않아?”
칠흑같은 어둠이 그를 호위하며 넘실거렸다.
사위에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흑야마제의 어둠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업보란 것이 결국 이렇게 돌아오다니 말이야. 혈족들의 비명이 들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이십 년 전에 내가 들었던 것과 똑같더라고.”
“닥쳐라-!”
비분강개한 외침과 함께, 한 자루의 검이 어둠을 꿰뚫고 흑야마제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욱!
그러나 검이 꿰뚫은 것은 흑야마제의 잔상이었다.
창천검왕도 처음부터 상대가 이 정도 공격에 당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반복된 일. 그는 미련 없이 보법을 밟았다.
휘익!
창천검왕의 발이 허공을 딛는 순간, 그는 흑야마제가 움직이는 경로를 미리 막아서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놈.”
창천검왕의 백색 장포가 오연하게 펄럭였다.
그가 손을 뻗자 하얀 궤적이 벼락처럼 흑야마제를 사선으로 갈랐다. 흑야마제는 어둠을 휘감은 손으로 검격을 쳐 냈다.
힘과 힘이 충돌했다.
콰콰콰콰쾅!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압도적인 경지에 도달한 무력의 충돌. 절대자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그것은 상대를 베고 찌르고 부수고 터트리겠다는 의지와 의지의 충돌이었다.
싸움의 여파가 천주산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쿠구구궁!
땅이 내려앉았다. 오래된 고목이 뿌리를 드러내며 쓰러지고, 사납게 몰아치는 기파가 대지에 온갖 상처를 남겼다.
두 절세고수도 무사하지 못했다.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을 거친 강건한 육신 위로 혈흔이 번졌다.
‘이놈. 강하다.’
창천검왕은 경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 본 것이 언제였던가.
주변이 파괴될까 봐, 상대가 죽거나 다칠까 봐 늘 힘을 아껴야 했다.
악명을 떨치던 마두들도 삼 푼의 힘조차 견뎌내지 못한 것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흑야마제는 달랐다.
‘연배로 보면 내 손주들과 비슷하거늘…….’
창천검왕 또한 어려서부터 질리도록 천재 소리를 들어왔지만, 그의 기준에서도 흑야마제는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과연 검왕(劍王)이라 불릴 만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어.”
잠시 뒤로 물러난 흑야마제가 흑백이 섞인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웃었다. 그의 새카만 눈동자가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나보다는 약하네.”
“……건방진 놈.”
두 절세고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잠시 싸움을 멈췄다.
흑야마제는 산 아래의 남궁세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새 전각을 태우던 불길이 다 잡히고, 비명과 고성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군. 마인들을 벌써 제압한 건가? 방울 소리도 안 들리네.”
반대로 창천검왕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이것이 천하제일세가의 저력이다. 혈교의 잔당 따위가 본가를 무너뜨릴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창천검왕도 남궁세가의 상황이 안정되고 있음을 느꼈다.
초조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자신이 이룩한 가문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며, 창천검왕은 검을 다시 쥐었다.
‘흑야마제. 이놈만 죽이면 된다.’
사파지존의 수급을 베고, 감히 남궁세가를 공격한 자들에게 핏값을 치르게 하겠노라고 천하에 천명할 것이다.
남궁세가의 깃발을 들고, 다시 발호한 혈교 토벌의 선봉에 설 것이다.
그 전쟁이 모두 끝난 후, 남궁세가는 천하제일세가로서 영원불멸의 명성을 누리리라!
“크크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이 뻔히 보이네.”
“더러운 사파의 종자가 본좌의 속을 안단 말이냐?”
경멸이 어린 창천검왕의 말투에, 흑야마제가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제 나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하지? 남궁세가는 위기를 넘겼고,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다시 날아오를 거라고 말이야.”
“잘 아는구나. 목을 길게 빼놓거라. 고통 없이 죽여 줄 터이니.”
창천검왕은 검을 들어 흑야마제의 심장을 겨눴다.
이제야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우우웅-!
대대로 남궁세가 최고수에게 전해지는 창천신검이 진동하며 시퍼런 예기를 발했다.
흑야마제는 그 검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그런데 왜, 그 반대로는 생각을 못 할까?”
츠츠츠츳…….
사위가 시커먼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분명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건만, 흑야마제가 다시 밤을 불러오는 것 같았다.
“흥이 식었어. 함께 불타는 남궁세가를 감상하면서, 당신이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죽이려 했는데 말이야.”
“……허세가 과하구나.”
“허세인지 아닌지는 보면 알겠지?”
순간 흑야마제의 옷자락이 거세게 펄럭였다.
강풍과 함께 흑암강기가 팔방에서 솟구쳐 창천검왕을 덮쳤다. 창천검왕도 그에 맞서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쾅!
흐릿하게 중첩된 궤적들 하나하나가 모두 일격필살의 초식이었다. 직격한다면 절세고수의 육신조차 육편으로 만들 위력을 지녔다.
하늘이 개벽할 듯 빛과 어둠이 번쩍이며 충돌했다. 천신과 마신이 세상을 종말을 앞두고 싸우는 것 같았다.
“크윽!”
최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둠을 잘라내고 그 속에서 창천검왕이 빠져나왔다. 왼쪽 어깨에 살점이 짐승이 뜯어먹은 것처럼 뭉텅이로 뜯겨 나간 모습이었다.
“어딜 가시나?”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어둠에 완전히 휩싸인 흑야마제가 창천검왕에게 쇄도했다.
몸에 갑옷처럼 두른 어둠이 불꽃처럼 끓어올랐다.
“커헉!”
창천검왕은 또 한 번 손해를 보며 물러났다.
붉은 선혈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역시 반격을 했으나, 창천신검은 흑야마제의 암염을 완벽하게 뚫지 못한 채 피륙에 얕은 상처만 남겼다.
창천검왕은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강하다.’
놈은 제 별호처럼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쓴 하늘의 재앙(天凶)이었다.
이십 년 전 그가 만들어 낸 참상 속에서 피어난 끔찍한 악(惡)이었다.
흑야마제가 창천검왕을 몰아붙이며 말했다.
“조금 더 힘내 봐. 어쩌면 당신을 죽인 후에 내가 지쳐서, 남궁세가를 멸하러 가지 않을 수도 있잖아?”
으득…….
창천검왕은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이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죽더라도 저 끔찍한 재앙을 떠안고 죽을 것이다.
“놈……. 내게 시간을 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창천검왕의 두 눈이 붉은 혈기로 물들었다.
“호오?”
흑야마제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창천검왕의 기세가 갑자기 사납게 돌변하더니, 약해지고 있던 기가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크크. 죽어라.”
창천검왕이 흉물스럽게 웃으며 창천신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아앗!
잿빛으로 물든 검강이 흑야마제 뒤편의 봉우리 하나를 그대로 소멸시켰다.
“크하하하! 내 이럴 줄 알았지!”
그 광경을 본 흑야마제가 광소를 터트렸다.
조금 전 공격을 피하다가 귀 하나가 반쯤 날아갔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흑야마제는 혈기를 띤 창천검왕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마공을 익혔지?”
“…….”
“음양마존에게 빼앗은 마공을 연구했을 거야. 마공의 힘은 매력적이니까. 어떻게든 남궁세가의 무공에 접목해 보고 싶었겠지. 성과가 그건가?”
“크아아아!”
창천검왕은 대답 대신 포효하며 검을 휘둘렀다.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콰콰콰콰콰쾅!
흉악한 힘에 의해 천주산 일대가 찢겨 나갔다.
하지만 그 중 흑야마제에게 닿는 것은 없었다. 최초의 공격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멍청하긴.”
오히려 마공을 사용한 순간부터, 창천검왕은 흑야마제에게 농락당했다.
“마공은 인성을 갉아먹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지. 뿐만 아니라, 신체를 변화시켜.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고 싸우는 기분이 어때?”
“닥쳐라-!”
쩌렁쩌렁한 사자후에 바위가 흔들리고, 거목이 뿌리째 뽑혀 날아갔다.
그러나 흑야마제는 태연했다.
아무리 공격이 강해도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
마공을 일으킨 창천검왕은 힘만 센 멍청이에 불과했다.
“당신 정도 되는 고수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절박하긴 했나 봐?”
“끄아아아악!”
창천검왕의 모든 핏줄이 도드라졌다. 점점 강렬해지는 마기가 사방으로 뻗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휘익!
삽시간에 창천검왕의 뒤를 잡은 흑야마제가 그의 뒤통수를 잡고 바닥에 찍었다.
콰아아앙!
어찌나 강하게 처박았는지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몸을 크게 들썩이는 창천검왕의 귀에 대고, 흑야마제가 속삭였다.
“마공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알려 줄까?”
창천검왕은 대답 대신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산조차 반으로 쪼개 버릴 힘을 담아서.
하지만.
턱!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손목이 잡혔다. 직후 손목이 잘려나갔다. 창천검왕은 평생 처음으로 적에게 검을 빼앗겼다.
“!!”
순간 공포에 질려 물러나는 창천검왕의 품으로 흑야마제가 불쑥 들어가며 킥킥 웃었다.
“애초에 마공에 적합한 인간으로 태어나면 돼. 나처럼 말이야.”
“놈……!”
푸우욱!
흑야마제는 빼앗은 검을 주인의 배에 쑤셔 넣었다.
“쿨럭…….”
창천검왕은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흑야마제가 그를 밀어서 커다란 바위에 그대로 꽂아 버린 탓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끝날 수는…….”
검이 단전을 꿰뚫었다. 수십 년의 적공이 덧없이 흩어진다. 창천검왕은 죽어가고 있었다. 생사신의가 당장 온다고 해도 살릴 수 없는 부상이었다.
스르르륵.
어둠으로 된 갑옷을 해제한 흑야마제가 몸을 살짝 굽혀 창천검왕과 눈높이를 맞췄다.
“당신, 생각보다 더 강했어. 덕분에 나도 귀를 하나 잃었고. 염라대왕한테 가서 자랑해도 좋아.”
그 역시 상당히 지친 얼굴이었으나, 나른한 미소는 여전했다.
창천검왕이 그를 올려보며 이를 갈았다.
“죽……여, 라…….”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흑야마제는 손을 뻗어 창천검왕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의 입가에 가학적인 미소가 맺혔다.
“나는 절대 당신을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 우선 두 팔과 다리의 힘줄을 자르고, 혀를 잘라 자살하지 못하게 만들 거야. 하지만 눈은 남겨 놓을 거야. 왜인 줄 알아?”
흑야마제가 앞으로 저지를 살겁을 떠올린 창천검왕의 얼굴에 공포에 질렸다.
“아, 안 돼…….”
천흉(天凶), 하늘이 내린 최악의 악인.
흑야마제를 달리 부르는 말.
그 단어가 형상을 이룬 듯했다.
“당신이 보는 앞에서 남궁세가를 몰살할 거거든. 아들부터 손자까지 하나씩 찢어 죽여 주겠어.”
“제, 제발…….”
“그래야 공평하잖아? 안 그래?”
“아이들, 아이들만은…….”
“혹시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어?”
“내가, 내가 빌 테니…….”
흑야마제가 킬킬 웃으며 창천검왕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승리에 취한 흑야마제가 긴장을 푼 순간.
백수룡이 은밀히 움직였다.